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3
나는 회귀했다 3
정태수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등을 기댔다.
“아직까진?”
의미심장한 대답에 궁금증이 치밀었다. 여기서 이 자식을 때려눕히고 다시 물어볼까? 정태수의 표정에서 그러한 고민이 느껴졌다.
그러든 말든 이휘는 더 없이 태연했지만.
“그래, 아직까진. 네 아버지는 모르지만 맨슨글로벌(Manson global)에 대해서는 알지.”
맨슨글로벌이란 이름을 들은 정태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통화할 때 몇 번이나 거론됐던 거래처 이름이다. 이 자식이, 자신도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너… 뭐야.”
“너희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문제가 있어. 그래서 지금 널 그냥 두는 거고.”
이휘가 비릿하게 웃었다. 먼저 자신을 공격한 이상, 정태수가 대선물산 정대선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몸뚱이로 맘모스나 성명철과 싸웠을 때처럼 사정 봐줘가며 싸우다간 어지간히 애먹겠지만 한계까지 몰아붙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태수를 통해 정대선을 만나야 하는 상황. 휘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태수는 이휘의 건방 따윈 무시하고 더 중요한 걸 물었다.
“문제? 어떤 문제를 말하는 거야?”
이 자식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자신도 모르는 아버지 사업에 대한 내용이 술술 나오니 궁금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휘는 순순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여기까지 하자. 너희 아버지랑 얘기할 문제니까. 궁금하면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해. 우리 학교에 이런 황당한 놈이 있는데, 아부지를 한 번 보고싶어 한다고.”
“후우, 이 좀만한 새끼.”
정태수가 벌떡 일어났다. 이휘가 던진 말이 영 찜찜했기에, 그는 성질 부리는 걸 나중으로 미뤘다.
“헛소리면 죽는다. 알겠어?”
“얼마든지.”
이휘가 활짝 웃었다. 얄미운 미소를 짓는 그를 노려보던 정태수가 몸을 홱 돌리더니 교실을 나갔다.
타악.
교실 문이 닫히자 여기저기서 수면 위로 대가리를 내민 듯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푸하! 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깡다구 진짜 좋다, 쟤.”
“근데 정태수 선배랑 아는 사이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한 거 아니야?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러다 뼈도 못 추릴 텐데…”
정태수가 중소기업 사장 아들이란 소문은 파다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3학년 양아치들 여럿을 때려눕힌 적이 있는데, 제법 큰 합의금을 물어주고 무마한 것부터 소문이 시작됐다.
이휘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정태수를 건들인 것은 녀석과 친해지고 싶다거나, 사장 아들이라서가 아니다. 맨슨글로벌과 대선물산이 함께 엮인 사건. 그 사건 속에 자신이 찾는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물건을 손에 넣는 것이, 그가 과거를 야금야금 바꾸자고 마음먹고 선택한 첫 변화였다.
방금 정태수와 이휘를 보며 느낀 교실 안 아이들의 심경변화는 맘모스 박민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바로 뒤에 앉아서 모든 걸 지켜본 맘모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식은땀에 등허리가 축축했다.
‘이런 시벌, 이게 다 뭔 상황이야?’
정태수와 한바탕 맞붙을 줄 알았다.
물론 이미 성명철을 재낀 이휘이기에 다시 전처럼 대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태수에게 호되게 처맞으면 기 좀 죽겠구나 싶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접근해서 어울릴 생각이었는데….
이건 뭐, 정태수에게 툭툭 반말을 까질 않나, 그걸 또 정태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받아줬다.
평소 정태수의 성깔을 떠올리면 꿈도 못 꿀 일이다. 1학년의 건방을 참아줄 사람도 아니었고, 꼭지 한번 돌면 선생님도 못 말리는 게 정태수였다. 그런 정태수가 기껏 아부지 얘기만 주구장창 씨부리다 가버리다니!
‘…진짜 이러다 박민상 인생 최초로 왕따 되는 거 아니냐.’
자신이 이휘를 괴롭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마다 그는 진저리를 쳤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날이 올 줄이야.
차라리 이휘가 따지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서 더 무서웠다.
언제 돌변해서 자신을 다시 패거나 따로 만들지 불안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 맘모스.”
“어? 왜?”
안 그래도 이휘를 생각하던 맘모스 박민상이 흠칫하며 물었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이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책 있냐?”
“어? 무슨….”
“다음 시간 수학이잖아.”
“…!”
맘모스가 눈을 부릅떴다.
이 자식이 공부를 한다고?
맘모스와 뒤에서 1, 2등을 다투던 놈이다.
