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54
나는 회귀했다 54
투자, 재투자를 하겠다는 이휘의 말에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경영에도 간섭하지 않겠단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가 물었다.
“서면상에도 이 같은 조건을 기입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뿐만아니라 구글에는 국내 IT 기업과 협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넷플릭스는요?”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의 질문에 이휘가 빙그레 웃었다.
“물론 넷플릭스에게도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우리와 거래하게 될 국내 제작사, 방송사와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해드리죠.”
“이것 참.”
넷플릭스 마크 랜돌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그때 그가 덧붙였다.
“우리에게 한국으로 진출할 기회를 마련해서 이휘 씨가 투자한 한국 기업들이 부가적인 수입을 얻게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계획대로만 된다면 한국시장이 더 크게 확장되겠죠.”
“그렇습니다. 부가적인 수익이지만요.”
“우리가 더 큰 수익을 낸다 해도 결국 양쪽 수익 모두 이휘 씨 주머니로 들어갈 겁니다.”
“그것도 맞고요.”
이휘는 부정하지 않고 미소 지었다. 지금 이 시점에 자신과 같은 제안을 할 수 있는 투자자는 없다.
더 큰 금액의 투자자?
고작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그들의 회사가 가진 비전과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천재적인 수완이 있는 방준수조차 생각지 못한 시도였다. 훨씬 더 적은 자본으로 두 회사를 끌어들일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두 회사가 커나갈수록 지속적인 투자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것도 놀라운데 한 가지 더.
아직 국내 IT 기업, 방송사, 제작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 상태의 파트리아 펀드가 먼저 계약한 구글과 넷플릭스를 이용해 보다 수월하게 국내 기업들의 지분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다고?’
방준수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궁금증이 있었다.
‘…국내 IT기업은 아직 불안정한 상태다. 공중파 방송국이라면 모를까 이렇다 할 제작사나 방송사도 거의 전무한 상태고. 어디가 뜰 줄 알고 이런 배팅을 하는 거지? 하물며 국내 기업들은 대기업조차도 등락률이 커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데.’
물론 그에 대한 해답은 이휘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방준수도, 다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휘는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에는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에 심드렁하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욕망.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야망.
그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의 가슴 속을 온통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여긴 이휘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결정하란 말씀이십니까?”
래리 페이지가 물은 뒤 곤란한 표정으로 넷플릭스 창업자 둘을 힐끔거렸다.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우리의 모든 게 걸린 사업의 미래를 결정할입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시간은 얼마든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휘가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의 조건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유동적이죠. 우리 회사가 더 좋은 투자처를 찾는다면 조건은 달라질 겁니다. 지금은 구글과 넷플릭스 두 곳에 전력투구해볼 생각이지만 실리콘밸리에 두 곳 같은 규모의 회사들은 쌔고 쌨으니까요. 차라리 더 적은 금액과 열정을 들여서 여러 곳과 손쉬운 협상을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더 적은 금액으로 분산투자를 해서 리스크를 줄이는 거죠.”
“우리의 비전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준의 이야길 들은 바, 실리콘밸리를 다 뒤지다시피 해서 우릴 선택했다고 하던데요.”
“아직까지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몇몇 선택지가 더 있습니다. 제가 카드 한 장으로 게임을 시작했을까요?”
이휘가 대뜸 방준수를 쳐다봤다.
“이후 일정은?”
눈치 빠른 방준수가 대답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애플의 스티븐 잡스와 접촉해볼 생각입니다. 두 회사는 워낙 유망한 곳이라 큰 금액을 던져도 손해 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요. 오히려 적은 리스크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현명한 투자를 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기업에 자금을 밀어 넣고 오래 굴리는 편이 낫습니다.”
“실리콘밸리 외에도 가능성 있는 회사들이 있을 거야. 전면 재검토해봅시다.”
“예, 대표님.”
방준수는 척하면 척이었다. 손뼉도 마주치면 소리가 나는 법. 입술을 깨문 래리 페이지가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그리고 넷플릭스의 창업자 둘을 훑어본 뒤 입을 떼려는 순간 세르게이 브린이 끼어들었다.
“더 끌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군요. 칼자루를 쥔 건 자금력과 장악력을 가진 당신이니까요.”
“그 말씀은…?”
“우리 구글은 귀하의 투자계획에 협조하겠습니다. 여기 이 친구만 승낙한다면요.”
시선을 받은 래리 페이지는 깊은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금이야 얼마든 확보할 수 있겠지만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안 그래도 한국 IT 기업들의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참입니다.”
“그래요?”
이휘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는 자신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이들이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관심이 전혀 없을 거라고 여겼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역시 창조란 관심사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넓은 시야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판단력과 행동력.
결정적으로 이 넷은 결심이 섰을 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행동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넷플릭스 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투자자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니 구글과 한 배를 탄 느낌이네요.”
