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52
나는 회귀했다 152
통화를 끊은 마원은 전세기에서 내려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있었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그 말에 상대가 고개를 까딱였다.
“따라오시오.”
장진평의 최측근.
중앙조직부장 리양이다.
지금은 은퇴했으나 군 출신으로 친위대를 키워낸 장본인이었다.
꿀꺽.
침을 삼킨 마원은 만찬이 차려진 곳으로 갔다.
장진평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석.”
마원이 고개를 숙이자, 그가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
“내게 서운한 게 많았을 거야.”
“아닙니다.”
“자네의 노고가 깃든 기업을 등지라고 했으니.”
“이 나라를 위한 일….”
“큭.”
장진평이 잇새로 웃음을 흘렸다.
“입발린 소리.”
그는 그제야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더니 편히 등을 기댔다.
“그래, 쓸데없는 이야긴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말해보게.”
두근, 두근….
마원은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장진평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입 한 번 잘못 벙긋하는 순간, 나가는 길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장진평은 속이 서커먼 자였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모든 걸 앗아간 천하의 장진평만큼 두려운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심지어 그가 이룬 일들을 보면 장진평조차 할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다.
또한 장진평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는 현재의 자신이 있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의 초석을 다져주었다.
마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스르륵.
눈을 뜬 채, 그가 말했다.
“제게 이번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를 이야기하는 건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이는 충성심을 시험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받고 있는 오해를 지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해가 안 가는군.”
장진평이 입가를 닦았다.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자네 친구는 전쟁을 막고자 내 목을 치려는 것 같더군.”
“제가 그자에게 은혜를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기에, 지금껏 그를 도왔습니다.”
“호오.”
장진평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 앞에서 그자를 도왔다, 시인하는 건가?”
“저는 이곳에 죽으러 왔습니다.”
털썩.
마원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쿠웅! 박았다.
“죽여주십시오.”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장진평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원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뭐가 당신을 그리 두렵게 만들었나?”
“저는 가족이 있습니다. 주석.”
“….”
“하지만 전쟁이 나면, 저희 가족의 목숨은 폭풍 앞에 촛불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내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주겠다?”
“예. 아무리 구명지은을 입은 이휘라도 가족보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가 내 목을 치면 전쟁은 없을 거야.”
“감히 어떻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놈은 불가능한 일을 자주 해냈지. 마치 히어로물 주인공처럼.”
“요행일 뿐입니다. 사람이… 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제가 본 적도 없습니다. 필시 과장됐거나 행운이 따랐을 것입니다.”
“그것도 반복되면 실력이 돼. 자네도 알텐데.”
“제 목숨은 중요치 않습니다.”
마원은 다시 한번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쿠웅!
뜨끈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가 절규하듯 외쳤다.
“제발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가족만은 살리고 싶습니다.”
“일단….”
둥근 원형 식탁 아래서 의자를 뺀 장진평이 자리를 권했다.
“좀 앉지.”
“예, 예.”
마원은 두 번이나 같은 대답을 하며 의자에 앉았다.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는 그때 장진평이 피식 웃었다.
“마치 날 죽이러 온 것처럼 떨어대는구나.”
“아닙니다. 어떻게….”
“그래.”
장진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럴 강단이 있을 리 없지. 하지만 이휘는 달라. 그리고 만약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우리가 바이러스를 유포했다는 끔찍한 누명을 벗는 순간, 놈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비공식적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그땐 공식적으로 죄를 물을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마원은 듣기 싫다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장진평 같은 늙은 여우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하든 속이 읽히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보여줄 부분은 확실히 드러내는 편이 낫다.
“죄책감을 느끼나 보군.”
“이휘를… 보내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놈은 이미 선을 넘었어. 놈을 잡으러 간 친위대도 연락이 안 되더군.”
“…!”
마원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모두 처리했다고?’
그는 소름이 돋았다.
세 명뿐이라고 들었는데 친위대 전원을 처치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한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진정으로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장진평이 고개를 저었다.
“못 들었나 보군.”
“그야 당연히…”
“자네와 연락하고 있다는 걸 알아.”
“그런…”
“거짓말하지 말게.”
“…!”
마원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탓하는 게 아니야. 놈은 지금 어디 있나?”
“제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휘가 친위대를… 그것도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놈이 내 친위대에 손대지 않았다면, 곱게 끌려왔다면 나는 그놈을 살려두려 했어. 아주 간단히 우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휘가 이끄는 회사를 단숨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시켜주려 했지. 정말 큰 은혜를 베풀려 했네. 원래 생각대로 제거하긴 아까웠거든. 하지만 내 조직에 손을 댄 순간 놈은 끝났어.”
“….”
“그러니 이 시간부로 놈을 살려두니 어쩌니 오지랖을 부리면 자네 먼저 보내주지.”
“…예에.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저희 가족의 목숨만 부디 보장해주십시오.”
“그들은 내 국민이야. 자네 역시 마찬가지지. 만약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게 되면 자네는 다시 자네가 일으킨 기업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기억하나?”
“예? 무엇을…”
“기업을 이끌던 시절의 자네 모습을.”
“…당연히 기억합니다.”
가장 좋았던 시절이니까.
반강제적으로 해임된 후에는 언제나 공허했다.