사교성 제로에 공부든 싸움이든 운동이든 잘하는 게 없어서 괴롭혔던 거니까.
이휘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순간, 눈치 빠른 맘모스가 책상서랍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수학 교과서를 꺼내다 바쳤다.
“여기!”
“넌 없지?”
“어? 어, 그치.”
“그럼 복사라도…”
“아니! 괜찮아!”
“왜?”
“괜찮아. 교무실 가면 선생님한테 혼날 거야.”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나더러 가라는 거였어?”
“그럼 내가 가리?”
맘모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열 받은 얼굴과는 다르게 말은 살살거리며 나갔다.
“으후후, 그건 그렇지. 근데 난 괜찮아, 휘야.”
“그렇게 부르지 마라. 징그러우니까.”
“커험… 어, 그래. 이휘.”
“교과서 없으면 빠따 맞을 텐데 진짜 괜찮겠냐?”
맘모스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복사하러 교무실 가도 맞을 텐데 뭐.”
그 정도였나?
1997년과 2023년 교권의 차이를 떠올리던 이휘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맘모스가 분개했다.
‘으아, 이 씨벌놈. 내가 언젠간….’
맘모스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성명철과 그 패거리를 순식간에 박살내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 모습은, 복수에 대한 모든 의욕을 앗아갈 만큼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휘는 맘모스의 생각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업준비를 했다.
다음 시간은 수학.
‘머리가 완전히 굳지 않았어야 할 텐데.’
한때 UDU에 차출될 정도로 UDT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저격수가 휘였다.
저격에는 각종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대부분 2인 1조로 관측수가 부사수로 붙지만 스스로 관측해서 저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심박수, 풍속, 풍향, 탄환의 낙차, 습도 계산이 중요해진다.
당연히, 저격수에게 수학은 필수다.
숫자를 본 이휘의 눈이 반짝 빛났다.
***
휘의 예상대로였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벽에 기대 서 있는 정태수를 마주칠 수 있었다.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흥분한 것은 분명한데 화가 난 건지 기쁜 건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부지가 널 보자시네.”
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정태수가 말했다.
“조심해라.”
“뭘?”
“쓸데없는 말 했다간 국물도 없어. 나도 감당 안 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
“그놈의 협박, 안 지겹냐?”
정태수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새끼가 뒤지려고. 형님한테.”
휘가 피식 웃었다.
‘형님은 개뿔. 귀여운 새끼.’
자신이 나이가 많아도 한참 많다.
어차피 믿지도 못할 거, 내색조차 하지 않은 휘가 거침없이 몸을 돌렸다.
“가자,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학생들이 풍기는 옅은 베이비로션 향과 비누향, 그리고 남학생들이 풍기는 호르몬 냄새가 뒤섞여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질식할 지경이었다.
정태수의 아버지, 대선물산 사장 정대선은 체격이 좋았다. 키는 170센티 정도였지만 어깨가 무척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허벅다리는 철근을 가져다 박은 것처럼 탄탄했다. 소파가 비좁아 보일 정도. 정태수의 재능이 어디서 나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들놈이 데려온 꼬맹이, 열일곱 살의 이휘를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
“아저씨가 뭐하던 사람인지 안다고?”
“네.”
“그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중얼거린 정대선이 물었다.
“아버지 존함이?”
“누구한테 들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내 과거와 우리 거래처까지 꿰고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휘는 굳이 적당한 변명을 찾지 않았다. 착실하게 대답할지 말지는 오롯이 자신의 판단이니까.
중요한 것은 상대가 흥미를 갖게 하는 것뿐이다.
“그게 중요해요? 아저씨 거래처인 맨슨글로벌에서 밀수를 하고 있는데.”
“…!”
정대선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만큼 놀랐다. 사업에 문제가 있다느니 건방진 소리를 지껄였다기에 만나나 보려 했던 건데 밀수 얘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맨슨글로벌이 밀수를 하고 있다는 의심은 자신도 심증만 있을 뿐이었으니까.
“너….”
바짝 마른 입술을 뗐던 정대선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오락기를 뾱뾱거리고 있는 아들 정태수가 보였다.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는, 아마도 아들이 들어서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가봐라.”
“네?”
정태수가 오락기를 끄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아버지가 관심을 가질 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까닭이다.
정대선이 말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나가.”
“….”
정태수는 이휘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정대선은 크리스털 잔에 들어있는 물을 단숨에 삼키고 물었다.
“밀수라고?”
“네.”
이휘는 태연하게 부드러운 질감의 소파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증거도 찾아드릴게요.”
“우리 때는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한 세상을 살았다. 서로 경계가 없었지. 코흘리개가 공장에 팔려가 밤낮으로 일하고 어떤 놈은 웨이터를 하거나 밀수에 손대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 너희 시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납득하기 힘들다.”
