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38
나는 회귀했다 138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전쟁이란 건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일어나는 겁니다.”
“그럼….”
나타샤가 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냐는 눈초리로 이휘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휘는 미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찬데 들어가죠.”
***
이휘, 나타샤를 비롯한 대선물산 산하 PMC 용병들을 태운 유람선이나 다름없는 화물선은 호주를 경유했다. 호주에서 비행기로 갈아탄 그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CIA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휘 일행을 차에 태워 워싱턴으로 직행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자마자 백악관이다.
조수석에 탄 CIA 간부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말했다.
“중간에 고초를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 더 늦기 전에 이번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바라던 바다.
이휘는 차 안에서 백악관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건축물 자체의 웅장함 때문이 아니라, 이곳이 내포하고 있는 위엄 때문이다.
세계 최강의 슈퍼파워 미합중국 대통령이 모든 대소사를 결정하는 곳.
아무나 드나들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반면에 나타샤는 그다지 감흥 없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다른 데 관심이 있었다. 이휘를 슬쩍 쳐다본 그녀는 짓궂게 물었다.
“완전 얼었는데요? 오라버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도 있고 신기하네요. 크렘린궁에 계신 아버지가 알면 섭섭해하시겠어요. 후후.”
“크렘린궁에 처음 갔을 때도 이랬습니다.”
“진짜로요?”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나라도 각국 정상을 만나는 일은 긴장되는 일이예요.”
“그나저나 영화 볼 때처럼 반말 하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이휘는 그녀를 대할 땐-`단 둘이 있을 때를 빼면`- 늘 이렇게 존대를 했다.
정작 나타샤는 이 부분을 마음에 안 들어했지만 이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러시아 대통령의 영애이니 그만한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백악관에 도착하자, CIA 간부가 경호원과 집무실까지 안내했다.
문을 여는 데까지.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안에는 미국 대통령이 평범한 아저씨처럼 책상에 기대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가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답지 않게 소탈하게 웃으며 반겼다.
“나타샤도 오랜만이구나.”
“아저씨.”
나타샤가 그와 가볍게 포옹했다.
“……?”
이휘는 벙 쩠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타샤는 러시아 대통령의 영애다.
정상들끼리 만나서 회담도 하지만,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도 간혹 있다.
서로 안면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타샤가 고개를 돌리며 짓궂게 웃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좋은 분이시니까.”
“나타샤 말이 맞습니다.”
미 대통령이 자리를 권했다.
이휘는 감개무량해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타샤가 그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조금 부담스러웠다.
“나타샤와 사이가 좋군요.”
미 대통령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아이와도 비슷한 또래인데 일 끝내고 식사하면 좋겠습니다.”
“아, 네. 물론입니다.”
식사초대를 받을 줄 몰랐던 이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면 맨 각국 대사들이나 만나봤지, 이렇게 정상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땐 사안이 사안인지라 신경전도 있었고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는데 백악관은 오히려 편안한 분위기였다.
정상회담 자리도 어쩌면 이렇게 일상적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관계를 떠나 그들 역시 사람 대 사람이니.
그때, 대통령이 표정을 살짝 바꾸며 입을 열었다.
“귀하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여러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CIA와도 점점이 있었고요.”
“사실입니다.”
“바이러스 문제를 미리 터뜨린 이유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됐으니, 우리 사이의 약속도 일부 변질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정보기관에서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준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군요.”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사이 이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달라진 건 없다…….”
“네. 현 중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에 동참하셨으니 하는 얘기지만,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선두에서 중국을 지탄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이러스 유포는 명백한 생화학 테러 행위니 시도만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바이러스를 만든 것과, 바이러스 유포 둘 다 현 중국 정부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바이러스를 만든 것은 연구과정에서의 실수라고 우길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내가 아는 중국 정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제안이요?”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백악관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을 뵙는데 저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심지어 한때는 이 나라 정보기관인 CIA와 갈등도 있었죠. 파트리아 펀드는 강력한 펀치를 맞았습니다.”
“우리가 잘 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바로 카운터를 돌려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정당방위지만, 선제공격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입니까?”
“네. 서로가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책임을 지시지요.”
그 말에 대통령이 미소를 띠었다.
‘묘하군.’
책임지라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작두를 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묘하게 안정감 있게 보였다. 이게 바로 눈앞의 어린 사업가가 지금껏 목숨 걸고 작두를 타면서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가 웃을 수 있을지, 한번 들어봅시다.”
