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42
나는 회귀했다 142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선 이휘는 차에 탔다.
미국에선 새로운 사람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이름이 잭이라고 했나?
그는 꽤 긴 시간 러시아에서 용병생활을 해온 알란, 알렉세이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야무진 제격의 흑인 남자였다.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아주 편합니다.”
“미국은 겉보기 아름다운 도시죠.”
갑작스러운 말에 이휘가 고개를 갸웃했다.
“`겉보기`만 그렇습니까?”
“미국이란 이름만으로도 시민들은 자부심을 갖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조금 더 파고들면 미국의 화려함과 부유함, 아름다운 겉모습은 모두 30퍼센트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겁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잭이 말을 이었다.
“보스가 저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부유층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수다스러운 남자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휘는 그가 아무 핵심 없이 허튼 소리를 늘어놓을 사람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휘의 곁에 있는 나타샤는 이휘가 잠자코 듣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 얘기도 좀 저렇게 들어주지.’
뭐, 이휘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얘기를 할 땐 아주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인다. 쓸데없는 말을 해도 다 듣긴 하지만 집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쓸데없는 말`에 속하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휘는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호원 겸 기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대화상대인 잭은 예사롭지 않은 우려를 던졌다.
“보스가 만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을 잘 벌어서?”
“사업 수완이 좋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결국 시장에 도는 돈은 비슷합니다. 새로 화폐를 찍어내도 모조리 부유층에 몰리죠. 결국 처음부터 부자가 아닌, 일반인이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려면 누군가의 돈을 빼앗아야 한다는 겁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는 뜻이지요.”
“….”
이휘는 잠깐 생각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지.’
대상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자들이었을 뿐, 어쨌든 이휘의 품안에 들어온 돈은 모두 그전에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돈이었다. 이를테면 김정판, 블라디미르, 론스터까지.
“그렇겠죠.”
“보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잭이 말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악한 상대만 무너뜨렸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십시오. 그들은 상대를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자체를 깊게 생각하지 않죠. 오로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얘깁니다. 날 잘 안다면 그 사실도 알고 있을 텐데요.”
“보스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얘기해봐요. 물리적인 테러를 말하는 겁니까?”
“물리적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분명한 건 저들이 만약 보스를 적대시한다면, 지금껏 싸웠던 그 어떤 상대보다 두려운 상대가 될 거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사업가입니다.”
이휘는 부정했다.
“사업가, 정치인…… 지금껏 그런 사람들이 뒤에서 폭력을 쓰는 모습을 많이 봐왔지만 저들은 아니에요. 난 그걸 확신합니다.”
“그렇습니까?”
“물론이요.”
“저도 모든 이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수조, 수십조가 걸린 문제에도 신사적으로 나올까요?”
“이번 일에 피해자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까 그 안에는 있었겠지요.”
이휘가 눈을 반짝였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지금은 힘든 시기니까요.”
“….힘든 시기라.”
“저는 주한민군을 제대했습니다. 한국에는 관심이 많아요. 주식도 넣는데 지금 널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장, 한국장 모두 영향을 받았어요. 최근 일어난 일들로 인해 죽어 나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꼭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각지에서 사람은 죽어 나갑니다. 다시 말해서 보스한테 불만을 가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은 안전할지 몰라도 미국은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계좌 보신지 얼마나 됐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잭이 고개를 갸웃했다.
“계좌요?”
“네. 주식계좌.”
“은행간지 두어 달 됐습니다.”
미래에는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것이다.
“내일 은행 한 번 가보세요. 저, 적도 많지만 아군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가가 널뛰기 시작하고 정부에서 우리 회사의 기부금으로 채권을 사들였거든요.”
채권을 사들이면 주가는 다시 오른다.
말인즉, 리스크를 대비했다는 것이다.
“그럼….”
“네. 제가 죽어 나가면 곤란해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아까 그 자리에 계시던 분들 모두 뒤로 우리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입니다.”
“그게 무슨…! 애초에 그럼 파트리아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만 부른 겁니까?”
“더불어, 새로 차린 회사에도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왔더군요. 그들은 저를 해치지 못해요.”
이휘가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그들 중 누군가 뒤로 말도 안 되는 범죄를 꾸밀만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아….”
잭은 입을 벌린 채 나지막이 감탄했다.
“부끄럽군요.”
“아닙니다. 기대 이상이에요. 안에서 누굴 만났는지 추측하고, 또 제게 이런 조언을 해서 더 믿음이 갑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차량이 멈췄다.
쿨하게 말하고 내리는 이휘를 보던 나타샤가 고개를 저었다.