이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아닙니다. 미래에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생길지 몰라도 현재 두 회사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죠. 저는 경쟁을 하지 말라거나 서로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라는 둥 쓸데없는 개입은 하지 않을 겁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래리 페이지가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보기에 넷플릭스는 일개 비디오 배달원일 뿐이었다. 넷플릭스가 은근슬쩍 올리려는 숟가락을 쳐낸 그가 질문을 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그렇다면 경영권은 어떤 경우에 발휘하실 건지에 대한 점입니다. 경영도 지금 그대로 맡기신다면 투자가 아닌 인수를 결정할 이유가 있나요?”
“계약서에 자세히 명시하겠지만 제가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두 회사가 초기에 정해둔 방향 외에 다른 방향으로 엇나갈 때. 그리고 그게 곧 저희 회사의 손해로 이어질 게 우려됐을 때 개입할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껍데기뿐인 경영권을 확보하시려는 이유는요? 더구나 끊임없이 재투자를 하면 우리 회사가 커져도 자산이 늘어날 뿐 실물자산은 구경하지 못할 텐데요.”
“대출은 많이 나오겠죠.”
그 말에 네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휘는 웃지 않았다.
“그건 곧 사회의 신임지수를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신용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거죠. 마찬가집니다. 난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IT와 미디어를 통해 세계에 영향력을 가지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힘’이죠.”
“…!”
“…!”
자리의 모두가 크게 놀랐다.
그나마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세르게이 브린이었다. 그는 잘생긴 얼굴을 덮고 있는 꺼칠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금 이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투자자를 잘 만난 것 같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휘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묻자 그가 대답했다.
“우리를 좌지우지할만한 자본을 갖고서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를 정확히 공략했으니까요. 아마 돈으로 구글을 사려 했다면 천문학적인 액수를 불렀을 겁니다. 하지만 가치를 셈할 수 없는 가능성을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IT와 미디어로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휘가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비슷해요. 여러분이 지금 미미한 시작을 하면서 창대한 꿈을 꾸는 것처럼 저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꿈을 이루면 저도 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우린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겁니다. 심장이 돼서 피를 짜내는 건 제가 하죠.”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끊임 없이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들은 세르게이 브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걸 놓치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면, 당신은 우리에게 뭘 줄 겁니까? 계약서에 싸인하는 것과 별개로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저는….”
이휘가 눈을 번뜩였다.
“업계를 독점하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해드리죠.”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
무수한 기회가 있는 기회의 땅인 반면에, 그렇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신생기업들이 나타나고 대기업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 특정 기업의 독점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이 독점할 경우 미 정부에선 해당 기업을 강제로 쪼개버린다.
그렇기에 미국은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 도산해도 나라 전체가 흔들리지 않으며, 매년 셀 수 없는 기업들이 등장해 세계전역의 자본을 빨아들인다.
오죽하면 화폐가치가 너무 올라서 무역 자체가 힘들어질 만큼 까봐 돈을 찍어내 달러 가치를 억누르는 양적완화를 하겠는가?
정말 무서운 나라다.
이휘는 지금 그런 나라를 휘두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국을 휘두르지 않는 이상 특정 기업이 영원히 특정 업계의 독점권을 소유하진 못할 테니까.
그러나 기업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더 가슴 뛰는 일이기도 했다.
“얘기라도 듣기 좋습니다. 야심은 잘 알았습니다. 악마적인 면모를 본 것 같군요.”
“악마요?”
“모두가 독점을 경계하죠. 성공한다 해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보단 지탄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장을 뒤에서 움직이며 다른 경쟁사들을 탄압하는 악마라고요.”
과연 세르게이 브린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구를 가진 것처럼 굴고 있었다.
피식 웃은 이휘가 말했다.
“흥미로운 말씀이시네요. 꿈을 크게 가진 것뿐입니다. 그리고 설령 정말 그런 날이 와서 제가 지탄의 대상이 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자본주의의 본질?”
“한정된 화폐 안에서 결국은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
전 세계 모든 나라에 국채가 있다. 돈을 찍어내는 만큼 인플레이션(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생겨나고 국채는 여전히 늘어난다.
결국 시중의 화폐가 아무리 늘어도 시장에 도는 돈의 가치는 한정적이란 뜻이다.
그 해결책으로 에덤 스미스는 ‘시장경제를 가만히 둬야 한다’. 그러면 알아서 굴러갈 거라고 했으나 인간의 욕망은 결국 더 많은 걸 가지려 하고, 지금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 틈을 이용해 권력과 자본, 정보력을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아래에 깔린 사람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판단력, 행동력으로 신세를 바꾸거나 그렇지 않은 이상 낙수효과가 이루어지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이휘가 방준수와 많은 대화를 하며 알아서 느끼고 해석한 바였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든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듯 자본주의라는, 현존하는 가장 결함이 적은 경제체제 대신 다른 마땅히 대안을 생각해낼 능력도 필요도 없으니까.
그저 이휘는 이 거대한 흐름 안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헤엄치려는 것뿐이다.
이 자리에 이러한 이휘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낸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방준수가 배부하는 계약서를 앞에 두고 저마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