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23
나는 회귀했다 23
아파트 로비에서 세쌍둥이 중 한 명이 사라졌다.
외부에서 순찰을 돌고 있을 러시안을 처치하러 간 것이다.
나머지 중년남자와 두 명의 백인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그들은 펜트하우스 층으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이 바뀌는 걸 보던 중년남자가 식은땀을 닦으며 물었다.
“물 좀 있습니까?”
“멍청한 질문하지 말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나 명심해. 네가 가진 총알 여덟 발 안에 표적을 제거해야 한다.”
“알겠으니까요. 제가 설마 그런 애들한테 당하겠습니까?”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은 백인이 다시 정면을 보았다.
드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복도로 나간 세 사람은 주위를 살폈다.
그중 운전을 맡았던 백인이 자세를 낮춘 뒤 테이저 건을 뽑아 들고 문을 두드렸다.
퉁퉁.
묵묵부답.
반응이 없자 그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퉁퉁….
-누구세요?
그제야 문 너머에서 들려온 대답.
백인이 눈짓하자 중년남자가 하는 수 없이 입을 뗐다.
“관리실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바쁜데요! 다음에 오시면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라서요. 잠깐이면 됩니다.”
-잠시만요!
잠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아파트 문이 열렸다.
철컥.
그리고 그 순간 쌍둥이 둘이 문을 확 열어젖히며 뛰어 들어가려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래야했지만, 러시아인 둘이 튀어나오며 싸움이 벌어졌다.
파지짓!
러시아인 한 명이 테이저 건에 맞고 감전되며 쓰러졌지만 다른 한 명은 아니었다. 그는 테이저 건을 들고 있는 백인의 손목을 아래로 누르며 이마로 머리를 받아버렸다.
퍼억!
백인이 테이저건을 떨어뜨리고 눈알을 하얗게 뒤집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 새끼가!”
한 명을 해치운 러시아인이 문으로 몸을 가리자 테이저 건을 치운 백인이 나이프를 뽑아 들곤 휘둘렀다.
쉬익!
칼날을 피한 러시안이 자신도 나이프를 뽑아 대응했다.
쉬쉬쉭!
빠르게 칼날이 오갔지만 어느 누구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잘도 피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년남자에게 나이프를 휘두르던 백인이 외쳤다.
“들어가!”
번쩍 정신을 차린 중년남자가 자세를 낮추곤 빠르게 집안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칼질하는 소리와 짤막한 신음소리가 섞여 들려왔지만 그는 발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철컥.
잠금장치까지 잠그고 나서야 중년남자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누구냐.”
현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물어보는 소년. 이 녀석이 표적이다. 정말 듣던 대로 어렸다. 유타에 있는 아들 생각이 났다. 하지만 살려둘 수 없다. 이 녀석이 살아서 돌아다니면 자신의 아들이 죽는다.
“…미안하다.”
스윽.
중년남자가 총을 꺼내 이휘를 겨눴다.
이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총?”
그는 조금도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눈동자를 들어 중년남자를 쳐다봤다.
“그런 걸 어디서 구했지? 쏠 줄도 모르는 인간이.”
“뭐…?”
중년남자는 당황했다. 오히려 상대가 이렇게 뚫어져라 마주보니 방아쇠를 당기기가 더 망설여진다. 심지어 이 녀석은 뜻 모를 소릴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표정도 지금 상황과 맞지 않다.
그래, 조금 더 시간을 끈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쏠 줄도 모른다고 했냐?”
“지금도 망설이고 있잖아. 당신이 어딜 겨누고 있는지 좀 봐.”
“…?”
“내 얼굴이지. 고개만 젖히면 총알은 빗나가.”
“네가 빠를까, 내 총이 빠를까?”
“글쎄.”
중년남자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자기 아들 또래밖에 안 되는 놈이 뭘 믿고 총 앞에서 이리 당당한지. 이럴수록 중년남자의 손가락은 뻣뻣하게 굳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휘휘 저은 중년남자가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이제 총구는 이휘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맙다. 이러면 되겠지?”
흥미를 끄는 데 성공한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이봐, 진정해. 날 무조건 죽일 생각인건가?”
“그래. 널 죽일 거다.”
“아, 알겠다. 알겠다고. 부탁 하나만 하자.”
“말해.”
중년남자는 이 시간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유언 정도는 들어주기로 했다.
긴장되는지 입술을 핥은 휘가 물었다.
“누가 날 죽이라고 사주했는지 정도는 알고 가야 덜 억울할 거 아니야? 지옥에서라도 복수해주게. 어디지? 맨슨글로벌이야?”
“맨슨글로벌?”
중년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거길 어떻게….”
“이런 젠장, 론스터잖아.”
이휘가 욕지거릴 뱉었다.
