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4
나는 회귀했다 4
정대선은 방금 이휘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뭐하는 놈이지?”
절로 그런 궁금증이 치밀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신의 전직까지 꿰고 온 모양이다. 무역회사 이전에 잠깐 경호업체를 운영하던 시절 PMC(민간군사기업) 용병 출신인 것을 광고해놨으니 그건 관심만 있으면 알아낼 수 있다.
희한한 것은 의심만 갔지 물증이 없었던 맨슨글로벌의 밀수 증거를 찾아주겠다고 나선 점이다.
제깟 고등학생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데 이상하게, 녀석이 풍기던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다.
“뭔가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장의 냄새.
비유하자면 지독한 화약 냄새를 풍기는 놈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정대선은 PMC 시절 함께 일했던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쇼?
“나다.”
-씨벌, 나라고 하면 내가 알아?
“대선물산 정 대표.”
-대선… 정대선?
상대는 당황했지만 그다지 달가운 어조가 아니었다.
-하, 이게 누구야?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경호 접자마자 잠수 타신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전화를 하셨을까?
비아냥대는 소리에도 정대선은 꿋꿋이 말했다.
“일 좀 맡아줘라.”
-일? 무슨 일?
“흥신소 하지?”
-장난하는 거요? 이제 와서 무슨….
“선금 1억. 성공보수 2억.”
-…!
“과거의 전우애에 호소하는 게 아니야. 확실한 놈을 찾고 있는데, 전직 PMC 용병이 차린 흥신소 정도면 맡겨볼만 하다고 판단돼서 의뢰 넣는 거다.”
-무슨 일인데?
상대의 음성이 누그러졌다.
“맨슨글로벌이란 무역회사에서 비밀리에 고용한 밀수꾼들을 잡을 생각이야.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쓸만한 놈들 몇 놈 추려서 보내고, 옵션으로 유성고 1학년 이휘라는 꼬맹이에 대해 좀 알아봐.”
-아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시네.
“총 3억이야.”
-요새 일거리 많수.
“할래, 말래?”
잠시 대답이 없던 상대가 말했다.
-선금 2억에 성공보수 2억. 맨슨글로벌이란 곳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미국계 무역회사 같은데, 그만한 사이즈 갖춘 회사가 저지르는 불법 잡아내는 거면 4억은 받아야지. 안 그렇소?
“애들 몇 붙여주는데 더럽게 비싸게 받네.”
-그럼 딴 데 알아보시던가. 깡패를 고용하시든지.
맨슨글로벌에서 고용한 밀수업 전문가들을 잡는 일이다. 조폭으론 부족했다.
망나니 같은 놈이라도 아들 목숨까지 걸렸다. 뿐만 아니라 맨슨글로벌에 밀수업에 뛰어든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대선물산 전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이다.
“오케이. 쓸만한 놈들로 오늘까지 추려서 보내고. 옵션은 얼마나 걸리지?”
-그것도 오늘 중으로 같이 보내겠수.
정대선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기다리지.”
오후 7시쯤 밀수꾼들을 잡을 해결사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8시 경이 되어서야 자료가 들어왔다.
-왜 고삐리한테 신경 쓰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더이다. 설마 아직도 은퇴 안한 거요? 밀수 얘기도 그렇고, 아니면 선을 넘기라도 한 거요?
자료를 확인한 정대선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후배 놈의 질문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니까.
“젠장.”
일개 고삐리가 왜 그리 당당하나 했더니, 이건 일이 어긋나면 이휘란 꼬맹이를 단죄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선물산이 작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멍청하게 경찰이나 떠올리고 앉았다니. 씨발.”
이휘의 배경이 모니터에 나와 있었다. 동시에 한 가지 불쑥 치미는 의문이 있었다.
‘왜 이런 놈이 목숨 걸고 일을 벌이는 거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 시각, 이휘는 짠내 나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정대선이 사람을 붙여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그가 붙여줄 사람들은 컨테이너를 옮길 일용직일 뿐이다. 그들이 오기 전에 물건을 찾아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런 그를 힐긋거리던 정태수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한 거야?”
“뭐가?”
“우리 아버지한테.”
이휘는 대답하지 않고 앞을 보았다. 인천 연안부두가 한 눈에 보이는 모텔이 있었다.
“들어가자.”
“우리 둘이?”
“겁나?”
“씨발, 내가 누군지 잊었냐?”
정태수는 자신이 이휘보다 위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 새낀 미친놈이 확실하다.
아니면 밀수꾼들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거나.
“안전하게 가자는 거 아니야, 안전하게. 이럴 거면 왜 아부지한테 지원요청 했어?”
“네 아버지한테 사람 빌려달라고 했던 건 다른 데 쓰려고 한 거야. 그리고 밀수꾼 놈들이 방 안에 처박혀 있는 지금 기습하는 게 제일 안전해. 탁 트인 데서 싸우다간 뼈도 못 추린다.”
“왜 일부러 싸워! 증거만 빼돌리면 될 걸….”
“증거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
“뭐? 너 분명 아버지한테….”
“전후가 바뀐 것뿐이다. 공수표부터 쓴 거야.”
“이런 씨발.”
“자꾸 욕하지 말고.”
이휘는 태연했다.
정태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워낙 미친놈이라 덤비기가 꺼려졌다. 그리고 그가 망설이는 찰나의 틈에 이휘가 치고 들어왔다.
“너 인정받고 싶잖아.”
“…뭐?”
