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64
나는 회귀했다 64
숨 막히는 긴장감.
이 팽팽한 공기를 쪼개며, 블라디미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 인정하지.”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휘를 향해 흉포한 눈빛을 보냈다.
사람 눈이 아니다.
마치 몸속에 맹수 한 마리가 들어있는 것 같다.
“자넨 실수한 거야.”
“여기서 일을 벌이면 당신은 대통령 직할과 다름없는 내무부 소속 군인을 공격한 게 됩니다.”
“도청내용이 흘러나가도 똑같겠지. 자네 말이 맞아. 난 불과 아침까지만 해도 소리 소문 없이 이 나라를 전복하려 했다.”
이제 거칠 게 없다는 듯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이지. 이 정도 변수는 지금껏 수도 없이 있었어. 이럴 때마다 내가 어떻게 했는 줄 아나?”
안다.
블라디미르는 지금껏 위기가 올 때마다 상대보다 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미친놈이 가장 무서운 법.
블라디미르의 방식은 항상 통했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이었을 줄이야.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릅니다.”
“아니, 상황은 같아. 어차피 내가 사라지면 이 나라는 지금 같은 꼬락서니로 영원히 보존될 거야. 이 나라는 주인의식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네. 만약 폭력이 필요하다면 전 세계를 상대로라도 핵잠수함을 출격시킬 수 있는 그런 지도자 말이야.”
“미치광이 아닙니까?”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어. 난 여기서 자네를 죽이고, 현 정권을 몰락시킬 거야. 일주일 안에 러시아는 내 것이 되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세계의 겁쟁이들에게 러시아의 군사력을 보여줄 거다. 어떤 나라건 국민들 눈치나 보느라 몸 사리기 바쁘겠지. 누가 감히 주제넘게 나설 수 있을까! 어떤가? 내 카드가. 하하하하.”
블라디미르는 자, 어디 한 번 평가해보라는 듯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군요.”
블라디미르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마지막으로 이휘를 회유하려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는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때였다.
이휘가 대뜸 물은 것은.
“준비는?”
뒤에 서있던 알란이 시계를 봤다.
“10초 전.”
그들에게 주어진 협상 시간은 20분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19분 50초가 경과했다.
초소리가 나거나 20분이 되면 차단기를 내려라.
그게 이휘가 내린 지시였다.
아니나 다를까.
블라디미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차단기가 내려가며 집안의 불이 다 꺼졌다.
“쏴!”
블라디미르의 외침과 함께 저택 전체를 뒤흔드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굉음에 집안이 부서질 것 같았다.
연달아 천둥을 맞는 것처럼 사방이 번쩍거리며 고막을 찢어 놨다.
이명이 삐이이이이이- 울렸다.
그사이에도 이휘는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했다.
정확한 위치는 보이지 않았지만 손으로 더듬어서 카펫을 걷어내고 고리를 잡아 열었다.
덜컥!
그 안에는 야간투시경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정대선과 PMC 용병들이 국정원의 협조를 구해 가져온 군용품들이다. 이휘와 방금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온 러시안 셋은 투시경을 꺼내서 전달, 전달을 했다.
그리고 총소리가 그칠 때쯤 저마다 몸을 엄폐했던 아군의 머리에는 투시경이 씌어져 있었다.
“뭐야!”
“이 새끼들 어딨어?”
“이런 젠장!”
아까부터 계속된 적들의 욕지거리가 흥분을 더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좁은 공간에서 총격전이 시작되며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든 상태에서 죽어라 쏴 갈겼는데 이휘 쪽 대원들은 몇 명 안 쓰러졌다. 신분증을 제시했던 SOBR 대원 한 명과 앞에 있던 네 다섯 명 정도.
대원을 제외하면 그 네 다섯 명은 모두 이휘에게 매수당한 루슬란 자카예프측 부대원들이었다. 원래 저택을 경호하고 있던 이들. 이휘는 일부러 협상자리에서 이들을 앞세웠다. 명분은 블라디미르와 루슬란에게 신뢰를 줘야한다는 것.
심지어 SOBR 부대원은 쓰러진 상태에서 투시경을 받았다.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반격을 시작할 차례.
이휘가 투시경이 있던 자리에서 기관단총을 꺼내들며 소리쳤다.
“사격!”
타다다다다다다다당!
다시 한 번 총성이 터졌다. 그러나 결과는 적들이 발포할 때와 완전히 달랐다.
야간투시경을 장착한 아군들은 맞은편에 숨어있는 적들을 정확히 맞췄다.
“으아아악!”
“아아악!”
“억!”
적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 모습이 투시경을 통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루슬란이 부하 뒤로 숨으며 발악하듯 외쳤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가 어깨를 잡고 있던 부하가 머리에 총을 맞고 픽 쓰러졌다.
“이런 씨발.”
그 순간.
그의 턱주가리에 철퇴 같은 주먹이 작렬했다.
퍼억!
그걸 끝으로 루슬란은 정신을 잃고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를 쓰러뜨린 것은 알렉세이였다. 러시안 셋은 스패츠나츠 대원들과 함께 구조물을 이용해 적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총을 쏴서 하나하나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탄창을 바꾸고 있는 적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총알을 낭비하지 않고 확실히 처치한 것이다.
반면 이휘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총격전이 시작되는 동시에 블라디미르가 두 사람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탁 아래 숨어 블라디미르의 다리가 움직이는 걸 추적했다.
‘차로 가진 않았을 거다.’
그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차로 한 두 놈을 보내고 정작 블라디미르 자신은 숲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부하들을 다 잃고 수적 열세에 빠진 이런 상황에서 추격을 피하려면 도로보단 숲 속으로 달아나는 편이 용이하다.
