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155
나는 회귀했다 155
“지독한 놈.”
알렉세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기뻤다.
‘생존률이 늘었군.’
아군에 이휘처럼 실력 좋은 저격수가 있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작전을 할 때도 저격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존률에 차이가 크다.
상대편에 저격수가 있을 경우를 대비할 수 있고, 교전 상황에서도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보자.”
나지막이 말한 이휘가 절룩이며 걸음을 옮겼다. 다리가 성치 않은데 그와중에 기척을 죽이고 있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울 텐데.’
알렉세이 역시 비슷한 부상을 입은 적이 있기에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특수부대에서 고강도 훈련을 받은 군인이라 할지라도 전신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고통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일반인과 다른 점은 저 상태에서도 교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정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아드레날린 분비가 줄어드는 순간 꼼짝도 못하게 될 터였다. 즉, 이휘처럼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하고 저격위치를 잡고, 정확히 상대를 저격하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부디 실수하지 말아다오.’
알렉세이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교전 상황에서 죽는 것보다, 어떤 이유로든 실수를 범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이휘가 걱정되는 것이다.
자신 역시 파견근무 중 사소한 실수로 인해 아군을 잃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 괴롭히고 있으니까.
그 후회는 영영 떨칠 수 없는 멍울이다.
어느새 그친 폭음.
알렉세이 또한 움직일 순간이었다.
* * *
벙커 안쪽.
장진평의 최측근이자 중앙조직부장 리양이 말했다.
“안에 계시는 게 안전합니다.”
“안전?”
장진평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개소리. 내부에 폭발이 일어났어.”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것밖에 설명이 안 된다. 아니면 내부 설계를 잘 알고, 내부에 드나들 수 있는 누군가가 배신했거나.
“이런 개새끼들이… 연구시설 쪽은 어때?”
“벙커 안에서는 보안상 연락할 수 없습니다.”
리양이 덧붙였다.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척후를 내보내겠습니다. 안전이 확보되면 그때 이동하시죠.”
“밖에 놈들이 뚫렸다면 우릴 도울 놈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거군.”
장진평은 이미 듣고 있지 않았다.
“나간다. 죽을 때 죽더라도 여기서 쥐새끼처럼 숨어있을 수는 없어. 내가 건재하다는 걸 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최정예 요원들이라 해도 군이 동원됐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군이 동원돼? 말도 안 되는 소리.”
“…?”
“건물을 폭파시켰어. 이건 선전포고다. 군을 동원하는 순간 선제공격으로 전쟁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지. 그리고 전쟁을 일으킬만한 명분을 가진 놈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거야. 대놓고 폭격기를 보냈겠지. 안 그런가?”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그의 판단력은 제법 정확했다. 허투루 그 자리까지 오른 게 아니라는 듯 장진평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첩보기관도 아니야. CIA는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지.”
“설마…”
“그래. 이휘, 그놈이다. 그놈이 수를 쓴 거야.”
리양은 잠시 고민했다. 누군가 조력자가 있다 해도 이휘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정도라면 현재의 병력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인 것이다.
“탈출한다. 안가(安家)로.”
달리 말해 안전가옥.
대개 특수요원들이 임무 중 쓰는 장소지만, 장진평의 안가는 특별했다.
유사시에 대비한 모든 준비가 갖춰진 방공호.
심지어 최악의 경우 PMC 용병들을 부르기 위한 긴급회선까지 준비해둔 곳이었다.
거기까지만 가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진평의 생각.
리양 역시 그 점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휘에 대한 견해다.
“죄송하지만 여기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벙커를 날릴 수 있다면 이미 여길 날려버렸을 겁니다.”
“이거 왜 이래? 답잖게.”
“이휘가 설계도를 확보하고 여기까지 잠입해서 폭파시키는 데 성공한 것만으로 놈이나, 놈이 데려온 자들이 최정예 요원이란 뜻입니다. 이번엔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봐.”
장진평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내가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는 줄 아나? 내 정적들은 그놈보다 훨씬 더 거칠고 집요했어. 그때마다 내가 살아남은 건 대담할 때와 조심할 때를 잘 알기 때문이지. 지금은 대담할 때라고.”
그는 리양의 어깨를 두드렸다.
“놈이 설계도를 확보했다면 벙커의 존재여부도 알았을 거야. 그럼에도 이곳을 먼저 선점하지 않고 우릴 여기로 몰아넣은 건 시간을 벌기 위함이지.”
“어째서 그렇습니까?”
“교활한 놈이야.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급선무라 먼저 움직였겠지만,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자기와 함께 움직일 놈들을 만들 능력이 있는 놈이다. 놈에게 시간을 주면 안 돼. 그럼 더 상대하기 까다로워질 거다.”
장진평이 덧붙였다.
“놈은 나와 닮았어.”
“하지만….”
“명령이네.”
“….”
잠시 말 없이 서있던 리양이 고개를 숙였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장진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있어서 든든하군.”
* * *
이휘는 일부러 멀쩡한 길을 두고 폭발로 인한 연기가 자욱한 곳으로 움직였다. 숨을 쉬기 곤란했지만 버티면서 이런 가시밭길을 택한 이유는 벙커 근처에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구를 통해 잠입했기 때문에 이곳에 어떤 대비장치가 있는지 모른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이 저격수고.
이휘는 적당한 건물로 올라가 저격을 준비했다. 옥상이었다. 원래 같으면 아래 층에서 벽돌을 빼내고 그사이로 총구를 겨눈 채 저격수나 적군의 움직임에 맞서야겠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다.
