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65
나는 회귀했다 65
“….”
“….”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러시아의 절대권력.
수많은 정적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오른 블라디미르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적들에게나, SOBR 대원들에게나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세상을 좌지우지한 수많은 악인들이 허무하게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말로를 직접 본 느낌은 허망함, 그 이상이었다.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악인조차 한낱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정말 해내다니….”
SOBA 대원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블라디미르에 맞서 암암리에 투쟁했다. 그러면서도 밤잠을 설쳐가며 블라디미르에 대한 압도적인 공포감을 떨쳐내야 했다.
그랬던 블라디미르가 죽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들어온 한 소년에 의해. 모든 것은 그 소년의 계획 하에 진행됐고, 그들이 수 년 간 풀지 못하던 숙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쉽게 풀려버렸다.
SOBA 대원들이 하나 둘 이휘를 향해 경례를 붙였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상사에게도 예의를 생략하는 스패츠나츠. 그들이 한 외국인에게 이렇게 극진한 예우를 갖춘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지켜보던 세 명의 러시안들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휘가 했던 말처럼 자신들의 손으로 조국을 구했고, 자신들의 보스는 그들을 버린 조국의 군인들에게 경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휘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이휘는 정작 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집니다. 나머지는 당신들이 끝내야할 숙제에요. 가장 골칫거리였던 블라디미르가 죽고 루슬란 자카예프가 사로잡혔다곤 해도 여전히 저항이 거셀 겁니다.”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발각당하는 순간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나머지 잔당들이 취할 액션은 두 가지뿐이다.
달아나거나 저항하거나.
어느 쪽이든 대통령 직할대나 다름없는 이들 내무부에서 처리해야할 문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SOBA 대원들의 책임자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와 루슬란 자카예프가 건재했다면 불가능했을 일. 우리 SOBA 대원들이 당신의 활약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우리 조국은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이휘는 미소로 화답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를 살해하는 순간 그의 눈빛에 스러지던 절망감을 보았다. 그리고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머릿속에 각인시킨 것이다.
‘한 발만 헛디뎌도 내 얘기가 될 수 있다.’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을 쓰고 싶어 한다. 싸우는 법을 아는 자가 전장을 전전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 힘에 도취되고, 중독되며,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휘는 지금껏 그런 자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개중에는 전투원도 있고 자본가도 있고 테러집단의 우두머리도 있었다. 이번 생으로 치면 론스터의 박병조나 블라디미르 역시 자신의 욕망에 잡아먹힌 케이스다.
그렇기에 권력은 커질수록 위험하다.
‘…내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이휘는 스스로 마음을 다졌다.
***
러시아 대통령은 이휘의 생각보다 훨씬 현명했다. 블라디미르가 죽고 루슬란 자카예프를 구속하자 구심점이 사라진 자들은 갈피를 못 잡았다.
러시아 대통령은 그 잔당들 중 영향력이 세고 죄질이 고약한 자들을 먼저 처단했다.
특수부대를 보내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했는데, 이는 그들과 선이 닿아있던 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러시아식 응징이다.
그렇게 공포를 심어준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일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발표했다.
-나는 이 자리를 비로소 약속합니다. 국가전복을 계획하고 반역을 꾀한 자들은 모두 누군가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난 폭군이 아닙니다. 그들과 마지못해 결탁했거나,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은 나오십시오.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자수한다면 선처를 베풀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준하는 국법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용서할 부분은 용서하고 감경할 부분은 감경하여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 죄를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돈에 팔촌까지 그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가 새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정부의 이름을 걸고 이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반역자들은 잘못된 사상으로 러시아의 위기를 초래했으므로 단 한 명도 남겨둘 수 없습니다.
그중에는 이휘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블라디미르를 살해한 일은 비공식으로 처리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실만은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길 수 없었던 건가?
