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46
나는 회귀했다 46
“이….”
정성자동차 이주완 사장은 너무 놀라서 발음이 씹힐 지경이었다.
방금, TV 속에서 대통령이 조카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기자들이 벌떡 일어나며 질문을 퍼부었지만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사과하듯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쓸쓸하게 회장을 빠져나갔다.
쾅!
이주완 사장이 던진 리모컨이 TV 화면을 때리고 튕겨져 나왔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옆에 시립한 비서를 노려봤다.
“이휘, 그놈이 청와대를 드나드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그놈을 영웅으로 만들어버렸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죄송합니다.”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이주완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놈이 날 보면서 얼마나 비웃었을까. 안 그래?”
“사장님….”
“아! 아버지도 같이 비웃으셨겠구만. 창업식 때 두 사람이 무슨 얘길 했는지 이제 알겠어. 아버지는 고작 열여덟 살에 대통령한테 불려다닐 손자 놈의 정체를 혼자 알아보시고 감싼 거야. 그러니 우린 눈 뜬 장님이 된 거고. 아니, 아니지… 당신이 날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죄, 죄송합니다.”
“그런 건 실수를 하기 전에 알았어야지. 당신은 해고야. 퇴직금은 한 푼도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내 밑에서 자네가 저지른 부정이 얼마나 되지? 내 입으로 한때 아꼈던 부하직원의 오점을 이야기해야 하나?”
“아… 아닙니다.”
비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적어도 이주완이 보기엔 그럴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비서에게 모조리 시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비서의 잘못으로 만들었다. 불명예 퇴직? 법리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는 이주완 사장의 비서로서 다른 직원들이 누리지 못하는 혜택을 누려왔으니까.
만족하고, 평생 입 닫고 살아야 한다.
그게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미래였다.
그를 싸늘하게 쳐다본 이주완이 말했다.
“비서실 직원 부르고 자넨 나가봐.”
고개를 숙여 보인 비서가 나갔다.
잠시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주완은 강남대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사무실 창가에 서서 저 멀리를 내려다봤다. 강남오거리 쪽이다. 저쪽이 이휘의 사무실이 있다.
“정성을 통째로 먹으려고?”
그가 이휘에게 묻듯 중얼거렸다.
“…네 뜻대로는 안 된다.”
***
그 시각.
이휘는 정성그룹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대통령이 이휘에 대해 밝히자마자 온갖 언론사에서 연락이 빗발쳤지만 기자회견은 그가 부른 몇 개 언론사를 통해서만 진행됐다.
이휘는 커피까지 대접하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하듯 기자회견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뭐든 물어보세요.”
오히려 이휘가 이렇게 나오자 기자들이 당황했다. 딱 적절한 시기에 특종을 터뜨릴 수 있도록 불러줘서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휘의 태도는 마치 이런 자리에 수백, 수천 번 서본 사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휘에게 이 정도 긴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면 모를까, 총탄이 날아들던 전장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던 강심장이다.
그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기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어마어마한 자본가시라고 알고 있는데요.”
“작은 사모펀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모펀드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과도기를 겪었습니다. 성장한지 얼마 안 됐죠. 그래서 선진화 된 유럽이나 미국의 금융에 비해 지식적으로, 경험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노리고 외화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왔죠. 그중 한 곳이 론스터였습니다. 저는 국내 부실채권을 통째로 털어먹으려는 론스터의 만행을 막기 위해서 사모펀드를 조직하여 대응했습니다.”
“열여덟 살… 맞으시죠?”
“네.”
“하하하.”
다른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내저은 질문자가 말을 이으려는데 다른 기자가 제동을 걸었다.
“혼자 질문 다 하지 마세요.”
성격 급한 인상의 기자다.
이휘가 빙그레 웃으며 중재했다.
“시간 많습니다. 오늘은 일정 비워뒀으니 한 분씩 충분히 여쭤보셔도 돼요.”
기자들의 안색이 동시에 밝아졌다. 성격 급한 기자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곤 수그러들었다.
그를 톡 쏘아본 기자가 원래 하려던 질문을 했다.
“저, 다시 묻겠습니다. 론스터를 쫒아내셨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실채권을 매입하지 않으셨나요?”
