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8
나는 회귀했다 8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할아버지, 이성환이 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객기냐, 아니면 대단한 포부라도 있는 거냐. 그렇게 묻고 있었지만 휘는 담담하게 제 할 말만 주워 삼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삼, 사십 프로씩 평가절하 되고 있어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시작된 태풍이 한국에 들이닥칠 겁니다.”
“아시아 동향까지!”
할아버지는 기가 막힌지 뇌까렸다.
“근거는?”
“작년 발표에 의하면 GDP의 5퍼센트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맞았어요.”
경상수지 적자.
수입은 늘고 수출이 줄었다는 소리다.
외화자본에 의한 의존도가 올라갔다는 뜻.
허나 이걸론 부족하다.
“그것만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정부에서 그 부분에 대해 사치성 수입재가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어.”
“그건….”
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말이 길어지면 불리하다. 자신이 아는 미래를 증명하기 위해 급조해 온 얕은 지식이 탄로날 수 있다.
초조한 심정을 모르는 할아버지가 날카로운 지적을 덧붙였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매 년 300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 역시 정부발표이고, 믿을만한 정보통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야. 다시 말해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도 우린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순간.
망설이던 휘가 짧게 눈을 빛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돌아갔다고!’
에라, 모르겠다.
정공법 겸 충경요법으로 가자!
“300억으로 해결이 안 되면요?”
“…뭐?”
할아버지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
마음먹은 이상 뜸들일 휘가 아니었다.
“300억 달러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무슨 뜻이지?”
“가정해보세요.”
경제학자도 아닌데 뭐!
휘는 팩트로 밀어붙였다.
“170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가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그 말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300톤짜리 건물 지붕에 1700톤짜리 바위를 얹는다면?
건물이 통째로 무너질 것이다.
즉, 나라경제가 무너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만한 소식을 정부에서 숨긴다고?”
“대선이 코앞이잖아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가릴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눈을 가리면 돼요.”
“…!”
정부가 국민들의 눈을 가린다는 의미.
표정이 돌처럼 굳은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대선이 코앞이라 해도 강둑이 터질 걸 알면서 기다린다고?”
“대선이 끝날 때까지 버텨주길 바라겠죠.”
“그전에 터지면?”
“싸우기 전에 퇴로를 파두는 게 먼저 아닐까요? 설령 강둑이 무너지고 홍수가 모든 걸 집어삼켜도, OECD 가입이니 뭐니 현 정권이 쌓아온 권력과 신뢰가 무너진다 해도 그들은 재물을 취할 겁니다. 홍수가 나서 모든 게 휩쓸려가도 그 땅을 싼 값에 사들이려는 자본가들이 있는 것처럼요.”
“위기를 기회 삼아 제 살 궁리를 해놓았을 거다, 이 말인데….”
“한쪽에서 손해를 봐도 한쪽에서 이득을 보는 포지션을 취한 거죠. 대선까지만 버텨주면 왕관과 보물을 둘 다 얻을 수 있을 테고요.”
이건 뉴스나 주구장창 본다고 예측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이 자신감은 또 뭐란 말인가?
“네가 이런 통찰력이 있으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기대도 하지 않으셨겠죠.”
할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눕기 전까지… 늘 바빴지.”
“돈으로 감사인사를 듣는 거야 언제든 가능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킬 순 없습니다.”
“사과를 바라는 거냐?”
“사과를 받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휘의 역질문에 할아버지가 눈을 빛냈다.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다?”
“허락을 바랍니다.”
“무얼?”
“제가 받을 재산을 큰아버지께 팔 수 있게 해주세요.”
“….”
침묵하던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내 눈이 썩었나 보다. 장차 장자방이 될지도 모르는 녀석을 곁에 두고도 몰랐다니.”
“아니면 제가 숨겼거나요.”
“숨겨? 어째서?”
“정적이 많으면 단명할 확률이 오르죠. 저는 골육상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요.”
“그랬으면 끝까지 바보가 됐어야지. 아니면 왕이 되거나.”
