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35
나는 회귀했다 35
양 옆, 앞으로 차량이 붙었다. 양옆에는 승합차고 앞에는 승용차다.
뒤에는 민간 차가 있어 어차피 후진은 안 된다.
승합차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침.
“따라와라!”
영어다.
저 승합차 두 대에는 시커먼 놈들이 한가득 타고 있을 게 빤하다.
옆에서 운전대를 잡은 알렉세이가 비교적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 이제 어쩔까?”
“일부러 기다린 거지?”
이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알렉세이는 시치미를 뚝 뗐다.
“나 사실 운전 잘 못해.”
“그걸 믿으라고?”
“간신히 면허만 땄다.”
“러시아는 신호등도 잘 없다던데….”
그런 곳에서 운전을 하려면 더 고급 스킬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지만 알렉세이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비하면 차도 별로 없지.”
믿거나 말거나다.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알렉세이는 앞차를 따라가고 있었다.
조선시대 아낙네만치 고분고분하다.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저놈들이 총이라도 들고 있으면?”
이휘가 묻자 알렉세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없어.”
“어떻게 확신해?”
“총이 있었으면 우릴 벌집으로 만들거나 머리에 바람구멍을 냈을 거다. 차는 처리하고 총 쏜 놈은 튀었겠지.”
틀린 말은 아니라 입이 안 떨어졌다.
“카르텔이나 마피아들은 그런 식이야. 저놈들이 선량한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알렉세이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그렇다 치고. 몇 명이 타고 있는지 모르는데 괜찮겠어?”
“안 그래도 네 실력이 궁금하던 참이야.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일부러 따라잡힌 게 아니다.”
이건 진짜 같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걱정하는 것보다 알렉세이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속 편할지도.
이휘가 말했다.
“중간에 빠질 수 있으면 빠져.”
“그러지.”
이휘가 눈을 지그시 감고 시트를 젖혔다.
알렉세이가 경악했다.
“뭐해?”
“한숨 자려고. 어제 많이 못자서 피곤해. 도착하면 알려주고.”
“미친….”
이휘는 대답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잠깐이라도 자두는 게 낫다. 컨디션을 최대한 끌어올려둬야 싸울 수 있을 테니. 아직 지난번에 입은 부상이 완치가 된 상태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편이 걱정하면서 손톱 물어뜯는 것보다 훨씬 낫다.
잠깐 졸았다 싶었는데 푹 잔 모양이다. 이휘가 눈을 떴을 땐 차량이 공터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전히 앞 차와 승합차 두 대에 둘러싸인 상황이다. 틀린 점이 있다면 양옆에 있던 승합차는 옆 뒤로 이동해있었다.
치이익.
타이어에 모래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승합차 두 대에서 열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내렸다. 한국인 절반, 외국인 절반이다.
앞에 승용차에서도 둘이 내렸다.
“저들은 우리 전력을 모른다.”
알렉세이가 말했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대비는 한 것 같은데?”
“저놈들이 얼마나 잘 싸울지는 몰라도 나 혼자 상대하긴 힘들 것 같군.”
알렉세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대감에 찬 눈으로 이휘를 바라봤다.
저놈들한테 쫄아서가 아니라 이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비싼 몸인데… 어쩔 수 없지.”
그는 겉옷을 벗더니 손에 둘둘 말았다. 저놈들이 맨손으로 왔을 리 만무하니까.
알렉세이는 그런 준비도 하지 않고 덜컥 문을 열어젖혔다.
퍼억!
문을 발로 걷어차며 나간다. 허벅지가 찍힌 놈이 죽는다고 주저앉았다.
그걸 신호로 알렉세이가 맹수처럼 활개 치기 시작했다.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쇠파이프를 맨손으로 턱 잡더니 다른 손으로 멱살을 잡고 뒤에서 달려드는 칼 든 놈을 향해 냅다 휘두른다.
“커헉!”
두 놈이 충돌하며 쇠파이프 든 놈이 칼에 찔리고 칼 들었던 놈은 쇠파이프 든 놈의 머리에 얼굴이 묵사발 나서 뒤로 쓰러졌다.
“…무식한 새끼.”
이휘가 고개를 저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저 새끼만 잡아!”
우르르 달려든다.
첫 번째로 오는 놈을 향해 잽.
빠악!
고개를 푹 숙인다. 가볍게 멱살을 잡아 복숭아뼈를 냅다 걷어차자 붕 뜨더니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발목이 부러졌으리라.
이휘는 앞으로 움직이면서 옆에서 휘둘러진 칼을 잡았다. 겉옷을 말았던 게 효과를 봐서 손을 다치진 않았다. 다음은 목젖을 향해 수도(手刀)를 꽂았다.
퍼억!
“커헉!”
목을 부여잡은 놈이 숨이 턱 막혀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휘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순식간에 한 명씩 당하는데, 단 한 명도 이휘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알렉세이도 마찬가지.