하지만 숲은 이휘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보초를 제거하며 지형을 파악해둔 그다. 아마 블라디미르는 보초가 있던 곳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숲은 조금만 잘못 들어도 막다른 길로 치달을 수 있으니 아는 길로 갔을 거라는 것이 이휘의 짐작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이휘가 지름길을 주파해 후문 쪽 숲의 포인트에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당한 부하 세 명과 함께 움직이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이 보였다.
‘더 와라.’
이휘는 섣불리 총을 쏘지 않았다. 먼 거리에서 사격을 했다간 저들이 반격하는 사이 블라디미르가 달아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코앞을 지날 때, 이휘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
한 명이 픽 쓰러졌다.
타다당!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마지막 한 놈이 이휘를 발견하고 대응사격을 하려 했지만, 이휘는 빠르게 바닥을 구르며 남은 적을 처치했다.
타다당!
털썩, 마지막 놈이 쓰러지자 블라디미르는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휘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휘는 블라디미르가 몸을 내밀지 못하도록 총을 쏘며 접근했다.
타다다다다다!
블라디미르가 몸을 숨긴 나무껍질이 쪼개져서 흩날렸다. 등뒤로 식은땀이 흐른 블라디미르는 총소리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몸을 확 드러냈다. 이휘와 지척의 거리. 그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이휘가 불현 듯 쿠크리를 꺼내는 동시에 내던지듯 휘둘렀다.
퍼억!
“억….”
블라디미르는 쿠크리 칼날이 절반쯤 박혀버린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너덜거리는 것이 절단되기 일보직전이다. 당연히 권총은 진즉에 놓쳤다. 그가 충격을 받고 고개를 드는 순간 이휘의 손이 날아왔다.
쾅!
블라디미르는 뒤통수를 나무에 받아서 정신이 아찔했다. 이휘가 목을 움켜쥔 채 밀친 것이다.
“블라디미르.”
“….”
“널 반역죄로 체포한다.”
블라디미르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 핏발이 섰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자신의 인생 동안 수많은 정적들을 만났고, 모두 제거해왔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서 생각했고 훨씬 더 과감하고 잔혹하게 수를 썼다.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당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너… 누구냐.”
천재 기업가?
헛소리다.
유리 다예프를 사냥할 정도의 실력자?
그건 맞는 얘기지만, 그 수준이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다. 이휘가 상대한 것은 유리 다예프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UDU 대원 시절이라면 블라디미르와 루슬란에게 보기 좋게 당했을지 모르지만 개인에이전트로 활동하면서 세계 각지를 다녔다.
수면 아래서 제법 높은 이름값이 있었기에 대부분은 특수부대에서도 해결 못한 일을 맡았다. 일의 정당성과 거액의 보수.
그 두 가지면 IS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의 목도 가져다주었다.
세계에서 치밀하고 은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현상범들을 상대하던 이휘였기에 블라디미르를 상대로 이중, 삼중의 완벽한 함정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블라디미르가 이휘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알고 있었어도 자신이 불리한 게임이 되었겠지만 이휘는 상대의 방심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자신에 대해 최대한 숨기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어찌 보면 오랜 세월 터득한 버릇과 흡사했다.
적들은 예상치 못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상대를 두려워하지 눈에 보이는 상대를 두려워하진 않으니까.
같은 의미로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이휘를 바라보던 블라디미르가 물었다.
“…왜 날 죽이지 않지?”
“넌 이제 사냥감이 된 거야. 사냥감을 잡았는데 그냥 죽여서야 쓰나.”
“뭐?”
“널 죽이기 전에 미끼로 쓸 생각이다.”
“그게 무슨… 설마 나를 데리고 대통령과 협상할 생각이냐?”
“아니, 그쪽과 협상은 끝났어.”
이휘가 노리는 것은 블라디미르가 가장 절망적으로 생각할 소식이었다.
“러시아는 국채를 갚고 모라토리엄을 번복한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이득을 본 너의 조력자들은 모조리 사형당할 거야.”
블라디미르가 표정을 구기며 입매를 비틀었다. 웃고 있는 것 같다.
“허무하군. 나랑 협상하지 않겠나? 네가 원한다면 넌 이 나라를 가질 수 있다. 나를 꼭두각시로 세워서 러시아를 손 안에 넣어.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자칭 애국자라 하던 자의 말로가 이렇다. 그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러시아에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제체제를 심으려고 한 것이다.
자신이 영원히 장기집권하게 되면 러시아 전체가 자기 것이 되니, 완전히 자기 것이 된 후에 주인의식을 갖고 러시아를 최강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심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이기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는 그를 보며 이휘는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리곤 블라디미르 총리의 눈을 빤히 노려보다 불쑥 놈의 팔에 박힌 쿠크리 날을 잡아 뽑았다.
“으윽.”
블라디미르가 억눌린 신음을 토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이휘의 회수한 쿠크리. 그 칼날이 블라디미르의 턱밑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커억….”
그는 뭐라 한 마디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이휘는 그의 동공에서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말이 많으면 죽는 거야.”
이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블라디미르를 미끼로 그의 수족들을 다 쳐내는 일이나 현 대통령의 지지도를 좀 더 확실히 올리는 일.
중요하지만, 그건 이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블라디미르가 후환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놈이 목숨을 구걸했을 때 확신했다.
이놈의 야망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 길을 도모해 자신의 숙원을 이루려할 자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누군가를 해치고 세상을 어지럽힐 뱀 중의 뱀이다.
이휘는 쿠크리를 잡아 뺀 뒤 놈의 시체를 버려두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휘의 안전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쉰 알렉세이가 물었다.
“총리는?”
“죽었다.”
이휘가 덧붙였다.
“저항이 거세서 어쩔 수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