대체 저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
계획했던 대로 미 대통령은 자기 라인인 의원들을 동원해 비밀리에 합의를 보고 정책을 추진했다.
상원에서도 하원에서도 수월하게 통과된 것은 모두 월가의 거물들이 그들에게 언질을 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귀에 들어간 이상 이 문제를 아무리 극비에 붙인다 해도 비밀유지가 힘들겠지만, 중국 정부의 귀에 들어갈 때까진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저 아직까진 중국 입장에서 일반적인 미국의 무역재제 정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의도해서 민간에 적당히 흘렸다.
이와 같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미 대통령은 찜찜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국무장관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휘가 미국의 경제와 정부 정책을 모두 움직이고 있소.”
국무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아무리 한국이 태풍의 눈이라 해도, 유사시라 해도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용납을 하지 않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었다면 내 국무장관을 불렀겠습니까.”
“그러면요?”
“장관께선 내 정치적 멘토이신 것을 알지 않습니까. 오늘은 사적으로 묻는 겁니다.”
“이런… 그런 과한 말씀을. 아닙니다. 멘토는 아니지만 한 마디 사견을 붙이자면 이휘와 적대시 하지 마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국무장관은 회의 때도, 그리고 하원과 상원에서 정책안이 통과될 때도 그에게 호의적이었소. 워런 때문입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나랏밥 먹는 사람이고 워런은 사업가이자 투자자입니다. 우린 서로 길이 달라요. 생각하는 방향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이휘를 적대시하지 말라는 겁니까? 그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세상 누구도 못한 일을 해내서입니까?”
“그 역시 아닙니다.”
“그러면…?”
“고슴도치를 건드리면 가시를 세우기 마련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를 미국의 적으로 돌려도 괜찮겠습니까?”
“계획을 망치고 그를 무너뜨리려면 불안정한 지금밖에 없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 중국 정부가 항복하고 그가 북한의 자원까지 손에 넣게 된다면… 사실상 말이오. 그렇게 된다면 그땐 진짜 국무장관 말씀처럼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될 거요. 영영.”
그러나, 국무장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미국은 강합니다. 그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이든 언제든 이휘를 무너뜨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싸울 이유가 사라진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지요. 공룡과 싸우시겠습니까, 범을 상대하시겠습니까?”
“설마 범이 중국 정부고 공룡이 이휘란 말입니까?”
국무장관이 미미하게 웃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중국 정부가 무슨 수를 써도 미국 경제와 정부의 의지를 흔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번 바이러스가 퍼졌다면 모를까,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휘 그 친구는 세 치 혀로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장관께선 방금 전 미국이 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동등하게 싸운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시장경제와 인류의 발전은 20년 전으로 회귀하겠지요.”
“결국 싸우지 말란 소리군. 그 말씀을 뭐 이리 길게 하십니까?”
대통령이 심통을 부렸지만 국무장관은 어깨를 으쓱였다.
“방법은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대비하되 결코 서두르시지 말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대통령께서 결정 내리시는 데 도움이 됐겠습니까?”
정치적 신념. 고집. 집념. 그러한 것들이 그를 대통령자리까지 끌어올려준 동기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국무장관도 길게 풀어서 타이른 것이고.
미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이휘가 미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뛰었습니다. 뭔가 태풍을 몰고 오는 느낌이었지. 그리고 지금 난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도발하시려는 거군요.”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가 있어요. 그 다음 유럽의 수장들에게도 전화를 돌릴 겁니다. 전세계를 상대로 중국이 며칠이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제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국방부에서 미리 받아둔 시나리오에 의하면 중국이 전쟁을 감행해서 민심을 돌리는 최악의 상황과, 민심을 잃고 정부가 퇴출당할 확률은 반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부 군사적 조취를 취해야겠군요. 혹시라도 중국이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게 막으려면.”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미 대통령의 핸드폰이 울려온 것은.
그는 이름을 확인하더니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입니다.”
-이휘입니다.
“알고 있어요.”
-어제 밤 새 고민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돌려보니 중국이 극적으로 반응할 경우를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확률은 반반 정도… 군사적 조취가 필요합니다.
미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시선이 교차했다. 두 사람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사이를 비집고, 이휘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 무기회사와 협업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미국 회사고요. 다행히 CIA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거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이휘가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그만큼 그 회사가 제게 빚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바이러스를 빙자한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동안 저희가 소유한 무기회사도, 협업하는 회사들도 놀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얼마 전 그 핵심기술이 들어왔습니다. 해서 그 핵심기술을 이용해 언제든 중국의 돌발행동에 대처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마련해두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