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29
나는 회귀했다 29
잠시 후, 이휘는 선적장 인근에서 몸을 은폐한 채 시야를 확보했다.
차에서 내리는 박병조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박병조, 새로 고용한 아프리카계 흑인 경호원 하나. 저 두 놈이 총을 가졌을 거다.
나머지는 이휘와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은 자들이다 보니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들이 하나 같이 초조한 표정으로 사방을 경계하는 그때.
대선물산에서 나온 남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정대선의 호출을 받고 나온 흥신소 사장이다. 이휘와는 일면식이 없었지만 돈을 받고 기꺼이 나서줬다. 용병출신답게 상대가 총을 가진 흉악범들인 걸 알면서도 태연했다.
뭐라 이야기를 나누던 박병조 일행이 선적물과 함께 컨테이너가 가득 실린 배에 올랐다.
그 뒤에 남겨져 있던 흥신소 사장은 이휘가 숨어있는 쪽을 일별하곤 일 핑계로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배가 출발하기 직전, 이휘와 러시안 셋이 선원들이 드나드는 통로를 따라 잠입했다.
“놈들은 검은색 컨테이너에 있을 거야.”
이휘의 말에 알렉세이가 물었다.
“보석은 넘긴 건가?”
“모조품으로.”
이휘는 혹시 모를 침입자를 대비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 태양의 눈물 모조품을 가져다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흥신소 사장을 통해 박병조에게 건넸다.
“속아 넘어간 게 신기하군.”
“시간은 없고, 여기서 감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대신 챙겨온 돈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넘긴다고 했겠지.”
“믿을 수밖에 없어서 믿긴 하되 최후의 보루를 남겨둔 건가?”
“뭐 비슷하겠지.”
“이제 어쩔 셈이지? 쪽수도 달리고 저쪽은 권총이 두 정이나 있어. 총알도 넉넉하지. 변함없이 우리가 열세인 상황이다. 똘똘 뭉쳐 있을 테니 흩어놓을 수도 없고.”
“그렇겠지.”
“이대로 미국까지 갈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나 빨리 끝내고 뒷간 가야 돼.”
뜬금없는 농담에 알렉세이가 피식 웃었다.
“작전은?”
“64식 권총의 유효사거리는 30미터. 30미터 거리에 숨어서 총을 가진 두 놈을 저격한다.”
“몇 발 남았는데?”
“두 발.”
“….”
알렉세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두 발 쏴서 두 발 다 명중시키겠다고?”
“맞아.”
“30미터 거리에서? 은폐한 채로?”
알렉세이가 묻자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군.”
미친 거다.
한 발이라도 빗나가거나 빗맞으면 놈들이 바로 대응사격에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되면 뭘 해보지도 못한 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알렉세이가 다른 의견을 냈다.
“차라리 놈들이 총을 꺼내기 전에 기습하는 게 어때? 저쪽이 머릿수가 많으니 섞여서 근접전을 벌이면 쉽게 쏠 수 없을 거야.”
“쉽게 쏠 거야.”
이휘는 저 자들이 부상당한 동료를 앞세워 총알받이로 쓰던 것을 봤다.
알렉세이가 네모난 턱주가리를 긁적였다.
“설명해봐. 어떻게 쏘면 총알 두 발로 30미터 거리에서 두 놈을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을지.”
“속사로 골반을 맞출 거야.”
“A존(머리와 몸통의 치명적인 부위)이 아니라?”
“머리는 움직이기 쉬우니까 정확히 맞추기 힘들고 몸통에는 방탄복을 두르고 있을 수도 있어.”
그 말에 알렉세이의 눈이 빛났다. 이 자식, 사격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 골반을 촘촘하게 쏘는 걸 바느질 사격술이라고 하는데 대 방탄복용 사격술 중 하나였다. 방탄복으로 보호할 수 없는 골반은 신체 중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부위라 조준이 편하다. 또한 골반 뼈, 척추, 각종 혈관이 지나가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맞는 즉시 자세가 무너져 반격이 불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골반을 노리는 이유다.
