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87
나는 회귀했다 87
연평도 근해.
참수리 편대에 비상이 걸렸다.
군 생활 중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실전 상황이, 하필 서해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소령 강영하는 전방 NLL 1.1킬로 지점을 뚫고 접근하는 북한 경비정 산곶 684, 388 두 척을 응시했다.
물살이 갈라지며 심박수도 빨라진다.
그리고, 무전이 들어왔다.
-232 편대장이다. 교전수칙대로 대응한다. 우리 358호정이 선두를 맡는다.
“357호. 저희가 등산곶 684를 맡겠습니다.”
교전수칙대로면 차단기동을 해야 한다. 발포하지 않고 북한 경비정의 진로를 차단해서 적함을 압박, 쫓아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이희성 중위가 제기했다.
“붙으면 위험합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교전수칙이 그러한 것을.
“그럼 전쟁이라도 일으킬까?”
“….”
신경질적인 대답에 이희성 중위가 표정을 굳혔다.
“…쏘지 않길 바라야겠군요.”
강영하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답답하다. 적함의 거리를 고려했을 때 차단기동을 펼치려면 500미터 내외로 접근해야 한다. 그 의미는, 85밀리 전차포로 철갑탄을 쏴도 적중될 수 있는 거리까지 붙어야 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무기의 우세함이 사라진다.
그야말로 적이 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사이에도 북한 경비정 2척과 남한 해군의 232 편대 소속 고속정 4척이 서로 물살을 밀어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순간.
-편대장이다.
다시 무전이 날아와 꽂혔다.
-상황이 바뀌었다. 즉시 경고사격을 실시한다.
극적인 변화에 강영하 소령, 이희성 중위는 소름이 돋았다. 이희성 중위가 즉시 명령을 하달하고 고속정 확성기를 통해 방송이 나갔다.
적함이 계속 접근하자, 강영하 소령은 거리가 더 가까워지기 전에 경고사격을 지시했다.
펑! 펑! 펑! 펑! 펑! 펑!
묵직한 포 소리와 함께 함미에 위치한 20밀리 발칸포가 적함 주위로 발사됐다.
그럼에도 적함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무전이 날아왔다.
-우회해서 대기한다.
“우회? 대기?”
이희성 중위였다. 그는 강영하 소령에게 고개를 돌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놓치면 안 됩니다. 교전 승인을 받아주십시오.”
“그게 아니야.”
강영하 소령이 먼 바다를 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다른 데 시선 돌릴 여유가 있단 말인가?
이희성 중위가 그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역시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해안선에서 3천 톤 급 구축함, DDH-972 을지문덕함이 등장한 것이다.
북한의 NLL 침범을 미리 예측하지 않은 이상 절대 이곳에 있을 수 없는 기함이었다.
“…!”
“이 중위. 긴장 늦추지 말고 대비해. 만약에, 정말 만약에 교전이 벌어진다면 확전될 수 있다.”
확전.
전투가 확대된다는 뜻이다.
이희성 중위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 잡았습니다, 이 개에새끼들!”
이를 빠드득 가는 게, 전투가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목숨 내놓고 싸울 것 같다.
쓰게 웃은 강영하 소령은 을지문덕함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
“설마 쏠 리가 없죠. 저걸 봤으니 쟤들 식겁해서 다 도망갈 겁니다. 하하하. 레이더 하나 없는 새끼들.”
이희성 중위가 대수롭지 않게 확신하는 순간.
저 멀리 보이는 을지문덕함에서 두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우우우!
대함 미사일이, 발사된다.
“AGM-84 하푼!”
AGM-84 하푼.
을지문덕함에 탑재된 대함 유도 대함미사일이다. 미사일 자체에 소형 레이다를 능동 레이다를 탑재해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두 사람도 이런 실전상황에서, 직접 눈앞에서 위력을 실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북한 고속정 한 척에 구멍이 뚫렸다. 뿐만 아니라 뭘 실었는지 연쇄폭발이 일어나며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머지 한 척이 급히 선로를 틀며 도망가려 했지만, 뒤따른 하푼 미사일 한 발에 선미가 격추당하고 말았다.