“바보도, 왕관도 싫습니다. 지금이 그냥 저로 살 수 있는 기회고요.”
“하… 돈 싫다는 놈은 봤어도 왕좌를 제 발로 걷어차는 놈은 처음 봤다.”
“허락해주세요.”
제발요, 제발요, 제발요! 말이 길어지기 전에 눈으로 애원해봤지만…
할아버지는 씨익 웃었다.
정말 다 죽어간다는 노인네 맞아?
“그래서 더 허락할 수 없다. 너 같은 녀석이 필요해.”
“왜요?”
대체 왜!
“네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각계각층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어. 그들이 내게 정보를 준다. 그런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재난은 없어. 하지만 네 나이에 정보도 없이 그만한 통찰력을 가지기란 쉽지 않지. 내 그늘을 벗어나려 하지 마라.”
이러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밖에 안 된다.
닥치고 있었던 것만 못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이휘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
미래 지식까지 배팅했는데 목적도 달성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끝을 봐야 한다.
“그 정보통을 믿으세요?”
“그들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한 두 곳에서 얻은 정보도 아니고.”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인맥을 가졌는지.
얼마나 대단한 고급정보들을 쓸어 담고 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부터 시작된 외환위기에 왜 수 많은 대기업들이 줄도산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위기를 감지했을 땐 이미 늦었기 때문에 할아버지 같은 기업인들에게 숨겼을 거예요. 정보를 손에 쥔 관련자들끼리 극비니 뭐니 서로 단도리를 쳤겠죠.”
할아버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표정이었다.
“…이유는?”
“몸집이 크면 움직임이 느려지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들은 개인이라 대응할 수 있지만 기업은 대응할 수 없어요.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기업들이 위기를 감지하고 통째로 움직이면 경제가 출렁거립니다. 국민들도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개인이 움직이면 아무도 모르죠. 그러니 말하지 않는 겁니다. 어차피 막는다고 막아지는 흐름이 아니란 걸 아니까요.”
과연 할아버지 표정이 납덩이를 씹어삼킨 것처럼 무겁게 변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기업이 살아남으면? 살아남은 기업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누굴 어떻게 하게요? 나중 돼서 몰랐다고 잡아떼면 그만입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함으로서 발전하는 거잖아요. 그건 선기능이고, 이런 위기에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도생하는 거죠.”
이쯤 되자 할아버지의 혈색이 창백해졌다. 병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까진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는데…
“제가 한 발 떨어져 있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면 할아버지의 피난처가 되어 드릴게요.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저를 조커로 써주세요.”
할아버지는 얼마나 기가 막힌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꼭 내가 망하길 바라는 것 같구나! 고약한 놈 같으니.”
“그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 제 추측이 틀렸기를요.”
이건 진심이다.
틀리지 않을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문제지.
그 순간 맞잡은 할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나는 평생을 장사꾼으로 살아왔다. 남들은 사업가니 기업인이니 떠받들어주지만 내 본질은 장사꾼이야. 장사꾼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네 말을 들어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
“말씀하세요.”
“해결책을 내놓고 가라.”
“해결책이요?”
이휘는 난처했다.
그런 건 경제자문위원이나 뭐, 그런 사람한테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을 하다 할아버지의 지혜로운 눈을 보고 알았다.
어차피 판단은 이 양반이 하는 거다.
그래서 아는 대로 말했다.
“이런 시점에 보여지는 당기순이익은 큰 의미가 없어요. 실질적인 현금흐름을 주시하면서 마이너스 된 곳을 손절하고 버텨야 합니다. 그렇게 웅크린 채 버티기만 하면 그 후에는 무주공산이에요. 그러니 위기가 기회가 될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버티세요.”
“하이에나가 돼라?”
“네. 그리고…”
“그리고?”
밀어붙일 땐 확실히 밀어붙어야 한다.
“김상철 대표를 너무 믿지 마세요. 그 사람은 배신자니까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놈도 속인 거냐? 바보인 척?”
“예?”
알고 있다!
배신자의 존재를.
“알고 계셨어요?”
이휘는 진심으로 놀랐다.
