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53
나는 회귀했다 53
이휘는 알렉세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컨티넨탈 호텔로 향했다. 가는 도중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가슴이 부풀었다. 역시 척박한 러시아보단 알차고 세련된 대한민국이 그의 취향에 맞았다.
그러면서도 입맛을 다신 것은, 알렉세이의 운전 솜씨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리 다예프를 죽이고 놈의 G바겐을 운전하면서 느꼈던 주행감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조금만 참자.’
이휘는 고개를 저었다. 뒤에선 현 정부와 은밀히 공조하고 있고, 겉으로도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휘가 ‘무면허 운전’ 따위로 붙잡히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컨티넨탈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직원에게 발렛을 맡긴 알렉세이와 이휘는 호텔 VIP라운지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미리 이휘에게 연락을 주었던 방준수와, 전생에선 TV 속에서나 보던 인물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특히 방준수 맞은편에 앉은 미국인들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젊은 모습이었다. 이휘는 위인들의 젊은 날을 직접 보는 느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를 발견한 방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방준수가 굳은 표정으로 아는 체를 했다. 표정만 봐도 상황이 그리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휘의 얼굴을 본 미국인들의 표정에 의문이 스쳤다.
‘뭐야?’
‘설마 쟤가 CEO?’
뭐, 이런 표정들이다.
속이 훤히 다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은 이휘가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태연하게 인사했다.
“파트리아 펀드의 이휘입니다.”
“세르게이 브린입니다.”
“래리 페이지입니다.”
세르게이 브린, 레리 페이지. 둘이서 함께 공동창업한 회사가 구글이다.
그리고 현재 구글은 생긴지 1년이 채 안 된 신생 벤처회사였다.
이휘가 빙그레 웃었다.
“반갑습니다.”
그는 다음 사람과도 악수를 나눴다.
“리드 헤이스팅스입니다.”
“마크 랜돌프입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미국의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기업.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대표 기업 중 한 곳이다. 심지어 2020년 즈음에는 전세계를 휩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서 30퍼센트의 가공할 점유율을 기록한 회사의 공동창업자가 이들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구글과 마찬가지로 창업한지 1년도 안 된 현재로선 스트리밍은커녕 겨우 시작단계의 영세한 저가형 비디오 대여 사업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구글과 넷플릭스.
향후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강자가 될 두 곳의 창업자들을 부른 것이다.
방준수가 건넨 리스트에는 애플, 아마존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당장 이휘가 인수할 수 있는 규모의 회사가 아니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이휘가 입을 열었다.
“먼저 우리의 인수의사를 들으셨을 텐데,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가 말했다.
“투자면 모를까, 인수제안은 받아들이기 곤란합니다.”
다음 순서가 된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가 말했다.
“우리는 30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가 3000만 달러라니!
미래를 생각해 보면 거저다.
하지만 2000년, 넷플릭스는 당시 비디오 대여사업의 강자였던 블랙버스터를 찾아가 5000만 달러(한화 약 580억)에 인수해달라고 청하지만 완전히 무시당하며 거절 당한다. 그 후 2010년 즈음 블랙버스터는 파산하고 넷플릭스는 상승가도를 달려 10년만에 시가총액 1460억 달러의 공룡기업으로 자라난다.
그걸 알면서도 이휘는 깍지를 끼며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넷플릭스건 구글이건 이들이 투자한 돈에 비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다 주는 것은 적어도 10년 이상을 요하는 일이다. 이휘 입장에선 그 시간 동안 돈을 불릴 기회를 투자하는 셈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들이었지만, 이휘는 단기적으로 투자할 자금까지 모조리 쏟아부어서 인수할 생각은 없었다.
“지분 51퍼센트와 경영권을 위임받는 대가로 저희가 생각하는 투자금은 양측에 2000만 달러입니다.”
한화로 치면 약 250억씩, 두 곳 합쳐서 500억만 써서 구글과 넷플릭스를 인수하겠다는 뜻이다.
미래의 구글과 넷플릭스의 창업자들이었다면 기가 차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에서 막 시작한 스타트업 회사의 창업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그래도,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이 말했다.
“구글은 그 이상의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곧 투자자들이 몰려들 테고요. 5.1퍼센트면 모를까 51퍼센트의 지분과 경영권을 1000만 달러에 넘기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 둘까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1000만 달러라는 금액에 흔들린 자신들을 탓하는 눈치다.
네 사람을 보던 이휘가 슬쩍 웃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짧으면 10년, 길면 20년 이후에는 구글과 넥플릭스가 각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거라고 확신하니까요.”
일단 띄워주고.
“그런데 1000만 달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앞뒤가 안 맞는군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런 식의 제안은 우릴 조롱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시간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적정선의 지분과 권한을 요구하셔야 합니다.”
