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33
나는 회귀했다 33
다음 날, 이휘는 여자가 아니라 방준수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방학이었다.
이제 곧 2학년 1학기가 시작된다.
그전에 할 일이 산더미였다.
오늘도 여지없이 여러 기업들을 분석하고 있던 방준수가 이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새롬테크라고 알아?”
“형, 사람을 보면 인사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닐까? 난 감사인사 하러 왔는데.”
러시아 내부사정, 국내 문화산업과 앞으로의 장래성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자료제공은 방준수가. 그걸 검토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것은 이휘다.
결국 방준수의 백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 셈인데, 방준수는 공치사에 관심이 없는 듯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말한 방준수가 책상으로 뛰어가서 자료를 한아름 들고 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휘가 양손에 들린 커피 잔을 내려놓고 자료를 검토했다.
“국내 IT기업이네?”
“맞아.”
“주가가 엄청나게 치솟고 있고.”
“맞아. 다이얼보드를 통해 인터넷 무료 국제전화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주가가 급등 중이야.”
“형 예상은?”
“사업을 확장할 자본금을 조달할 거야. 머지않아 주식을 추가적으로 발행하겠지.”
“유상증자를 말하는 건가?”
“정확해.”
“그건 표면적인 거고. 어때 보여?”
“느낌이 쎄해서 조사해 보려고.”
“문제 있어?”
“아직은 감이야.”
이휘는 서류를 내려놨다.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는 안 들어가.”
“왜? 안론은 예의주시하라고 했잖아? 분식회계로 주가가 오를 대로 오르면 우리가 먹는다고.”
“그건 큰 건이야.”
“내가 봤을 때 새롬테크도 무시 못해.”
“돈 쓸 데가 많아.”
“핑계지?”
방준수가 눈매를 좁히자 이휘가 피식 웃었다.
“새롬테크에 목돈 밀어 넣고 주가가 고점 쳤을 때 우리가 날름 먹으면 개미들은 곤두박질치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안론도 같아. 거긴 주시하라더니 새롬은 왜?”
“그래서 안론 먹을 땐 개미들한테 전부 다 경고장 보낸다고 했잖아. 일시에 전부 다 뺄 수 있게.”
“그때도 물어봤던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해?”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미래에는 가능할 수도 있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새롬은 안 된다는 거야. 아직은 불가능하니까. 말했잖아. 검은 돈, 주인 없는 돈은 우리가 모두 빨아들이겠지만 멀쩡한 개미들 돈으로 배 채우지 않겠다고.”
“신념도 좋긴 한데….”
방준수는 말을 멈췄다. 총만 안 들었지 주식시장은 전쟁터야. 이상주의자처럼 평화롭게 벌려고 들다간 쫄딱 망하고 말 걸? 그렇게 말하려다 이휘가 벌써 1000억대 자산가라는 점을 깨달았다.
아니, 1000억이 아니라 2000억이 넘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1000억 단위로 계산했을 때 얘기다.
강변과 서울시내의 건물들. 그리고 비밀계좌에 남은 현금자산까지.
분산되어 있어서 정확한 금액을 내기도 힘들었다.
“후우, 나도 네 이런 점이 좋아서 일을 돕고 있는 거긴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 된다.”
“나라도 그럴 거야. 당연히 걱정되겠지. 이상주의자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형의 걱정을 완전히 덜어내 주려고.”
“어떻게?”
“난 1주일 후 중국 항주로 가.”
“중국?”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만 잘 되면 우린 정상적인 방법으로 새롬테크의 수백 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거야.”
방준수의 두 눈이 반작였다. 이런 말을 듣고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슬그머니 흥분하는 눈치다.
“누굴 만나는데?”
“마원. 아이템을 가진 사업가인데 한 번 만나볼 필요가 있어.”
“사기 당하고 오는 거 아니야? 뭐, 네 성격에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이휘가 피식 웃었다.
“걱정마. 그걸 피하기 위해 직접 가는 거니까.”
방준수는 아직도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지만 이휘의 확고한 표정에 뭐라 반대하지 못했다. 그 대신 더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떠올렸다.
“아이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것 좀 봐.”
방준수가 의자를 돌리더니 A4용지 한 장을 가져왔다.
자료다.
이휘의 눈에 번쩍 번개가 쳤다.
‘애플, 아마존, 구글….’
몇 번을 봐도 미래를 감지하는 방준수의 직감은 놀랍다. 기업에 대한 자료를 참고했겠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안목을 발휘할 수는 없는 법.
“미국 실리콘밸리에 유망한 기업들이 많아.”
“확신해?”
“직접 탐방해 볼 필요가 있어. 약속 잡아서 관계자들도 만나봐야 하고.”
“경호원이랑 통역 붙여줄게. 가서 한 번 알아봐. 교통비, 식대, 숙박비는 회사에 청구하고.”
“직접 안 가봐도 되겠어?”
아직은 아니다.