-러시아는 이번 경제위기를 뒤에서 조종한 반역자들을 색출하고, 나아가 처벌할 수 있게 도와준 우방국가, 한국 정부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한국 정부와 러시아 사이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파트리아 펀드와 대표 이휘 씨에게 존중과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러시아를 있을 수 있게 해준 한국 정부, 파트리와 펀드와 함께할 생각입니다. 우린 군사적으로 교류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것입니다. 롱텀 매니지먼트의 국채를 사들인 파트리아 펀드에 국채를 상환하는 것으로 그 첫 발을 내딛겠습니다. 국제사회는 우리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큰 상처를 입었던 만큼 후련한 마음으로 새로이 시작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 정부는 국민과 함께 러시아를 치유하고 성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직접 발표한 내용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 전역의 언론에 보도됐다. 이휘의 이름 또한 세계 전역에 알려졌다.
한국정부는 뜻밖에 1승을 거뒀고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항상 외세로부터 시달리기만 했던 한국.
믿기지 않는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열강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걸 맞는 대접을 받아본 적 없는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 군사력 2위의 러시아에 존경이 담긴 인사를 받은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덩달아 ‘이휘’라는 이름 두 자도 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 사이 비행기에 있던 이휘는 신문을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도 더 못 다니겠다.”
“네게 학교가 필요한가?”
알렉세이가 묻자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내 나이다운 평범한 생활도 해보고 싶다고.”
전생에는 따돌림을 당해서든 성인이 된 후에는 입대를 해서든 평생 즐기지 못해본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 생에도 물 건너 간 듯싶다. 평범한 생활과는 연이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알렉세이가 말했다.
“그럴 거였으면 이런 일을 저질렀으면 안 됐지.”
“스포츠 선수가 운동하는 건 좋은데 유명해지긴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
“나도 똑같아.”
“…그럴 수도 있겠군.”
“모르면 모를까,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이휘가 했던 일이 대부분 그랬다. 물론 나비효과처럼 사건이 꼬리를 물고 벌어져서 더 깊게 개입했고, 더 큰 파장을 불러왔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온 알란이 빙그레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럼 받아들이셔야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 유명해지는 건 당연한 거고요.”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벌은 포기해야겠네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긴데 알렉세이와 알란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긴 말인가 싶었지만 알렉세이의 대답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네가 학벌을 어디다 써먹게? ‘혼자서 100명 죽이는 법’ 같은 과목을 가르쳐주는 학교라면 모를까.”
이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이들이 자신을 이런 시선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한국에 도착한 뒤 이휘는 대외활동을 자제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준수, 하진성과 보냈다. 두 사람은 롱텀 매니지먼트에서 러시아 채권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만약 두 사람이 실패했다면 러시아에서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모른다.
딱 시기적절하게 성공해줬기에 이휘는 각자에게 인센티브 10억씩을 약속했다.
물론 러시아에 빚을 받아낸 후에 지급할 인센티브였다.
이야기를 들은 방준수가 볼을 부풀렸다.
“아니, 뭐 그렇게 늦게 줘? 50퍼센트는 임기 끝나기 전에만 달라고 했다며!”
“1년에 10퍼센트 이상씩 갚기로 했으니까 연말에는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을 거야. 뭐가 불만이야?”
이휘가 신경질적으로 묻자 방준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1년씩이나 기다려야 하잖아.”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성과급만 10억이야. 그게 적어?”
“러시아 반역자… 그 뭐냐. 블라디미르인지 뭔지 하는 놈 사재 털어서 받은 돈 있잖아? 보니까 러시아 국채의 50퍼센트도 넘을 것 같더만! 그럼 롱텀에 국채 값 치르고 나도 엄청나게 많이 남는 금액인데?”
범법자의 은닉자산을 받은 거다. 러시아에서 비공식적으로 준 돈이기도 하다. 워낙 극비리에 진행됐기에 세금 한 푼 안 뗐다.
그래서 좀 더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그 돈으로 롱텀 매니지먼트에서 사들인 국채 값을 내려했는데 방준수와 하진성이 너무 싼 값을 받아와버렸다.