“도무지 모르겠군. 너 같은 애송이가 어떻게 정확히 쏴야할 곳을 아는 거지?”
이휘는 대답하지 않고 씩 웃었다.
“이제 맡겨줄래?”
“브리핑이나 해봐.”
고개를 끄덕인 휘가 세 사람을 보며 낮게 속삭였다.
“알란은 선실로 가서 화재경보를 울려. 경보가 울리고 방송이 나오면 놈들이 컨테이너박스 밖으로 나오겠지. 선원들이 바로 옆 컨테이너에 불을 놓을 거야. 표적 둘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때를 노려서 내가 두 놈을 저격한다. 두 놈이 쓰러지면 알렉세이, 로만이 들어가서 마무리하면 돼. 나도 합류한다.”
“저격만 성공한다면 완벽한 작전이군.”
러시안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가 이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 목숨이 네 손에 달려있다. 그걸 잊지 마.”
“아… 긴장하면 총알 빗나가는데.”
“재수 없는 소리 할래?”
이휘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사격은 항상 만발이었으니까.”
알렉세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항상’ 만발이었다고?
한국은 휴전국가라 교육과정에 사격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심각한 오해를 한 알렉세이가 나머지 두 러시안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뭘 묻기 전에 이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자.”
죽어야할 놈들이 죽을 시간이 다가왔다.
***
박병조는 컨테이너박스 안에 있었다. 머리로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밀었다.
“왜 그러슈?”
그가 고용한 갱스터, 샷건이 물었다. 샷건은 미국에서부터 자질구레한 일을 뒤처리해주던 놈이다.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일처리가 깔끔했다.
“뭔가 찜찜해.”
“기분 탓이겠지.”
“그래, 그렇겠지.”
박병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위화감은 여전했다.
그를 빤히 보던 샷건이 히죽 웃었다.
“뭐… 이해합니다. 돌아가면 어쩌나 싶겠지. 당신처럼 무식한 방법을 쓰진 않겠지만 당신의 직위, 재산, 인맥까지. 모든 게 산산조각날 테니까.”
박병조가 이를 악물었다.
30억 달러 이상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한국 돈으로 4조 원에 달하는 대형 M&A. 이걸 위해 맨슨글로벌과 손잡고 근 십여 년을 준비했다. 자신을 버린 조국, 무지한 한국을 이용하기 위한 완벽한 작전이 완성됐다고 여겼다. 어떤 문제도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이휘.’
그놈이 나타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밤잠을 설치게 하는 모기쯤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휘는 마치 론스터의 계획을 시작단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훼방을 놨다.
그래, 10만 달러에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국에 30억 달러가 걸린 일이다!
아프리카 반군들은 1, 2억 달러에도 수만 명을 학살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가 외국인 자본가가 아닌 미국의 거대 사모펀드 론스터의 중축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줄 이번 프로젝트를 한낱 애송이 때문에 말아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의 실패확률도 없도록 깔끔하게 불안요소를 제거하려 했다.
단연코 상상도 못했다.
일개 고등학생인 이휘가 론스터가 염두에 뒀던 채권을 가로채 간 것도 모자라 꼬리를 자르기 위해 놈을 죽이라고 보냈던 김성우를 도리어 포섭할 줄은. 자신들이 10여 년 간 준비한 30억 달러짜리 계획의 자본금을 홀라당 털어먹을 줄은!
심지어 같이 갔던 부하들까지 모조리 병신으로 만들어 놨다. 최악의 최악까지 첨예하게 고려한 모든 공격이 무산됐다. 역풍을 맞아 자신은 도망자가 되고 그놈은 몇 천만 달러, 수백 억 원을 벌어들였다.
완벽한 기회였는데!
한국은 발판에 불과할 뿐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자본을 쓸어 담는 제국을 세우려 했는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순간.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고막이 째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선박 전체를 울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3번 컨테이너, 3번 컨테이너, 폭발물로 인한 화재! 선원들 전원 소화 장비 착용 후 3번 컨테이너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순간 박병조의 뇌리로 컨테이너박스 안에 들어오기 전 선원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 되기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험물 섹터의 컨테이너로 배정해줬다고 했다.
