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40
나는 회귀했다 40
“판을 깔아드릴 테니 의뢰인을 처리해주십시오.”
“뭐라고 했소?”
설마 역으로 의뢰할 줄은 몰랐는지 장인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휘는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어차피 제게 하려고 했던 일 아닙니까?”
“그 자는 미국인이 아닌가?”
“그래서요?”
“리스크가 큽니다.”
씁쓸했다.
단지 의뢰대상의 국적이 한국이냐, 미국이냐 만으로 대접이 갈린다.
“어차피 완벽하게 처리하실 것 아닙니까? 아니. 설령 사소한 문제가 생긴다 해도 미국은 그 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겁니다.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범죄를 밥 먹듯 저지른 자예요. 지금도 한국에서 살인교사를 비롯한 여러 혐의를 받고 있고요. 미 정부 입장에서도 골칫거리라 이 말입니다.”
장인성이 턱을 쓸었다. 고민하는 눈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따로 알아보실 시간을 드리죠. 제 말이 사실이라면 진행하는 걸로. 어떻습니까?”
“음….”
장인성이 은근슬쩍 물었다.
“판은 어떻게 깔 셈이오?”
이휘의 입에서 막힘없이 계략이 흘러나왔다.
“저를 잡았다고 하십시오. 비자금은 나오지 않았으니 돈을 받고 보석을 넘기겠다고요. 거래는 은밀한 장소에서… 서로의 신뢰를 위해 찰리 맨슨이 직접 나와야 하고, 거래 후 저를 처리하겠다고 하세요.”
“속을까?”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
“아마도요.”
피해가 있을 수 있음에도 장인성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호텔 카지노 사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가 물었다.
“일을 도왔을 땐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소?”
“제가 말한 게 다입니다.”
“뭐요?”
장인성이 소파에서 등을 뗐다.
“이렇게 배짱을 부릴 입장이 아닐 텐데…?”
“제가 통화한 유리 다예프는 현재 러시아 최고의 수입업자에요. 그와 거래 트는 걸 도와주고 카지노에서 벌이는 사업까지 눈감아드리겠다는 조건입니다. 이 정도면 맨슨글로벌이 제안한 수고비보단 훨씬 나은 제안 같은데요.”
“하! 날강도가 따로 없군…!”
“날강도는 당신이죠. 멀쩡한 제 목숨을 담보로 잡고 러시아와 무역로를 확보한 것 아닙니까?”
“이 사람이… 맨슨글로벌을 처리하는 일은? 그 정도는 공짜로 해달라는 건가?”
“그래서 제 목숨을 노렸던 걸 묵인해드리겠다는 겁니다.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저는 한국에 전화해서 호텔 카지노 지분경쟁에 뛰어들었을 테니까요. 큰돈이 안 되더라도 돈 벌면서 복수도 할 수 있겠죠. 마음 같아선 지금도 한 판 벌이고 싶지만 제게 딸린 식구가 있어서 참는 겁니다.”
“….”
장인성이 이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말은 거칠게 하지만 자신이 맨슨글로벌과의 계약을 깰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다.
이제 부하들에게 할 말이 생겼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절대적이지만 주먹은 상대적이다. 대기업이나 대기업 총수와 달리 조직이나 보스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다.
삼합회는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
지금 가진 권력을 영위하기 위해, 부하들의 충성심을 잃지 않기 위해 기반을 마련하려 한다. 지속적으로 돈을 벌고 베푸는 한 권력과 충성이 유지될 테니까.
맨슨글로벌 대신 이휘와 손잡을 명분을 얻은 그는 이휘의 제안에 매혹된 것을 넘어, 더 큰 욕심을 내기에 이르렀다.
“혹시 말이오.”
“…?”
“나와 일해 볼 생각 없소? 이미 돈은 많은 것 같으니 내가 가진 전권을 드리지.”
“없습니다.”
“어째서요? 우리 안락(安樂)만 해도 5만 명이 넘는 조직원을 가지고 있소. 그들 모두가 당신 지시를 따르게 된다는 뜻이오.”
