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24
나는 회귀했다 24
한참 눈알을 굴리던 중년남자, 김성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넌 뜬 구름을 잡고 있어. 넌 그놈을 모른다.”
“하!”
픽 웃은 이휘가 대답 대신 방준수를 보았다.
“채권 매입은 어떻게 됐어?”
“부실채권 리스트 만들어 놨어.”
“경매 갈 준비해. 이번엔 나도 갈 거야.”
“한 번에 터뜨리려고?”
이휘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겠지?”
“시기는 맞아. 이번에 돈 될만한 부실채권이 우르르 나올 거야. 아마 론스터에서도 이번 기회를 중요하게 보고 있을 거고.”
“이번에 놓치면 놈들이 입을 타격은?”
“부실채권을 긁어서 자본금 마련할 생각은 접어야지. 론스터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중견기업이나 신화은행을 꿀꺽하려면 본토에서 무지막지한 돈을 끌어와야 할 거야.”
“좋았어.”
빙그레 웃은 이휘가 고개를 돌려 배불뚝이 김성우를 바라봤다.
“들었지?”
김성우는 충격 받고 있었다.
‘이놈들… 이게 무슨…!’
박병조가 예상한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론스터의 계획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아니, 파악만 한 게 아니라 론스터가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게 싹부터 밟아 죽일 기세다.
“너 어떻게….”
얼마나 놀랐으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직 놀라긴 일러.”
이휘가 말을 이었다.
“알렉세이.”
이번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거실 한쪽이었다. 조용히 들어와 있던 러시아제 인간병기 알렉세이 피바노프가 팔짱을 낀 채 지금 이것들이 무슨 얘기 중이지? 하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왜?”
“영어로 얘기해.”
이휘가 빠르게 물었다.
“밖에 있던 세 놈은?”
“곤히 재워서 방에 감금해뒀다. 약발이 센 마취약을 투약했으니 앞으로 2시간은 슈퍼맨도 못 일어나.”
“잘했어. 그럼 이제 아까 상황을 얘기해 봐.”
“갑자기?”
“어떻게 된 건지 들려줘야지. 이 양반한테.”
이휘가 김성우를 눈짓했다.
그냥 다 죽여버리지, 뭐 이렇게 귀찮게 구냐는 듯 고개를 저은 알렉세이가 거친 말투로 대답했다.
“순찰하고 있었는데 날 미행하는 놈이 보이더군. 기절시키고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올라와 보니 두 놈이 더 있어서 마저 재웠지.”
“터프하네.”
“우리 애들 둘이 뻗었다. 치사한 새끼들이 테이저 건과 방검복으로 무장했더군.”
“그런 놈들을 때려잡은 거야? 2대 1로?”
“난 미행하던 놈을 처리하면서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 애들이 약한 게 아니라 그 새끼들이 치사한 거다.”
얼씨구.
이제 보니 실력이 부족해서 당했다고 생각할까 봐 강조에 강조를 한다.
덩치는 곰 같은 놈이 은근 애 같은 구석이 있다.
피식 웃은 이휘가 말했다.
“어디 부대 출신이야? 아까 나이프 쓰는 거 보니까 제대로 배웠던데.”
알렉세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사이 거기까지 알아냈다고? 이런 표정.
나름대로 놀란 모양이지만 워낙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스패츠나츠.”
“이런.”
이휘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스패츠나츠. CIA와 협력해 러시아에서 첩보작전을 펼치던 중 이놈들에게 발각당한 기억이 있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지독한 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력도 대단한데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그 미국놈들, 운이 좋네.”
“무슨 뜻이지?”
스패츠나츠를 적으로 두고도 살아서 붙잡힌 데다, 고문받지도 않을 테니까.
뒷말을 생략한 이휘가 대답해주지 않고 김성우에게 눈을 돌렸다.
“이제 좀 분위기 파악이 되셨나?”
김성우는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감히 쳐다보기도 두려웠다. 이제 보니 자신이 벌벌 떨던 박병조는 물론 론스터라는 거대 사모펀드까지 완벽히 물 먹일 계획을 세워둔 놈들이다.
“…그래, 대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눈앞에 있는 이휘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을.
김성우가 눈을 질끈 감으려는 그때, 이휘가 입을 열었다.
“이제 좀 믿음이 생긴 것 같은데. 기회를 주지.”
김성우가 도로 눈을 번쩍 떴다.
“날 살려주겠다는 건가?”
“그건 약속 못해.”
이휘가 담백하게 말했다.