“매입했습니다.”
“그럼 결국 론스터에서 이휘 씨… 에게로 바뀌었을 뿐, 국민들의 부실채권을 사들인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셔야 합니다. 그 채권들은 모조리 경매에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이미 소유주가 포기했던 거죠. 그중에는 론스터에 압박을 당한 곳도, 아니면 다른 이유로 파산한 곳도 있을 겁니다. 제가 이렇듯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부실채권으로 돈을 번 것은 사실이지만, 의도적으로 빼앗은 적은 없습니다. 이거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요?”
이때 다른 기자가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 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은 것만으로도 호국이자 애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청와대에서 일주일 뒤에 훈장 수여식을 해주신다더라고요.”
“하하하하.”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웃은 질문자가 미소 띤 채 말을 이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정성그룹 후계자라고 들었습니다.”
이놈 봐라?
이휘가 눈을 반짝였다.
누구보다 호의적으로 보이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웃음 속에 숨겨진 칼날이다.
확실히 기자들이 눈 뜬 사람 코 베어가는 자들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이 기자는 이휘에게 재벌 3세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 것이다.
자칫 ‘소년 영웅’이 ‘부잣집 도련님의 유희’ 정도로 비쳐질 수 있다. 외환위기를 이용해서 유명세나 날려보려는 망나니로 보일 수 있다는 거다.
이렇게 몰릴수록 이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사실 그래서 더 버거웠습니다.”
“예?”
질문한 기자가 토끼 눈을 떴다. 다른 기자들도 이휘에게 집중했다.
뜻밖에 대답을 한 이휘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대답했다.
“지금도 정성그룹에 달린 입이 수천입니다. 계열사 몇 개가 사라질 만큼 큰 타격을 입었는데, 경제회복에 주요한 역할을 할 기업 하나가 더 무너지는 걸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덩치가 너무 커서 제가 안아서 일으킬 수준이 아니었어요. 꼬맹이가 덩치 큰 어른을 부축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들것을 가져온 셈이죠. 그 들것이 되어줄 사업이 이번 ‘시네마천국’입니다. 이 고용난 속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지분만 받고 건물은 통째로 무상임대 해드렸습니다. ‘멀티플렉스’라고 해서 해당 건물에 쇼핑몰과 식당가도 입점시킬 생각입니다. 당장에 수익을 내긴 힘들 수 있지만 현재 고용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
기자들은 이휘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신음과도 같은 탄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순간순간 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 대답이 나왔던 것이다.
마치 인터뷰 같은 기자회견이 지속될 수록 ‘소년영웅’으로서 이휘의 이미지는 점점 더 공고히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다음 날, 이휘의 이름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천사공듀 : 오빠 제 이상형이에요!!!!!!!!!!!!!!! 얼굴과 뇌가 둘 다 섹시해요 ㅠㅠ 다 가진 분
뉴스테러 : 잘 생긴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똑똑함은 인정. 부럽다. 수백억이라니…
인생막장 : 난 열여덟 살에 뭐했지? ㅋㅋ
kindboy : 벌써 저런 멋진 신념을 가지다니!!! 잔혹한 밤을 지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우리 모두 파이팅 합시다. 잘 삽시다. 힘내세요.
lair86 : 미국에서 수십억의 연봉을 받고 있는 나조차 애국심이 들끓는다. 이휘 사모펀드에 투자해야겠다.
꿀꿀남 : 후…. 이 지독한 위기에 한 줄기 빛이네. 힘냅시다. 이휘 학생도 힘내서 지금처럼 우리나라의 구세주로 거듭나주세요.
강진식 : 님 대선에 나와주시면 안 됨?
.
.
.
별의 별 의견들이 다 있었다. 방준수 말로는 이휘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진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이 반반이라고 했다. 지금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다 긍정적인 이견으라 봐도 될 듯했다.
이휘의 진솔한 기자회견이 단번에 분위기를 확정 지은 것이다. 이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회견 내용 자체 때문도 있지만, 열여덟 살 소년의 모습이란 점이 더 컸다.
방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까지 무기로 삼다니….”