“아버지한테. 아니야?”
정태수는 소름이 좍 돋았다. 발가벗겨진 느낌. 그러나 이휘에게는 별 것 아니다. 어린애의 인정욕구쯤이야 어른이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지켜본다면 말이다.
“걱정 마. 증거가 어딨는지 알아서 뱉어내게 만들 테니까. 넌 망만 보면 돼. 그것도 못하겠으면 빠지고, 아니면 따라와.”
그 말만 툭 던져놓은 이휘는 인천세관과 거래하는 세탁소에서 훔친 세관 유니폼을 입고 들어갔다. 모자를 깊게 눌러 써서 얼굴도 가렸다. 뒤만 졸졸 따라다닌 정태수는 이휘가 왜 좀도둑질을 하나 했는데, 지금을 위한 거였다.
꼼짝 없이 세관직원으로 위장한 두 사람을 발견한 창구 직원이 물었다.
“방 드릴까요?”
“인천세관에서 나왔습니다.”
“그래 보이네요.”
직원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휘가 말했다.
“몇 호실이에요?”
“왜요? 그 양놈들이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쓸 데 없는 거 궁금해 마시고 경찰 좀 불러줘요.”
“경찰을?”
“우리랑 얘기가 잘 되면 좋겠는데 어찌 나올지 몰라서.”
나쁜 놈이 경찰을 부를 리가 없다고 여겼는지 그제야 직원이 피식 웃었다.
“그래요. 근데 사고 치면 안 돼요. 302호.”
“사고 칠 일이 뭐 있어요?”
“혹시 몰라서.”
“그래서 경찰 불러달라고 한 겁니다.”
휘가 정태수의 어깨를 툭 치곤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섰다.
정태수는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이휘는 이렇게 태연하다니!
마치 이런 짓거리를 밥 먹듯 해본 놈 같지 않은가?
심지어 전혀 서두르지도 않는다.
“너 도둑놈이냐?”
정태수가 속삭이자 휘가 눈을 부라렸다.
“닥쳐, 좀.”
정태수가 흠칫하며 슬쩍 뒤를 봤다. 다행히 창구 직원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정태수는 층수가 바뀔 때마다 심장소리가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띵.
도착 후 이휘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302호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정태수가 멀리감치 떨어져 있었다. 학교에서 왕 노릇이나 해봤지, 단연코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반응이 없자 이휘가 다시 한 번 두드렸다.
쿵쿵.
“누구야?”
놀랍게도 한국말이 들렸다.
물어본 놈이 겁도 없이 문을 열었다.
“뭐야?”
미간을 찌푸린다.
“인천세관?”
“조사 좀 합시다.”
휘가 한국 남자 뒤에 앉아서 카드를 치고 있는 미국놈 둘을 훑었다.
잠깐 당황하던 남자가 피식 웃었다.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어디서 뭔 얘길 듣고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러 왔나 본데 그만 가쇼. 어려보이는 양반이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남자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이휘가 발을 걸어 막으며 훅 자세를 낮췄다. 순식간에 무릎 아래로 파고든 그가 도가니에 팔을 두른 뒤, 상체로 남자를 들이받았다.
퍼억!
몸이 들린 남자가 붕 뜨면서 뒤로 고꾸라졌다.
“컥!”
“왓?”
“왓 더 퍽…!”
미국놈 둘이 테이블을 뒤집으며 일어났다. 테이블 아래서 예리한 나이프를 빼들고 우락부락한 근육을 번들거렸다. 놀란 것과 달리 이런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다는 뜻.
뒤에 따라온 정태수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쓰러져 있는 남자를 건드렸다.
“씨바, 이 개새끼한테 뭐라고 좀 해봐!”
발악하듯 속삭이며 고개를 드는 순간, 정태수는 이 상황에 웃고 있는 이휘를 볼 수 있었다.
“너…!”
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사실 고삐리 일진들을 상대할 땐 죽이지 않고 살살 다루려다 보니 이래저래 번거롭던 참이다. 급소를 피하려면 피지컬로 붙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놈들이라면 마음 놓고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훈련을 안 받은지 오래라 몸이 찌뿌둥하던 판에 잘 된 일이다.
‘죽진 않겠지?’
아예 작정하지 않는 이상 기술을 마음껏 써도 이 몸뚱이론 피지컬적으로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백인 둘을 살상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마음을 정한 그가 유창한 영어로 지껄였다.
“엔데버(ndeavor)호 선원들 맞지?”
“…!”
미국놈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게이가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이 상당히 당황스러운 거다.
갑자기 나타난 세관 직원이 거의 현지인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데다 간단히 동료를 처치해버렸으니.
심지어 모든 걸 아는 눈치다.
“누구야.”
둘 중 한 놈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런 그를 빤히 보던 이휘가 씨익 웃었다.
“말했잖아, 세관 직원이라고. 여기로 경찰이 오고 있다. 너희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야. 밀수하던 품목을 모조리 빼앗기고 감방에 가거나, 아니면 조용히 넘기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는 것. 어떡할래?”
“미친놈! 우리가 누군지 알고 하는 말이냐?”
“허구헌날 드나드는 곳이다. 널 죽이고 나가면 그만이야.”
이휘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럴 줄 알았어.”
그 순간.
탓!
이휘의 몸이 근육질에 칼 든 백인 둘을 향해 쏘아졌다.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정태수가 뭐라 말릴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백인들 틈에 뛰어든 이휘가 백인 둘을 상대로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