그게 바로 검은색 4번 컨테이너다.
그 옆이 화재가 난 3번 컨테이너고.
하지만 그 순간 박병조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사고할 틈도 없이 같이 있던 샷건이 컨테이너박스 밖으로 자신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내가 먼저 밖에 상황을 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슈!”
그가 뛰쳐나가자 과연 3번 컨테이너 안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빌어먹을!”
샷건은 다시 들어가서 박병조를 밖으로 잡아끌었다. 그때 박병조가 눈알을 굴리며 다른 부하들을 불렀다.
“나를 에워싸라!”
“뭐 저격이라도 있을 것 같습니까? 여긴 금방 연기로 가득 찰 거요! 혹시라도 갇히게 되면 끝장이야! 얼마 못 버티고 질식할 거란 말이오!”
그 말에도 박병조는 끝끝내 샷건과 부하들이 둘러쌀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퍼억!
박병조 바로 옆에 있던 샷건이 허리춤을 붙잡고 고꾸라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
골반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비명이 박병조의 귓가를 쨍쨍하게 울렸다. 두려운 표정이 된 그가 황급히 몸을 숨기려는 찰나.
비명이 그치기도 전에 뭔가가 날아와 골반에 퍽하고 틀어박혔다.
첫 발이 샷건의 골반을 부수고, 두 번째 총알이 박병조의 골반을 관통하는 거의 동시였다. 탕, 탕! 연발로 이어지듯 총성이 들렸고 두 사람이 그 자리에 무너져서 하염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딱 봐도 치명상이다.
마치 골반에 심장이라도 붙어 있다가 터진 것처럼 출혈이 심각했다.
박병조는 아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샷건은 그 와중에도 권총을 꺼내며 눈알을 뒤집었다.
“어디야! 어디야!”
그러나 바닥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이 충격적인 상황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미국인 리더가 외쳤다.
“총! 총을 가져와! 대응사격 해!”
그제야 다른 부하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두 사람에게서 총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두 개의 그림자가 휙 뛰어들더니 박병조와 샷건의 목을 돌려버렸다.
으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목이 돌아간 두 명이 힘없이 쓰러졌다.
시체가 총을 뽑을 수는 없는 법.
놀랍게도 갑자기 난입해서 이들을 죽인 두 사람은 시체를 지키고 버텨 서서 칼을 빼들었다. 빤히 시체에 총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뒤에 남겨진 박병조의 부하들을 칼로 상대하려는 것이다. 아니, 칼로 죽이려는 거다.
리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놈들이다.’
그때 펜트하우스에서 본 러시안들 중 둘이다. 나머지 하나는 선실이나 갑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때도 상대가 안 됐는데 이휘와의 싸움에서 부상당한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죽음을 예감했다.
“우릴 다 죽이겠지?”
그러니 박병조를 죽였을 거다.
저리 허무하게.
결국 저들은 자신들 모두를 죽일 계획을 하고 이 배에 태운 것이다.
그 질문에도 러시안 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아무 말도 없이 한 명씩 차분하게 처리해나갔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고도로 훈련된 살인기계들은 칼로 목을 긋거나 손쉽게 목뼈를 부러뜨렸다.
털썩, 털썩…. 하나 둘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이 더 가세했다.
마지막 세 번째 러시안.
그리고 이휘였다.
이들을 보던 리더는 마지막 수하의 죽음을 목격하곤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그는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턱밑으로 깊숙이 찔러넣었다.
푸욱!
“컥….”
리더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갑판 위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4번 컨테이너의 불은 손쉽게 꺼졌다.
찬바람을 맞으며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살인자나 테러범과 다를 바 없는 놈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돈과 폭력으로 죽이려 들었던 자들.
이휘는 앞으로도 이런 자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뒤처리는 맡겨도 되겠지?”
“물론.”
알렉세이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저리 죽이고도 전혀 들뜨지 않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무서운 병기인지 알 수 있었다.
우습게도, 그건 이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