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7
나는 회귀했다 7
이휘의 할아버지, 정성그룹 이성환 회장은 우호적인 관계인 태청그룹 병원 특실에 입원해 있었다.
휘가 특실이 위치한 7층 복도로 들어서자 한 데 모인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신경 쓰지 마라.”
대부이자 법정후견인인 김상철이 어깨를 주물렀다.
이휘는 적개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친척들보다, 김상철의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물론 참아야 했다.
김상철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는 이휘를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역시… 착각이었나.’
그도 그럴 것이 이휘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니, 잔뜩 얼었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 순간 이휘의 둘째 큰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큰 형님이 태호를 데리고 먼저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께서 차례로 보겠다고 하셨다더군요.”
이휘는 보이지도 않는지 바로 김상철에게 말한다.
김상철이 휘의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겠지요.”
그때 제 아비 눈치를 보던 둘째 큰아버지의 아들, 이종찬이 휘를 향해 이죽거렸다.
“늦었네.”
“어.”
이휘가 대충 대답했다. 지금 나이로 봤을 땐 이종찬이 두 살 많았지만 신경 쓸거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종찬의 생각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만날 때마다 괴롭혀놨더니 이제서는 눈도 못 마주치던 놈이 귀찮다는 투로 자신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요 며칠 근방 학교에서 도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다.
“너 요새 사고 치고 다닌다며?”
이종찬은 건수 잡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왜 모르는 척이야? 너희 반 돼지 새끼랑 싸워서 이겼다던데. 너는 어떻게 거꾸로 가냐. 나이가 몇 갠데 싸움질이나 하고…. 에휴, 가지가지 한다. 성적으로 집안 망신 시키더니 이젠 싸움질까지 해? 저 혼자 집안 어른들 체면은 다 말아먹지, 아주.”
이휘가 피식 웃었다. 이제 좀 관심이 간다.
“더 없냐?”
“뭐?”
“돼지 잡은 것밖에 소문이 안 퍼졌어?”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야?”
이종찬이 경악하는 그때, 둘째 큰아버지가 마치 더러운 물건에서 아이를 떼어놓는 투로 나무랐다.
“병원에서 뭐하는 짓이야?”
“잠시 할 얘기가 있습니다.”
김상철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풀라고 하시고, 얘기 좀 나누시죠.”
“에이!”
이종찬을 툭 쏘아본 둘째 큰아버지가 김상철에게 눈짓하며 자리를 피했다.
김상철이 이휘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옛날 같으면 둘째 큰아버지에게서 구해줬다고 여겼을 테지만 아마 저 두 사람은 이휘의 재산을 어떻게 뺐을지에 대한 밀담을 나누리라.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같은 것들이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물론 여기에는 이종찬도 빠질 수 없었다.
“너, 나 좀 보자.”
이휘가 이종찬을 따라나섰다. 안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테라스로 나간 이종찬이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씨발놈아. 오랜만에 보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고상한 척은 다 하더니 욕도 할 줄 아네?”
“너희 학교에 정태수라고 있지?”
이휘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나 눈이 뒤집힌 이종찬은 미처 못 보고 막말을 쏟아냈다.
“그 새끼가 내 중학교 동창이야. 알아? 맘모스인가 뭔가 돼지 새끼 잡았다고 학교생활 풀린 것 같냐? 자신감이 막 솟아나? 내일부터 넌 다시 지옥이야, 씨발놈아.”
“아… 그러니까.”
이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종찬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너무 늦었다.
이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정태수랑 관계는 그 새끼한테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고. 박민상 별명까지 아는 걸 보면 전부 다 알고 있었다는 거네? 내가 따당하는 것까지.”
“그래서 뭐…”
퍼억!
순간 정강이를 걷어차인 이종찬의 다리가 거의 허리만큼 뒤로 들렸다. 완전히 균형이 무너진 이종찬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뒹굴었다.
“아으으으으!”
쪼그려 앉은 이휘가 이종찬의 머리채를 잡고 확 들어올렸다. 머리가 다 뽑혀나가는 고통에 이종찬이 다시 한 번 신음을 뱉었지만 비명을 지를 수는 없었다.
이휘의 눈동자.
그것만 보고도 자신이 알던 이휘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
“사촌형이란 새끼가… 너 같은 새끼가 가족이란 게 창피하다.”
이휘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죽여버릴까?”
농담이 아니었다.
이종찬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빨이 따닥따닥 부딪칠 정도로 놀랐다. 딸꾹, 딸꾹! 딸꾹질이 나왔다. 머릿속은 하얗게 탈색됐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당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괴롭히던 이휘에게는.
“나란 놈이, 네가 말한 집안의 수치가 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오랜 세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입도 벙긋 못하고 학창시절을 좆 같이 보냈거든. 남들 한두 개씩 있는 추억, 친구… 이런 거 하나 없이.”
