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49
나는 회귀했다 149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
바위 뒤에서부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즉 타는 냄새가 났지만, 화약 냄새와 섞여 알지 못했다. 어두운 밤이라 연기가 퍼진 뒤에야 알아채고 말았다.
눈이 매울 지경이 되어서야.
“젠장!”
남자가 손을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실제 불이 난 현장에 가보면 연기가 얼마나 매캐한지 알 수 있다. 일반인은 산소호흡기 없이 잠시도 버티기 힘들다.
그리고 남자가 갑작스러운 연기에 잠시 눈을 감은 그 순간조차, 유명한 용병들을 밥먹듯 손쉽게 해치웠던 이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화악!
연기를 뚫고 이휘가 날아들었다.
타앙! 탕!
남자가 서둘러 총을 쐈지만, 한 발은 빗나가고 한 발은 어깨를 스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이휘는 남자의 총 든 손을 잡아당겨 부러뜨릴 수 있었다.
우드득!
“크악!”
남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반대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이미 시야가 정상이 아닌 상황. 이휘는 대체 어떻게 제약 없이 움직이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주먹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말았다.
“무슨……”
퍼억!
무릎에 명치가 받친 남자는 짧은 숨을 들이켜며 뒤로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올라타듯이 달려든 이휘가 팔꿈치로 목을 찍어눌렀다.
으드득!
목뼈가 부러지며 남자가 축 늘어졌다.
자리에 남은 이휘는 숨었던 숨을 터뜨리며 헐떡였다. 그리고 그제야, 감고 있떤 눈을 떴다.
“후우.”
천만다행이다.
자신이 직접 불을 피운 게 아니었다면 이 남자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방금 죽은 자는 이휘가 불을 피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점이다.
부싯돌로 지푸라기에 불을 지피는 일은 이휘에게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고, 지금처럼 어두워서 시야 확보가 안 되는데다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상황에선 적절한 임기응변이 됐다.
‘위험할 뻔했어.’
고수들의 싸움일수록 쉽게 결판이 나기 마련이다. 아주 작은 틈. 그 틈만 있으면 승패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이휘는 상대의 틈을 만들어내는 데 아주 능숙했다.
‘알렉세이와 알란을 구해야……’
그 순간.
이휘는 불현 듯 소름끼치는 위기감을 느끼며 나무 위로 몸을 숨겼다.
한쪽 팔을 거의 못 쓰게 됐음에도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이는 이제껏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몸을 단련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때.
아주 미약하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딱 그 정도 수준의 미약한 소음이었다.
‘고도로 훈련받은 자들.’
이휘는 한 집단을 떠올렸다.
‘장진평의 친위대.’
그들밖에 없다.
소대 규모의 인원이 움직이는데 이휘 자신도 가능할지 모를 만큼 은밀하게 움직이는 자들은.
심지어 저들은 자신의 기감을 속였다.
만약 본능에 따라 몸을 숨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꼼짝 없이 생포됐을 것이다.
이휘는 숨소리마저 멈췄다.
‘내가 알아챘다면 저들도 내 존재를 알아챌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결론이다.
자신은 혼자지만 저들은 총 스무 쌍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저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아챌 확률이 더 높았다. 그건 그런데.
이어진 상황은 이휘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불을 피운지 얼마 안 됐어.”
불을 끈 복면인이 읊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자, 시체를 학인한 복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못 갔을 거에요. 체온이 남은 걸 보니 죽은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나저나 듣던 대로 대단하군. 이 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다니.”
그렇게 중얼거린 복면인 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나와라!”
‘젠장.’
이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놈이 보이는 태도로 봤을 때 의심이 아니다.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주변에 숨어있을 거라는 점을.
“네가 얼마나 두려울지는 알고 있다.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총알받이가 되면 어쩌나 싶겠지. 하지만 우리는 널 죽이러 온 게 아니야. 만약 죽이러 왔다면 네 친구들을 살려두지 않았을 거다. 지금이라도 가서 한 놈을 쏴 죽인 뒤 남은 한 놈의 목숨을 담보로 널 끌어냈겠지.”
사실이다.
“우리가 받은 지시는 널 데려오라는 거야. 우리가 모시는 분께선 널 미국을 짓밟을 단초로 생각하고 계신다. 아니, 너만이 중국이 세계패권을 쥐는 열쇠라고 생각하시지. 그렇기에 결코 용서치 못할 죄를 지었음에도 우릴 보내 널 살려서 데려오라고 하신 거다.”
이휘는 더 이상 버텨봐야 들키는 게 시간문제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이면 피했겠지. 아니, 그렇게 치면 슈퍼맨이 더 가능성이 높으려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고개를 저은 이휘는 나무에서 툭 떨어졌다.
“여기 나왔다.”
“하하하하!”
상대가 크게 웃는다.
대장이 복면인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 반갑군. 네 이야기는 귀 따갑게 들었다.”
“원래 중국인은 다 그렇게 말이 많은가?”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친위대.”
“제법이야.”
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도 물이 엎질러졌다는 걸 알 거야.”
“날 왜 안 죽이는 거지?”
“말했잖나?”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게 나야. 이미 한 번 너희를 엿 먹인 내가 투항할 거라고 생각하나? 네 보스는?”
“그분께서는 관대하시지.”
“그렇군.”
“같이 갈 텐가?”
“선택권은 있고?”
대장이 낄낄 웃었다.
“아니, 없어.”
이휘가 손을 내밀었다.
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복면인들이 다가와서 케이블 타이와 밧줄을 이용해 2중으로 손을 묶고 머리에 검은 천을 뒤집어씌웠다
“어째 얼마 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말은 그때와 다를 거다. 우린 네게 탈출을 허용할 만큼 허술하지 않거든.”
