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38
나는 회귀했다 38
러시아말로 외친다.
한데 외모는 동양인.
그것도 십대로 보이는 소년이다.
“무슨….”
마원이 몸을 일으켰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여우가 한바탕 농락하고 떠나니 무시무시한 백호가 들어왔다. 덩치만 봐도 무서운데 방금 전의 발길질은 일말의 자비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데 의외로 백인은 마원을 제압하거나 반 죽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정신이 붙어있는 삼합회 꼬봉 둘을 질질 끌 듯 옆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다시 입을 연 것은 소년이었다.
“마원?”
“누구….”
“이휘다.”
“…?”
마원은 눈알을 굴렸다.
이휘?
그렇게 말하면 아나?
“혹시 나를 알아?”
“아니?”
“근데 왜 도와주는….”
마원은 말을 멈췄다. 도와준 건 맞는 걸까? 다시금 불안감을 드러내자 합죽이가 된 그를 빤히 쳐다보던 이휘가 입을 열었다.
“역시 영어 잘하네.”
영문과 출신이니 당연하다.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밤에는… 이렇게 끌려 다니며 통역 일을 하고 있고.
이휘가 말했다.
“근데 좀 이상해. 뭐,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건 그렇다 치고… 혼자였으면 어떻게 빚을 갚았던 거지?”
“뭐?”
“창업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
“…?”
마원은 당최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의아한 것은 이휘였다.
마윈이 정확히 얼마를 갖고 창업한지는 모르지만 알리를 창업할 당시 1억도 없었다는 것쯤은 안다.
한데 빚이 산더미라고?
그것도 삼합회에서 얻은 빚이?
‘몰래 긁어모은 돈으로 창업을 하고, 투자금을 받아 일부를 빚 갚았다?’
이게 가장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빚도 갚고 유망한 사업가가 된 마원을 삼합회가 건드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를 못 참고 마원이 물었다.
“넌 누구야?”
“이휘라고 말했잖아. 아, 국적은 한국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날 어떻게 알지?”
궁금한 게 산더미지만 그것부터 물었다.
그러자 이휘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당신 창업 아이템에 관심이 있다.”
“뭐라고? 누가….”
마원이 다시 눈알을 굴렸다. 같이 창업하려던 친구 놈들 중 한 놈이 어디 가서 떠벌린 것 같은데 이건 계약위반이다. 하지만 따져 묻기가 조금 두려웠다. 옆방의 백인 때문이라도.
“아무 것도 묻지 마. 질문은 내가 한다. 창업자금이 얼마나 필요하지?”
“…50만 위안.”
역시 1억이 되지 않는 금액이다.
“우리가 50만 위안을 모으면 시작할 생각이다.”
타고난 장사꾼답다. 후일 뉴스에서 밝힌 그대로다. 마원은 자신이 창업할 자금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 금액을 목표로 창업공신들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50만 위안을 채워주지. 얼마 부족해?”
“뭐? 그게 무슨….”
마원은 믿기지 않았다. 불쑥 나타나 자신을 빚쟁이로부터 구해준 소년이 50만 위안을 채워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소설 속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엇다.
마치 무협지에서의 기연 같은 일이.
그럼 이 소년은 반로환동한 절대고수 같은 건가?
쓸 데 없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져 가던 마원은 정신을 차리고 잔뜩 부은 눈에 쌍커풀을 굵게 그리며 말했다.
“아직 26만 위안이… 부족하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6만 위안. 그리고 삼합회에 진 빚을 탕감해주겠어. 더 이상 저런 놈들이 찾아오지 않도록.”
“비, 빚을…?”
“그래.”
“어떻게? 아니, 대체 왜? 누구기에 나한테 이러는 거냐?”
“그건 알 것 없고. 어떻게 탕감할지도 몰라도 돼.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난 마원, 당신 아이템에 반해서 투자를 하는 거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지?”
물론 창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투자를 받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선뜻 투자를 결정하겠는가?
마원의 빚은- 친척들 빚이지만- 무려 112만 위안이나 된다.
그것도 죽어라 일한 돈 36만 위안을 갚아서 그만큼 남은 거다.
몰래 숨겨둔 창업자금은 같이 창업할 동료에게 돌려놔서 들키지 않은 거고.