“굳이 그런 건 아니야. 어린애가 좋은 일 했다니까 더 좋게 봐주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 그럼 좋은 일 하나 더 발표해야겠네?”
“맞아. ‘IMF 금융위기 탈출기금’ 발표해.”
“알겠어. 근데 진짜… 100억이나 기부할 거야?”
“응.”
그래도 2000억은 고스란히 남는다. 심지어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만들어놨기에 썰물보다 밀물처럼 들어오는 돈이 훨씬 많을 터였다.
이휘가 이어 물었다.
“미국 애들은?”
“비행기표 보냈어. 곧 들어올 거야.”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다음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
“무슨 사업?”
“방위산업.”
“바… 방위산업?”
“응. 요새 한가했잖아? 당분간 형이 단타 쳐서 버는 돈을 쏟아부을 거야. 그리고 러시아 쪽과도….”
그 순간.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알렉세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보기 힘들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휘의 표정도 덩달아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야?”
“유리 다예프가 열 받았다.”
“왜?”
“인내심이 바닥났다는군. 프랑스 쪽과 연결해준다는 약속은 언제 지킬 거냐고.”
이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삼합회 던진 걸론 만족 못 하는 건가?”
“씨알도 안 먹혀. 유리 다예프는 세계 전역을 손에 넣고 싶어한다. 욕심이 끝이 없는 놈이야.”
하긴,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와서 러시아 무기들을 빼돌려서 팔았겠지.
잠깐 전생을 떠올리던 이휘는 고개를 들어 알렉세이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의뢰 하나 받아줄 수 있어?”
“무슨 의뢰?”
“때가 되면 유리를 버린다.”
“…!”
알렉세이는 이휘를 노려봤다.
“진심인가?”
서슬 퍼런 눈빛이 이휘를 잡아먹을 것 같다. 그러나 이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물론 진심이지. 애초에 명예도 모르는 자에게 지킬 약속은 없었어.”
“…널 가만 두지 않을 거다.”
“그래도 기회를 줘보려고 천생연분인 삼합회를 붙여줬는데 만족을 모르는군.”
“쉽지 않을 거다. 유리는 그전에 네가 상대했던 놈들과는 질적으로 달라.”
“어떤 게?”
“지금껏 네가 상대했던 놈들이 모조리 애송이라면 유리는 전사다. 거친 싸움에 익숙한 자야.”
“그런 방식이 필요하다면 응해야겠지. 하지만 그놈도 생각이 있는 이상 함부로 거친 방법을 쓰진 못할 거다. 안 그래?”
“모르겠군.”
알렉세이가 확신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생각할 시간을 줘라.”
“그러지. 당분간 빠져 있어.”
깔끔한 대답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유리가 널 러시아로 초대한다더군.”
“요새 너무 바쁘니 직접 오라고 전해줘.”
“열 받을 거다.”
“그러라고 해.”
이휘는 더 이상 유리 다예프가 필요치 않았다. 이미 러시아 국채는 미국계 사모펀드 롱텀매니지먼트의 손에 있다. 이제 한 달 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그들이 가진 국채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이휘는 그걸 사서 가지고 있다가 먼 훗날 러시아에 당당히 빚을 받아내려는 속셈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도 유리 다예프 같은 변수는 사라져야 한다. 아직까진 정부 눈치를 보는 그가 러시아를 타깃으로 삼는 이휘를 좋게 볼 리 만무했으니까.
침착한 이휘를 빤히 응시하던 알렉세이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방을 나갔다.
뒤에 남겨진 방준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겠어?”
“괜찮아.”
어깨를 으쓱인 이휘가 되물었다.
“김성우한테 매입하라고 시킨 땅은 어떻게 됐어?”
방준수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전부 매입했지. 그런데 그런 농지를 사서 뭐하려고? 강성우도 계속 의문이라고 하던데….”
“매입에 문제는 없었고?”
“어.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매입했어.”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자세한 얘긴 유리 다예프 일 해결하고, 미국에서 오는 손님들한테 얻을 것 얻고, 그다음에 하자. 가능하면 이번에 2000억을 전부 털어버릴 작정이니까.”
방준수에게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2000억은 20년 후 수백, 수천 조가 되어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