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37
나는 회귀했다 37
“지금은 총재님과 미래를 함께할 생각이지만 여기서 오판을 하신다면 저는 제 모든 걸 걸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을 겁니다. 레드다이아를 미국에 넘기고 월가와 브로커였던 도미니크 대사, 총재님의 유착관계를 밝혀 달라 의뢰할 거예요. 결정적인 타격은 못 줘도 총리님 명예에 작은 흠집 정도는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2000억을 다 때려 박아서 월가의 주식시장을 영리하게 흔들 겁니다. 제게는 1년 만에 180억을 2000억으로 키울 ‘정보’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흔들다 보면 이전 세대가 총리님과 맺은 관계에 대해 작은 단서라도 뱉어내지 않겠습니까?”
위고 캉드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든 말든 이휘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겉옷을 확 들췄다. 아직 다 낫지 않은 상처를 감고 있는 붕대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번 싸움에서 입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이건 도미니크 대사에게 의뢰를 받은 맨슨글로벌이란 미국계 기업이 저지른 짓입니다. 제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나있는지 안다면 그렇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계시진 못할 텐데요. 저는 지금 굉장히 이성을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위고 캉드쉬 총재도 티는 내지 않지만 열이 받을 대로 받았다. 그러니 이휘의 붕대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맞받아치는 거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 아니다 이건데.
이휘는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얼굴을 바짝 붙였다.
“제가 제 무기를 다 깠을까요? 참고로 제가 얘기한 건 제가 가진 힘의 일부일 뿐입니다. 전쟁을 원한다면 하세요. 제가 무슨 간담으로 프랑스 국보를 쥐고 도미니크 대사를 흔들었는지, 이렇게 총재님 면전에서 윽박지를 수 있는 건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이휘의 눈길을 싸늘했고 위고 캉드쉬 총재의 눈길 속에서는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서로 반응과 상반된 눈빛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얼음과 불꽃의 싸움에 뛰어든 것은 부랴부랴 내려온 호텔 사장이었다.
“대표님!”
컨티넨탈 사장 김주영이 두 사람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 보는 대표가 너무 어려서 내심 놀랐지만, 그에게는 이휘가 고등학생이든 나발이든 그런 건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아니, 왜 미리 연락주시지 않고서….”
슬그머니 상체를 거둔 이휘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바쁘신 분을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요. 하하,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불편하신 게 있으셔도 말씀해주시고요.”
“전혀 없습니다. 제가 사장도 아닌데요.”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립서비스는 했지만 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했는지 책망하는 물음이었다. 아무리 최대주주가 갑이라 해도 그 역시 한 호텔의 경영자로서 체신이 있기에.
이휘는 그 부분에 대해 적당히 타일렀다.
“여기 이쪽 분은 위고 캉드쉬 총재님이십니다.”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사장이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위고 캉드쉬 역시 인사를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사장은 의구심과 서운함이 싹 풀렸다.
위고 캉드쉬 IMF 총재를 두 번째 만나는 셈이지만 이렇게 성의 있는 인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첫 만남이 그저 숙박업소 사장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동등한 경영인으로서 존중 받은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저희 호텔을 찾아주시면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위고 캉드쉬는 여전히 기분이 언짢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일정 동안 편히 지낼 수 있게 배려해줘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일정이 바쁘시겠지만 귀한 시간 내주시면 제가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컨티넨탈의 스카이라운지에 마련된 귀빈석과 특제코스요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 호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그럽시다.”
그 말에 고개를 숙여 보인 호텔 사장은 이휘에게 한 번 더 목례한 뒤 덧붙였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로비에 나가 있겠습니다. 그럼 편히 말씀 나누시길.”
그가 물러갔다.
일련의 모습을 보며 이휘는 흡족했다. 확실히 강영훈 변호사와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경영자들 중에 고르고 골라서 선택한 보람이 있었다.
아마 그는 아주 비싸게 사들인 위고 캉드쉬와의 시간 동안 컨티넨탈 호텔의 프랑스 진출을 논의하려고 들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위고 캉드쉬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졌습니다. 명단을 넘기고 한국 정부에 협상팀 교체를 요청하겠소.”