그 태도에서 뭔가 알고 있음을 느낀 중년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네가 맨슨글로벌을 어떻게 알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이휘가 고개를 갸웃했다.
“론스터에서 나온 작자가 맨슨글로벌을 어떻게 알아?”
“…!”
중년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이놈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누면 안 된다는 직감과 이미 이렇게 된 바에 궁금증이나 풀자는 마음이 뒤엉켰다.
그것도 잠시, 현실이 벼랑 끝이다 보니 결국 이긴 쪽은 호기심이었다.
“맨슨글로벌은 론스터와 협력관계다. 자, 이제 네 차례야.”
“협력관계?”
이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론스터가 들어오기 전에 맨슨글로벌이 먼저 판을 깔아뒀던 거군. 고위직 로비 같이 뒤가 구린 일을 처리한 거야.”
“뭣…!”
중년남자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그 자 말대로 우릴 노렸구나. 그랬어! 그러니 내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위안이 되지 못한다.
“결국 너 때문에….”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자신도 정당한 일을 하려던 건 아니다. 그걸 알기에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그는 한숨과 함께 뱉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너 같은 꼬맹이를 죽이는 죄책감을 좀 덜 수 있겠어.”
그 말과 동시에 손가락에 힘을 줬다. 아니, 힘을 줬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꺾여버리기 전까진.
“아악!”
총구를 피해 몸을 비틀며 성큼 다가선 이휘가 순식간에 총신을 잡아 돌려버린 것이다.
그 탓에 방아쇠에 걸어놨던 손가락이 꺾였다. 그뿐만 아니라 총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총을 빼앗은 이휘가 능숙하게 재장전한 뒤 총을 겨눴다.
“이제 입장이 뒤바뀌었네?”
쿵쿵쿵.
중년남자 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이휘는 시선을 고정한 채 짧게 말했다.
“움직이지 마.”
“….”
“준수 형!”
이휘가 크게 부르자 방에 숨어있던 방준수가 튀어나왔다. 이휘는 방준수에게 총을 넘기며 말했다.
“말 안 들으면 쏴버려. 뒤처리는 어떻게든 할 테니까.”
“아주 벌집으로 만들어버릴게.”
방준수가 찰 지게 죽을 맞추자.
이휘가 중년남자에게 물었다.
“몇 명이지?”
“미국인 셋… 나까지 넷.”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얼어있었다. 이휘의 움직임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은 절망감도 엿보였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수준은?”
서슬 퍼런 눈빛에 사고가 정지됐던 중년남자의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놈은 죽어야 돼. 그 미국놈들한테라도….’
입술이 타들어갔다.
“카, 칼을 갖고 있다.”
일부러 테이저 건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휘는 피식 웃었다.
“요즘은 칼에서도 전기 튀는 소리가 나나?”
“…!”
“그래도 뭐… 세 놈이란 건 사실인 모양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잖아!”
“그 대답 땐 망설이지 않았거든. 방금은 망설였고.”
그것만으로?
고작 그런 반응 하나로 모든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중년남자가 턱을 덜덜 떨며 물었다.
“너… 왜 진작 총을 빼앗지 않은 거냐? 이럴 거였으면서….”
“당신이 어설픈 척하는 전문가일 수도 있잖아. 좀 떠봤지.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당신이 우위에 있을 때 좀 더 입이 싸질 것 같더라고.”
“그래서 시간을 끌었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제 상황이 바뀌었어. 니들이 내 독에 든 쥐가 된 거지.”
“난 돌아가야 돼. 부탁한다. 미국에 가족이 있어. 널 죽이지 못하면 내 가족도 죽는다.”
“닥쳐. 내가 대신 죽여주고 싶으니까.”
안 그래도 이휘는 지금 진심으로 눈앞에 있는 배불뚝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잘하면 흑인 킬러를 죽였을 때처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적어도 아직은.
이휘가 방준수를 돌아봤다.
“잘 감시해.”
혹시라도 이 어설픈 배불뚝이가 방준수에게 뭔가 수를 쓸 수 있어서 굳이 총을 돌려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남자를 불구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 역시 죽이지 않는 이유와 같다. 그리고 방금 떠오른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키려거든 같이 왔다는 미국놈 셋은 처리해야 한다.
이휘가 걸음을 떼자 방준수가 물었다.
“어디 가려고? 경찰에 신고하는 게….”
“이놈들이 멀쩡하게 돌아가면 더 좆같은 놈들을 보낼 거야.”
“…그렇겠지.”
“대한민국에서 총을 쓸 정도면 이 새끼들을 꺼내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고.”
“후우, 알겠다. 빨리 와.”
살짝 고개를 끄덕인 이휘가 눈구멍으로 잠잠한 문 너머를 응시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숨었거나, 다른 길을 찾았거나.