“이해합니다.”
이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받아들이셔야 해요. 다른 생각은 마시고 당장에 중요한 것만 보세요. 저는 아무 것도 해명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가고 있어요. 맨슨글로벌이 밀수품을 내리고 떠나면 영원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 사실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정대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리 회사에 불똥이 튀겠지.”
“불똥 튀는 정도가 아니라 빈데 한 마리가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겠죠. 밀수공범으로 구속될 겁니다.”
정대선은 이마를 문질렀다.
“널 잡아다 추궁할 수도 있어. 그게 네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볼 가장 빠른 방법이다.”
“저는 아저씨와 한편인데 왜 족쳐요? 그리고 그사이에 밀수꾼들이 죄다 빠져나가면? 같은 편끼리 쓸 데 없는 내분이나 일으켜서 눈 뜨고 코 베이시려고요?”
일부러 한 편, 같은 편 해가며 애같이 표현했지만 이휘의 의사는 명확했다.
협박?
그딴 거 안 통하니까 잡소리 집어치우고 실리적인 대화만 하자. 이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발칙한 놈 같으니.”
일부러 압력을 행사해봤던 정대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들 말로는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는데, 이런 녀석이 자신 앞에서 이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들어나 보자. 어디 계속해봐라.”
고개를 끄덕인 이휘가 막힘 없이 대답했다.
“맨슨글로벌이 밀수를 했다는 증거를 찾으면 위약금까지 받고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 거예요. 증거를 찾아드릴 테니 사람 좀 붙여주세요. 기왕이면 아드님도 같이.”
“태수는 왜?”
“저도 보험은 들어야죠. 혹시나 위험에 처하거나, 결정적인 순간 아저씨 친구들이 밀수품만 찾고 입 싹 닦으면 어떡해요? 저도 귀한 시간 쪼개서 일하는 건데 증거 찾아드린 보답은 받아야할 것 아닙니까?”
“하하하하!”
정대선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환장하겠다. 그래, 네가 증거를 찾았다 치고. 보답으로 얼마를 주면 되겠냐?”
이쯤 되자 그는 정말로 이휘가 뭔가를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악한 놈이 우연히 맨슨글로벌에서 고용한 밀수꾼들의 말을 엿듣고 와서 어른 흉내를 내며 거래를 텄다고. 그러나 이휘는 다시 한 번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꺼내 놨다.
“놈들이 밀수하려던 품목 중 하나는 제가 갖겠습니다.”
“뭐? 돈이 아니라 밀수품을?”
이러면 밀수품목까지 알았다는 건데. 우연히 주워들은 정보가 아니라 처음부터 알았다는 뜻이 된다.
정대선은 뭘 물어도 이휘가 시치미 뗄 걸 알고 있었기에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품목이 필요하지?”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이것도?”
“네. 아무 것도요.”
“다 비밀인데 널 믿으라고?”
“선택권이 없으시잖아요?”
“….”
“이럴 시간 없습니다.”
이휘는 재촉했다. 상대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것이야말로 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정대선이 고개를 저었다.
“어른 흉내를 내는 건 줄 알았는데 머릿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는 더 든 놈이로구만.”
“그런가요?”
“어차피 입을 열 것 같지도 않고, 너처럼 어린애를 핍박할 만큼 내가 양아치도 아니니 쉽게 얘기하자. 밀수꾼 놈들, 뒤가 없는 새끼들이야. 형이 워낙 세서 수 틀렸다 싶으면 회 치고 젓갈 담근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라도 아들놈이 잘못되면 그놈들 아니라도 나한테 죽을 거야. 그건 네 뒤에 누가 있어도 못 막는다.”
“물론입니다.”
이휘는 어깨를 폈다.
“그럼 거래는 성사된 건가요?”
“그래. 사람 붙여줄 테니 밀수품이 든 컨테이너 위치만 얘기해. 딴 생각하지 말고.”
“네. 그럴게요. 그리고 혹시라도 밀수품 찾고 제 물건까지 노린다면….”
“노린다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지금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제 스스로의 의지지만 문제가 생기면 어른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어요.”
“왜, 경찰에 신고라도 하려고?”
“배신하시게요?”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집에다 이를 겁니다.”
이휘의 맹랑한 대답에 정대선이 피식 웃었다.
“혹시 아버지가 형사시냐?”
“아뇨. 집안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모른 척해주세요.”
이휘는 정대선의 눈이 반짝이는 걸 봤다. 아마 따로 알아보겠지.
그런다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물건’을 손에 넣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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