그게 얼마나 중차대한 결심인지는 몰라도, 한국 협상팀과 자신의 자리가 위협 받을만한 부정은 저지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휘는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프로필을 꺼냈다. 당연히, 전생에서 불구가 된 후에도 혹시나 다시 발생할 경제위기의 대안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장인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이 분을 책임자로 추천하시면 됩니다. 전권이 가면 나머지 협상팀 팀원들은 이 분이 교체하겠죠. 현 재정경제원 국제경제관리관이십니다.”
***
세상에 드러나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IMF 협상 테이블에 큰 불을 지펴놓은 이휘는 그 파장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했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하루 빨리 종식시켜준 금모으기운동 등 범국민적 애국활동은 IMF 협상의 여파로 궁지에 몰린 국민들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IMF의 재협상을 유도한 것은 꼭 아내나 장인이 겪은 불행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회복을 도왔던 불가사의할 수준의 저력. 힘. 국민성. 그러한 것들은 당시에는 최선이었지만 향후 부작용을 가져왔다.
고통을 이겨낸 경제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지만 곳곳에 여러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성장한 탓에 여러 불안요소를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30년 후부터 다시금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국제외교관계의 악화로 IMF 때부터 시작된 외화자본에 의한 의존도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번엔 파도에 휩쓸리지 않아.’
당시 이휘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래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덩치가 불어났다. 아직은 파도를 잡아먹을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착실히 지반을 다지고 있었다.
‘내가 파도를 일으킨다.’
그 어떤 나라가 일으킨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을만한 경제력을 거머쥘 것이다.
나아가 한국을 공격하는 어떤 외세도 응징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리라.
과거에 총칼로 그 승부가 결정됐다면 현대에는 자본이 무기가 된다.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불편하게 몸을 뒤척이던 커다란 덩치의 알렉세이 피메노프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네가 책임자로 앉힌 그 재정경제원 공무원은 어지간히 당황스럽겠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길 책임자로 추천했다는 얘길 들을 테니까 말이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아?”
“촉새가 말했다.”
방준수를 뜻하는 거다.
“…입이 싸네.”
“날 믿는다는 거겠지. 후후.”
알렉세이의 근거 없는 확신에 이휘가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 내 편 아니잖아? 유리 편이지.”
“난 누구의 편도 아니다.”
알렉세이가 말을 이었다.
“조국을 버린 군인이고 네 뒤치다꺼리나 하는 용병이니까. 돈만 주면 너도 죽일 수 있다.”
으름장을 놨지만 이휘는 왠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조국을 버렸다고 하는데, 만약 모라토리엄이 지난 뒤 러시아에 국채를 갚으라고 협박을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당장에 이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스패츠나츠는 그렇게 키워진 집단이니까.
언젠간 적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 심지어 그 시기가 한 발씩 다가오고 있는 기분이었다.
괜히 알렉세이의 우람한 덩치와 근육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이겨.”
뜬금없는 말에 알렉세이가 피식 웃었다.
“헛소리.”
“뭐 하나 묻자.”
“말해.”
“유리가 날 죽이라고 했어. 날 죽일래, 유리를 죽일래?”
눈을 뜨며 이휘를 쳐다보던 알렉세이가 침묵을 지키다가 짧게 대답했다.
“내 의뢰인은 유리다.”
“뭔 말을 이렇게 뜻뜨미지근하게 해? 젠장!”
이휘는 당연히 유리의 말에 따른다는 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알렉세이의 속내는 조금 달랐다.
‘의뢰인은 경우에 따라서 바뀔 수 있지.’
그는 굳이 속내를 표현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
마원은 지지리도 가난했다. 그러나 언제나 꿈은 컸다. 매일 같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자신의 야망에 대해 설파하고 아이템을 늘어놨다.
뭐, 믿는 놈은 열이면 두엇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족했다. 언젠가 자신의 꿈을 펼칠 생각을 하노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막막함마저도 시련이나 성장통쯤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토록 긍정적인 그에게도 인생을 시궁창으로 처박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뭐? 안 해? 이 삐쩍 꼴은 원숭이 새끼가….”