대답을 들은 김성우는 가슴을 푹 찔린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최소한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하진 않으니까.
그 순간 이휘가 이 모든 절망감을 깨부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날 돕는다면 당신 가족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지. 당신이 쓰레기라고 해서 그 사람들까지 죄가 있는 건 아니니까.”
“정말로… 정말 방법이 있는 거냐? 내 가족을 어떻게….”
김성우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이런 놈도 가장이랍시고 처자식이 걱정되긴 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 제 놈이 발을 담근 곳이 지옥 불구덩이인 줄 모르고 살인까지 저지르려 했겠지.
이휘가 알렉세이를 보았다.
알렉세이가 팔짱을 낀 채 마주봤다.
“….”
“….”
정적이 흐르고.
알렉세이가 물었다.
“왜 날 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뭐든 당신한테 말하라던데. 유리 다예프가.”
“이런 빌어먹을. 나한테 미국까지 갔다 오란 거냐? 내 임무는 보호대상인 널 지키는 거야.”
“날 지키는 일의 일환이야. 스패츠나츠에선 가르치지 않던가? 테러를 멈추게 하려면 불씨까지 지워버리라고.”
“젠장.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별 말을 다 지껄이는군!”
“까칠하게 그러지 말고. 해외 작전이나 대테러 작전 많이 해봤을 거 아니야? 방법이 있겠지?”
“…난 보호대상을 두고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유리한테 말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확실해?”
“이런 자잘한 일에 나서줄지는 모르겠지만, 나서주기만 한다면 확실하겠지.”
“그럼 확실하군.”
이휘는 흐뭇하게 웃었다. 어차피 유리 다예프는 프랑스와의 거래를 트기 위해서라도 그를 버릴 수 없다. 이런 귀한 놈들을 경호원으로 붙여준 것도 그래서일 거고.
그가 김성우를 보았다.
“들었지?”
“…그래, 들었다. 뭐라고 해야할지….”
김성우는 아까까지 이휘를 죽이려 했다.
미안하겠지.
하지만 이휘는 이런 매국노 새끼의 사과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놈이나 박병조나 죄질이 다를 뿐 똑같은 죄수다.
나라 팔아먹으려 한 대역 죄인.
“아무 말도 하지 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가족을 인질로 잡은 그 보스 새끼한테 가서 내 죽음을 전하는 거다. 그걸 위해 당신을 살려둔 거니까.”
“뭐?”
“난 당신한테 죽은 거야.”
“그게 무슨….”
김성우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랑 같이 온 놈들이 사실을 알릴 거다. 말했듯이 돌아가는 즉시 박병조가 날 죽일 거야.”
“아니, 그놈들은 당신 편을 들어줄 거야.”
“어째서…?”
“당신이 성공한 마당에 자기네들 실수를 들추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정리해줄게.”
이휘가 김성우의 턱주가리를 콱 잡고 눈을 맞췄다.
“윽….”
김성우가 식겁했다. 눈알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휘의 시퍼런 두 눈이 빙하처럼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날 죽이는 데 성공했다. 당신과 같이 온 미국놈 셋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들을 말은 그거야. 놈들을 잡은 여기 알렉세이가 그렇게 말한 뒤 풀어줄 거다. 명분은 의뢰인이 죽어버렸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고, 쓸데없는 복수나 하자고 미국인 셋을 처치하긴 부담스럽다는 것.”
“그걸 믿을 리가.”
“놈들이 마지막으로 본 건 당신이 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어. 총까지 들었는데 나한테 제압당했다고 생각할까?”
“내가 널 못 죽여서 배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아.”
이휘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생각해뒀다.
“해서 당신이 같이 왔던 미국놈 셋과 돌아가는 사이에, 내가 죽었다는 말이 박병조 귀에 들어가게 만들거야.”
“그게 어떻게 가능해? 사망신고라도 할 작정이냐?”
“아니. 알만한 사람은 들을 수 있도록 은밀하게 소문을 흘릴 거다. 내가 죽었다고. 소문이 퍼지면 사망신고를 하기도 전에 우리 백부가 움직일 거야. 내 변호사를 만나겠지. 자기편인 줄 알거든. 그러고 나서 변호사가 내 죽음을 확인시켜주면 내 재산을 먹으려고 발 빠르게 움직일 거야.”
이휘는 속이 쓰렸다.
자신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도 아닌 큰아버지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일말의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거래로 내준 것들을 모두 돌려받으려고 할 터였다.
