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79
나는 회귀했다 79
그 시각, 기차 안에서는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차에 탈 때부터 소지품 검사를 했기에 모두 무기를 가지지 못한 상황.
백성범은 열 명이 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미 함께 온 요원들은 모두 목이 돌아간 채 시체로 죽어버렸다.
”하, 끈질긴 새끼.”
얼굴에 피가 튄 북한인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만 투항해라.”
백성범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서늘한 시선으로 머릿수를 셌다.
“…열둘.”
“뭐하니?”
그 순간 백성범이 움직였다. 코앞에 있던 자가 주먹을 날리는 동시에, 손목을 홱 잡아 끌어당긴 그가 이마로 콧등을 받아버렸다.
빠악!
“커헉!”
뿐만이 아니다. 백성범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물러나는 상대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팔꿈치로 가슴팍을 찍어버렸다.
우드드득!
흉골이 내려앉으며 심장이 찔렸는지 눈을 부릅뜬 상대의 몸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힘 빠진 육체는 묵직한 법. 백성범은 시체를 밀어버렸다.
터억.
“이런 씨….”
자기도 모르게 시체를 받아낸 뒤에 놈이 눈을 부릅떴다. 그가 시체를 치우는 순간, 그사이 달려든 동료가 목이 부러져서 다시 한번 덮쳐 왔던 것이다.
“칫!”
그가 시체를 헤치며 나아갔다.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상대를 노려봤다.
차갑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시선에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백성범은 아무 말 없이 쑥 들어갔다. 가슴 아래로 파고들며 주먹을 뻗는다.
슈욱, 퍽!
북측 요원은 눈을 부릅떴다. 가드한 팔이 무슨 망치에 얻어맞은 느낌이다. 오른쪽 팔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 팔이 아니었다.
콰직!
발등이 으스러지며 입이 딱 벌어졌다. 가드가 저절로 내려가고 허리가 숙여졌다. 바로 그 순간 발등을 밟아버린 백성범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니킥을 선사했다.
퍼억!
스르륵, 눈이 풀려버린 북측 요원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여전히 무표정한 백성범이었다.
‘괴물….’
총이 있었다면, 그러면 달라졌을 텐데. 이런 아쉬움을 끝으로 그의 의식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해치운 놈들 중 한 명이 쓰러지자 백성범은 다음 상대로 찾아 눈동자를 굴렸다. 세 놈이 숨 한 두 번 들이마실 시간에 여기저기 뼈가 으스러져 죽어버리자 아무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하지만 백성범은 알고 있었다. 절대 이런 놈들한테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령 자신이 싸우다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없애야 한다는 것을.
타앗!
그의 몸이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움직였다. 체격에 비해 지나치게 유연한 움직임이다. 단숨에 날아오는 주먹을 손으로 받아낸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끄흑.”
상대가 기묘한 신음을 뱉으며 백성범의 정강이를 노리고 발을 휘둘렀다. 백성범 뿐만 아니라 상대 역시 온 몸이 무쇠 같은 특수대원.
그러나.
부웅!
상대가 휘두른 다리가 허공을 갈랐다. 다리를 들어올려 로우킥을 피한 백성범이 대각선상에 있는 상대의 무릎을 발로 찍었다.
퍼억!
무릎이 옆으로 꺾이며 상대의 상체가 딸려갔다. 옆으로 쓰러지는 상대의 머리채를 잡은 백성범은 그대로 같은 방향에서 공격하려던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뻐억!
“컥!”
“커헉…!”
두 놈이 정신없이 뒤엉키자 한 걸음 더 밀고 들어간 백성범이 두 사람의 머리통을 팔꿈치로 가격했다.
퍽! 퍽!
두 방 만에 두 놈 다 눈이 풀려 정신줄을 놨다. 하지만 백성범 또한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점점 체력이 달리고 있었다. 숨이 차고 온 몸에 힘이 빠진다.
“후우, 후우.”
지금은 상대를 속이고 있지만 계속 속이진 못할 터였다. 아까 터널에 들어갔을 때 열 명도 넘게 해치웠고, 지금 또 네 명을 재꼈지만 아직도 여덟 명이 더 남아있었다.
버틸 수 있을까?
아니, 혼자서는 무리다.
지금도 백성범은 상당히 무리하고 있었다. 괴물 같은 체력과 귀신 같은 솜씨가 아니었더라면 진즉 제풀에 지쳐서 상대에게 사로잡혔을 것이다.
“뭐해? 잡아 죽여!”
상대 우두머리가 외쳤다.
백성범은 반가웠다.
‘저 새끼만.’
그가 바로 움직였다. 우두머리가 흠칫하며 물러났다. 백성범이 그자의 동료들을 사냥하고 있을 때 구해온 건지, 왠 놈이 소방도끼를 휘둘렀다.
부웅!
백성범의 뺨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도끼자루로 막은 상대가 도끼를 휘리릭 돌리며 백성범의 사타구니를 공략했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손속이다.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백성범은 몸을 비틀며 허벅지를 대신 내주었다.
퍽!
도끼날이 허벅지를 깊게 파고들었으나 그는 상대가 더 힘을 주지 못하도록 몸을 날려 상대를 덮쳤다.
우당탕!
함께 쓰러진 백성범이 팔꿈치로 상대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빠악!
상대의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끝났다. 또 한 명을 해치운 백성범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는데 거구 한 놈이 뒷멱을 잡았다.
“…!”
백성범이 눈을 부릅뜨는 동시에 거구가 뒤돌아 서있는 백성범을 그대로 넘겨버렸다.
콰당!
백성범은 허리가 꺾이며 얼굴로 떨어졌다. 코가 부러지며 피가 튀었다.
“큭.”
