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84
나는 회귀했다 84
나타샤는 신기한 눈으로 청와대 접객실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반면 이휘는 제 집 안방처럼 태연했다. 대부분 밀실에서 민정수석을 만나다 보니 자주 와보진 못했지만 그를 기다리면서 간간이 들어와 봤다.
그리고 곧이어 민정수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업무가 밀려서.”
“아닙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이휘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눴다.
만면에 미소 띤 민정수석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빈이 왔는데 안사람인 저라도 나서는 게 옳습니다.”
“대통령님까지 오실 일은 아니죠. 사실 민정수석께서 직접 나오신 것도 부담됩니다.”
이휘가 빙그레 웃자 민정수석이 여우 같이 머리를 굴렸다.
“제게 따로 전해주실 말씀도 있으시겠지요.”
“네. 오늘은… 여기서 얘기해도 될 것 같군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나타샤가 들어도 될 이야기밖에 없다.
나타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정수석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 분은…?”
민정수석은 그녀의 미모에 놀라서 눈을 치떴지만 이내 감정을 감췄다. 그리곤 이휘를 보며 조심스레 이어 물었다.
“가셨던 일과 관계가 있는 분이십니까?”
“없습니다.”
“…?”
민정수석이 놀란 눈을 치켜뜨자, 나타샤가 슬쩍 끼어들었다.
“약혼자에요?”
“그런…!”
민정수석이 오버했다.
“이렇게 기쁠 때가! 우, 우선 축하합니다. 그럼 약혼자 분을 보여주시기 위해….”
“수석님.”
“예?”
“아닙니다. 농담하는 거예요.”
“아….”
“좀 짓궂어서요.”
“그럼 관계가…?”
“동업자입니다.”
“동업자요?”
“예. 저희 회사가 러시아와 관련된 무역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 아실 겁니다.”
“물론입니다.”
“해서, 그와 관련한 재원을 찾은 것뿐입니다.”
“아… 너무 아름다우셔서 오해했습니다.”
나타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생긋 웃었다.
“감사하미다.”
어설픈 한국말에 민정수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젊거나 늙거나 예쁜 여자가 애교를 부리면 살살 녹는 게 남자다. 물론 이휘도 예외는 아니다. 스스로의 모습에 쓰게 웃은 이휘가 대답했다.
민정수석이 물었다.
“제가 도울 점을 말씀해주시면 얼마든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관련서류까지 정확히 알진 못했기에 이휘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화가 순탄하게 풀렸다.
“관련 부서에 전화 넣겠습니다.”
이래서 힘이 좋은 거다.
간단히 정리한 민정수석이 물었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는 나타샤가 영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이휘는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북한 관련된 일은 `회사`쪽에서 보고 받으셨겠죠?”
회사는 UDU를 가리키는 것이다.
민저수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들었습니다.”
“북한에 공장을 차린 러시아 거래처를 지속적인 정보망으로 이용할 생각입니다.”
“아!”
알마즈는 사실 이휘의 것이었지만 민정수석은 그것까진 알지 못했다.
그저 거래처라고 생각할 뿐.
“그럼 러시아 무기회사, 그러니까 거래처를 통해 북한 쪽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들도 그걸 승낙했고요?”
역시 한 마디면 삼천리다. 하지만 이휘는 확실히 할 점은 확실히 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정부에 제공한다면 저희는 무슨 혜택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역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군요.”
“정보에 대한 진위여부 확인은 정부에서 하겠지만 이번 일에 투입된 북파 공작원들 중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즉, 그들에 관한 정보도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는 뜻이죠. 한 가지 더. 배신자가 나왔다는 것은 현재 북측 정보를 얻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민정수석은 얼른 정신을 차리며 다시 물었다.
“배신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국정원 측에 인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요.”
“….”
“북측에서 파견한 공작원에게 당했습니다.”
민정수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 쪽 요원이 배신한 거라면 북측 요원이 보기에는 아군이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공격했다는 겁니까?”
“북측 요원들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몰랐던 눈치였습니다. 그들의 표적은 우리였고, 일이 틀어진 거죠. 한 마디로 우리 측에 있는 북측 공작원들도 본국과 정보교류가 매끄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에 무기회사 지사를 설립한 러시아가 우릴 돕는다면 큰 힘이 될 거란 얘긴데….”
“정확합니다. 배신했던 자들을 함께 파견된 요원들이 확인했으니 국정원에서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이휘 씨에 대해 오해하거나 문책할 일도 없겠군요.”
“예.”
“일처리 정말 깔끔하십니다.”
민정수석은 완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진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믿는 눈치였다. 그가 물었다.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제공하시는 정보의 진위여부는 우리 쪽에서 확인할 테니 정보 값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죠.”
“북한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잡혔습니다.”
이휘는 슬쩍 말을 꺼냈다. 사실 아직 미심쩍은 움직임이 있는지까진 모른다. 다만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수상한 움직임이라니요?”
민정수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자 이휘가 미래에서 봤던 대로 대답했다.
“북에서 경비정을 파견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민정수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는 나지막이 목소리를 낮췄다.
“9월, 11월 두 번에 걸쳐 도발이 있었습니다. 철원군 DMZ서 MDL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경하려는 자들을 아군이 경고사격 조취했고, 11월에는 파주에서도 아군 소초에 기관총 2, 3발을 발사했습니다.”
이휘 역시 대충 알고 있었다. 그게 9월, 11월 일이었는지는 몰랐지만.
“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라고요? 다 계획된 거라는 뜻입니까?”