‘놈들이 탈출하기 전까지, 10분 내로 전원 파악해서 제거해야 한다.’
만약 근처에 저격수가 있다면 알렉세이와 알란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적들이 탈출하는 것을 넘어 아군의 목숨을 허무하게 잃을 수 있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아마 저격수 출신의 누군가 있다면 ‘미친 짓’이라고 할 게 분명하지만.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욕 먹을 일이지만, 이휘는 망설이지 않고 허공에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총성이 울리는 순간.
이휘는 속으로 초를 셌다. 만약 저격수가 이쪽을 보고 있다고 가정한 채로.
일단 방아쇠를 당기는 데 0.3초.
그리고 500미터 이내 근거리에는 저격수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탄이 날아와 자신을 꿰뚫는 데까지 0.5초.
이휘는 정확히 반 초 만에 자세를 팍 낮췄다.
그와 동시에.
파파파팍!
네 발의 총알이 아주 미세한 시간 차를 두고 네 방향에서 모두 날아왔다.
다행인 것은 이휘가 아니라 벽에 총구멍을 냈다는 점.
이휘는 탄이 날아온 방향을 파악한 것만으로 대략적인 거리감, 풍속과 풍향, 아지랑이, 건물 전체를 태우고 있는 화재로 인한 기온차, 태양의 위치로 인한 중력의 차이를 단숨에 계산했다.
각자 자신만의 빅데이터에 의지하는 어떤 저격수도 계산하기 힘든 즉흥적인 암산.
그렇기에 저들은 총을 쏘자마자 바로 이동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외려 이휘가 고개를 내미는 순간 바로 총알을 날리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터였다.
이를 잘 아는 이휘는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고 가장 노출된 방향으로 총알을 격발했다.
타앙!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스코프를 통해 날아간 탄이 720미터 가량 떨어진 건물 벽 틈에서 쪼고 있던 저격수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이 보인다.
이휘는 재장전과 함께 돌아섰다.
철컥.
장전이 끝나는 순간 먼저 재장전 중이던 저쪽 저격수들도 한 발씩 쐈는지, 주위로 총탄이 박히는 소리가 들린다.
팍!
티잉!
팅!
세 발 다 모두 빗나갔다.
화재로 인한 기온차, 연기, 먼 거리 따위의 이유로 단번에 이휘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정작 가장 그를 맞출 가능성이 있는 상대는 이휘의 총알 한 발에 즉사한 상태였다.
어쨌든 그들이 사격했으니, 이젠 이휘의 차례.
이휘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와 거의 동시에 나뭇잎으로 온몸을 뒤덮는 위장 옷을 뒤집어 쓴 채 수풀 사이에 엎드려 녹아들어 있던 저격수에게서 붉은 피가 튀었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이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빠르게 위치를 이동했다. 이미 한 발 오차를 낸 저격수들이 이번에도 실수할 리 없기 때문이다.
파악!
숨 한 번 들이쉬기도 전에 격발한 저격수의 총알 한 발이 이휘가 방금 서있던 곳 바닥을 때렸다.
나머지 저격수는 아직도 이휘를 추적하고 있을 터.
노련한 저격수라면 이번에는 오발탄의 데이터를 이용해 위치변경에 성공하겠지만,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티잉!
뺨에 미세한 바람이 느껴진다. 총알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셈이다. 그럼에도 오차가 난 것은 상대의 데이터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바람에 의해 화재로 인한 연기의 방향이 틀어진 까닭이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가 이휘에게 기회를 주었다.
“스으.”
호흡을 가지런히 다진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이번에도 명중.
백발백중이다.
무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네 명 중 셋이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상대측에 이휘처럼 계산할 수 있는 저격수가 있다면 당연히 당한 것은 그였겠지만,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휘로서도 아무 저격총이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주총인 AWM을 이용해 저격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여주는 것뿐.
‘가라.’
타앙!
마지막 한 발.
순식간에 날아간 총알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던 자의 이마에 박혔다.
그로서 모든 저격수를 제거한 이휘가 홱 돌아섰다. 벙커를 향한 총구.
그 순간.
타다다다다다다당!
커다란 총성과 함께 이휘는 몸을 날렸다. 상대를 겨누는 순간 소총을 들고 있던 자가 정확히 이휘가 저격하는 포인트로 난사를 한 것이다.
“젠장.”
다시 어깨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총을 놓치지 않고 있던 이휘는 헛웃음을 흘리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정말 놀랍게도, 권총 정도는 들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혈해둔 천조각이 느슨해져서 다시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
‘오래는 못 버틴다.’
이휘는 저격 총을 내려놓고 분해한 뒤 공이를 비롯해 핵심적인 부품 몇 개를 챙겼다. 누군가 이곳에 와서 아군의 병기를 활용할 수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항상 훈련 받는 내용이었고, 지금은 무기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응용한 것뿐이다.
그 다음 다른 한 손에는 군용 나이프를 들었다.
권총과 나이프.
각각 무기를 든 두 팔을 교차한 채 건물 계단을 절룩이며 내려갔다.
알렉세이가 혼자 처리하게 두기에는 상대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그렇다고 자리를 이동하며 저격을 하기에는 기동력은 물론 멀쩡한 어깨까지 총알에 스쳐 제대로 거치를 할 수 없다는 에러사항이 발생하고 말았다.
근접전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알란.”
무전하자, 알란이 심각하게 물었다.
-문제가 생겼습니까?
“철수해요.”
이휘가 덧붙였다.
“거기까지 못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