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28
나는 회귀했다 28
이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겉옷 아래를 살펴보니 검은색 티셔츠에 핏물이 흥건하다.
욱신거렸다.
‘상처 자체는 깊지 않다.’
문제는 칼에 찔린 상흔이다.
큰 병원으로 가면 경찰부터 부를지 모른다.
론스터 놈들이야 보석만 챙겨서 떠날 생각일 테니 문제가 커지진 않겠지만 쓸 데 없이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기사의 물음에 정신차린 이휘가 대답했다.
“우리병원으로 가주세요.”
우리병원은 청담동에 위치한 메디컬센터.
대학병원처럼 큰 곳은 아니고 규모가 작은 2차병원쯤 된다.
휘가 이곳을 고른 이유는 법무법인 태청의 VIP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태청과 파트너십을 맺기 전, 태청에 대해 알아보며 그와 같은 사실을 파악해 둔 게 도움이 됐다.
“어디 안 좋으세요?”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쳐다보며 묻자 이휘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괜찮아요. 속이 좀 안 좋아서.”
병원으로 향하는 사이에도 택시기사는 계속 이휘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겉옷에 가려져서 상처나 핏자국이 보이진 않았지만 창백한 안색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이휘는 창문을 열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침이 말랐다.
‘젠장.’
설마 복병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어떤 정보도 과신해선 안 되는 법인데.
“손님 다 왔습니다.”
이휘가 눈을 떴을 땐 병원 앞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계산을 치른 뒤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쯤엔 상처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핏자국이 바지까지 내려왔다. 상체가 기울고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환자분…!”
다급하게 부른 간호사가 그를 부축했다.
이휘가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중얼거렸다.
“원장님….”
“네?”
“이정필 원장님 불러주세요. 법무법인 태청… 강영훈 대표님 소개로 왔습니다.”
“아! 네, 알겠어요.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김 선생님! 이 환자 분 좀 봐주세요!”
“환자 분 괜찮으세요? 상처 좀 볼게요.”
김 선생님이라 불린 30대 초반 의사가 이휘의 상처를 봤다.
“일단 처치부터 할게요.”
“김 선생님. 원장님 손님이에요.”
그 말에 김 선생님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정성스럽게 이휘의 상처를 돌봤다.
그사이 간호사가 병원장을 불러왔다.
병원장 이정필.
가슴팍에 그렇게 주기가 되어 있었다.
40대 미남이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선생이 말했다.
“칼에 찔렸습니다.”
“김 선생은 나가봐요. 내가 하지.”
“아, 네…!”
이정필의 말에 김 선생이 고개를 꾸벅 숙이곤 처치실에서 나갔다.
그가 막 소독을 마친 상처를 확인하던 이정필이 상처를 봉합하며 물었다.
“강 대표와 잘 아는 사이라고?”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학생인가?”
이정필이 중얼거리자 이휘가 눈을 들었다.
“저를 아세요?”
“얘기는 많이 들었지. 강 대표, 그 친구가 워낙 상상력이 부족해서 허언증이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믿기 힘든 얘기였어.”
이정필은 그렇게 말하다 말고 흠칫했다. 이휘의 표정이 일순 싸늘하게 변한 것이다.
‘입이 싼 사람이었나?’
정신 차리자.
적어도 자신이 본 강영훈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슨 얘길 들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정필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본인 얘기니까. 정성그룹 이성환 회장님이 주시는 재산을 포기했다더군. 그런데도 벌써 200억 가까운 재산과 대선물산. 태청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졌다고. 외환위기를 훤히 내다봤다는 말도 들었어. 하나 같이 별나라 달나라 이야기야.”
그만큼 믿기 힘들다는 뜻이다.
끝났나 싶은 그때 이정필이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모펀드에 대한 얘기도 들었지.”
거기까지 들은 이휘는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서 그런지 판단력이 흐려질 뻔했다. 강영훈이 한 이야기는 전부 알려져도 상관없는 정보들이다.
“…사실입니다.”
“내 딸아이가 중1이야. 그 애보다 서너 살 많은 학생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그런데 오늘은… 칼에 찔린 상처를 입고 병원을 찾아왔군.”
이정필은 팔의 상처까지 전부 치료한 뒤 소매를 내려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도 되겠나?”
“아뇨.”
“경찰에 신고하는 건?”
“…부탁드려요.”
