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71
나는 회귀했다 71
부아아아아아앙!
오토바이가 미친 듯이 질주했다.
레닌이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이 미친놈이! 천천히 달리지 못해?”
그가 바락바락 소리 질렀지만 이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휘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크렘린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비밀장부부터 찾는 것이 먼저겠지만 레닌이 그냥 불 리가 없었다.
러시아 정부와 커넥션이 있는 무기회사 회장이다.
여길 떠나면 부귀영화를 모두 잃는 것은 물론이요, 어딜 가든 잡혀서 죽임당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죽이겠다는 협박 말고, 놈의 입을 열만한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휘는 그 열쇠를 두 개 준비했다. 그중 하나가 크렘린궁이다.
“설마….”
궁전이 보이기 무섭게 속도를 줄이자 간신히 실눈을 뜬 레닌이 물었다.
“설마 각하께서…?”
그래, 이쯤.
끼이이익!
오토바이를 멈추고 레닌을 돌아봤다.
“뭐?”
못들은 척하자 레닌이 말했다.
“너… 설마 각하께서 보낸 거냐?”
“이거 영 눈치가 없는 놈이군.”
“…무슨 소리냐.”
“러시아 대로에서 폭탄조끼 두르고 정부와 연결된 방위산업체 회장을 납치했어. 심지어 경호원 손모가지도 날려버렸지. 당신 생각에 이런 짓을 할 수 있으려면 누구 지시를 받아야 하지? 지구상에 붙어있는 어느 나라가 이런 미친짓을 할 수 있겠어? 테러집단이면 가능할까?”
조롱 섞인 질문에 레닌의 얼굴이 벌게졌다.
“각하께서 보내셨군요.”
갑자기 존대다.
“난… 난 더 이상 블라디미르 총리와 관련이 없소. 진짜란 말이오.”
“내가 그런 얘길 들을 위치인 것 같아? 그건 각하께 가서 직접 얘기하지.”
“각하께서는… 내 처우를 어쩌시려는 거요?”
“어떻게 할 것 같나?”
이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방위산업체와 모종의 커넥션을 맺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러시아 대통령 안톤 드미트리는 정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국격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반쯤은 확신이고 나머지 절반은 짐작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안톤은 이 나라의 혼란을 막기 위해 블라디미르가 남겨둔 잔재 중 지독한 것들만 처리했다.
그렇게 남은 자가 바로 이 자, 레닌 클리모프다.
말인즉 레닌이 정부 인물들과 획책하고 있는 비자금 횡령을 문제 삼고 누구 하나 죽어나갈 때까지 서로를 공격하지 않아도 이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잔뜩 겁먹은 레닌이 말했다.
“설마 총살하려는…?”
“당신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당신도 알겠지만 각하께선 새로운 정부 재건에 온 힘을 다하고 계신다. 함께한다면 살겠지만 그전처럼 반역자 잔당과 내통한다면?”
이휘는 하나 남은 열쇠를 뒷주머니에서 꺼냈다. 멀리서 레닌이 사는 모스크바 저택을 찍은 사진이다. 이미 이휘의 수완과 저격수의 솜씨를 본 레닌으로서는 기겁할만한 사진이었다.
“이, 이게 무슨…! 설마 가족들까지 해치려는 겁니까?”
“당신이 반역자라고 해서 가족들까지 해치진 않아. 하지만 러시아는 지금껏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마지막은 당신 손으로 방아쇠를 당겨야할 거야. 당연히 모든 재산을 몰수당할 거고,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겠지.”
자살하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처사다.
하지만 아직 과거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은 러시아이기에 가능한 처벌이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남의 손에 죽는 것과, 스스로 죽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게다가 재산몰수까지.
레닌은 손을 덜덜 떨다가 사진을 떨어뜨리고, 다시 주웠다. 그는 조심스레 눈을 들었다. 전과 달리 완전히 반항심이 사라진 시선이다.
“원하는 걸 말씀하십시오.”
“비밀장부를 넘겨라. 세상에 알려지면 안 돼. 알고 있겠지?”
“각하께 직접….”
“다시는.”
이휘가 말을 잘랐다.
“그 더러운 물건이 각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다. 모든 건 내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일이야.”
얼음에 빛이 반사되듯 이휘의 눈동자가 서늘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감히 두 눈을 마주보지 못하던 레닌이 사고가 정지된 채 말했다.
“알겠습니다.”
레닌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낸 뒤 상의를 부욱 찢어 그 위에다 주소 하나와 계좌번호 하나를 써주었다.
“장부가 있는 곳과 비자금이 들어있는 스위스 비밀계좌입니다.”
“신분증은?”
“필요 없습니다. 장부가 있는 주소를 말하고 장부를 보여주면 비자금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지. 정보가 틀렸다면 다시 찾아갈 거야.”
“물론… 그 장부 속에 있는 자들은 전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신과 비슷한 과정을 겪겠지. 위에서 판단할 일이다. 당신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모조리 머릿속에서 지워야할 거야. 이 일과 관련된 나조차도.”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데 궁에는 왜 데려오신 건지….”
궁금증이 많은 놈이다.
어차피 나랏돈 빼먹던 악당인 것을, 이휘는 한 대 갈길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스스로 죽겠다면 각하를 만날 수 있었을 거야. 마지막이 됐겠지만. 그게 각하의 분부셨다.”
“아…!”
사실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벌인 일일 뿐이다. 명분은 이랬다. 해결사 역할인 특수부대원, 이휘가 장부를 캐내지 못하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설득해 보는 것.