“이쯤 되면 내 죽음을 의심하고 주시하던 박병조에게는 그 어떤 증거보다 믿을만한 증거가 되겠지. 표면적으로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줄 증거 말이야.”
김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휘는 완벽한 덫을 완성한 것이다.
“정말 악마적인 계획이군.”
“악마?”
이휘가 피식 웃었다.
“날 죽이려 하던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인정한다. 난 이미 지옥행이 확정되어 있어. 가족만 안전하게 지켜준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다. 대신 약속만은 꼭 지켜다오.”
“당연히.”
“내가 널 죽였다고 보고하는 즉시 박병조는 날 죽일 거야. 그전에 가족들의 안전이 확인되어야 돼.”
이휘는 그를 빤히 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당신은 그전에 당신 보스를 만나야 해.”
“그럼 난 죽은 목숨이다. 내 가족의 안위도 불분명해져.”
“가족들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무기를 주지. 당신 보스가 당신을 절대 죽일 수 없는 이유를 만드는 거야.”
김성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떻게 날 살려두게 한다는 거지?”
“태양의 눈물.”
“태양의 눈물…?”
김성우의 표정을 보니, 이놈은 태양의 눈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했다.
하긴, 알았으면 이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납치해서 보석의 위치를 찾아내란 지시를 받았으리라.
“맨슨글로벌에서 애타게 찾고 있는 물건이야. 붉은빛을 띤 다이아지.”
“레드다이아?”
“그래. 그리고 프랑스 국보야.”
“…!”
더 놀랄 게 없을 줄 알았는데, 김성우는 다시 한번 놀랐다.
“설마… 그걸 네가 가지고 있다는 거냐?”
“맞아. 나한테 있다.”
이휘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 보석의 위치를 안다고 해. 맨슨글로벌에서 보낸 킬러인 줄 알고 내가 태양의 눈물에 대한 정보와 위치를 실토했다고.”
“아…!”
김성우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탐욕스러운 박병조는 눈알이 돌 거다.
자기 혼자 부르는 게 값이라는 레드다이아, 그것도 프랑스 국보를 독식할 절호의 기회니까!
아마 그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맨슨글로벌에 그 보석의 존재유무를 확인하는 일일 터였다.
확인이 되면 김성우를 구슬려서 레드다이아가 있는 곳을 알아낼 테고. 그게 잘 안 되면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내려 들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맨슨글로벌과 박병조의 신뢰에 금이 갈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한 이휘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당신 가족들의 신병을 확보할 테니까.”
“후우.”
김성우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이쯤 되니 정말 눈앞의 소년이 괴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자신이 아는 박병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때, 괴물 같은 소년이 물었다.
“배신하지 않겠지?”
“이래봬도 난 금융전문가다.”
김성우는 최대한 신뢰를 주려는 듯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덧붙였다.
“둘 다 위험요소가 있다면 승률이 높은 쪽에 붙어. 박병조는 지금까지 널 한 번도 못 이겼고, 넌 박병조를 완전히 올가미에 가뒀지. 정말 내 가족만 구해준다면 난 널 위해 뭐든 하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오버하지 말고 약속이나 지켜. 내가 가진 패가 이게 전부가 아니란 것만 기억하고. 그럼 가족 안전도 확보하고 박병조도 끝낼 수 있을 거다. ”
김성우는 대체 무슨 패가 더 남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침만 꼴깍 삼켰다.
그런 그를 싸늘하게 응시한 이휘가 말했다.
“어서 꺼져. 당신이 데려온 얼간이 세 명도 곧 보내줄 테니까.”
김성우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다가 멈칫하며 물었다.
“총은…?”
“내가 뭘 믿고 이걸 다시 줘? 첫 살인이니까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아. 당신이 알아서 다르게 둘러대던가.”
“….”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김성우는 비대한 몸을 일으켜 집을 나갔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장내의 긴장감이 끊어졌다.
방 안에 자신들을 죽이려던 미국놈 셋이 잠들어있다는 것도 잊은 방준수가 이만하면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봇물을 터뜨렸다.
“마지막 패? 더 남았어? 대체 뭐가….”
그를 본 이휘가 웃옷을 들어 올려 허리춤에 꽂혀있는 권총 손잡이를 보여줬다.
“…총?”
“맞아, 총.”
이휘가 말을 이었다.
“잊었나 본데 여기 대한민국이야.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총을 구했을까?”
“밀수?”
“땡.”
“그럼?”
“맨슨글로벌.”
“맨슨글로벌?”