콰아아앙!
“이게 무슨….”
이희성 중위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강영하 소령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이 넋을 놓고 있는 와중에 무전이 날아들었다.
-232편대는 무력화된 적함에 접근, NLL에 무단 침투한 고속정 두 척을 나포한다.
나포?
공격승인만 내려진다면 지금 타고 있는 참수리호도 40미리 클립형 포, 20미리 ㅋ발칸 두 개로 적 경비정쯤은 걸레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천 톤짜리 기함을 보낸 것은 그 후의 상황까지 대비한다는 뜻.
강영하 소령이 무전기를 주워들고 짧게 말했다.
“수신.”
무전을 끄자 이희성 중위가 정신을 퍼뜩 차리며 외쳤다.
“북한에서 바로 대응할 텐데!”
“그랬으면….”
강영하 소령이 덧붙였다.
“진즉 미사일을 쐈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 왜 대응하지 않는 겁니까?”
“지금 우리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우린 명령에 따르면 되는 거고.”
대답한 강영하 소령은 묵묵히 북상하고 있는 을지문덕함을 바라봤다.
설마 저러다 NLL를 넘어 북한을 공격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계선에 근접해 있었다.
그런 그때 다시 무전이 들어왔다.
-북한 지상기지의 스틱스 대함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오산공군기지에서 F-4, F-5가 대기 중이라는 소식이다. 대함미사일 발사 즉시 을지문덕함을 필두로 232편대가 호위해서 북상한다. 적함 나포 후 대기하도록.
***
북한이 제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오지 탄광, 그 이면 깊숙이 숨겨진 탄도미사일 기지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반 전체가 흔들리는 듯 한 폭발음!
비록 먼 거리에서 폭탄이 터졌지만, 지하로 연결된 땅굴 안에서는 서로 여파를 느낄 수 있었다.
부스스스스….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쏟아진다. A팀에서 신호탄을 터뜨린 셈. 이휘는 알렉세이와 알란, 그리고 러시아 정부에서 지원해준 최정예 요원들을 바라보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대원들이 일렬로 경계를 유지한 채 이동한다. 이휘는 딱 봐도 두꺼운 철문 앞에 서있는 보초 둘을 향해 소음기가 장착된 기관단총을 점사했다.
타닥!
타닥!
무릎에 한 발, 머리에 한 발씩 맞추자 몸이 목각인형처럼 쓰러진다.
소음을 최소화해서 암살한 이휘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사격솜씨에 눈을 치켜떴던 요원들이 뒤따랐다.
그그그그그….
철문에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진동했다. 문틈으로 들어선 요원들이 바로 서로의 사각지대를 케어해주며 은폐, 엄폐물에 숨어 사주경계를 실시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이휘 역시 숨어서 수신호를 보내자, 몸을 숨기고 있던 요원들 중 네 명이 은밀하게 움직인다. 문 열리는 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보초들이 다급한 목소리를 주고 받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사이에도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는 네 명의 요원들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 난간 아래에 매달려 대기했다. 난간 위에서 외치던 지휘관과 저격수 둘, 기관총 사수 한 명이 자리를 잡는다.
절벽을 돌아서 계단을 타고 이쪽으로 내려오는 놈 셋.
저 세 놈을 해치우는 즉시 저격수 둘이 총알이 날아온 곳을 통째로 너덜너덜하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이휘와 알렉세이, 알란은 두려워하지 않고 각자 한 명씩 맡아서 총을 쐈다.
타닥!
타다닥!
다닥!
계단을 내려오던 세 명이 거의 동시에 고꾸라지고, 절벽 위에 있던 사수들이 이쪽을 보는 순간.