할아버지가 쓰게 웃었다.
“네 녀석이 놀라면 어째? 이 할애비는 오늘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그런데 왜….”
대체 왜 그 새끼를 그냥 둔 거지?
침묵하던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김 변은 탐욕스러운 자다.”
“…?”
“하지만 모두가 탐욕스럽지. 그중에 가장 욕심 많은 놈이 김 변이고. 그렇기에 널 잘 돌볼 거라고 여겼다. 탐욕만큼 확실한 동기는 없으니까, 내가 살아있는 이상 누구보다 성의 있게 내 혈육을 보살피겠거니 생각했다.”
“아아!”
이 노인네는 보통이 아니다.
정말이다.
이런 양반이 왜 정작 자기 수명은 알지 못한 걸까?
평생을 적한테 둘러싸여서 고독하게 외줄을 타온 사람이.
그 사이 이휘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으마. 네 부탁을 들어줄 테니 하나만 약속해다오.”
“조건인가요?”
“부탁이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단다. 너도 내 혈육이지만 네 큰아버지들, 그리고 그 혈육들도 모두 나의 자손들이다.”
“….”
“그들과 대면할 일이 생기거든 복수만은 하지 말아다오.”
“복수요?”
이휘가 피식 웃었다.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걸로 됐다.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들에게 맡긴 사업체 중 일부를 손절해야 할 것이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이는 할아버지에게도 가혹한 일이었다.
침묵하던 이휘가 말했다.
“그 분들은 제게 복수할 가치가 없는 상대입니다.”
저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은요.
뒷말은 생략했지만 할아버지는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래… 이제 좀 피곤하구나.”
할아버지가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고 이휘의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이만 나가봐라. 자세한 얘긴 나중에… 네게 갈 주식과 사업체는 동일하다. 김 변의 후견인 자격도 해제할 테니 알아서 쓰도록 해라.”
“감사해요, 할아버지.”
이휘는 손을 꽉 잡아주곤 병실을 나섰다.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할 홍역이다.
유능한 경영자도, 경제학자도 아닌 자신이 재앙에 직면한 할아버지의 회사를 살려줄 수는 없다.
그건 오롯이 할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리 알게 됐으니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겠지.’
중요한 것은 자신이었다.
마누라도 되찾아야 하고 여러 가지 것들을 티 안 나게 바꾸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 지장이 없도록.
그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상철이 눈에 들어왔다.
참, 낯짝도 두꺼운 새끼다.
언제 응급실에 다녀왔는지 뺨에 거즈를 붙인 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물었다.
“얘기는 잘 됐고?”
이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보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은 내 임의로 처리한다.”
“….”
“당신은 돌아가.”
“무슨 수로 처리하려고 그러는 거냐. 한두 푼이 아니다. 네가 그만한 금액을 처리할 수는….”
“후우.”
이휘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기분이 별로 안 좋거든. 이번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지도 몰라.”
“내가 로펌 대표인 건 알거고. 네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하는 얘기다만 난 여전히 너의 법정후견인이다. 후견인 변경 건으로 소송을 하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몰라. 내게 이런 짓을 한 이상 더는 예의를 갖추지 못할 것 같구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휘두르는 건 동전 따위가 아닐 거야.”
도리어 협박이라니.
“후견인을 지정하신 할아버지가 개입하신다면?”
김상철은 잠깐 동요하는 듯했지만 곧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
“난 평생 회장님을 위해 살아왔다.”
“그래서?”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일에 끌어들일 분이 아니지. 회장님은 날 신뢰하신다.”
“그래?”
“만약 그런 분이라면 지금껏 관계를 지켜오지도 못했을 거야. 수많은 이들이 나와 회장님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 휘야, 너도 알고 있잖니. 그래서 쓸 데 없는 말을 아껴둔 거고.”
“내가 당신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생각해?”
“네가 무슨 말을 했다면 넌 땡전 한 푼도 못 받았겠지.”
이휘는 피식 웃었다.
합리적 의심이다.