정말 운이 좋다면 러시아제 인간병기들이 미국 놈들을 처리한 뒤 끌고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도망친 놈을 잡으러 갔거나.
‘오랜만에 기분 사네.’
이휘는 스산하게 웃었다. 전장의 피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드는 듯하다.
온 신경이 깨어나고 심장이 미친 듯 널뛰기를 했다.
철컥.
잠금장치를 푼 이휘가 문을 살짝 밀친 뒤 벽에 붙어 섰다. 그러나 밖에는 방금 보던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계단 아래도 클리어.
이휘는 눈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는 누가 탄 흔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러 문을 열자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놈들까지 데리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냥 두고 갔으면 갔지.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든 이휘가 고개를 홱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베이터 뚜껑이 열리며 시커먼 형체가 떨어져 내렸다.
쉬익!
시커먼 형체가 무기를 꺼내 휘두르는 것과,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휘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휘두른 건 동시였다.
뚝 멈춘 서로의 무기.
검은 형체가 들고 있던 나이프는 이휘의 옆구리를 겨누고 있었고, 이휘가 든 칼은 검은 형체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이내 검은 형체가 말했다.
“죽일 뻔했어.”
“죽을 뻔한 거겠지.”
이휘가 칼을 거뒀다.
검은 형체, 유리 다예프가 보낸 경호원 알렉세이 피메노프가 목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경호대상이 이런 대단한 실력자일 줄은 몰랐는데.”
그는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깊게 침잠되어 있었다.
이런 눈빛.
이휘는 수도 없이 봤다.
“미국 놈들은?”
“다 기절시켰다.”
“아군 피해는?”
“둘 다 다쳤지만 죽은 놈은 없다. 다른 놈이 더 없는지 주차장과 단지 내부를 경계하고 있어.”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렉세이 피메노프의 푸른 눈에 놀란 빛이 서리다 사라졌다.
“놀라지 않는군.”
“놀랐어.”
건조하게 대답한 이휘가 엘리베이터 천장을 고갯짓하며 너무도 능숙하게 지시를 내렸다.
“재운 놈들 깨지 않게 수습해서 데려와.”
“그러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휘는 엘리베이터를 나서서 집으로 들어갔다.
방준수가 여전히 선 채로 대치하고 있었다.
“불편하게 왜 그러고 서있어?”
“혹시 무슨 짓할지 몰라서.”
“쫄기는.”
“아, 그리고 나 이 사람 얼굴 기억났어!”
이휘가 눈을 찌푸렸다.
“아는 얼굴이라고?”
“경매장에서 봤어. 확실해.”
“그래?”
중년남자의 얼굴을 뜯어보던 이휘가 손을 내밀었다.
“총.”
“어. 그래. 빨리 가져가라.”
방준수가 건넨 권총을 바지춤에 꽂아 넣은 이휘는 중년남자의 뒷덜미를 잡아서 집안으로 밀었다.
중년남자 역시 이휘의 행동거지를 본 게 있기에 반항하지 않고 거실 소파까지 끌려가 앉았다.
이휘가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당신과 함께 온 놈들은 다 제압됐다.”
“…그래.”
“론스터에서 나온 놈이 사주한 건 알겠어. 근데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보아하니 전문적인 킬러도 아닌 것 같던데.”
“미국에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다.”
“날 죽이지 못하면 가족들이 위험한가?”
“맞아.”
“빤한 액션영화 클리셰 같네.”
“이쪽은 현실이야.”
“그래, 그러니 살인도 감수해가며 이 지랄을 떨었겠지. 근데 말이야….”
“…?”
“설마 날 죽이면 놈들이 당신과 가족을 살려줄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거야?”
“뭐?”
“당신은 킬러도 뭣도 아니야. 그냥 경매전문가지. 그런 당신한테 총을 쥐어주면서 날 죽이라고? 왜? 같이 왔던 전문가들이 있는데.”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이 나와야 하니까. 날 이용하는 거겠지.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가족들 때문에 선택권이 없었을 뿐.”
“내 생각은 그 반대야.”
“그게 무슨….”
“날 이용해 당신을 제거하려는 거지.”
“날?”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혹시 모를 변수까지 제거되면 더할 나위 없고.”
중년남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론스터 놈들이 자신을 제거할 이유?
큰돈을 줬는데 건물을 빼앗김으로 무능력을 증명했으니 효용가치가 사라진 셈이다.
더욱이 여기에서의 일이 끝나기 전까지 자기들이 한 일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면 안 되니 자신을 제거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것도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혹시 모를 걸림돌까치 치워버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대체 왜….”
중년남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직접 물어보든지.”
“그 자는… 내가 돌아가는 즉시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내 가족들을 죽일 거다.”
중년남자는 극한에 몰린 표정이었다.
그때 이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그냥 죽으란 법 있어? 이제 반격할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