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57
나는 회귀했다 57
이휘는 오랜만에 체육관을 찾았다. 전생의 아내, 하수연에 대한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몸을 움직이면 머리가 가벼워지는 법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영락없이 체육관관장으로 돌아온 남자가 밀대질을 하고 있었다. 190센티 110킬로가 넘는 거구가 이휘를 흘깃 쳐다봤다.
“아직 부상도 다 회복하지 못했을 텐데.”
“운동할 정도는 됩니다.”
“가볍게 몸이나 풀자고 이 시간에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눈치가 빠르다. 그는 이번 구출작전에 참여한 용병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인질들을 잡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 조직원 놈들 셋을 해치우는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한편, 그 역시 이휘의 실력이 궁금하던 참이다. 이휘는 혼자 유리 다예프를 찾아갔다. 절대 성공할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버젓이 살아 돌아왔다. 그 전까지 보던 이휘의 모습에 비추어 생각해 보건대, 그가 돌아왔다는 것은 유리 다예프가 죽었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정대선도 앞으로 유리 다예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했고.
‘…대체 어떻게 그런 조건에서 작전을 성공시킨 거지?’
씰(Seal) 한 개 팀이 나섰어도 성공할까 말까한 작전이었다.
그런 고난도 작전을 성공시켰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전술가로서의 재능과 전투원으로서의 재능, 기막힌 상황판단능력이 있다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조력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밖에 말이 되지 않는다.
가만히 이휘를 응시하던 그가 대뜸 물었다.
“네가 직접 유리 다예프를 죽인 건가?”
“예.”
“방법은?”
“근접전이 발생했습니다.”
“작전에 오류가 생겼군.”
“맞아요. 불가피한 일이었죠. 생각보다 더 치밀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았다?”
체육관관장은 믿기 힘들었다. 이휘의 육체적인 능력이나 무술실력이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유리 다예프는 차원이 다른 자다.
정대선이 모든 핫라인을 통해 알아본 바로 유리 다예프는 스패츠나츠를 불명예제대하고 러시아 마피아 중에서 가장 큰 조직의 행동대장을 하다가 수입업자가 된 자였다. 스패츠나츠에서의 성적은 수위권. 심지어 마피아 요직에서 물러나면서 멀쩡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자는 손에 꼽는다.
번뜩이는 눈을 마주보던 이휘가 피식 웃었다.
“궁금하시면 직접 확인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도 대련하러 온 거니까.”
“바라던 바야.”
체육관관장이 밀대를 기대놓고 글러브를 던져주었다. 이휘가 겉옷을 벗고 글러브를 착용했다. 체육관관장 역시 글러브를 착용하고 올라가서 그를 불렀다.
두 사람이 마주서자 체육관관장이 말했다.
“핸디캡을 주지. 보호대 차.”
배, 팔, 다리 따위를 보호하는 장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휘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움직이는 데 불편해서요.”
체육관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난 부대에 있을 때 근접전만은 최고였어. 대장도 나한테 안 돼.”
대장은 정대선을 말하는 거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휘는 개의치 않았다.
“지면 지는 거고요.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데요.”
객기인가, 아니면 자신감인가? 체육관관장은 이휘를 응시했으나 속을 읽을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은 그가 말했다.
“후회하지 마. 부상 때문에 힘들 것 같으면 바로 말하고.”
“그러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체육관관장이 자세를 잡았다. 자세만 잡았을 뿐인데도 숨 막히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190센티의 거구는 확실히 그 존재만으로도 링을 꽉 채우는 느낌이다. 심지어 근접전에 자신 있다는 말이 공연한 허풍은 아니었는지 자세에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휘는 망설이지 않고 가볍게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들이친 이휘가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주먹을 막은 관장의 손이 뒤로 밀려났다. 저릿저릿했다. 의외의 파괴력에 눈을 크게 뜬 관장이 응수하려는 찰나, 이휘의 로우킥이 다리를 때렸다.
빠악!
이번에도 관장이 휘청거렸다. 자세를 유지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제대로 방어하기도 전에 한 방, 한 방이 날아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쉬익.
바람소리.
관장이 크게 놀라서 백스탭을 밟는 순간 길게 뻗은 이휘의 주먹이 버드나무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퍼억!
“컥!”
체육관관장이 후다닥 뒷걸음질 쳤다. 하복부를 불로 지진 듯 뜨거웠다. 뿐만 아니라 내정이 죄다 뒤엉킨 느낌이다.
그가 그러든 말든 이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볍게 팔다리를 풀고 있었다.
“어떻게….”
체육관관장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말을 멈췄다. 이미 대련이 시작된 상황에서 무의미한 질문이다. 그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뺨을 후려쳤다.
퍽!
정신이 번쩍 든다.
“후우, 제대로 간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체육관관장이 튀어나갔다. 그는 온 힘을 실은 하이킥을 꽂았다.
퍼억!
이휘가 반대 손으로 막았다. 황당한 것은 그가 슬쩍 뒤로 물러나서 발목을 정확히 잡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얇은 발목은 다리에 힘을 줘도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니?”
체육관관장이 화들짝 놀라며 나머지 디딤발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 아래로 이휘의 로우킥이 지나가자 가슴이 철렁했다. 이어서 체육관관장이 디딤발로 내민 드롭킥 흡사한 킥이 이휘의 손바닥을 때렸다.
퍽!
