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53
나는 회귀했다 153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알렉세이가 물었다.
“마원은?”
“…시설로 가겠지.”
대답한 알란이 덧붙였다.
“모두가 깨끗하게 일을 끝낼 수는 없어. 목숨을 건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야. 알잖아?”
알렉세이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결국 희생양이 필요한 거군.”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휘가 대답했다.
“아직 희생된 건 아니지.”
“정말 그놈들이 마원을 구출할 거라고 생각하나?”
알렉세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저들 난처하니 발을 빼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것 아니냐고.”
알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 조수석에 앉은 이휘를 돌아보며 물었다.
“복안이 있습니까?”
언제나 그랬다.
이휘는 마치 미래를 예측한 것처럼 움직였다.
대책 없이 과감해 보여도 그 내면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기에 죽음이 확실시되는 작전에서 매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나는 마원과 월가의 큰손 투자자들을 연결해주었습니다.”
당시는 마원이 알리를 지키게 해주기 위해 연결해준 것이다. 하지만 관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원은 자기 지분을 넘긴 돈으로 지금껏 비밀리에 미국 국채와 기업들에 투자해온 까닭이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흘러 들어간 상태에요. 만약 여기서 마원이 사망할 경우 중국 정부는 그의 채권과 지분을 회수할 겁니다. 미국에서 큰 자본이 빠져나가는 거죠.”
알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봐야 개인이 돈을 빼는 건데 미국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마원만이 아닙니다. 그는 믿을만한 파트너들을 모집해 비밀리에 펀딩을 했어요. 중국에서 거대한 자본이 움직인 겁니다.”
“그렇다 해도 미 정부를 움직이긴 힘들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화룡점정이 필요하죠.”
이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얼굴색 하나 안 바뀐다는 것은, 뭔가 생각해 둔 바가 있다는 뜻.
이휘가 말을 이었다.
“그 대가로 마원은 미국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했어요. 투자이민 비슷한 개념이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준전시 상태고 증인 보호 및 투자자 보호 개념으로 비공식적으로 절차가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설마… 미군이 공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겁니까?”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부대와 수사기관이 마원 구출을 위해 협력해서 움직일 거에요. 물론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으니 비공식적으로 나서겠죠.”
“만약 저들이 대대적으로 병력을 투입했다면 아무리 훈련 받은 군인들이라도 마원을 구출하긴 힘들 겁니다. 전멸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죠.”
“스티븐 시걸 알아요?”
옛날에 유명했던 미국의 액션배우다. 워낙 발차기를 시원하게 잘해서 태권도를 주 무술로 쓴다는 오해라거나, 한국 교포라는 루머가 있긴 했으나 사실무근이다. 뿐만아니라 실상 그가 쓰는 무술은 일본전통무술인 아이키도와 가라데를 근간으로 한다.
그렇긴 하지만, 액션을 좋아라하는 피가 뜨거운 남자라면 그가 나온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사람이 있을까?
특히 알란 같은 영화 마니아의 경우에는 모를 리가 없다.
“당연히… 어렸을 때 그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말 꼬랑지 헤어스타일과 무표정의 감정연기가 인상적이었죠.”
이휘가 피식 웃었다.
“맞아요. 하지만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가 세 개 국적을 가졌다는 거 알아요?”
“예?”
“미국, 러시아, 세르비아. 그럼 마원은 몇 개 국적을 가졌을까요.”
“설마…!”
“러시아, 한국에서도 특수부대를 파견해 구출작전을 벌일 겁니다.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제 마원은 두 분과도 동포에요.”
“그런… 단순히 국적을 가진 것만으로 군대를 동원해준다는 말씀이십니까? 더욱이 러시아는 대장 때문에 나선 것일 뿐 따지고 보면 미국과 상극이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중국이 크는 걸 반기진 않을 겁니다. 더불어 마원은 러시아의 무기회사, 한국의 기업에도 투자를 많이 했어요.”
러시아, 한국의 기업에도 고루 투자했다는 점에서 알란은 불현 듯 이 모든 것이 이휘의 그림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무기회사의 실질적 소유주가 이휘이며, 그가 가진 회사들 모두 한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설마 이 모든 것을 예상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이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원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느꼈어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겁니다. 그가 내게 투자를 받고 우리와 깊게 친해진 순간 중국 입장에선 가시권 밖에 나간 셈입니다. 눈에 가시가 된 거죠. 마원이 만들고 키운 알리에서 그를 제외시키려 했던 것도 그때문이고. 알리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중국 정부가 외국에서도 큰 돈을 벌어다 주는 알리를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개지만, 거기까지 바라보고 밑작업을 해두기란 쉽지 않다.
세상일이 으레 그렇다.
아주 조금만 알면 충분히 미래를 예측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멀리 보고, 그때까지 인내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사실을 상기한 알렉세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역시 정이 안 가는 놈이야.”
이휘는 어깨를 으쓱할 뿐 별 대답 없이 화제를 돌렸다.
“문제는 저쪽이 아니라 우리야. 남 걱정할 때가 아니란 소리지.”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상해의 핵심 군대를 빼돌렸다 쳐도 장진평 주위에는 여전히 많은 병력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그건 그렇군. 생존률로 치면 우리가 더 적겠어.”
알렉세이가 껄껄 웃었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뭘 새삼스레 그래?”