전생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능력 없는 이휘보단 적이라도 능력이 출중한 김상철을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휘가 대답이 없자 김상철이 말했다.
“난 물러서지 않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걸 갖지 못했던 적이 없거든.”
나름 비장한 선포지만.
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다면 잘 됐네. 처음 원하는 걸 못 가질 테니까.”
“뭐…? 이런 건방진….”
“네가 가진 것도 다 빼앗을 거야.”
“…되도 않는 협박할 생각일랑 마라.”
“어쨌든 선택한 것 같으니 나도 곧 답을 해주지.”
이휘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기회를 줬던 건 당신이 날 보살핀 세월을 셈한 거였어. 이젠 좀 후련하게 다룰 수 있게 됐군.”
그는 김상철을 지나쳐서 병원을 나섰다. 밖에는 뜻밖에 정태수가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네가 여기 있다고 해서.”
“누가?”
“우리 아버지가.”
“계산은 끝난 걸로 아는데.”
“몰라. 내가 뭘 알겠냐.”
정태수가 징그럽게 씩 웃었다.
“…우리 아버지가 널 좀 보자시네. 시커먼 어른들 보면 혹시 네 기분이 상할까봐 날 보내신 것 같다.”
“네 생각이야?”
“아니. 아버지가 공손하게 모셔오라고 하셨거든. 내가 선배인데.”
“선배대접 해줘?”
“됐다. 선배대접은 무슨….”
피식 웃은 정태수가 시트 뒷부분을 툭툭 두드렸다.
“타라. 중요한 얘긴 것 같으니까.”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전화 좀 하자.”
정태수의 표정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그러나 이휘는 궁금증을 해소해주지 않고 휘적휘적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가버린 큰아버지 비서실이었다.
“이휘입니다.”
비서도 이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잠시 확인 작업을 거친 비서가 큰아버지에게 연결해주었다.
-나다. 네가 무슨 일이냐?
무뚝뚝한 음성.
수화기 너머까지 냉기가 철철 흐른다.
피식 웃은 이휘가 대답했다.
“재산은 차치하고, 오늘 둘째 큰아버지와 동일한 지분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대답이 없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둘째 큰아버지의 외가 쪽을 고려하면 불리한 입장 아니세요?”
-회장님이 병석에 계신 이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
엄한 꾸짖음이 깃든 음성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직 전화를 끊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제가 받은 지분을 백부님께 매각하겠습니다. 그거면 둘째 큰아버지와 균형을 맞출 수 있으실 거예요. 가격은 제가 합리적인 선에서 책정합니다.”
-…!
수화기 뒤편의 동요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잠시 침묵하던 큰 아버지가 물었다.
-진심이냐?
“네. 할아버지께도 허락을 받았어요. 제 의사가 그렇다면 저 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한테 맡기는 것보단 백부님께 맡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필요 없지.
큰아버지는 딱 그런 의도로 받아들였다. 얼마나 기쁘면 평소 답지 않은 칭찬까지 했다.
-네 아버지를 닮아서 욕심 없고 현명하구나.
“하하, 사실 저는 욕심이 많아서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심기가 불편한지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이휘는 개의치 않았다.
“어려운 건 아니고요. 제가 받은 지분 외 재산을 대신 처분해주시는 것. 김상철 변호사의 후견인 신분을 벗기는 데 도움을 주시는 것. 두 가집니다.”
-김 변에게서 후견인 신분을 벗겨 달라?
“네.”
-협상결렬이다. 그 양반은 회장님의 최측근이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충고 하나 하건대, 너무 욕심 내지 마라.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김 변을 믿고…
“아시잖아요, 그 사람 박쥐인거. 할아버지도 동의하신 일이에요. 저한테 사가시면 깔끔합니다. 현금 몇 푼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정성그룹의 후계자리보다 중요하진 않잖아요.”
-헛소리.
“김 변이 궁지에 몰리면 로펌의 힘을 이용할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힘을 실어주세요.”
-…!
그제야 헛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큰아버지가 물었다.
-진행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빙그레 미소 지은 이휘가 대답했다.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