지금처럼 IT버블이 아닌 진짜 IT붐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그때까진 구글이든 아마존이든 애플이든 돈이 없다. 만약 자본력이 있었다면 버블에 휘말려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는 2004~6년을 기점으로 투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애플, 아마존, 구글 순으로 하나씩.
어차피 그전까지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주가변동이 미비한 수준이니 단타를 쳐서 자금을 쌓는 편이 낫다.
그래서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부터 노리는 거다. 미국 기업은 돈만 있으면 언제든 치고 들어갈 수 있지만 중국 기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찌감치 알리에 투자해서 큰 돈을 번 일본의 손정학, 손 마시요시와 YOHOO!의 제리 영보다 더 발빠르게 접근해야 한다. 미래에 거대자본을 일으킬 알리를 손에 넣고 미래에는 중국의 멱살을 틀어쥐는 것이다.
그 후 정성그룹의 신사업이 될 문화사업과 연계, 정부의 도움을 받아 중국의 자본을 빨아들인다.
일단 계획은 좋다.
전생에서처럼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개 같은 먼지국.’
2020년 이후를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G2의 자리에서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아무 것도 못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었다.
물론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서 이휘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형은 미국에서, 난 중국에 가서 투자처를 알아보는 거야. 우린 상당한 자본력이 있어. 우리가 지분을 가진 사업체에서도 계속 돈이 들어오고 있고. 시간을 낭비하면 안 돼. 돈이 돈을 벌게 해야지.”
이휘나 방준수나 각자의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확신에 가까운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시간이 돈이다.
같은 생각인지 방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대신 확실히 알아보고 투자하는 거야.”
“뭐든 상의할게.”
“…더 바빠지겠네.”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어.”
숨 쉴 틈도 안 준다.
방준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언젠 물어봤어?”
“하하, 이건 업무 외적인 부탁이야. 할아버지랑 바람 좀 쐬고 와.”
“회장님?”
“응. 형이랑 골프 치고 싶으시다네.”
“나 골프 젬병이야.”
“알아.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
“아니, 근데 왜 나랑 골프를 치고 싶으시대?”
방준수가 이를 갈았지만 이휘는 못 들은 척 말했다.
“같이 라운딩 돌기로 한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실 거야. 우리 펀드에 투자자로 섭외할만한 사람이 있는지 잘 좀 지켜봐.”
“후우, 알겠다. 골프는 고역이야.”
“다음에는 내가 갈게.”
한쪽 눈을 찡긋한 이휘가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김성우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
김성우는 얼마 전 총을 들고 펜트하우스에 찾아왔던 자다. 그 후에는 이휘의 편에 서서 박병조를 처리하는 열쇠가 됐다.
올 게 왔다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던 방준수가 말했다.
“…애초에 누굴 죽이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어.”
“아니, 방아쇠를 당기려 했어.”
“그건 가족들의 목숨이 걸려 있었으니까….”
“왜 감싸지?”
이휘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방준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 네가 죽이면 어떡하나 싶어서.”
방준수는 론스터에서 왔던 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사라진 걸 알고 있었다.
예전 흑인 킬러를 죽이고 뒤처리하던 이휘를 생각해 보면 그들 모두 바다 깊이 가라앉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김성우도 그 꼴이 날까봐 걱정되는 것이다.
이는 이휘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다.
“아무리 난처한 상황이었더라도 범죄행위가 정당화되진 않아. 킬러든 론스터 놈들이든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해야 했어. 나도 그땐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
“이성적으로 판단한 거야. 법으론 단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 난 앞으로도 내 목숨이나 내 사람들을 노리는 자들에 있어선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김성우에게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줘볼 생각이야.”
그냥 죽이긴 아깝다는 뜻이었지만 방준수의 얼굴은 다소 밝아졌다.
“어떤 기회?”
“돈을 주고 부동산을 매입하게 해. 지도 좀.”
그 말에 방준수가 지도를 끌어왔다.
“여기, 여기.”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자 방준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남 쪽 아니야? 송파구와 하남도 걸쳐져있고.”
이곳은 추후 위례신도시가 만들어진다.
“여긴 분당이네?”
“맞아. 분당 판교.”
“여긴 왜 매입하라는 거야?”
앞으로 5년 내, 정부에선 2기 신도시를 발표한다. 그리고 선정된 곳들 중 가장 땅값이 많이 뛰는 곳이 위례신도시, 판교신도시다.
하지만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정보가 있어. 여기가 앞으로 개발될 거라는.”
“나도 모르는 정보를 어디서….”
“아무튼. 문제없지?”
“음… 그래. 문제없다.”
“김성우한테 전해. 목숨 걸고 일하라고.”
방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이휘는 그의 생각처럼 이성적이었다. 살인을 막 저지르는 살인귀도 아니었고 박병조씩이나 되는 인간이 자신과 론스터의 이익을 맡길 정도로 유능한 인재를 내치지도 않았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
그렇게 말한 이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자 TV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위고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의 현 총재인 프랑스인이었다. 한국에 온 이유는 돈을 빌려주기 위해서.