마원은 온몸이 넝마가 된 것 같았다. 입에선 피비린내가 났다. 다행히 이빨이 부러지진 않았다. 뼈나 치아라도 부러지면 꼼짝 없이 요양을 해야 한다. 치료비야 때린 놈들이 주겠지만 요양하면 그동안 돈벌이가 사라진다.
딱 그만큼 빚에 대한 이자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 새끼들을 돕는 일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새끼들과 보내는 1분 1초가 모두 자신의 꿈에 들러붙은 오물처럼 느껴졌다.
“으으으,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난….”
“또 그 사업인가 뭔가 헛소리냐?”
쪼그려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놈이 이죽거리자 뒤에 서있는 덩치 둘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쪼그려 앉은 놈이 마원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치며 말했다.
“네가 잘하는 일을, 해, 이 새끼야. 신세 탈출? 까고 있네! 넌, 바람잡이가, 어울려. 알겠어?”
“토… 통역은!”
마원이 크게 외쳤다.
“바람잡이가 아니다!”
“이 새끼가!”
빠악!
마원의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정신이 아득했다. 주먹이 두어 대 더 날아와서 머리통에 박혔다.
퍽! 퍽!
“으으….”
“어이, 원숭이. 빚이나 갚아. 빚! 돈이 없으면 통역을 해. 한 번에 네 임금의 두, 세 배씩 탕감해주는 데 뭐가 문제야? 재수 없으면 옥살이를 해야겠지만 그 대신 기한이 한참 지났는데도 네 장기를 모조리 끄집어내서 팔거나 하진 않잖아! 네가 계집애였으면 넌 이미 매음굴에 처박혔을 거다. 내 말 알아들어?”
“….”
마원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엄연히 말하면 친척 빚이다. 그 빚을 변제해야할 의무는 없다. 그런데 친척이 죽자 이 새끼들은 자신에게 찾아와서 빚을 받아내려 하는 거다. 가족들에게 가는 것보단 자신이 이 고통을 겪는 편이 낫다.
처음에는 신고도 해봤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가난한 청년. 빚 받으러 온 상대는 홍콩과 중국에 본거지를 두고 세계 전역에 걸쳐 활동하는 삼합회다.
누굴 돕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놈들의 거래현장에 가서 통역을 돕고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은 이놈 말대로 옥살이를 해야 할 터였다. 전과가 생기면 그의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곤경을 벗어날 도리가.
쪼그려 앉아있던 놈이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덩치들과 나갔다.
“으흐흑.”
마원은 흐느꼈다.
항상 긍정적으로 웃으며 살지만, 놈들의 앞에서 통역할 때와 이 순간만큼은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놈들이 나간 문이 콰앙!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니, 고개를 들기 무섭게 시커먼 덩어리가 나갔던 문으로 다시 날아 들어오는 게 보였다.
콰직!
나무 식탁을 부수며 나자빠진 놈이 온몸을 비틀며 괴로운 신음을 뱉었다.
“으으으으… 씨발….”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두 놈은 얼굴이 피 떡이 된 채 한 백인 거구의 양손에 목덜미가 잡혀서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마원을 다그치던 놈은 마원보다 훨씬 더 안 된 얼굴로 눈깔을 부라렸다.
“이 개새끼들아! 니들 누구야? 어디서 왔어?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 순간.
퍼억!
도가니를 차서 놈을 주저앉혀버린 백인이 목덜미를 놓으며 무쇠 같은 발길질로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빠악!
이빨이 후드득 떨어지며 그놈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젠 얼굴이 피 떡이 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안면이 함몰되고 몇 개인지 세기도 힘든 이빨이 빠져버렸다. 그거면 다행이지 눈알을 까뒤집고 피거품을 문 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기절한 거다.
발차기 한 방에.
저 무시무시한 삼합회 똘마니 놈이!
그 순간 마원은 백인 뒤에서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오는 소년을 볼 수 있었다.
“깨끗이 처리하라니까 피 다 튀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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