이휘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났으나 관장의 발차기 공격이 모두 막힌 것이다. 심지어 체육관관장은 쿵, 소리와 함께 체육관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휘는 여전히 단단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슈욱!
이휘가 순식간에 자세를 낮추며 일어나려는 관장의 양 어깨를 밀치며 들어갔다. 그러더니 뱀처럼 그의 몸통을 휘감아서 옥죄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몸통 뿐 아니라 목에 두 팔으 휘감은 채 조르고 있었다.
“어윽…!”
체육관관장은 버둥거리다 탭을 치고 말았다. 목이 졸리자 전신에 힘이 좌악 빠진 것이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들어온 그라운드 기술에 승기를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다소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체육관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직도 뻐근한 목과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벌겋게 자국이 남은 것이, 이휘가 전력을 다했다면 뼈가 성치 못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힘과 속도 모두 날 한참 넘었다니.”
이휘는 빙그레 웃으며 그를 부축해주었다.
“저는 젊잖아요.”
관장이 그를 힐긋 째려봤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유리 다예프는… 어땠지?”
“그건 왜요?”
“궁금해서 그런다.”
“다시 용병 일 하시려고요?”
“그건 아니라도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지. 이번 납치 사건 때도 우리 PMC 후배들이 경호를 섰어. 그런데도 보기 좋게 당해버렸고.”
“쪽수가 저쪽이 훨씬 많았잖아요.”
“그래도 너 같은 녀석 두엇 있었으면 어떻게든 몇 명은 빠져나오게끔 할 수 있었을 거야.”
“음.”
“그리고… 이번 건으로 받은 액수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PMC 일을 때려 친 건 돈이 안 돼서야. 일거리는 점점 줄고 어중간한 용병업체들은 계속 늘어나니까 연봉이 확 줄었지. 처음에 시작했을 땐 1억이 훌쩍 넘었는데 요새는 8천도 힘들어. 멀리까지 나가서 고생하는데 말이야.”
“그럼 체육관은요?”
“여기 코치들 많다.”
이휘가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이런 우군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이번 같은 일이 또 없으리라 보장할 수가 없었다. 특히 일반 민간기업이 아닌 국가가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보이지 않는 암투가 여러 번 벌어질 수 있다.
“유리 다예프는 확실히 실력이 남다르긴 했어요. 제가 도리어 당할 뻔했으니까… 사격술, 단검술, 살상격투술까지. 아마 지금 관장님과 붙으면 1분도 버티기 힘드실 겁니다.”
체육관관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좀 더 운동을 해야겠군.”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휘가 몸을 풀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오랜만에 좀 빡세게 운동하고 싶었거든요.”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체육관관장이 두 눈의 불꽃을 거세게 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맞부딪쳤다.
***
세 시간도 넘게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 이휘는 밖으로 나왔다. 힘은 빠졌지만 몸과 마음은 가벼웠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휘.”
정태수였다.
“왜?”
“준수 말로 경기도에 부동산 매입을 마쳤대.”
3기 신도시가 될 땅 이야기다. 김성우에게 맡겼던 일이 잘 끝났다는 뜻.
“그래?”
“그리고, 뉴스를 보라던데. 러시아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고.”
이휘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 얘기 전하러 온 거야?”
“아니.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 아버지가 너한테 꼭 전하란 말씀이 있었어.”
“정 사장님이?”
“러시아로 가신다더라.”
이휘가 눈살을 찌푸렸다.
“러시아에는 왜?”
“러시아에서 군사적인 움직임이 있었대. 공식적인 건 아니고 러시아와 거래하고 있는 수출, 수입업자들 간에 얘기가 오갔나봐. 그래서 직접 가서 동향을 파악하셔야겠다고 하셨어.”
그러고 보니 정대선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를 응시하던 이휘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어떤 군사적 움직임인지까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할 거다.
이휘가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마. 쉽게 위험에 처하실 분은 아니니까.”
그렇게 다독이긴 했지만 얼마 전 유리 다예프 측 움직임이 마음에 걸렸다.
그 사건을 러시아 정부에서 묵인해주긴 했지만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을 유도한 유리 다예프 쪽 반대파 놈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였다.
‘하루 빨리 러시아 채권을 받아내야겠어.’
롱텀 매니지먼트에게 휴지조각이 된 러시아 채권을 사들이던가, 롱텀 매니지먼트 자체를 인수해야 한다. 그래야 러시아 반역자들을 러시아 정부에 넘기고, 대선물산과 정대선을 만일의 위험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
“오토바이 타고 왔지?”
이휘가 대뜸 묻자 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뒤편에 주차해놨어.”
“러시아 대사관으로 가자.”
“대선물산이 아니라 대사관으로?”
“응. 대사관에 볼일이 있어.”
“…알겠어.”
정태수가 오토바이를 가져왔다. 두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러시아 대사관을 향해 달렸다.
‘확실히 해야돼.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이휘는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굴렸다. 롱텀 매니지먼트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지만 그것만으로 러시아 채권을 헐값에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지금은 롱텀 매니지먼트에서 투자금을 달라고 부탁하거나 자기네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배를 까뒤집은 채 찾아와도 지불할 돈이 없다.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자금을 마련하기 힘든 지금 상황에선 돈 외에 롱텀 매니지먼트에게 내밀 히든이 필요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롱텀 매니지먼트를 인수하려는 다른 회사들, 자본가들. 혹은 롱텀 매니지먼트를 구제하려는 미국 정부와 경쟁을 해야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