으스스하게 말한 이휘가 고개를 들며 이종찬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이종찬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이휘가 말했다.
“내 눈 봐.”
“…!”
“내 눈보라고.”
이종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다가 다시 한번 흠칫했다. 완전히 기가 꺾인 놈을 보며 이휘는 기가 찼다.
이런 놈들 체면 살려주려고 그 세월을 버텨냈냐? 이렇게 단순한 폭력에도 굴복하는 놈들이 무서워서 굴욕을 견뎌냈던 거냐? 스스로한테 묻고 싶었다. 그런 인내심이면 한 번쯤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냐고. UDT에서, UDU 지옥훈련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싸울 수 있지 않았냐고.
‘아니, 앞으로도 안 한다. 이런 싸움은…’
군인은 조국을 위해 싸운다.
전쟁터에선 전우의 복수를 위해 싸우며.
소방관은 인명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검사는 정의를 위해서.
운동선수는 명예를 위해 싸운다.
그러나, 이런 놈들과는 싸울 가치가 없다. 이긴다 해서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다. 피 흘리거나 피 묻힐 가치가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그건 유약했던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그래서 자신은 참았던 것이다.
강했기에.
‘이휘, 널 용서한다.’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굴욕감을 느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싸웠다. 이제야 이휘는 자신이 느끼던 굴욕감을 자신감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스르륵.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풀자 이종찬이 두려운 눈을 들어 이휘를 쳐다봤다.
이휘가 말했다.
“내가 너랑 싸울 이유를 만들지 마라. 다음에는 어설프게 끝나지 않을 거니까.”
폭력은 어설프다.
둘 중 하나가 죽는 싸움이야말로 진짜 싸움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휘이기에 정태수의 엉성한 협박과는 차원이 달랐다.
끄덕, 끄덕!
이종찬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휘는 이종찬의 뒷덜미를 단숨에 잡아 일으키곤 앞장세웠다.
어른 앞에 돌아가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지만 이 새끼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휘는 이곳에서 모든 걸 버리고, 모든 걸 얻기 위해 왔다.
큰아버지(백부)와 이태호는 이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떠난 모양인지 김상철과 둘째 큰아버지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이종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큰아버지는 이종찬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횅하니 몸을 돌리며 외쳤다.
“뭐해? 빨리 안 오고!”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도 못한 채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제 아버지와 병실로 들어가는 이종찬이 보였다.
이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새끼도 불쌍한 새끼다.
그때 굳은 표정의 김상철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이휘가 멀쩡히 나왔으니 기뻐해야 맞는데 도리어 이종찬이 하얗게 질려 나오니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심지어 정강이를 깠으니 이종찬이 당한 것도 모를 텐데.
아마 이휘가 김상철의 속내를 몰랐다면 걱정하는 줄 알았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훤히 보였다.
“신경 꺼.”
“…!”
돌변한 태도에 김상철의 눈이 커졌다. 그는 지금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아예 말문이 막혀버렸으나 이휘는 더 이상 속내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큰아버지(백부)와 둘째 큰아버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겠지. 두 사람도 네 눈치를 보고 있을 테고. 두 사람 도움을 받아 내 지분을 꿀꺽한 뒤 노선을 정한다. 맞나?”
“너…!”
“경고하지.”
이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네 원래 자리로 돌아가. 그것까진 관여하지 않겠다. 내 집안 소유는 풀 한 포기도 줄 수 없으니 고문변호사 직함은 내려놔라. 만약 계속 남겠다면, 오늘 밤 내가 찾아간다. 너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을 건드린 대가로 너희 가족까지 단죄할 거야.”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휘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서 휘둘렀다.
팟!
그다음 김상철의 입에서 나온 것은 경악이 담긴 신음이었다.
“억! 이, 이게….”
뺨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협지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깔끔한 상처도 아니었다. 김상철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휘를 쳐다봤다.
이휘가 겉옷을 벗어서 건넸다. 그리곤 더 없이 순수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뭐?”
“갑자기 피가… VIP병실이라 카메라도 없을 텐데. 자리 안 지키셔도 돼요. 가서 일 보세요.”
“…!”
김상철은 이휘가 일부러 이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속내를 가졌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카메라가 없고, 언제든 순수한 소년으로 위장해 접근할 수 있으며, 그만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김상철이 이를 갈며 노려봤다.
“일은… 마치고 돌아가마. 별 것 아니다.”
김상철이 지혈하고 있던 겉옷을 돌려주었다. 눈빛이 전혀 죽지 않았다. 다른 곳보다 얼굴이 다쳤을 때 심리적 부담이 크기 마련이다. 특히 지금처럼 꼼짝 없이 당한 경우라면 겁을 집어먹어야 한다. 적어도 기절할 만큼 놀라든지.