심지어 둘 다 대비가 안 되어있는 상태다.
‘거기서 그 새낄 볼 줄이야.’
이휘는 맨슨글로벌의 찰리 맨슨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만약 그런 변수가 없었더라면 순식간에 두 사람을 따라잡지 못했으리라.
빠악!
다시 한 명이 쓰러졌다. 이휘는 확 자세를 낮추면서 칼을 피하고는 발목에서 꺼낸 나이프로 칼을 휘두른 놈의 팔을 잡아 힘줄을 끊어버렸다.
쿠드득!
두꺼운 천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먼저. 다음은 피가 튀었다.
“으아아아악!”
놈이 팔을 잡고 주저앉았다.
이휘는 격전 중에 얼굴에 튄 피를 혀로 핥았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이런 모습은 적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좋다. 그것도 그거지만, 이휘의 세포 속에 내재되어 있던 야수성을 일깨우는 효과도 있었다.
“이렇다니까….”
이휘가 중얼거렸다.
그는 전투를 즐긴다.
막고 피하고, 타격하고, 후려치고, 베고, 휘두르고, 끊고, 찌르고…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고꾸라뜨리면서 쾌감을 느낀다.
마치 스파링을 하는 것처럼.
오히려 자거나 가만히 있을 땐 전생에 전우들의 죽음이 떠올라 진저리를 치고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지만 지금 같은 초긴장 상태에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신경세포 하나까지 살아 날뛸 만큼 완벽히 집중하면서 모든 감정과 생각, 세상이 잊혀지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찰스 맨슨은 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이게 무슨….”
러시아 놈은 딱 봐도 특수부대 출신이다. 격투기선수처럼 기술이 깔끔하지 않았다. 반면 효과적이고 살상력이 다분해보인다.
저놈이 파수꾼이다.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이쪽은 머릿수만 열 배가 넘고 모조리 운동을 배운 자들이다.
한국인들은 사채시장의 조직폭력배들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데려왔고 미국인들은 주한민군을 제대하고 한국에 안착해 이일 저일 하고 있는 놈들을 모셔왔다. 분명 개개인의 실력과 위험성에 맞는 거액을 주고 고용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예전에 보냈던 킬러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으리라 여겼다. 박병조가 데려온 용병들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몰라도 그놈들 셋을 해치우는 데에도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게 상식적이니까.
그 자신도 국제용병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기에, 팀장까지 달고 세계 여러 무역회사들을 해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받아왔던 경험이 있기에 무역회사를 차렸으므로 자신의 계산을 믿었다.
한데 알렉세이와 이휘의 실력은 상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서로 등을 맡긴 채 싸우는 둘의 합(合)이 믿을 수 없이 뛰어났다.
“이런 젠장!”
찰리 맨슨은 핸들을 거칠게 내려친 뒤 시동을 걸었다. 코앞에 태양의 눈물이 있는데도 가져가지 못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론스터 박병조처럼 총이라도 구해서 왔어야 하는데. 그놈이 미친놈이라 그런 무리수를 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실은 저번 일로 총을 구할 데도 없다!
“병신 같은 새끼!”
쓸 데 없이 박병조를 탓한 찰리 맨슨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는 운전하는 동시에 핸드폰을 들어서 어딘가로 전화를 들었다.
유창한 중국어가 들리고, 그가 대답했다.
“돈은 얼마든 주지! 보석만 찾아! 뿐만 아니라 놈을 잡아다 족치면 눈 먼 돈을 가질 수 있을 거야! 얼마? 얼마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통화가 지속됐다. 찰리 맨슨이 한 이야기는 이휘가 숨긴 은닉자산이 있을 거라는 것. 그 돈은 너희가 다 먹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대신 확실히 처리해달라는 것 등이었다.
전화를 끊은 찰리 맨슨은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을 트림 한 번에 내뱉은 것처럼 가슴이 후련해졌다.
“하하하하! 중국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나 보자! 살아 돌아온다면 상을 주마! 하하하하!
물론 상을 줄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자신은 상을 주는 게 아니라 강제로 빼앗길 테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
이휘는 먼지투성이였다. 옷을 세탁하는 게 아니라 버려야할 정도로 핏자국과 흙자국이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옷속은 땀범벅이다. 하지만 거친 운동을 한 후처럼 몸이 한 결 가벼웠다.
“으으으으으….”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려왔다.
두 사람을 찾아왔던 놈들은 모조리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던 알렉세이가 이휘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싸우는군.”
“동감이야.”
“그래도 아직까진 나보다 한참 밑이다. 내가 쓰러뜨린 놈들이 3분의 2야.”
3분의 2가 알렉세이에게 쓰러진 건 사실이다.
반면 한참 밑인지는 모르겠다.
이휘 스스로도 자신이 알렉세이와 일 대 일로 붙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꽤 많이 다치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그건 상황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러니 오로지 붙어봐야 안다.
