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25
나는 회귀했다 25
방준수가 사모펀드에 가입할 이들을 모집하는 사이.
실탄 사격장에 단체예약을 걸어둔 이휘는 후드에 마스크까지 뒤집어 쓴 채 인파로 붐비는 명동거리를 찾았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푸른 눈에 금발 외국인 남자 셋을 달고 다니면 눈에 띌 수밖에 없으므로 혼자 온 것이다.
‘정공법으로 간다.’
온몸의 세포가 다 깨어났다.
범법자에,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데 일조한 자다. 앞으로 또 누구의 목숨을 위협할 총기를 판매할지 모르는 일이고.
매너 좋게 대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딸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얼굴.
본 적 있다.
이때부터 같이 일했던 모양이다.
“혹시 예약하신 분?”
남자가 묻자 이휘가 후드와 마스크를 벗었다.
까치집이 생긴 머리카락. 준수한 외모긴 하지만 평범한 소년이다. 실탄 사격을 하기엔 너무 어렸다. 실탄사격이 만 14세부터 가능하다지만 이곳에서 2년 넘게 일하면서 한 번도 이런 어린애 혼자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잘못 들어왔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이휘는 카운터로 다가가고 있었다.
턱.
코앞에 멈춘 이휘가 말했다.
“사장님을 좀 뵙고 싶은데요.”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맨슨글로벌에서 나왔다고 하면 아실 겁니다.”
이휘는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확인했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이휘는 순식간에 카운터를 집고 뛰어 넘으며 남자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쳤다.
콰앙!
동시에 반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읍…!”
남자가 버둥거렸다.
저항이 느껴진 이휘가 발을 들어 남자의 발등을 찍어버렸다.
콰악!
“으으읍!”
“사장한테 안내해.”
스산하게 말한 이휘가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서 웃옷을 살짝 들췄다.
삐져나온 권총 손잡이를 본 남자의 눈이 커졌다.
다시 웃옷을 내려 손잡이를 감춘 이휘가 덧붙였다.
“딴 생각하면 죽는다. 알았으면 끄덕여.”
끄덕, 끄덕!
이휘가 손을 풀었다.
남자는 그가 총을 가진 걸 알아서 그런지 감히 비명을 지르거나 난동을 피우지 못했다.
제아무리 사장을 도와 총기밀매를 하고 있는 놈이라도 자기 목숨과 관련해선 간덩이가 콩알만 한 것이다.
“이쪽으로….”
남자가 이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가 문을 열어주자 이휘가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대강 상황파악을 마쳤는지 이휘 뒤에 서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넌 나가 있어.”
“같이 있는다.”
이휘가 끼어들었다.
한숨을 내쉰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문 잠가.”
찰칵.
남자가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잠가버렸다. 그러고선 이휘 뒤에서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이놈, 총을 가졌습니다.”
“명동 한복판에서 총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될까? 나도 그걸 원치는 않아.”
사장이 서랍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총을 쓰지 않겠다는 뜻.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등 뒤에 있던 거치되어 있던 일본도를 뽑았다.
그냥 장식품이 아닌 진검이다.
“뭐하는 새끼지?”
이휘가 묻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알 것 없고… 너 같은 어린놈이 여긴 왜 온 거야? 누가 시켰지? 총을 들고 오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나?”
다른 적들이 그랬듯 사장놈 역시 이휘를 만만히 보고 있었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 나이라는 게 이런 때는 정말 편리했다.
작은 방심이 승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이휘가 대답하지 않자 사장이 착각하고 덧붙였다.
“자, 두 가지가 있다. 저기 소파에 앉아서 네가 총을 어떻게 구했는지, 날 왜 찾아왔는지 다 얘기하고 총은 두고 가는 거야. 그럼 다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처럼 건방지게 굴다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내 장담하지.”
신고하자니 걸리는 게 많고.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수도 없다.
그러니 얻을 것만 얻고 순순히 돌려보내거나 흠씬 두들겨서 알 것 알아내고 보내는 것이 가장 깔끔했다.