“맨슨글로벌 거래처 중에 실탄사격장이 하나 껴있더라고.”
맨슨글로벌을 조사하며 발견한 상호.
샷 컴퍼니.
사실 당시에는 평범한 상호라 그냥 지나쳤는데, 총기를 어디서 구했을까 고민하다 보니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샷 컴퍼니. 실탄 사격장. 뒤탈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특정인들에게만 총기를 판매하는 밀거래 장소.
이 사실을 알게 된 정부에선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비밀리에 조사를 진행시켰다.
비밀리에 운영되는 UDU 요원들이 사건을 맡았고, 조사팀 팀장으로 혐의를 밝혀낸 이휘는 사건을 국정원에 인계했다.
그렇게 사라진 것이 몇 년도더라?
아무튼 그때 기억 덕분에 놈들의 아킬레스건을 잡은 셈이다.
물론 이를 모르는 방준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맨슨글로벌 정도 되는 규모의 회사가 개인사업장이랑 거래를 한다고? 확실한 거야?”
“냄새가 나지?”
“어, 사실이면 구린내가 진동하는데?”
“더 이상한 건 심지어 실탄 사격이란 게 요금 자체가 더럽게 비싸서 장사도 잘 안돼. 근데 또 가게는 월세에 명동 한복판이야.”
“털어봐야겠네.”
“그렇지.”
이휘가 턱을 살살 긁었다.
“국내 부실채권으로 자본금 만들려고 들어온 박병조가 정작 채권을 모조리 다 빼앗기고 총기밀매와 연관이 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고위직 아니라 고위직 할아비가 와도 못 지켜주겠지. 정말 잘해야 미국 귀환… 도피일 테고.”
고개를 끄덕인 이휘가 알렉세이를 쳐다봤다.
“준비하고 있어.”
알렉세이는 바로 알아들었다.
“놈은 내 몫이다.”
그놈 탓에 같이 온 러시안들이 크게 다친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러시안, 그중에도 스패츠나츠는 절대 조국과 원한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전시에 더 용맹할 수 있다는 건데, 그 부대의 신념이라 할 수 있었다.
학교로 치면 급훈 같은 거?
물론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뿌리 깊게 세뇌 시키지만 말이다.
‘불쌍하게 됐군.’
내심 박병조란 놈에게 조의를 표한 이휘는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지시했다.
“준수 형은 할아버지와 정대선 사장, 강 변한테 연락해서 사정 설명하고 비밀유지 부탁해. 그리고 사모펀드를 만들 계획이라고도 말하고.”
“사모펀드?”
“채권들 싹 다 긁어모으려면 돈이 필요할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김 사장님은 그렇다 치고 네 할아버님과 태청 강 대표님도 상황이 안 좋잖아. 이런 상황에서 투자단을 만들자는 게 말이 돼?”
“적당한 선에서 최저 수익률을 보장해준다고 해.”
“진심이야?”
“자신 없어?”
당연히 이휘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 자신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웃긴 건 미래를 모르는 방준수 역시 그 질문을 비웃음으로 되받아쳤다는 거다.
“자신 있고말고. 우리 계획을 말해도 되는 거지?”
“그분들한테만.”
세 사람 다 믿을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 알기에 방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놓고 한술 더 떴다.
“그분들한테 확실히 믿음을 주고 비밀리에 믿을만한 투자자들을 유치해달라고 할게.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고, 우리와 이상이 같은 투자자들로.”
이상?
이휘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이상이 뭔데?”
“신념이 있는 돈. 왜, 네가 그랬잖아? 외환위기를 막을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우리 혈세를 외국자본에 절대 내어주지 않을 거라고. 난 그 말 좋다. 우린 박병조나 김성우 같은 매국노와는 타협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함께할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어야 불화가 없을 거고. PEF(사모펀드)는 정원제한도 있는데 아무나 모집할 수는 없잖아?”
확실히 방준수는 이휘의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구석이 있었다.
피식 웃은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형이 알아서 해.”
“후후, 정말이지? 그럼 크게 질러야겠다.”
저 미소….
이휘는 살짝 불안해졌다.
“뭘 얼마나 크게 지르게?”
“일단 크게 질러야 투자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알아보실 거 아니야? 결국 우리랑 같은 PEF에 들어올 사람은 한정되겠지만 후보를 한 명이라도 더 봐야 세 분 인맥에 빨대를 제대로 꽂을 수 있으니까….”
이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하다.
방준수 이 새끼는 남들과 사고회로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이건 불치병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