교란작전을 위해서는 이처럼 기반이 되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이휘는 단서만 주고, 나머지는 상대방이 생각할 것이다. 역시나 레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지옥에서 나가는 사람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음을 재촉해서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이휘가 핸드폰을 들어 장부가 있는 곳과 은행계좌를 불러주었다.
***
이번 일을 일단락 한 이휘는 대사관으로 갔다. 대사관에선 크렘린궁전과 직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회선이 있었다.
이휘는 승인을 받았고, 대사관 차량에 몸을 실은 채로 당당히 크렘린궁에 입성했다.
지난번과 달리 한국 정부의 대리인을 등에 업고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이번에는 일이 틀어졌다고 잡아 가둘 생각 따위는 못할 터였다.
러시아 대통령은 몇 년은 늙은 사람처럼 퀭해진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대사님은 따로 찾아뵙겠소. 우리 직원이 안내해줄 겁니다.”
그 말에 정중하게 인사한 주러 한국 대사가 비서관과 함께 집무실을 나갔다.
둘만 남자 러시아 대통령, 안톤이 말했다.
“당신이 인수하려는 알마즈의 비리를 캐낸 모양이더군요. 그 과정에서 우리측 민간인을 쐈고.”
“저격한 자는 사라졌습니다. 그 자는 민간인도 아니었고요.”
“민간인이 아니었습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블라디미르 아래서 일하던 자들이라는 걸. 블라디미르 총리가 죽자 측근들 중 살아남은 이들에게 붙어 기생하고 있는 겁니다.”
“그건 추측일 뿐이요.”
“제가 다시 한 번 뒤집길 바라십니까? 알마즈와 결속해서 나랏돈을 빼돌린 자들의 장부를 찾아냈습니다. 그 자들을 캐다보면 저격당해 팔목이 날아간 군 출신 경호원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죠. 우리의 정당성을 입증해서 제 직원을 지킬 수 있다면 저는 러시아 전체를 털어서라도 증거를 찾아낼 겁니다.”
“문제 삼지 말란 거군요.”
“그렇습니다.”
안톤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한국과의 관계가 어찌 되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니…. 미디어 공격 다음은 미국과 손을 잡고 우리 거래처들을 빼돌리는 겁니까?”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초강수를 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협박이었다면 알마즈를 포기했을 겁니다. 다른 회사를 인수대상으로 삼든 러시아 무기회사를 사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봤겠죠.”
“그게 좀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제가 러시아를 포기한다면 대안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게 뭡니까?”
“미국.”
“안 될 말이군.”
“그렇죠.”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이 철통같고, 이미 국채를 통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입니다. 이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문젭니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우리 한국이 앞으로도 외교관계에서 뜻을 펼칠 수 있겠죠.”
“애국심 때문입니까?”
“한국이 약하면 내 가족이 피해를 보고, 내가 피해를 봅니다.”
“….”
잠시 말이 없던 안톤이 까칠한 턱을 만졌다.
“내 딸애가 한 말과 같군요. 나보다 더 정확히 봤어요.”
“총명한 영애를 두셨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정말 기분 좋을 칭찬인 것 같은데 오늘은 아닙니다. 아니, 요 근래라고 해야하나… 딸애한테 속고 당신한테 또 속았어요. 블라디미르라는 여우를 잡고 나서 돌아보니 키우던 고양이가 다 큰 호랑이가 돼있는 기분이에요.”
“그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습니까?”
“…지금은 그런 것 같습니다.”
“함께 싸울 강력한 우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안톤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휘 씨는 맹수를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길들이지 않아도 돼요. 더 맛있는 새로운 먹이를 주시면 됩니다.”
“새로운 먹이라.”
책상을 톡톡 두드리던 안톤이 물었다.
“내부의 적은 모조리 해결했으니 외부인데,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일단은 북한이겠죠.”
“동포 아닙니까?”
“일단은 적입니다.”
“그래서… 품겠다?”
“품을지 내칠지는 생각해 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발톱을 세운 고양이를 간단히 잡아 죽일 힘이 없어요. 그 힘을 갖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은?”
“경제력으로도 일본과 중국을 넘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군사적으로 강해지면 강해지는 만큼 점점 더 활발하게 교류할 러시아도 경제력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음.”
안톤은 전보다 긍정적이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협상테이블에서 얼마나 얻느냐는 것이다. 이휘가 짧게 말을 붙였다.
“귀한 물건일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값어치가 올라가죠.”
그 한 마디에 안톤의 안색이 변했다.
“무슨 뜻입니까? 설마….”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저를 가두고 한국을 압박해서 제 협상안을 무산시키려던 분이 각하십니다. 그만큼 저희 쪽에서 취한 액션이 인상 깊었다는 뜻이겠죠. 다시 협상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치부를 더 많이 알게 됐고, 이를 묵인하는 조건은 달라져야 합니다. 알마즈에 묵은 비자금까지 저희한테 털어내세요. 그러면 각하가 원하시는 대로 과거를 청산하고, 알마즈를 통해 저희와 비공식적인 파트너십을 맺으실 수 있습니다.”
안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깊고 긴 한숨을 내쉰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한국 정부에 감사해야할 겁니다.”
“…?”
“손뼉이 마주 쳐야 소리도 나는 법입니다. 한국 정부에서 당신을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히 돌려보내라더군요. 합법적으로 개인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재제를 가한다면 우리 역시 국제사회에 이를 문제 삼겠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무사히 귀국시키기 위해 군사적 움직임도 불사하겠다… 그렇게 왔습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어요. 앞으로 파트너가 될 사람이니 하는 얘깁니다.”
이휘는 깜짝 놀랐다.
국정원에 알게 모르게 여러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통보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