이휘가 피식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싸울 맛이 나지 않겠는가? 아직 히든도 안 깠는데 이종찬마냥 꼬리 만 개처럼 굴면 얼마나 허무한가 말이다.
이휘는 싸움을 치르기 전 보이는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그럼.”
자.
이제 히든을 깔 시간이다.
두 사람은 병실로 들어섰다.
병상에 누운 할아버지가 보였다.
고개 숙여 목례한 둘째 큰아버지와 이종찬이 어두운 안색으로 나갔다. 두 사람의 안색이 어두운 이유가 각기 다르겠지만, 자신들이 생각한 것만큼 할아버지에게 대우를 못 받은 기색이 역력하다.
아마 분배될 재산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휘가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클클 웃었다. 노인네, 생각했던 것보다 정정해보인다.
“잘 왔다.”
손을 맞잡은 할아버지가 김상철을 힐긋 쳐다봤다.
“김 변.”
“예, 회장님.”
“얼굴이 왜 그래?”
“그게… 간호사랑 실수로 부딪치는 바람에. 별일 아닙니다.”
“쯧, 사람이 조심 좀 하지….”
“괜찮습니다. 회장님.”
역시 거짓말의 귀재다. 금방 거짓부렁을 하더니, 불안한 눈길로 이휘를 스쳐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뺨이 찢어져서도 대차게 나가면 기가 질리거나, 적어도 당황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휘는 마치 히든을 숨겨둔 겜블러처럼 웃었다.
‘도대체 뭐냐. 대체 어떻게…!’
김상철은 무너지려는 표정을 애써 감춰야 했다. 고지가 코앞이었는데. 다 된 밥이었는데 재를 뿌리게 생겼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휘란 걸림돌 때문에.
그런데 이휘는 한술 더 떠서 뒤에서 말라가고 있을 김상철의 모습을 즐기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저씨가 끝끝내 제 곁에 있으시겠다더라고요.”
“그래? 하하, 김 변 책임감이야 내 잘 알지. 이젠 할아비와 있는 것도 질투하는 겐가? 그러지 말고 나가서 소독하고 치료받아, 이 사람아. 큰일 해야할 사람이.”
김상철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예.”
아마 밖에서도 마음 편히 치료받진 못하겠지만, 하여간 김상철은 찜찜한 얼굴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탁.
문이 닫히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가장 큰 걱정이다.”
“제가요?”
“네 큰아버지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인 널 못 잡아먹어 안달이니… 그렇다고 네가 야문 것도 아니고.”
‘불쌍한 것’이라는 표정으로 응시하는데, 그 따뜻한 눈길에 가슴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눈가가 괜스레 붉어졌다. 남이 아닌 가족이 해주는 걱정. 이 얼마 만에 받아보는 감정이던가.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네가 야물어야 네 것을 빼앗지 못한다. 돈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그놈들의 심리는 딱 두 가지다. 칼을 들고 빼앗을까, 아니면 칼을 집어넣고 투항할 것인가.”
“….”
“난 널 못 믿는다. 하지만 다 빼앗기고 무참히 상처 입더라도 네게 기회를 줄 것이다. 네 큰아버지들과 똑같이… 너는 네 동년배가 아니라, 아비 없는 죄로 큰아버지들과 싸워야 한다.”
한참을 침묵하고 듣기만 하던 이휘가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안 싸울래요.”
“뭐? 어디 그런 연약한….”
“할 말이 있어요, 할아버지.”
이휘의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결연하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에 할아버지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안타까움이 아닌 의아함이 맺혔다. 그렇게 잠시 바라보더니, 수천 명의 사람 위에 군림하는 리더로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
“말해라.”
이휘는 숨을 골랐다.
자신은 할아버지 회사가 둘째 큰아버지가 묵혀온 실책으로 인해 올해 IMF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일 것을 안다. 또한 2년 후 휴짓조각이 돼서 사분오열 찢겨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집안의 풀 한 포기까지 전부 다 빼앗기는 거다.
그건 결코 내부에서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어차피 그리되면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미래의 똥패를 히든카드로 바꿀 때였다.
할아버지가 다소 충격을 받는다 해도 말이다.
“저는 할아버지가 제게 주시려는 것을 포기할 겁니다.”
“….”
과연 거인이었다.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병상에 있으면서도 그 이상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뭘 주려는지 알고?”
“주식, 혹은 특정 사업체겠죠.”
“…달라졌구나. 내가 본 게 맞아.”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버지(백부)에게 할아버지가 주신 현물자산을 팔아치울 생각입니다.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앞으로 다가올 외환위기에 대비하겠습니다.”
“…!”
할아버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