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85
나는 회귀했다 85
“후우!”
민정수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그가 뭔가 각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기왕 죄 짓는 거,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죄 짓죠.”
“죄요?”
“지금 이렇게 이휘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제게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민정수석이 자못 불안한 듯 덧붙였다.
“한데 정말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다룰 겁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나요.”
“되게 만들어야죠. 저는 집안에 제사가 있을 때도 `건강하게 해주세요` 기도하지, `올해에는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해주세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우리 하기 나름이란 거죠.”
이휘의 말에 민정수석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언젠가는 북한과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숙제를 단순히 정치적 우세를 점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이번 정부는 국민들의 크나큰 지지를 받을 것이다. 단, 민생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뭐든 지원하겠습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이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민정수석이 쓴 미소를 그렸다. 대한민국 누구라도 자신이 지원을 약속하면 세상 다 얻은 것마냥 납작 엎드릴 텐데 눈앞의 젊은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하고자 하고 요구하는 모든 일들이 정부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목적과 닿아있었다.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저희가 뭘 지원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말씀드렸잖아요. 대응사격.”
민정수석이 눈을 치켜떴다.
“그거면 되는 겁니까?”
“이런 일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번 국정원 소속 북파공작원들이 배신한 것도 미리 어느 정도 대비하지 않았다면 눈 뜨고 당할 뻔했어요.”
“하긴… 자칫 오류가 생겨서 실패하는 날에는 우리 모두가 죽어나갈 겁니다.”
이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에는 자신과 기업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
이휘는 나타샤와 함께 강남역에 위치한 파트리아 펀드로 향했다.
나타샤는 청와대를 가놓고서도 신기하게 생각할 뿐, 무슨 국립박물관 다녀온 사람처럼 크게 감격하지 않았다. 이게 살아온 환경의 차이인가?
그때 그녀가 물었다.
“이제 전 뭘 하면 돼요?”
“오늘 할 일은 업무파악입니다.”
“업무파악이요?”
나타샤와 함께 다니는 것이 재밌어서는 아니다. 재미는 있지만, 이휘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죠.”
“업무파악 치곤 스케일이 너무 큰데….”
나타샤가 생긋 웃었다.
“기대돼요. 지금 가는 곳에선 또 어떤 걸 보여주실지.”
“놀러 왔어요?”
이휘가 짐짓 엄하게 묻자 나타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장난 좀 쳐보려 한 건데 딱 장난만큼만 통한다. 이휘가 무슨 일들을 해왔는지 알면 표정만 구겨도 무서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래서 이휘는 나타샤가 더 편 했다.
“우리도 북한과 관계에 따라 움직일 준비를 해야 돼요. 그 일로 회사에 가는 겁니다.”
“계획이 뭔데요?”
“협박이요.”
“협박…?”
“네.”
“그런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북한이 협박한다고 들을 나라면 진즉 바뀌었겠죠.”
“아직 제대로 된 협박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평화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어요?”
“그게 통했으면 진즉 바뀌었겠죠.”
“그건 그렇지만….”
반역자들을 가혹하게 처리한 러시아 대통령 딸답지 않다.
블라디미르 총리나 알렉세이 같은 인간들만 봐서 그런 건가? 그러고 보면 머리 좀 쓰고 평소에 유순한 알란도 유사시에는 누구보다 잔혹성을 드러낸다.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한 둘만 겪고 국민성 자체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편협한 짓이기에.
“북한은 국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차이가 있다면 북한은 독재체제에요. 국익이 개인의 이익과 이어집니다. 심지어 대항하는 세력마저도 없죠. 휘게 만들어서 손잡을 대상이 아니라, 꺾어서 부러뜨려야할 대상입니다.”
“…다른 이야길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오래 떨어져 있었어도 같은 뿌리를 가진 나라기도 하고요.”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북한 국민들이 미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저는 북한 지도부를 얘기하는 거고, 이상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보는 겁니다.”
나타샤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당신이 죽을까봐 그래요. 왜 그렇게 무리해요?”
“무리하는 게 아니라….”
이휘가 창밖을 훑었다.
“제가 잘하는 걸 하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번 것은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지식과 전문가들을 활용해 막대한 자본을 긁어모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를 누리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돈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부자들이 다음 단계로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으려 하는 거고.
이건 지금의 자신이 전생에서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놓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 예로 처음 과거로 왔을 땐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벌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막대한 부가 축적되는 지금은 이 돈으로 무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욕심은 끝이 없군.’
특히 젊은 나이에 성공한 이들은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 누군가는 도박에, 누군가는 마약에, 누군가는 여자에 빠지기도 한다. 세 가지 다 하는 경우도 다반사고. 하지만 그런 `자극`은 점점 더 강한 갈증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휘는 마더테레사효과-`봉사 혹은 나눔을 실천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중독되지 않는 자극과 욕망을 쫓는 것뿐이다.
그사이 차를 몰던 알란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가죠.”