알란이 미소 짓는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고작 우리 목숨으로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까.”
이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조국, 혹은 세계평화를 위해 꿋꿋이 지옥 같은 훈련을 통과하고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쳐도 그것만으로 의미를 두는 이들이.
처음에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영화 한 편 보고 뜨거워져서 지원했다 치더라도, 그렇게 훈련되고 키워진 자들이 UDT나 씰, 특전사, 델타포스 같은 특수부대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은 찰나에 목숨이 날아가는 전쟁터를 전전하다 보면 더욱 더 강력해진다. 처음엔 죽을 둥 살 둥 훈련을 마친 초정예 대원들이 총성 한 번에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허무해지지만, 그 지난날에 대한 보상심리마저 사라지면 남는 것은 애국심과 자긍심 뿐이다.
“우리한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대장.”
알란의 말에 알렉세이가 침묵으로 동의했다.
만약 이휘가 단순히 돈을 벌고자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들을 잡아두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언제나 포연의 한가운데 서있었다.
“…난 보안실로 가서 경보를 울려 내부인원을 대피시킨다. 경보가 울리면 장진평은 벙커로 향할 거야. 거기서 끝장을 본다. 만약 우리 예측이 빗나간다면 장진평을 추격, 사살한다.”
예상이 빗나가면 작전은 실패할 확률이 99퍼센트다. 성공한다 해도 자신들은 그 과정에서 사망하게 될 확률이 99.9퍼센트.
이휘가 말했다.
“살아서 봅시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각자의 일을 할 시간이다.
* * *
장진평이 머물고 있는 자금성.
이휘는 외주 설비원으로 철저히 위장한 채 진입했다. 입구와 검색대를 통과할 때까지 별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다만 검색대 안으로 들어갔을 땐, 무기는 물론 통신장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맨몸이 됐다.
더 큰 문제는 붕대를 풀고 옷으로 가렸을 뿐 그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통제를 맞아 일반인처럼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약발일 뿐 실질적인 컨디션은 엉망진창이었다. 만약 진통제 약발이 떨어질 경우 어마어마한 통증을 체감해야 할 터였다.
‘장진평을 제거한다.’
이휘는 머리를 비우고 그것에 집중했다.
수만, 수십만, 어쩌면 수천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그는 문제가 생긴 기관실로 향했다. 검색대에서 걸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마원이 소개해준 전(前) 자금성 설비업체 대표가 자기 할 일을 잘 끝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휘의 진짜 목표는 기관실이 아닌 그옆 보안실.
무장병력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이휘가 다가가자, 보안실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군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보수공사가 잡혀 있는데 못 들으셨습니까?”
이휘가 묻자 그가 턱으로 다른 쪽을 가리켰다.
“기관실은 저쪽입니다. 이곳은 보안실이오.”
“아, 그래요…”
이휘는 대답하면서도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멈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휘의 손이 움직였다.
턱!
들어 올리는 기관총 총신을 손으로 잡아 누르며 보초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뽑아 순식간에 경동맥을 찌른 뒤 회수한다.
팍!
경악한 표정으로 목을 감싼 보초가 스르륵 무너지는 순간, 이휘는 이제서 상황파악을 마친 나머지 한 명의 보초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도 빠른 투검(投劍)에, 기도에 날이 박힌 상대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정확히 기도를 뚫고 들어간 것만으로도 믿기 힘든 정확도였으나, 칼날이 두개골을 뚫고 뇌를 부수지 않는 이상 방아쇠를 당기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 이휘는 앞으로 굴러 방아쇠를 당기려는 보초의 총구 아래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상대 허리에서 빼앗은 단검을 그대로 위로 그었다. 그러자 손목의 힘줄이 정확히 잘린 상대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숨소리와 함께 벽으로 쓰러졌다.
그의 멱살을 잡은 이휘는 경악한 놈과 눈을 맞추며 바닥에 늘어뜨렸다.
“후우.”
순식간에 둘을 처치했지만 문제는 안쪽에 있을 보안실 직원들이다. 말이 직원들이지 모조리 군 출신으로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터였다.
‘놈들이 들이닥치는 데 1분.’
이휘는 손목시계의 스톱워치를 맞추었다. 보초를 제거하고 보안실로 진입하기도 전에 놈들이 들이닥치면 낭패이기에 소리 없이 제거했지만 이제는 거칠 것 없다.
1분 내에 보안실 직원 모두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경보만 울리면 되는 상황.
이휘는 보안실 문에 비껴서서 철문을 두드렸다. 혹시라도 안에서 사격을 실시할 경우 철문 정도는 쉽게 뚫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어 브리칭(Door Breaching. 문 파괴)할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쿵쿵!
“무슨 일이야?”
묻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과.
별 의심 없이 문을 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일이 쉬워졌어.’
이휘가 불쑥 들어서며 손을 뻗어 기도를 움켜잡았다. 단순한 한 동작이었지만 상대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 힘이 실려있었다.
“커헉!”
목을 잡힌 놈 뒤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기습이다!”
“무기!”
다들 책상 밑이나 허리에서 권총과 샷건, 기관단총을 뽑아들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누군가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건물 전체를 울리는 경보음이 들리고.
“사격!”
개인의 목숨보다 보안실을 지키는 것이 먼저인지 모든 이들이 총구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