“모든 걸 되찾게 해주지. 더불어 적극적인 후원하에 전보다 더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자네를 내 사람으로 삼고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게 해주겠네. 내게 반하는 걸 제외하면 말이야.”
장진평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내게 반하는 순간 자네는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자네 신념도, 가족도, 미래도. 장담하지. 모든 걸 얻거나 모든 걸 잃거나. 쉬운 문제 아닌가?”
“쉬운 문제가 맞습니다.”
마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길은 늑대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런 마원을 응시하며 미소 지은 장진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볼만한 얼굴이 됐군. 자, 어디 한번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 더러운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돈을 들여 연구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연구시설?”
고개를 갸웃하는 장진평과 눈을 마주친 마원이 대답했다.
“예. 저는 알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인프라를 이용해 사우디에 연구시설을 지었습니다.”
“계속해.”
“그 연구시설에 우리가 만들었다는 샘플… 이 모든 일의 화근이 된 샘플을 가져다 둘 생각입니다.”
“그 샘플은 한국에 있는 걸로 아는데? 아니, 지금쯤이면 미국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군. 폐기했다고 공표했지만 아마 제놈들이 그걸 이용해 무기를 만들 수작을 부리고 있겠지.”
“더 정확히 말하면 원래 이휘의 손에 있던 물건입니다.”
“그런데 자네가 빼돌렸다?”
장진평이 뺨을 쓸어내렸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놈이 샘플을 넘겨?”
“넘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왜지?”
“중국에서 내부자 도움 없이 일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이휘라 해도… 설령 미국에서 암암리에 도와준다 해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샘플을 받는 조건으로 그놈을 도왔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장진평이 고개를 돌려 리양을 봤다.
“허튼소리를 하는군.”
“알겠습니다.”
리양이 다가가자, 마원이 어깨를 흠칫하며 급하게 내뱉었다.
“사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믿음을 주는 건 자네 몫이야. 난 그저 보이는 대로 믿일 뿐이지. 더 할말이 남았나?”
“샘플을 받는 대가로…!”
“대가로?”
잠시 망설이던 마원이 덧붙였다.
“…주석이 계시는 곳의 내부 정보를 넘겼습니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따로 소장하고 계시던 샘플인 척, 원래 샘플을 가져다 두기로 했고요.”
“…감히 내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
“그렇습니다.”
엄연히 말해 누명은 아니었지만 장진평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격노했다.
“뱀 같은 놈!”
“하, 하지만 그 샘플은 이곳에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
“정말입니다. 연구시설을 짓고, 그곳에 안전하게 보관해놨습니다. 혹시라도 샘플이 공기중에 노출되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지니까요. 제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믿어보지. 그 시설로 이휘를 불러. 방법은 알아서 궁리해 낼 거라고 믿네.”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진평이 리양을 쳐다봤다.
“군대를 데려가서 샘플을 확보하도록.”
“알겠습니다.”
리양이 슬쩍 물었다.
“거짓이 있으면 어떡할까요?”
“다 죽여. 이휘를 찾아서 그놈도 제거하고.”
“분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리양이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렸다. 그는 분명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못 본 척 마원을 응시한 장진평이 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망시키지 말게. 아직 내부에 내 사람이 많아.”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봐. 리양이 함께 갈 테니.”
마원은 리양의 무표정한 시선에 떠밀리다시피 장진평이 있는 곳을 나섰다.
밖에 나온 리양이 말했다.
“난 당신이 허튼수작을 부릴 거라고 확신하고, 부려줬으면 좋겠어.”
“….”
“정말 충성을 맹세했다면 실망할 것 같거든. 그렇게 비열한 목숨을 연명하게 해줘야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마원은 소름이 돋았다.
이 자나 장진평이나 자신이 딴 생각을 할 경우 자신과 가족들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대인이… 정말 당해낼 수 있을까.’
마음이 약해졌다.
세간에 정적들로 인해 군사력을 동원할 수 없다고 알려진 것은 쇼에 불과할 뿐, 장진평은 방금 ‘군대를 동원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리양이 밤까지 소집한 군대는 수천 명이었다. 포병, 탱크, 헬리콥터, 특수전부대까지.
은밀하게 광범위한 수색작전을 펼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독 안에 든 쥐를 잡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대대적인 움직임이었다.
“놈을 불러.”
리양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마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영어로 통화하고 전화를 끊자 리양이 물었다.
“누구지?”
“이휘와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놈에게 협조하는 CIA를 통해 연락하면 분명 놈이 올 겁니다.”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네놈 가족과 네놈은 죽는다. 이미 네놈 가족들한테도 병력이 가 있어. 방금 한 말, 거짓이 없어야 할 거다.”
충격적인 협박에 마원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 * *
그 시각, 이휘는 마원의 말처럼 CIA 요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직통으로 전화를 거는 것은 플랜 A.
CIA 요원을 거쳐 전화하는 것은 플랜 B다.
마원은 플랜 B를 택한 것이다.
“슬슬 일어나지.”
이휘는 선글라스 너머로 붕대를 감은 부분을 확인했다. 아직도 몸이 멀쩡하지 않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맞은편에 알란과 알렉세이, 두 사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카페에서 위장한 채 연락을 기다리던 세 사람은 서로 말을 맞춰둔 상태인지 어딘가로 은밀하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