각기 구글과 넷플릭스에서 한 명씩 말했다.
그들의 의견을 전부 수렴한 이휘가 입을 열었다.
“아니죠. 비전은 실체가 아닙니다. 실체는 현재 구글과 넷플릭스의 이용자 수와 매출이에요. 저는 구글과 넷플릭스의 실체에 1000만 불을 투자한 겁니다. 비전에 대한 투자는 돈이 아닌, 비전으로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사람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방준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휘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못 살겠다는 눈치다.
이휘가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미국 내부에서 그치지 않도록. 아시아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아시아의…?”
“맞아요. 여러분의 비전을 훨씬 더 빨리 이룰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사모펀드 한 곳이 그만한 힘을 가졌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린 모든 걸 갖추고 있습니다.”
이휘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을 열거해보자면 정성그룹의 새로운 계열사 정성미디어의 ‘시네마 천국’….”
이휘가 눈짓하자 방준수가 자료를 배포했다. ‘멀티플렉스’ 사업의 기획안을 본 네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그들의 진로가 바뀌진 않을 터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잘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을 가졌으며, 그 누구보다 앞설 수 있는 선구자로서의 특별함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테니까.
오히려 멀티플렉스라는 이 놀라운 사업과 자신들의 사업이 어떤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 이휘가 머리 굴러가는 속도를 좀 더 가속화시켜주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린 폭스사나 위너브라더스처럼 각종 미디어 사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미 아시아에서 그만한 기반을 다졌고요.”
이번엔 이휘가 눈짓하기도 전에 방준수가 추가 자료를 보여주었다. 중국의 마원이 개발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ALI)에 대한 내용이었다.
“와우.”
“제프 베조스가 생각나는데?”
아마존에 대한 정보가 있는 모양이다.
이러면 대화가 빠르지.
이휘가 말을 이었다.
“우린 아마존, 애플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너지에요. 여러분들의 공통점은 사업의 수단이 IT라는 것입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자상거래 시스템과 우리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분야입니다.”
확실히 구글은 그렇다. 아직까진…
이휘가 수긍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얘기하는 것은 어떤 사업에도 반드시 필요한 마케팅 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알리(ALI)를 통해 구글과 넷플릭스의 비전을 중국에 알릴 겁니다. 우리 협력업체 중 대선물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든 가는 무역회사죠. 가장 큰 거래처는 러시아 정부입니다.”
“대선물산…?”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는 정성그룹이 있습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이 세 곳만 잡아도 아시아 시장 전체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에요.”
“알리(ALI)는 아직 작은 회사가 아닙니까? 미스터 리가 얘기한 다른 회사들도 미디어 분야에서 어떤 실적을 내지 못했고요.”
“그래서 비전은 비전으로 사겠다는 겁니다. 여기 이 기획안들을 봤을 때 그려지는 미래가 부정적인가요?”
“….”
모두가 말을 못했다.
미래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그런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건 이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시아 회사들에 비해 미국은 실리콘밸리 스타트 회사에 대한 투자가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 부르는 거고.
이휘는 그 부분을 마저 메우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경영권을 갖고서 필요한 때 영향력을 행세하겠지만 회사 경영에 있어선 전권을 드릴 생각입니다.”
“정말입니까?”
“진심입니다. 뿐만아니라 투자자들을 선정하고 남은 지분을 처분할 권한도 드리죠. 승인은 있어야겠지만 회사에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결정이라는 전제하에 전부 승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넷플릭스 두 사람이 반응했다. 원래 회사를 팔아치울 생각이 있었으니 눈에 반짝하고 불빛이 들어온 것이다. 흥미가 생겼따면 단숨에 몰아쳐 해치워야한다. 넷플릭스가 넘어오면, 구글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더 있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며 실적에 따라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진행비가 필요하면 언제든 청구할 구석이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외부의 투자를 받을 때에도 항상 을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을 겁니다.”
“지속적인 투자라고 하셨는데, 마르지 않는 샘이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미스터 리의 자금이 마르지 않을 때 가능한 이야기 아닙니까? 일반 기업과 금융사가 다른 점은 금융사는 결국 남의 돈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유형의 물건이든 서비스든 뭔가를 판매하는 일반 기업보다 훨씬 더 불안한 구조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버크셔 헤서웨이가 불안하던가요?”
버크셔 헤서웨이.
워렌 버핏의 회사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가를 가진 회사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잠깐 말을 잃은 이들을 보며 이휘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우리 회사의 투자 수익률을 보시면 그런 말씀은 못하실 겁니다. 더불어, 여러분이 좋은 성과를 내면 저 또한 돈을 법니다. 그렇게 얻은 성과금을 또 여러분께 투자할 겁니다. 아무 대가 없이요. 그렇게 우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돈으로 우리의 자산은 점점 더 커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