이휘와 나타샤, 알란이 나란히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어느새 사무실에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근무환경은 최상. 어떤 회사도 제공하지 못하는 근무 여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연 매출의 10퍼센트를 골고루 나눠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필요시 자택근무나 자율근무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파트리아 펀드와 연관된 사업체들의 모든 편의 및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복지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회사가 유지되는 것은, 전 직원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그들을 해고하는 것이 가능했다. 해고기준은 명확하다. 사내 분위기를 흐리거나 업무수행에 차질을 빗을 시 해고.
다행히, 이토록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해고를 감수하고 일과 생활을 게으르게 할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모든 결정권자는 방준식과 하진성이기에 그들이 실질적으로 회사에 미칠 손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껏 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 이휘가 나타샤, 알란과 함께 회사에 나타나자 직원들이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휘에게서 알란으로, 알란에서 나타샤로 향했다.
나타샤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길쭉한 신장에서 나오는 아우라와 신이 빗은 듯한 몸매, 작고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코와 반듯한 이마,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적당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서있는 그대로 멈춰있던 직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흘리다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와, 씨….”
“진짜 우리 대표님은 뭐하시는 분이지?”
“하루만이라도 대표님처럼 살아보고 싶다.”
뭐, 이런 이야기들은 직원들 간에 너무 자주 나오는 말들이다. 회사에 만족하고 이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해서 이휘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투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
사람 자체가 원래 그런 동물인 것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이휘는 자기 쪽에서 직원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곤 대표실로 들어섰다.
널찍한 대표실에 도착하니 세 사람도 평화를 찾았다. 이휘는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나타샤와 알란의 겉옷도 받아서 걸어주었다.
“고마워요.”
나타샤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원래 자주 쓰고 다녔는데, 꼭 이렇게 의식하면 답답하더라고요.”
“하하하.”
귀엽게 투덜거리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던 알란이 어색하게 입을 다물며 자리에 앉았다. 그를 향해 빙긋 웃은 나타샤가 자리에 앉자, 이휘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방준수, 하진성이 들어왔다.
“왜 오면 온다고 얘기하지 않고….”
그 말을 하다 그 자리에 덜컥 굳어버린다. 하진성도 뒤따라오다가 서류를 와르르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타샤를 본 것이다.
“이런 젠장,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네 주위에는 이런 미녀들만 꼬여?”
함께 본 여자라곤 두 명밖에 없으면서 무슨.
이휘는 시덥지 않은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짓을 했다.
“앉아봐. 급히 할 얘기가 좀 있어.”
두 사람이 떨떠름하게 자리에 앉았다. 나타샤의 시선을 피하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사람이 압도적인 미모를 갖추면 저렇게 사람들이 보는 것도 조심스러워지는구나 싶다.
‘나도 그랬나?’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던 이휘가 본론을 꺼냈다.
“빨리 끝내자. 곧 북한과 접전이 있을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립니까?”
두 사람이 놀랐다. 그러다, 자기들만 놀랐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방준수가 말했다.
“접전이라니? 전쟁이라도 난다는 거야?”
“전쟁은 아니고 가벼운 도발. 우리 쪽에서 반격할 거고. 월드컵 기간이니까 시끄러워지진 않을 거야. 단, 그때 우린 북으로 넘어가서 작전을 펼칠 거야.”
“러시아더니, 이젠 북한이야?”
“러시아 때처럼 시끄럽지는 않을 거고. 아무튼, 그때 맞춰서 우리 회사도 움직여줘야 돼.”
“어떻게?”
“북한 관련 주식을 잔뜩 사놔.”
“그렇다고 통일한다거나 김 씨 일가를 무너뜨리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이휘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방준수가 눈을 부릅떴다.
“설마 진짜?”
“타격 받을 거야. 북한은 개방하게 될 거고.”
“개방을 하면….”
“관련 주식이 오르겠지.”
“그게 다야?”
방준수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그것만으로 이 정도 규모의 일을 벌일 이휘가 아니니까. 아무리 많은 돈을 묶어놓고 많은 돈을 먹어도,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서라면 사이즈가 너무 크다.
“문만 열리면 손 먼저 집어넣고, 몸통까지 밀어 넣으면 돼. 우리가 들어가서 자본력으로 북한을 전복시킨다. 상상만 해봤지 실현불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잖아?”
그 말에 하진성이 이휘와 방준수를 번갈아 보더니 떨떠름하게 물었다.
“설마 진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그렇지.”
방준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개방만 시킬 수 있다면 불가능하진 않아. 예전이라면 모를까, 현재 우리 회사의 규모라면. 그리고 우리 회사가 가진 힘을 총동원한다면. 문제는 그 `개방`이지. 북한을 어떻게 개방시켜? 방법 있어?”
러시아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막는 일도 사이즈가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북한을 개방시키는 것은 그 열 배, 백 배 규모가 큰 건수다.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