그래도 친위대란 자들이니, 어지간해선 빈틈을 찾기 힘들 터였다.
두 겹으로 양손을 포박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친위대를 잡아야 돼.’
그 사실만은 변함없다.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은 뇌물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장진평에게 충성하는 것.
그 사명만으로 살아가는 자들 같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알란과 알렉세이가 마찬가지 모습으로 끌려와 나란히 섰다.
“미쳤군.”
알렉세이가 속삭였다.
“달아났어야지.”
“여긴 중국이야. 도망칠 데가 있을 리가.”
알렉세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 소릴 들었는지, 우릴 잡은 친위대 대장이 으르렁거렸다.
“조용해줬으면 좋겠군. 입을 막지 않은 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야.”
“그러지.”
이휘가 대답했다.
이들이 자신들을 결박하고 입을 막지 않은 것은, 검문이든 뭐든 프리패스로 통과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끌려가는 내내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어딜 가든 장진평의 영향력이 미친다.
‘장진평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장진평은 이번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거야.’
이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당장에 인류를 위협할만큼 큰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한 게 없는 상황.
현재 중국은 완전한 우범국이 됐기에, 국제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게 빤했다.
이휘 일행의 신변을 사로잡은 친위대는 그들을 도시 외곽의 호텔로 데려갔다.
그런 뒤 대장이 말했다.
“내일 비행기가 오기로 했다. 그때까지 얌전이 있는 게 좋을 거야.”
“치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휘가 팔을 턱짓했다.
“출혈이 심하거든.”
“심각해지면 그때 치료해주지.”
“그러든지.”
친위대 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신호로 이휘 일행은 각자 다른 방으로 찢어졌다.
호텔을 통째로 빌렸기에 누가 어느 방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욱이 이휘는 얼굴을 가렸기에 친위대 포함 몇 명의 병력이 이곳을 지키는지 알 턱이 없었다.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했다.
더불어, 숨통이 끊기기 직전까진 천을 벗거나 포박을 풀 방법이 없다는 것도.
‘틈이 없군.’
소변과 대변도 처리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특수부대원이 받는 훈련을 거치다 보면 소변이나 대변을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다반사다. 냄새가 고약하고 기분이 더러워서 그렇지 그 정도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소변이나 대변을 해결하겠답시고 기회를 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상처도 암겸된 것 같고.’
한쪽 팔에 점점 감각이 없어진다.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서 토하거나 쓰러질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터.
이휘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긁어 상처를 냈다. 그러자 손톱 끝에 뭔가가 잡힌다. 이휘는 그 물체를 길게 뺐다. 맨살에 가시가 박힐 때의 원리로 나무 위에서 길고 얇게 깎아내린 미세한 나뭇조각을 손바닥에 박아두었던 것이다.
‘이런 걸로 밧줄에 케이블타이까지 풀 수는 없지만……’
아무리 정교한 매듭도 구조만 알면 쉽게 풀 수 있는 법이다.
군에서 훈련받는 매듭법은 일반인이 결코 풀 수 없는 수준의 매듭이지만 이휘는 이미 수백 가지 매듭법에 대한 대처법을 알고 있었다.
‘악력만 남아있으면 충분히 가능해.’
그는 미세한 나뭇조각으로 밧줄에 작은 홈을 만들고 손가락을 이용해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때로는 나뭇조각을 쑤셔넣어 구심점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뭇조각은 그의 악력에 버틸 길이도, 두께도 아니었기에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나마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미리 매듭을 더듬어서 구조를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휘는 해가 떠서 햇볕이 피부를 달굴 때까지 그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 방 안에 몇 명이 있는지 몰라도 매듭을 풀고, 케이블타이까지 해체해두는 것이 중요했다. 해서 그는 밧줄과 케이블타이를 완전히 풀지 않고 느슨하게 해체해두었다.
언제든 손목에 힘을 주고 잡아당기면 풀릴 수 있도록. 그리고 조용히, 나뭇조각을 손바닥 안으로 감췄다.
그리고 그때즈음 그들의 대장이 들어와 말했다.
“시간 됐다. 준비시켜.”
“예.”
쾅.
객실 문이 닫히는 소리.
두벅, 두벅……
발소리를 들었을 때 두 명이 다가온다. 그렇다고 둘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묶어둔 거 풀어.”
지시를 내린 남자 말고, 다른 한 명이 다가와 발목의 밧줄을 푼다. 한쪽 발목을 풀고 다음 발목으로 움직였을 때 발아래 있던 놈이 물었다.
“이게 뭐지?”
“뭐가?”
“아, 아닙니다.”
“뭔데?”
“카펫에 얼룩이 있어서 뭔가 했더니 이놈 팔이 다쳤잖아요.”
“뭔 소리야?”
“아닙니다.”
놈이 일어나는 순간.
이휘는 밧줄과 케이블타이를 일시에 뜯어내며 놈의 목을 감았다.
화악!
“커헉!”
“뭐야!”
지켜보던 놈이 재빨리 권총을 뽑아 들고는 두 사람을 겨누었다. 그러나 섣불리 발포하진 못했다.
‘죽여도 된다’는 명령을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동료가 잡혀있기 때문이다.
이휘는 영리하게 주요부위를 가린 채 말했다.
“총 버려.”
“개소리.”
“……내가 간다.”
“멈춰. 움직이면 쏜다.”
총 든 놈이 협박했으나 이휘는 개의치 않고 사로잡은 놈을 앞세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것은 다른 놈들이 머리 굴려가며 협력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 와중에도 돌발상황을 당한 쪽이 아닌, 돌발상황을 일으킨 이휘의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