어쨌든 원화로 치면 1억이 넘는 빚을 변제해주고 4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주겠다는 건데, 이제 막 창업을 준비하는 마원으로선 믿기지 않는 제안이었다.
자신을 이 지옥에서 꺼내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불쑥 이를 대가로 뭘 요구할지 두려움이 솟았다.
“…내가 뭘해주면 되겠소?”
마원의 말투가 반존대로 바뀌었다.
이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신이 창업할 회사의 지분 35퍼센트를 줘.”
“35퍼센트…?”
“35퍼센트.”
이휘가 굳이 더 요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마원은 창업한 뒤, 그러니까 앞으로 2년 후 일본 굴지의 투자회사 소믹뱅크의 대표이자 재일교포 3세인 손정학으로부터 1800만 달러짜리 투자계약서를 쓴다. 그 대가로 지분의 34.4퍼센트를 양도한다.
그게 바로 알리의 시작이다.
이후 YOHOO!의 제리 영이 손정학의 추천으로 22.6퍼센트의 지분을 사들인다.
그 덕분에 한화로 약 200억 원을 투자한 손정학은 50조를 벌었고, 제리 영은 한참 잘 나갔던 YOHOO!의 경영에서 물러나 마원의 알리(ALI)에 기댈 만큼 어마어마한 차익을 거두었다.
그러니 알리가 도약할 때 필요한 지분은 비워둬야 한다. 이휘가 직접 경영할 게 아니니까.
그 지분을 손정학이 다시 사들이든 제리 영이 사든, 아니면 이휘가 더 많은 투자금을 밀어 넣어서 원래 그들이 차지할 지분까지 삼키든 지금은 욕심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4천만 원에 최대지분. 그것도 소믹뱅크보다 더 큰 지분을 얻다니.’
미래를 아는 게 이렇게 좋다.
심지어 빚 받으러 온 삼합회 놈들에게 돈을 준다 해도 1억 4천이다.
물론 그놈들 억지에 1억이란 돈을 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 윈윈이지.’
그렇게 합리화하면서도 왠지 날로 먹는 것 같은 죄책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선심 쓰듯 물었다.
“아직도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
“아니, 갑자기 이런 호의를 베풀어준다니까….”
마원은 백인 덩치가 들어간 방문을 힐긋 쳐다봤다. 만약 저 무시무시한 백인이 아니었더라면 삼합회 빚을 청산해준다는 말은 못 믿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믿음이 갔다.
“…정말 가능한 거야? 빚을 청산해준다는.”
“물론.”
“후우.”
“계약서는 그 후에 받기로 하지.”
“내, 내가 도망가 버리면?”
“왜, 지분 주기 싫어서? 어차피 빚부터 해결하고 돈 줄 거야. 그때 지분도 받을 거고.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창업자금 마련해준다는데 왜 도망가겠어?”
“하긴….”
듣고 보니 그렇다.
마원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휘는 피식 웃었다.
‘이 양반 이거 완전 맹탕이네.’
천재들이 어느 한쪽에만 지나치게 몰려서 발달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총명해 보이는 눈빛과 달리 이런 쪽은 영 시원찮았다.
물론 너무 당황해서 그런 것도 있으리라.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마원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됐다, 싶었는데 마원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큰절을 올렸다.
“대인(大人)!”
“…!”
이휘가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섰다. 아무리 무서운 적도 이렇게 당황시킨 적은 없다.
“앞으로 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저씨 왜 이래?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나이 따위가 중요할까요? 제게는 은인이십니다!”
고개를 확 쳐드는 마원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기줄기 흐르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정도면, 전생에 즐겨봤던 홍콩- 중국영화의 과장과 신파가 이해가 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인을 상대할 때 명심해야할 점 하나.
통수를 귀신같이 친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도망가면 그때부터 당신은 내 적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마원이 한 차례 어깨를 떨었다. 방금 전 이빨이 옥수수 알갱이마냥 날아간 삼합회 똘마니가 떠오른 것이다.
***
마원을 두고 삼합회 놈들과 나온 알렉세이가 이휘에게 물었다.
“이놈들은 어쩔까?”
말이 삼합회지, 잡일이나 처리하는 똘마니들이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래도 깡다구는 있어서 옥수수가 털렸던 놈은 어기적거리는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가마두지아나….”