물론 공짜는 아니다. 긴축재정 및 성장목표의 하향조정, 기업 및 금융기관 부식의 처리, 대기업의 체질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를 비롯한 자본시장 개방 등의 조항을 내건다.
완전히 무장해제 된 한국은 이 조건을 모두 수용한다.
한국의 기초 경제 여건이 멕시코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비해 상당히 양호한데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에 이들 나라와 같은 수준의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금리의 급등과 고용불안이 원인이 되어 IMF 구제금융 후 한국은 1만 5천여 개 기업이 도산하고 150여만 명이 실업자가 된다.
하지만 이휘의 손에는 이 상황을 조금 다르게 타계할만한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마침내 서재에 잠들어 있던 태양의 눈물을 꺼낸 그는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주한 프랑스 대사 도미니크 레오는 무역회사 맨슨글로벌 사장 찰리 맨슨을 만나고 있었다.
찰리 맨슨은 30대 후반의 젊은 미국인이었다. 다부진 몸, 금발에 푸른 눈, 뚜렷한 이목구비가 뭇 여성들의 호감을 살만하다.
그는 언제나 여유로웠다.
“물건은 곧 전해드리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도미니크 레오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 있는지 소재는 찾았습니다.”
“그런데 왜 당장 가져오지 않는 겁니까? 비밀리에 내게 가져올 수 있다고 해서 일을 맡긴 겁니다. 이번 일이 잘 처리돼야 내 다음 자리가 내각에 마련된단 말입니다.”
“문제가 있어요.”
도미니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찰리 맨슨이 재빨리 덧붙였다.
“몰래 물건을 가져오라고 해결사를 보냈는데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죽어요?”
도미니크의 표정이 바뀌었다.
찰리 맨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한 실력자였어요. 실수가 있었을 리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물건을 가진 놈을 지키는 파수꾼이 있다는 겁니다.”
“그 물건을 가진 자가, 자기가 가진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러니 파수꾼을 두지 않았을까요?”
“그자가 해결사를 직접 처리한 건 아닙니까?”
“그게… 이게 참. 저도 이상한 부분인데.”
뺨을 긁적거린 찰리 맨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고등학생입니다.”
“뭐요?”
“그러니 파수꾼이 따로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 고등학생이 재벌 3세더군요. 뛰어난 경호원을 고용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게 내가 거친 방법은 쓰지 말라고 했잖소!”
“그럼 어떻게 가져옵니까? 그놈이 가져가라고 순순히 내줄까요? 아니!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보통 사람이 그런 일을 겪으면 물건을 팔아치울 텐데 지금껏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론스터가 철수한 것도 그놈 때문입니다.”
“뭐? 론스터? 미스터 팍?”
“맞아요. 그 인간, 미국 남부 갱들과 친하게 지냈던 잡니다. 같이 있던 놈들은 용병들이고. 아주 악바리에 조심스러운 잔데, 그런 자가 물건 가진 놈에게 당해서 한국을 떴습니다. 아직까지 실종 상태고요.”
“…!”
박병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도미니크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팍이 죽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실력이 대단해요.”
“난 그런 건 관심 없습니다. 물건만 받으면 돼요. 그걸 위해 당신을 고용했고! 당신은 나한테 물건을 건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신중해야 돼요. 저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당신이 고용한 그 해결사가 죽어서?”
“…유감스럽게도요.”
“젠장!”
도미니크가 테이블을 쾅 내려쳤다.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입니까?”
“기한을 다시 받으러 왔습니다. 한 달만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도 찰리 맨슨은 부탁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도미니크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한 달? 그때까진 확신할 수 있소?”
“그놈이 1주일 뒤 중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더군요.”
“그래서?”
“한국에서 처리하긴 어렵지만 중국이라면 다릅니다. 물건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고 처리하겠습니다.”
“처리는 당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난 물건만 받으면 됩니다.”
찰리 맨슨이 씨익 웃었다.
“그러시죠.”
삐리리리리리리, 인터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도미니크가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중요한 얘기 아니면 나중에….”
-보석.
그 한 마디와 함께, 비서가 이러시면 안 된다고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도미니크 레오와 찰리 맨슨의 귀에는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보석.
이 두 글자만 또렷하게 귓속에 파고든 것이다.
잠시 얼이 빠졌던 도미니크가 찰리 맨슨을 일별한 뒤 스피커에 대고 외쳤다.
“잠깐! 그 친구 바꿔주게.”
-예?
“그 친구, 바꿔줘. 자네가 가진 보석이 레드다이아가 맞나?”
-….
잠시 대답이 들려오지 않고.
이내, 상대가 능숙한 영어로 대답했다.
-레드다이아. 태양의 눈물. 프랑스 국보라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