그 덕에 러시아에서 얻은 보상의 잔금이 너무 많이 남았고, 그건 고스란히 이휘의 사재로 들어갔다. 그 일을 처리해준 것이 방준수였다. 한데 러시아 국채를 사는 데 들어간 돈과 러시아에서 받아낸 차액을 보고 너무 놀랐는지 떼를 쓰고 있다.
“형. 그 정도는 러시아에서 목숨 걸고 그놈들 처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가져가도 되잖아? 나 혼자 먹은 것도 아니고 그때 힘을 보태줬던 사람들한테 모두 골고루 나눠줬어.”
물론 그래봐야 이쪽에서 데리고 간 러시안 셋과 PMC 용병들 만이다.
러시아 일을 도운 것인데다 조직에 충성하는 SOBR 대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들이 목숨을 걸고 나섰다는 것을 상기한 방준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맛을 다셨다.
“내가 꼭 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야.”
“그럼?”
“모르겠어. 네 재산이 내가 추정하기 힘들 정도로 느니까 괜히 심술이 나네.”
“왜? 우리 같은 편인데?”
“뭔가 나도 더 받아야할 것 같고, 그런 거지.”
이휘가 피식 웃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특히 방준수 같이 백발백중의 천재라면 갈수록 간덩이 부으면 붓지 줄지는 않을 테니까.
“질리도록 벌게 해줄게. 앞으로도. 형이 형 통장에 얼마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모를 만큼.”
이미 지금까지 본 게 있는 방준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잘해. 나 고급인력이야.”
“알겠어. 자꾸 사춘기 소녀처럼 굴지 마.”
“난 좀 그래도 돼. 왜냐하면 저번에 미국에서 왔던 창업자들이 모조리 승승장구하고 있거든.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지.”
“그래?”
방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선택했고 네가 협상을 성공시키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발굴한 건 인정?”
사실 이휘의 머릿속에도 있었던 이름들이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수긍해주었다.
“맞아. 다 형 덕분이야.”
그제야 방준수는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사실 돈이 아니라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거였나? 하긴, 롱텀 매니지먼트에서 러시아 국채 사들인 것에 대한 칭찬은 좀 미흡하긴 했다.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롱텀에서 그 가격에 러시아 채권을 얻어낸 것도 훌륭했고.”
“후후.”
음흉하게 웃은 방준수가 신나는지 본론을 꺼냈다.
“한 가지 더 기쁜 소식 알려줄게. 우리가 너무 싸게 러시아 채권을 사들여서 그걸 파는 것만으론 롱텀 매니지먼트란 회사를 회생시킬 수 없게 됐어.”
“생각보다 더 싸게 사들이긴 했지만 그걸 예측하고 롱텀을 인수하려 했던 거잖아?”
“응. 근데 투자금을 투입하는 걸로 퉁 쳤다.”
“무슨 소리야?”
이휘가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자 방준수가 부연했다.
“러시아 채권, 우리가 투자금 크게 배팅하고 인수하는 걸로 퉁 치고 받아왔다는 거야. 대신 자산운용방식은 보존해주는 걸로.”
이번에는 이휘가 눈을 크게 치떴다.
“진짜야? 그럼 공짜로 받아왔다고?”
“사실상 그렇지. 일단 돈은 들어갔지만.”
이휘는 속이 철렁할 정도로 놀라서 하진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짜냐고 눈으로 묻는데 정작 하진성은 기가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진성 입장에선 인센티브를 10억 주겠다는 이휘나, 그게 적다고 떼쓰는 방준수나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 수백억을 벌어준다 한들 10억씩 인센티브를 받는 직장인이 있던가?
하진성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귀엽다는 듯 슬쩍 웃은 방준수가 말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 하진성 박사와 최고의 도박꾼 방준수님이 만난 결과로다. 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방준수.
어째 어른인 하진성과 어린 방준수의 태도가 뒤바뀐 느낌이었지만 이휘는 웃고 말았다. 설마 이 정도로 시너지효과가 대단할 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