5만 대군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휘는 그 5만여 대군을 존중할 수 없다.
그저 오합지졸로 보이는 것이다.
그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자가 그들을 이끌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사상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물불 안 가리며 돈을 버는 것은 노예에 불과하죠. 노예가 아무리 재력과 힘을 가져도 노예일 뿐입니다. 신사가 될 수도, 권세가가 될 수도 없어요. 우린 서로 갈 길이 다릅니다.”
무례한 말이었으나 장인성은 흥분하지 않았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아들놈이 당신처럼 똘똘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소. 제 아비가 뭐하고 다니는 줄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일을 돕겠다고 설쳐대니….”
또 자식 이야기. 조폭 가정사까지 궁금하지 않았다. 이휘는 대답하지 않고 본론으로 돌아가 말했다.
“하나 더, 어렵지 않은 부탁을 하나 할까 합니다.”
“부탁이 아니라 협박 같은데. 안 그렇소?”
“….”
“어디 한 번 해보시오.”
“삼합회에 돈을 빌린 마원이라는 채무자가 있을 겁니다.”
“그게 누구요?”
“가족 같은 사람입니다.”
장인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채권을 넘겨주십시오. 찢어버리게요. 엄연히 말해서 그 사람이 직접 돈을 꾼 것도 아닙니다.”
“흐음….”
“이 정도는 압력행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분파에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인데요.”
“금액은?”
“112만 위안입니다.”
“적은 돈이 아니오.”
“참고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인데 제 제안은 딱 한 번입니다.”
“뭐요?”
“자꾸 뭐 빼먹을 게 없나 간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같은 말 다시 할 생각 없으니 지금 대답하세요. 제 제안을 받아들이면 러시아 최고의 수입업자와 거래하며 카지노도 방어할 수 있습니다. 호텔인수도 원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겠죠.”
“하하하하하!”
장인성이 불쑥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속이 좋은 건가? 아니면 괜히 허세를 부리는 걸까?
“이게 개인의 무서운 점이지. 맨슨글로벌이야 대부분 빚 아니면 회사 돈이니 소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만 당신은 화끈하게 휘두를 수 있거든. 돈을 칼처럼 휘두를 수가 있어.”
맞는 말이다.
사유재산이니까.
“…하지만 명심하시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세금 한 푼 안 떼는 돈이다.
과연 칼처럼 휘두를 수 있을까?
하지만 이휘는 더 따지고 들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어린놈한테 꼬박꼬박 존댓말 써가며 한 방 먹어서 기분이 거지같을 텐데 최소한의 자존심은 살려줘야 한다.
“명심하죠.”
이휘의 대답을 들은 장인성은 그의 나이를 짐작도 못하는지 대뜸 물었다.
“술 한 잔 하겠소?”
“아뇨.”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이 지긋지긋한 중국 땅에서 볼일은 끝났다.
“마원의 채권만 찢어버리고 한국으로 뜰 겁니다. 더 이상 이 땅에 있기 싫어요.”
장인성은 다시 한 번 떠들썩하게 웃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이휘의 손을 덥석 잡으며 중국요리마냥 느끼하고 강렬한 시선으로 주절거렸다.
“중국이든 홍콩이든 대만이든. 다음에 올 땐 먼저 연락을 주시오. 이번에야 악연이었다지만 알고 보면 둘러볼 장관(壯觀)도 많고, 맛있는 요리도 널렸으니까. 내 꼭 한 번 대접하리다.”
이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라고 생각하며.
***
장인성은 약속을 지켰다.
바로 다음 날 마원의 채권을 넘겨줬다.
당연한 얘기지만 본진과도 같은 홍콩에서 보스 노릇을 하고 있는 그는 120만 위안의 채무가 있는 항주의 가난한 청년 따윈 알지도, 알 필요성도 못 느꼈다.
중국 분파로서는 제법 큰 채무를 내준 격이지만 상부의 지시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하긴, 그동안 채무자 본인도 아닌 가족에게 도장을 찍게 해서 받아 처먹은 이자만 원금에 준하니 덮는 편이 낫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번 일로 마원에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후견인이 나타났다는 것 정도는 알아챘을 테니까.