“정확한 건 아니지만 사회적 불안감을 조장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관심도 없어요.”
“저들이 보기에는 아니겠죠. 그리고 국민들은 어떨지 몰라도 관계자들은 난처해집니다. 특히 정부 입장에서는요.”
“….”
“반격하기도 뭐하고, 내버려두면 그것대로 지탄의 대상이 될 테고.”
“매번 겪어왔던 일입니다. 북측도 그걸 이용하고 있고요. 다시 한 번 도발이 일어나면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 `방법`이 제가 부탁드릴 부분입니다.”
“어떤…?”
이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질질 끌려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연평도 인근에서 도발이 있을 겁니다.”
역사로 치면 2002년 `제2 연평해전`이다. 월드컵으로 한창인 과정에서 우리 측 군인들이 죽거나 다친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울 때 발생할 사건이다. 전생에, 정부에선 소요를 일으키지 않고 쉬쉬했었다.
하지만 이휘는 이번에는 다른 답안을 제시했다.
“격침시키십시오.”
“…확실한 정보입니까?”
“네. 미리 지시를 내려야할 겁니다. 무장도 단단히 하고요. 총격이 닿는 거리까지 적함이 간격을 좁히면 우리 쪽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겁니다.”
애초에 북한군은 실전에 대비한 부대다. 반대로 남측 부대는 지키는 쪽. 먼 거리에서 포로 싸우면 상대가 안 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백병전을 벌인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생에도 우리 측 피해가 컸던 거고. 엉망인 보고체계도 한 몫했다.
해서 이휘는 다 가지 패인을 모두 없애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민정수석은 곧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 해도 곤란한 면이 많습니다. 정보 출처는 국정원으로 밝힌다 쳐도… 수비력을 강건하게 하는 일에 미국 눈치를 볼 정도는 아니지만 국방부, 해군과 상의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은 월드컵 시즌이에요. 대응사격을 하는 순간 시끄러워질 겁니다. 위기감이 고조되면 월드컵 기간에 국내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월드컵은 경제적인 이득을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예요.”
민정수석은 이쪽에 신경 쓰는 쪽이 맞다. 하지만 이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공연히 위기감을 조성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도 일단은 숨길 생각이시라면, 확실히 승리를 거둔 후에 숨기세요. 나중에 밝혀져도 떳떳할 수 있게. 그리고….”
“…?”
“북한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쪽에서 다시는 그딴 짓을 벌이지 못하게 처리하시죠.”
“어떻게 말입니까?”
“북한 공작원들을 매수했습니다.”
민정수석이 눈을 크게 치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공작원들은 아무 것도 보고하지 못할 겁니다. 대외적으로는 `못한` 거지만, 사실상 안하는 거죠. 앞으로도 계속 북한을 주시해줄 겁니다. 내외적으로 북한의 정보를 알아내는 거죠.”
“…그렇다고 치고, 제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이유는 이휘 씨도 얻는 게 있어서일 텐데, 그게 뭡니까?”
“애국심으로 봐주시면 안 되나요?”
“그 정도로 움직일 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휘가 빙그레 웃었다.
“북한을 흔들면 좀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려 할 겁니다. 어디서 구할까요?”
“러시아?”
“맞아요. 우리 거래처.”
“아!”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는 걸 이미 아실 겁니다.”
“물론입니다. 우리한테 미군 병력이 주둔해 있는 이상.”
“그럼 뭐가 두렵습니까?”
“….”
두 사람이 한참 말이 없자 눈치를 보던 나타샤가 물었다.
“이런 얘기 제 앞에서 막 하셔도 돼요?”
민정수석도 같은 생각인지 이휘를 응시했다. 어차피 그가 승인하지 않으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계획이다. 그래서 잠자코 있었던 건데, 이휘가 대답했다.
“해도 됩니다. 나타샤는 우리 거래처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정부에서 그녀의 사업을 도와주는 만큼, 우리에게 힘어 되어줄 겁니다.”
나타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훅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요.”
그녀는 `그리고 어차피 알마즈는 당신 거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민정수석이 전혀 모르는 눈치였기에.
‘나한테 화살을 돌리는 것 같은데?’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빽이 러시아 대통령인데 아무리 고위직이라도 한국 관료 눈치나 볼 게 뭐 있겠는가?
민정수석은 결국 힘겹게 입을 뗐다.
“미국 측에서 가만히 지켜볼지 모르겠습니다.”
“정보를 누락시키죠.”
“어떻게….”
민정수석은 묻다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를 똑바로 마주본 이휘가 씨익 웃었다.
“CIA에 저희 쪽 정보원이 있습니다. 지금껏 제가 너무 많은 걸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
민정수석은 너무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어쩐지, 너무 많은 정보를 안다고 여겼다. 그런데 출처가 CIA였을 줄이야!
“…왜 지금껏 밝히지 않던 걸 밝히시는 겁니까?”
“서로에게 신뢰가 쌓였다고 해두죠. 그리고 그만한 신뢰쯤은 있어야 요구할 수 있는 걸 요구하고 있으니까 말씀드린 겁니다.”
이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보에 혼선을 줄 겁니다. 마침 월드컵 시즌이니 더 수월하겠죠. 우리가 대응사격을 해서 상대 경비정을 격침시키는 사이, 우린 북한에 암묵적인 타격을 가할 겁니다. 우리 북파요원들을 무기회사를 통해 러시아로 빼돌린 것만 봐도 아시겠지만, 우린 놈들을 흔들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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