대통령이 등을 편히 기대며 말하자 이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이고, 일본 역시 미국에 비견할 수 있는 경제 대국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들은 늘 미국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힘을 가진 자는 피치 못하게 수많은 도전자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
“한국이 부강해지면 중국과 일본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이 아무리 부강해지더라도 중국과 일본 틈에서 아시아를 지배하긴 힘들 겁니다.”
“그래서, 바라는 게 있습니까?”
“한국의 방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저희 회사에서 도울 테니 대통령님이 중국과 일본을 압박하는 데 힘을 실어주십시오.”
“지금 중국 정부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걸 알고 있고, 우리도 힘을 실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도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주한미군협정 등 현재 한국에 걸려있는 제약을 모두 풀어주신다는 조건하에 정부와 협상해주십시오.”
“우리가 얻는 건?”
“한국의 동맹유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미 대통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미군이 주둔하고 있…”
“아뇨.”
이휘가 말을 이었다.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 계속 국내에 주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주둔하겠다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테고요.”
대통령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한국 정부는 이 대표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해서 전쟁을 막아줬어요.”
“대신 한국 정부에서 그만한 국방비를 지불했습니다. 그 돈 모두 한국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고요.”
“그래서 발을 빼겠다?”
“일본도 함께 뺄 겁니다.”
“무슨 수로?”
“수를 냈거든요.”
야마다 신조를 일단은 손바닥 안에 두었다. 따라서 당분간 일본 정부는 한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야마다 신조가 지금 같은 권력을 유지하는 한 일본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손정학의 지원 하에 정권이 바뀔 때쯤이면 양국의 관계는 다시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확한 것은 일본 정부를 통해 확인해보시면 될 겁니다.”
미 대통령이 당황한 기색을 지웠다.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휘는 순순히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러자 미 대통령이 물었다.
“그리고 다음은?”
더 있다.
그는 확신했다.
이휘가 이대로 끝내지 않을 것을.
이휘가 말했다.
“미국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 상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권을 다투는 중국을 견제하고 억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물론 그 일에 한국도 가담할 거고요. 이를 위해 제게 권한을 주십시오.”
“어떤 권한을 얘기하는 겁니까?”
“미국의 군사적 통제, 정보기관의 통제 없이 현 중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달라는 겁니다. 또한 자유롭게 월가와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내리 뭔가를 얻어내려는 이야기만 하는군요.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를 이용했다면, 이번에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기 위해 뭘 이용할 생각입니까?”
“현재 미국은 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큰 문제라.”
“미국 경제에는 거대한 버블이 껴있습니다. 그리고 이 버블은, 언젠간 터지겠죠.”
이휘가 말하는 것은 2007년 미국이 겪어야할 공황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 이름으로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고.
바(BAR)에서 일하는 스트립걸도 집을 50채씩 가지고 있게 될 미래.
이 거품이 한꺼번에 터지며 미국은 역대급 금융위기를 겪게 된다.
수많은 실업자가 생기고 자살률이 치솟고 은행이 줄도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물론 미국 대통령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짚이는 바가 있었다.
“설마…. 월가에서 이 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까?”
“아뇨.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겠죠.”
“문제가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합니까? 미국의 시장경제는 견고한데.”
“그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대신 저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주면 되겠습니까?”
“한 달이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허튼 소리할 사람이 아닌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 만약 이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 수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이 대표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으니.”
“아뇨.”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제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의 시장을 10년은 퇴보시킬 어마어마한 경제위기입니다. 버블이 터지면 그걸 회복하는 데만 수 년이 걸리겠죠. 그동안 미국은 지옥이 될 겁니다.”
“그래서요?”
“만약 제가 이와 같은 상황을 헤집지만 않는다면 저는 한국의 금융위기에서 미국이 그러했듯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을 싼값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아마 미국의 금융기관에서도 부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제가 밝혀내기도, 대통령님께서 명분을 얻고 금융권을 압박해 위기를 막기도 힘들다는 뜻이죠. 따라서 제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면 파트리아 펀드가 아닌, 이번에 제가 새로 차린 회사에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말해보십시오.”
“기름입니다.”
“기름?”
이휘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측의 석유매장량은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저희 회사는 기술력 부족으로 방치되어 있는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이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산유국으로서 세계 원유시장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도와주신다면 저는 그 대가로 미국의 10년을 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