“왜 칼에 찔린 건지 이유도 묻지 마라, 신고도 하지 마라….”
“부탁드립니다.”
이정필은 고개를 저었다. 이휘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후우. 강 대표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부탁은 들어주지. 대신 나도 부탁이 있어.”
“…조건입니까?”
“아니. 부탁이야.”
“말씀하세요.”
“사모펀드에 가입하고 싶은데.”
“펀드요?”
이휘는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펀드에 대해 모르시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이정필이 피식 웃었다.
“당연히. 일단 난 강 대표의 수완을 믿어. 그리고 강 대표 외에도 거물들이 여럿 있다더군. 최저수익률도 보장이 된다고 들었고. 사모펀드면 정원은 한정되어 있을 텐데… 그래서 지금 들어가고 싶어.”
이휘는 입이 바싹 말랐다. 아직 기력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뇌작동까지 정지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 줄을 잡은 뒤 힘껏 튕겼다.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원이 정해져있어서요.”
“이런….”
역시.
이정필은 아까보다 더 군침이 도는 표정이 됐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방법이 없겠나?”
“있긴 합니다만….”
“그게 뭐지?”
“에이, 아니에요.”
“크흠.”
이정필은 자기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키다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그는 자신이 어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팔랑 귀가 아니라고 여겼지만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말이라도 해줘봐. 혹시 알아? 내가 선뜻 방법에 따를지.”
“음… 기분 상하실 텐데.”
“…?”
“그게, 사모펀드 자체가 정원제다 보니 아무래도 자격요건이 까다롭거든요… 투자자들도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가입 받길 원할 테고요.”
안 그래도 먹음직스러운 요리에 에피타이저가 올라간 느낌이다.
이정필이 다시금 군침을 삼켰다.
“그렇겠지. 나라도 그럴 테니까.”
“그래서, 신뢰의 표시로 지분을 받고 있습니다.”
“지분을?”
“네. 한 배를 타야 하니까요.”
사실 순 뻥이다.
우연히 법무법인 태청과 대선물산에 지분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필수 자격요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모두 사실이다.
법적으로 사모펀드의 정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나 받을 수는 없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이정필이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한 번 말이나 해봐. 지분을 얼마만큼 넘기면 되지?”
“음… 30퍼센트입니다.”
“뭣…!”
이정필이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돼.”
“믿기실지 모르겠지만 대선물산과 태청은 5퍼센트가 넘는 지분을 내놨어요.”
굳이 길게 말할 필요 없었다. 이정필의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투자에서 큰 수익을 거둘 대선물산, 법무법인 태청의 지분 5퍼센트를 돈으로 환산하면 우리병원의 40퍼센트 지분을 넘어서는 액수다.
그러니 이휘도 배짱을 튕길 수 있었던 거고.
이정필도 매달리는 거다.
“후우, 그게 사실이라 쳐도 내가 이 병원에 가진 지분이 65퍼센트야. 그중 30퍼센트를 제하면 35퍼센트만 남지. 만약 자네가 30퍼센트를 가지고 나머지 지분을 가진 자들을 회유하거나 그들의 지분을 사버린다면? 난 이 병원을 통째로 빼앗길 수도 있어. 병원을 담보로 걸란 말이나 다름없는데 회원권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아쉬운 쪽은 제가 아닙니다.”
“…판돈을 먹으려면 올인 해라?”
이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아쉬운 건 이쪽이 아니다. 앞으로의 투자를 위해 자본력을 확보할 필요는 있지만 그게 굳이 우리병원일 필요는 없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물론 저희 펀드 특성상 가입비로 받을 지분도 함께 오르겠지만요. 6개월 간 다달이 1퍼센트 가량 오를 겁니다.”
“다달이 1퍼센트라니. 이런 황당무계한 경우가 있나…!”
“왜 그런지는 수익률을 지켜보시면 아실 거예요. 6개월 간 매달 자료를 보내드릴 테니 참고하세요. 다달이 그 이상의 수익이 나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자신감은 당연한 거다.
론스터가 가져가려던 부실채권을 정리하면 그 이상의 수익이 날 거라는 것쯤 훤히 알고 있으니까.
한편 이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정필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병원에 1퍼센트 지분이면 1억 5천이다. 다달이 1억 5천 이상의 수익을 장담하다니!