경험상 지독한 공포를 심어주면 보복이 두려워서 절대 신고하지 못한다. 저런 풋내기는 더더욱.
“어떡할래?”
그 순간.
이휘가 피식 웃었다.
“웃어?”
겁먹어야 하는데.
이휘는 한없이 여유로웠다.
그는 총 대신 나이프를 빼들었다.
“이번엔 내가 제안하지. 두 가지.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맨슨글로벌과의 거래장부 내놔. 그게 아니면 널 고문해서라도 받아낼 테니까.”
맨슨글로벌이라는 말에 사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런 미친….”
그가 일본도를 뽑았다. 칼집을 집어던진 채 성큼성큼 다가섰다.
“혼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만! 뭐해? 저 새끼 잡지 않고!”
서슬 퍼런 외침에 문을 잠갔던 남자가 뒤에서 달려들었다. 아깐 방심해서 당했지만 지금은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력을 알아볼 안목이 없으니 저렇게 용감할 수 있는 거다.
이휘가 다리를 걸며 놈의 등을 툭 밀었다.
“어어!”
남자가 휘청거리다가 몸을 홱 돌렸다. 그러다 질겁하고 말았다.
이미 턱밑까지 다가온 이휘가 멱살을 틀어잡으며 칼날을 목에 가져다 댄 것이다.
“으…!”
남자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동시에 지켜보던 사장의 표정도 돌처럼 변했다.
“이 새끼가….”
그러나 그는 일본도를 휘두를 수 없었다. 이휘가 자기 부하를 앞세워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장할 노릇이었다.
둘 사이가 지척에 이르자.
이휘가 불쑥 인질로 잡고 있던 남자를 밀어버렸다.
툭!
사장이 뒤로 쓰러지며 덮쳐오는 남자를 신경질적으로 잡아 밀쳐버렸다.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이었다. 남자에게 바짝 붙어서 따라온 이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깜짝 놀란 사장이 일본도를 휘두르려 했지만 너무 거리가 가까워서 팔뚝을 잡히고 말았다.
터억.
팔을 고정시킨 이휘가 칼을 손아귀에서 돌려 거꾸로 잡으며 힘줄 두 곳을 따버렸다.
푹! 푹!
“크아아악!”
사장의 눈에 공포심이 어렸다. 팔에 힘이 빠지며 일본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휘는 애물단지처럼 붙어있는 팔을 잡아 꺾으며 사장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것처럼 가까워지고.
이휘가 칼끝을 사장의 목젖에 겨눴다.
“딱 한 번만 말한다.”
“…!”
“장부 내놔.”
***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찰청 중수부장 심재정은 법대동기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내던 강영훈을 만났다.
저 멀리 대검이 보이는 룸 형식의 횟집이었다.
“김상철이는 시치미를 떼고 있어. 총장이 그자를 은근히 비호하는데다 살인교사로 엮어 넣기에는 증거도 부족한 상황이야. 놈이 킬러를 고용한 곳으로 맨슨글로벌이란 미국계 무역회사를 언급하더군.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점점 복잡하게 꼬이고 있어.”
“그렇겠지. TS로펌 분위기는?”
“대표가 조사를 받고 있는 판국에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그 말을 들은 강영훈은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모든 게 이휘의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 계획이 더 추가되었다.
“실은 나도 마침 그 얘기를 하러 온 참인데…. 맨슨글로벌이란 곳이 론스터란 사모펀드와 연관이 되어 있다더군.”
“론스터?”
심재정은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는 양 눈을 치떴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강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놈들이 맨슨글로벌과 함께 한국에서 총기밀매를 했던 모양이야.”
심재정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총기밀매? 대한민국에서?”
“김한영 사건 기억하지?”
올해 초, 간첩 하나가 한국에 들어와 탈북자 한 명을 권총으로 살해했다.
그 탈북자의 이름이 바로 김한영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심재정은 여전히 믿기 힘들었다.
“이건 경우가 달라. 완전히 다른 사건이잖나.”