그제야 짧게 신음을 뱉은 백성범이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데, 거구가 다시 한번 달려들어 백성범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퍽!
백성범이 가슴팍으로 들어온 다리를 그대로 껴안고 버텼다. 기차 좌석에 등이 밀착됐다. 상대는 아예 백성범의 가슴뼈를 부러뜨리려는 듯 발로 그를 짓밟았다.
백성범의 얼굴에 난색이 스치는 그때.
퍽!
“…?”
거구의 눈빛이 사라지면서 그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고꾸라졌다.
백성범이 천천히 좌석을 짚고 일어났다. 기차 창문에 난 총알구멍에서 새어 들어온 바람이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야말로 귀기가 흐르는 모습.
“저격!”
적들이 자세를 낮추며 긴장한 눈으로 방금 총알이 날아든 창문을 쏘아봤다.
하지만 빠른 속력을 내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심 놀란 것은 백성범도 매한가지였다. 달리는 기차 안에 있는 타깃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해야 엄호 정도지, 자신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안에서 일은 기차에 탄 사람들끼리 해결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퍽!
또 한 놈이 좌석이 기대며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말도 안 돼!”
거친 목소리로 터져 나오는 외침.
심지어 백성범도 소름이 좍 끼쳤다.
‘누구지?’
첫 번째 포인트에서 대기하고 있을 이휘의 모습이 떠올랐다. 러시아행 비행기 안에서 작전 브리핑을 마친 녀석이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면 제가 저격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다.
현존하는 UDU 대원들 중 최고의 솜씨를 가진 자신조차 달리는 기차 안에 있는 타깃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한데 개활지를 지나는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두 명을 쏴서 명중시킨 것이다.
백발백중이다.
“후우.”
백성범은 부쩍 힘이 났다. 여전히 도끼를 맞은 왼쪽 허벅지가 욱신거렸지만 버틸만했다. 그는 도끼자루를 쥐고 힘껏 당겼다.
쩌억.
“크윽.”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기차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북측에서 이미 기관실을 장악했을 테니까. 해당 칸은 텅 비어 있었다. 양쪽 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칸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
‘끌어낸다.’
아직 개활지를 다 지날 때까진 1분여가 더 남아있다. 그동안 한 놈이라도 더 끌어내서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백성범이 다시 움직였다. 그가 다가가자 적들도 어쩔 수 없이 창가 쪽에서 물러나며 싸움을 준비했다.
“개새끼!”
한 놈이 버럭 외치며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백성범은 이제 더 이상 무리하려 들지 않았다. 상대가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앉은 뒤, 머리 위로 스치는 주먹을 쳐다도 안 보고 겨드랑이로 파고 들어 상대를 번쩍 들어 던졌다.
콰앙!
창가쪽 자리에 충돌한 놈이 벌러덩 쓰러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
퍽!
다시 한 번 머리가 터져나가고 말았다.
그야말로 귀신 같은 솜씨.
백성범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괴물 같은 놈.’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백성범은 순간을 포착하는 이휘의 솜씨에 더할 나위 없이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저격이 가능하려면 놈이 창가 좌석에 충돌했을 때부터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기차 앞쪽을 겨냥해서 쏴야 한다. 거리, 내부상황, 달리는 속도까지 고려해서 타이밍과 사격지점을 잡아야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한 `인간`이 있을 줄 몰랐다.
하여튼 그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백성범은 다른 놈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창가쪽 자리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놈이 반격하기도 전에, 놈의 뒤통수가 터져나가는 꼴을 볼 수 있었다.
퍼억!
백성범과 몸싸움을 벌이던 놈의 전신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며 시체가 되어버렸다.
우두머리까지 처치한 백성범은 기관실로 향했다. 그의 행색을 보고 기차에 탄 사람들이 알아서 갈라섰다.
***
순식간에 상대를 제거한 이휘는 마지막, 가장 쉬운 상대만 남겨놓고 있었다.
백성범이 기관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에 기관실을 장악한 북측 요원 둘을 저격할 생각이다.
“…역시 무식한 양반이야.”
백성범이 싸우는 것을 모조리 볼 수는 없었지만 대충 알만했다. 교관 시절에도 어마어마한 실력자였지만 지금은 더 강한 체력과 힘을 발휘했다. 만약 이휘를 조금만 더 믿고 의지했어도 다치지 않고 상대를 전부 다 해치웠을지 모른다.
‘지금 붙으면 꼼짝 없이 당하겠군.’
철컥!
재장전을 하며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자신이 젊은 백성범과 근접전을 벌인다면 필패다.
사격술이야 이휘가 좀 더 나을지 모르지만.
무전이 온 것은 그때였다.
-문제가 생겼다.
두 번째 포인트에서 대기하고 있을 저격수다.
“무슨 일이지?”
-이쪽에 저격수가 하나 더 있었다. 다른 포인트도 마찬가지.
이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정보가 누출된 건가?”
-그렇다기보다 북한 첩자들이 대거 움직이니 따라붙은 놈들 같은데. 미국인들이야.
“소속은?”
-알 수 없다. CIA 같기도 하고….
이휘는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다. 북한 간첩들이 움직이기 무섭게 미국인들이 같이 움직였다? 북한과 미국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진 않겠지만, 어쨌든 미국은 남측 내 북측 간첩들의 소재를 전부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하긴, 미국인데.
그리 놀랍진 않다.
“일단 대기.”
-저쪽에서 우릴 보는 시선이 별론데.
“발각당했다고? 총격받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벌써 미국과 정보전이 일어나면 곤란하다. 입맛을 다신 이휘는 기차 기관실에 있는 북측 요원 두 명 중 한 명을 쏘고 나서 재장전하며 대답했다.
“철수해. 여긴 내 선에서 마무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