“이 새끼 뭐라는 거야?”
알렉세이가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멱살을 확 틀어쥐자 제아무리 깡다구를 발휘하던 똘마니조차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이휘가 말했다.
“당신 못 생겼대.”
“죽일까?”
“살인귀야?”
“…그래서가 아니다. 이런 놈들의 특성을 알지. 윗선에 일러서 우릴 죽이려 들 거다. 한 번 표적이 되면 밤낮으로 한숨도 못 잘 거야.”
이휘는 뺨을 긁적거렸다. 귀찮게 됐다. 그 역시 알렉세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UDU 시절 한국의 조폭, 일본의 야쿠자와 결탁해 범국제적인 마약거래를 벌이고 한국으로 조선족 여성들을 밀입국시켜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되었던 떼놈들을 밀어낸 적이 있다.
하나하나 다 죽이거나 다 잡아넣은 건 아니다. 잔챙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보스만 찾아가 죽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삼합회의 본거지는 홍콩. 중국은 세가 크지 못해.”
“그래도 우리보단 머릿수가 많을 거 아니야?”
“지금 쫀 거지?”
“뭐?”
알렉세이가 눈을 부라렸다.
“누가… 중국 정부는 가만히 있냐 이 말이다!”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오냐오냐 해줬더니…!”
“발끈하지 마. 나 피곤해.”
알렉세이가 힘줄이 불끈불끈 솟은 채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나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큰지 온 몸으로 호소가 된다.
이휘가 은근슬쩍 말꼬리를 돌렸다.
“음, 아직 밤바람이 차네.”
“이 새끼가 왜 갑자기 밤바람 타령이야!”
“확실히 불리한 상황이야.”
이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자 알렉세이는 더 뭐라 하려다 입을 닫아버렸다.
이휘가 말을 이었다.
“여긴 그놈들 홈그라운드니까 암살하려고 들면 골치 아파지겠지.”
홈이냐, 원정이냐.
이런 싸움에선 스포츠 경기 이상으로 중요하다.
일단 중국 법도 모르고 지리도 모른다. 활용할 인맥도 없다. 반대로 삼합회 놈들은 삼박자를 다 갖추고 있다. 이런 적을 상대할 땐 아무리 이쪽이 더 실력자라 해도 결과가 안 좋다.
한 예로 전생에 KCTC란 훈련이 있었다. 2년 내내 같은 산을 뛰어다니며 북한 각개전투를 익힌 대항군 부대와 붙는 모의실전훈련인데, 이 훈련에선 더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들도 족족 다 큰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심지어 UDT조차도.
암암리에 북파공작임무까지 파견되는 HID나 UDU 전투요원들이 나섰다면 어찌됐을지 모르지만 이것만 봐도 원정 경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선물산을 통해서 밀입국을 했을 거다. 대차게 활개 칠 수 있게.
지금은 그것도 힘들다.
그러니 이제 결단을 내려야할 때였다.
전투에서 지휘관의 결단이 늦어지면 아군이 다 죽는 법이다.
우리가 다 죽는 것보단…
‘먼저 공격하는 편이 낫지.’
묵직하게 닫혀있던 이휘의 입이 열렸다.
“…놈들을 건들인 이상 계속 들러붙을 거야. 우리가 먼저 치자. 마원 채권서류만 챙겨서 튀는 거야.”
알렉세이의 눈이 반짝 불이 들어왔다. 이놈은 이런 상황을 언제나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입으론 딴 판인 말을 뱉었다.
“돈으로 무마시킬 수도 있어.”
“아니. 돈 줄 생각도 없고, 받지도 않을 거야. 삼합회 놈들 돈 많거든. 그런데 형제의 복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다는 규칙을 깨버리면 결속력이 흔들려. 한 번 흔들린 결속력을 복구하긴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그땐 별 수 없지.”
“맞아. 규칙을 어길 명분이 생기는 거야.”
이휘가 눈길을 주자 삼합회 놈 셋은 이를 갈고 있었다. 러시아어로 얘기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은 눈치다.
작전이 결정되자 알렉세이가 물었다.
“이놈들은?”
“고문을 하든 뭘 하든 본거지를 알아내. 할 수 있지?”
“물론.”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회 졸개들을 보는 그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