“다르지만 총기밀매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 아닌가? 총기를 숨겨 들여온 곳은 명동의 한 사격장. 샷 컴퍼니란 업체야. 심지어 증거까지 나왔지.”
“증거?”
“샷 컴퍼니가 맨슨글로벌을 상대로 3정의 총기를 판매한 장부가 나왔어.”
“…!”
두 눈을 찢어질 것처럼 부릅뜬 심재정이 물었다.
“대체 정보제공자가 누구지? 누군데 이런 사건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증거까지 구해주는 거야?”
벌써 몇 번째 묻는 건지 모른다.
그는 사실 CCTV 테잎을 받았을 때도 선뜻 이휘를 떠올리지 못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니까.
다른 누군가가 뒤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마음이 누구보다 이해가 가는 강영훈이 미미하게 미소지었다.
“…때가 되면 알려주도록 하지. 정보제공자는 아직 자신을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아.”
“정보제공자가 누군지도 말해주지 않고 수사를 진행해 달라….”
“신분은 내가 보증했고. 김상철 건으로 어느 정도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이번 건 범인에 증거까지 나온 사건이야.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그건 사실이다.
정보제공자의 정보가 틀림없다면 말이다.
잠시 말이 없던 심재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는 비공개로 진행하지. 장부가 들어오면 그때 시작할 거야.”
“물론 그래야겠지. 철저히 조사하길 바라네.”
심재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후우, 만약 그 제공자 말이 사실이라면 훈장을 줘도 모자라겠군.”
아마 그는 정보제공자를 국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유능한 개인에이전트(FA)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긴, 웬만큼 첩보전에 특화된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정보들이었으니까.
만약 알아내기 쉬운 정보였다면 검경 차원에서 이미 조취를 취했으리라.
더 이상 이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 강영훈이 말을 돌렸다.
“한 잔 하지.”
“근무 중이야. 자네 마셔. 난 물로 대신할 테니까.”
“깐깐하긴.”
피식 웃은 강영훈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던 심재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학생이 사라졌다지?”
이휘를 말하는 거다.
말이 실종이지 검찰에선 죽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아직 사망신고는 안 했지만 이휘가 남긴 재산을 차지하려고 일가친척이 움직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이 사건을 담당한 대검 중수부장 심재정의 귀에도 들어왔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고, 재벌이라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구만.”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는 강영훈 입장에선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당장은 연기를 해야 했다.
“뭐… 그렇지.”
“미안하네.”
심재정이 침통한 표정으로 술잔에 든 물을 마셨다.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됐었는데.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해뒀는데도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이휘의 신변보호를 위해 했다는 일이 순찰인력을 늘린 정도였다.
그 사실을 떠올린 강영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러시아인들로 이루어진 경호인력이 아니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박병조를 속여 넘기기 위한 속임수가 진짜 현실이 될 뻔했다.
저절로 감정이입이 된 강영훈이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아니라 그 학생한테 미안해야할 일이지. 우리 어른들이, 그리고 국민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검경이 사죄해야할 일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디 이번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사해줬으면 좋겠네. 검찰총장이 아니라 더 높은 양반이 막아선다 해도 말이야.”
나중에 만나면 사과하라고.
그 말을 생략한 강영훈이 묵묵히 술잔을 들이켰다.
맞은편의 심재정 또한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창밖을 보았다.
대검찰청.
저 안에도 몇 명의 부패한 공무원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기분 아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립감.”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린 강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거야. 사익에 눈이 멀어 해선 안 될 짓을 벌이던 자들은 머지않아 대가를 치를 테니까.”
“왠지 의문의 정보원이 한 말일 것 같은데.”
“비슷해.”
머쓱하게 웃은 강영훈은 얼마 전 방준수가 찾아와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모펀드를 만들 예정인데, 법무법인 태청 대표인 강영훈을 일원으로 받고 싶다고 제안해왔다.
스스로도 놀란 게, 로펌 매출이 많이 떨어진 시국임에도 강영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서야 앞으로의 세세한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만약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론스터의 계획이 무산된다면.
이 나라는 정말 이휘에게 훈장을 줘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