잠만 자도 매일 500만 원 이상의 수익이 창출된다는 뜻이었다.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6개월은 장담한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번 들어가기만 하면 태청의 강영훈 대표처럼 든든한 인맥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되면 단순히 개인병원에서 그치지 않고 병원을 크게 키워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펀드가 파산하지 않는 한 최저수익률까지 보장 받으면서!
이번 한 번의 결정으로.
‘희대의 사기꾼인가?’
그런 의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태청의 강영훈이라는 존재가 뭉글뭉글 자라나는 의심을 희석시켰다.
“후우, 이달 안에 답을 주지.”
빙그레 웃은 이휘가 소매를 내렸다.
“치료 감사합니다.”
그는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처치실에 들어갈 때와 달리 무거워진 표정으로 나오던 이정필 원장이 무심코 고개를 들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딱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백인 남자 셋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위화감이 솟구쳤다.
‘설마?’
이휘와 시비를 붙었던 자들?
이런 의심을 하는 사이에도 백인 셋은 이휘를 발견하곤 성큼성큼 다가왔다.
표정이 살벌했다.
“이런…!”
그가 신고 요청을 하기 위해 간호사에게 손을 뻗는 그때.
이휘의 코앞에 멈춰선 백인이 입을 열었다.
“몸은 어때?”
영어를 알아들은 이정필 원장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이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팔까지 붕붕 돌린다.
저러면 안 되는데.
러시안이 말했다.
“선적장엔 우리가 가지. 어차피 우리한테 맡기려고 했잖아?”
“아니, 내가 직접 가야돼.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넌 다쳤다. 게다가 박병조란 놈도 널 공격한 놈들과 합류할 거야. 위험하다.”
“내가 없으면 더 위험하겠지. 그리고 합류한다 해도 위협이 되진 못할 걸.”
“뭐?”
“모조리 쓰러뜨렸거든.”
“무슨 말도 안 되는….”
“정태수가 아무 말 안 하던가?”
“자기가 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던데….”
러시안이 눈매를 좁혔다.
“네가 정말 그놈들을 모두 상대했다고? 여덟 명이나 있었다며? 흉기로 무장했다고 들었다.”
“맞아.”
이휘는 더 이상 설명을 생략한 채 당황스럽고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정필에게 목례했다.
“또 뵙겠습니다.”
“아…! 그럽시다.”
얼떨떨하게 대답하는 그를 제쳐둔 이휘가 러시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가면서 얘기하자.”
러시안 셋을 대동한 이휘가 우르르 나갔다.
이정필은 지금이라도 신고해야 하나 싶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흉기를 든 자 여덟 명을 해치웠다고 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이거… 좀 더 생각해봐야겠는데.’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학생이 저런 자들과 어울리고, 칼에 맞고, 흉기 든 놈 여덟 명과 사투를 벌인단 말인가?
강영훈의 성향이 확고하니 불법적인 일은 아니겠지만 뭔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강 대표를 먼저 만나봐야겠어.’
그는 사람들이 나간 반대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
한편 밖에 나간 이휘는 러시안 셋과 SUV에 탑승했다.
알렉세이가 운전석에서 입을 열었다.
“박병조를 지키는 놈은 하나다. 네 말 대로면 두 놈만 처치하면 돼.”
“그래?”
“문제는 박병조와 그놈 모두 총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남은 두 정이 거기 있었네. 그래서, 총 가진 놈들 상대로 어쩔 작정이었는데?”
“단숨에 죽여 버리면 돼.”
…미친놈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격 실력이 형편 없어도 한 둘은 무조건 다치거나 죽어. 재수 없으면 전멸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이 있나? 우릴 공격한 이상 절대 살려서 못 보낸다. 설령 우리가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보면 볼수록 무지막지한 놈들이다.
이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법이 있다.”
“뭐?”
“내 계획대로라면 누구도 다치지 않고 놈들을 모조리 해치울 수 있어.”
알렉세이가 눈매를 좁혔다. 흐뭇한 미소를 감추려 애쓰는 듯한, 이상하게 억지스러운 표정이다.
“너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구나. 흐흐.”
“그게 중요해?”
그렇게 묻긴 했지만 실은 그 역시도 놈들이 가진 것들을 다 빼앗고 흔적 없이 해치우기 위해 기다렸을 뿐이다.
눈에 살기를 띤 이휘가 나직막히 읖조렸다.
“내 방식으로 매듭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