중국에서의 일을 처리한 이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역시 한국이 좋다.
공기 맑고, 어디든 멀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고, 언어나 표현도 친근하고.
알렉세이와 펜트하우스로 가서 캐리어를 방에 처박아 두고 한숨 자고 일어났다.
방준수는 아직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
이휘는 우선 맨슨글로벌에 신경을 끊고 그동안 쌓인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먼저 동태파악부터.
<위고 캉드쉬 IMF 총재는 정부에 협상팀 교체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국운이 풍전등화인 이때 유일하게 동아줄을 쥐고 있는 IMF 총재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이휘의 생각대로 협상이 진행됐다. 책임자는 전생에서 장인어른이었던 현 재정경제원 국제경제관리관 하진성. 전생의 장인어른이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협상이 진행되려 하고 있었다.
어느새 뒤에 나타나 이휘가 보고 있는 기사를 흘깃 쳐다본 알렉세이의 동료, 알란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분이 당신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궁금증을 떨치지 못한 거겠죠.”
당연하다.
누군가 압력을 써서 대 IMF 협상이라는 국운이 달린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자신으로 바꿔버렸으니까.
하지만 워낙 비밀리에 밀어준 일이기에 결코 이휘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하리라.
이휘가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마지막 협상에 참가할 생각입니다. 단단히 준비하세요.”
“참가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몰래 들어가야 할 겁니다.”
“가서 뭘 하시려고요?”
“장인… 아니, 현 국제경제관리관에게 보석 전달을 부탁할 겁니다. 협상채결 후 선물로.”
“프랑스 대사가 아니라 위고 캉드쉬 IMF 총재에게 보석을 넘긴다는 겁니까?”
“맞아요.”
“협상이 끝나면 이휘 씨의 재력과 신분이 노출될 겁니다.”
“어차피 회사를 세운 이상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어요. 프랑스는 국보를 찾아준 나에 대해 알아보고, 내게 감사를 전할 겁니다.”
“프랑스 대사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약속을 어긴 거니까.”
“먼저 약속을 어긴 건 그 자죠.”
그러고 보니 중국으로 떠나기 전 대사관을 들렸을 때 습격을 받았다.
습격한 범인들은 맨슨글로벌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주한 프랑스 대사가 정보를 흘린 것을 모를 수가 없다.
“…오히려 저는 약속을 지키는 겁니다. 프랑스의 국보를 프랑스에 돌려주는 거니까.”
“정확히 말하면 위고 캉드쉬죠. 그 양반이 프랑스에 보석을 전달하면서 생색을 내겠군요.”
“맞아요. 도미니크 대사에게 넘기려 하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의 의가 상할 테고요?”
“맞습니다.”
알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신분을 밝히면 휘의 친척들이 위화감을 느낄 겁니다. 작정하고 찾아보면 휘가 정성그룹의 신사업의 최대주주라는 걸 알아챌 테고요. 집안싸움이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역시, 알란은 알렉세이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 괜히 알렉세이가 알란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다. 그 역시 스패츠나츠지만 러시안 셋 중에는 참모 격인 사람이었다.
“어차피 거쳐야할 일입니다. 태양의 눈물을 줘버리면 더 이상 신분을 숨길 이유도 없고요. 그 물건을 노리던 맨슨글로벌도 조만간 기능을 잃을 테니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도 됩니다. 그만한 자본도 쥐게 됐고요.”
2000억.
큰돈이지만, 큰물에서 놀기에는 푼돈이다.
그러나 이휘에게는 2000억 외에도 미래 지식이 있었다. 또한 앞으로 창출될 투자수익도.
정성그룹의 새로운 계열사 시네마 파라다이스, 대선물산과 법무법인 태청, 우리병원과 이제 곧 창업할 알리(ALI)의 지분으로 인한 수익이 들어올 예정이다. 이는 단순히 땅이나 현금을 가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장기적 가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