‘싸울 일이 있을까?’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언제 유리 다예프와 틀어질지 모르니, 어쩌면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그전에 알렉세이를 활용하고 그 자신이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
이상한 놈들과 엮여서 도처에 위협이 깔려있다.
아마 검은 돈을 먹으려 하다 보니 그런 거겠지.
심지어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려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차라리 이런 위험이 현재의 이휘가 대처하기엔 편했다.
만약 금감원이나 국세청에서 좌표 찍고 공격한다거나 자본력을 동원한 외압이 들어온다면 그야말로 숨도 못 쉬게 될 테니까.
“이게 끝이 아닐 거야. 알렉세이.”
이휘의 말에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꼭 가야겠나?”
타지는 위험하다.
중국은 더더욱.
“가야돼.”
이휘가 단호하게 말했다.
“피하고 싶지도 않고.”
“네가 죽으면 돈이고 신념이고 다 끝이야. 그건 알고 있겠지?”
“당연히.”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힐 수도 있다. 우리가 론스터 놈들을 묻어버렸던 것처럼.”
“그것도 알고 있어.”
“세상에는 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아. 모든 게 그렇지.”
“알렉세이.”
이휘가 나지막이 불러서 그의 걱정을 억제했다.
“나 어린애 아니야.”
“싸울 땐 동의하지만… 지금 내 눈에는 영락없는 어린애로 보이는군.”
“어린애가 어떻게 론스터를 쫓아내고 수천억을 벌어?”
“난 돈에 대한 건 모른다. 세상이 장난이 아니란 것만 알뿐이야.”
“명심하지.”
이휘는 화제를 돌렸다.
“죽인 놈은?”
“없다.”
“나도. 저놈들도 어디 가서 떠들진 못할 거야. 가자.”
이휘가 먼저 차에 탔다. 고개를 휘휘 저은 알렉세이는 잠시 이휘가 쓰러뜨린 놈들을 쳐다보다가 차에 탔다.
‘모조리 한 두 번 만에 무력화시켰다.’
그게 이휘가 쓰러뜨린 놈들의 공통점이었다. 맨손을 썼든 칼을 썼든 세 번 이상 수를 쓰지 않았다. 각기 다친 곳은 다르지만 일어나서 공격하지 못하게끔 망가뜨려놨다.
이건 자신의 피지컬과 상대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는 거다.
특정 무술이라기보다 감각이다.
무술이란 본래 손짓 발짓에 형(形)을 입히는 것인데, 같은 체격으로 같은 무술을 같은 기간 익혔어도 개인차가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실력을 지니게 된 건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만약이라도 싸우고 싶지 않은 놈이야.’
우리는, 나는 절대지지 않는다는 정신이 특수부대가 강한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전의가 꺾였다면 그건 싸우나마나 한 전투일 수밖에 없었다.
***
집으로 돌아온 이휘는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그리곤 상쾌한 기분으로 방준수와 마주앉았다.
이미 이휘가 들어올 때부터 그의 옷에 묻은 격전의 흔적을 보았던 방준수로선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 일 아니야.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이휘가 태양의 눈물을 얻었을 때부터 미리 계획해두었던 자료를 가져와서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걸 본 방준수가 물었다.
“이게 뭐야?”
“새로운 IMF 협상팀 책임자.”
“IMF 협상팀…? 그걸 왜 우리가 정해?”
방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정부와 아무런 연줄이 없었으니까.
이휘가 말했다.
“그 명단에 있는 사람이 이번 협상을 맡아야만 주도적으로, 애꿎은 국민들이 피 흘리는 일을 최소화시킬 수 있어. 이 나라의 국운이 자기 어깨에 달리면 누구나 노력을 하지만 국운이 먼저인지, 내 가족과 내 이익이 먼저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
“여기 있는 이 사람이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거야?”
“글쎄… 이타적인 사람이라기 보단 능력있는 사람들 중에, 돈보다 명예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알 수밖에 없다.
저 명단에 있는 책임자는 전생에 IMF 협상팀 소속이었다. 책임자도 아니면서 책임자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석연찮게도 협상이 벌어지기 하루 전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을 병석에서 지낸다.
이게 이휘가 알고 있는 미래였다. 하지만 저 사람을 책임자로 올려놓으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새로운 협상팀 명단에 있는 책임자는, 방준수 못지않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닌 공직에 뜻을 둔 사람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돈을 쫓는 게 아니라 이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은 이상주의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전생에 아내였던 여자의… 아버지다.
전생의 이휘에게는 장인어른인 셈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를 방준수에게 쏟아낼 수는 없었다. 이건 이번 생에 이휘가 안고 가야할 비밀이자 갚아 나가야할 빚이었다. 그리고 전생 못지않게 위험에 노출 된 지금 다시 그녀를 힘들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