절벽을 타고 올라간 아군 요원 넷이 불쑥 난간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총을 쐈다.
타다다다다닥!
타다다다다!
기관총사수, 저격수 둘, 지휘관까지 맥없이 픽픽 쓰러졌다.
이휘 뒤에 있던 알렉세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별 거 아니군.”
하지만 알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너무 쉽습니다.”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 요원들 실력이 대단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아군 전력을 과신해선 안 된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
경비가 생각보다 허술하거나.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해서 경계가 강화되기 전이라거나.
그도 아니면 함정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마지막 가정일 확률이 가장 적었다. 하지만 이휘는 세 가지 변수에 모두 대비하기 위해 짤막하게 지시를 내렸다.
“알렉세이, 알란은 남는다.”
“왜?”
“이휘 씨와 요원들만으론 너무 위험합니다.”
알렉세이는 물론 알란도 반대했지만 이휘의 결론은 변치 않았다.
“함정이면 지원군이 올 수도 있어. 하다못해 퇴로를 막을 수도 있고. 후방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믿을만한 사람이 맡아야 돼.”
이렇게까지 말하니 알렉세이나 알란도 더는 막지 못했다. 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함정이면 바로 빠져나오십시오.”
“당연한 얘기를.”
슬쩍 웃어준 이휘가 조용하고 빠르게 절벽 위로 올라갔다. 안쪽을 감시하던 요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시설 안을 볼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이휘가 문 안쪽을 훑었다.
아무 것도 없고, 건설현장에서나 쓰일 법한 수직하강 리프트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분명 퇴로가 있을 테고, 그곳을 통해 잠입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퇴로를 만들어두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면 삽시간에 총알받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도 다행이네. 함정은 아닌 것 같으니.’
쓰게 웃은 이휘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시체들을 전부 리프트 안에 집어넣죠. 혹시 중간에 리프트가 움직이면 안 되니까 앞에다 쌓아놓고 한 번에 옮깁시다.”
“시체를요?”
“네. 우리가 입은 북한군 옷, 저 시체들과 언뜻 보면 분간이 안 가요.”
“시체 속에 숨어도 여러 명이 난사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다 같이 시체 속에 숨으면 그렇겠죠.”
“그럼…?”
“아까 기관총 사수가 거치하고 있던 기관총을 리프트 천장 위에 거치할 겁니다. 일단 리프트에 접근하는 놈들부터 시체 사이에 숨어서 쏘고, 모든 적들이 시체로 타격 목표를 정하는 순간에 천장 위에서 기관총을 난사할 겁니다.”
네 명의 요원이 깜짝 놀랐다. 수류탄이나 폭탄을 터뜨릴 수도 없는 상황에, 이휘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을 그나마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작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정말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머릿수가 너무 많으면 방법이 없을 겁니다. 차라리 장문택 부장한테 지원군을 요청하시죠.”
“장문택이 이곳을 알면 이쪽으로 병력을 보내서 우리 모두를 죽일 겁니다. 그 카드는 북측 추격을 피할 때 써먹어야 돼요.
“그 아들의 신변이 우리 손에 있지 않습니까?”
그건 맞다. 이곳에 잠입하기 직전, 아오지 탄광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장문택의 아들을 납치하는 일이었으니까. 녀석은 지금 여기서 떨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보관`된 상태다. 혹시라도 싸움에 휘말려서 죽어버린다면 장문택을 억제할 목줄이 사라지는 셈이니까.
그를 떠올린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히든카드에요. 최악의 상황에 꺼내는 게 히든카드고… 아직은 아닙니다.”
“목숨이 달렸습니다.”
“작전을 나가면 어디 잠입하거나 할 때, 오른쪽을 먼저 볼지 왼쪽을 먼저 볼지 결정하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요원 둘이 눈을 치켜떴다. 아마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안쪽 사정을 모르고 홀로 어딘가 잠입할 상황이 생기면 좌우 중 한쪽밖에 못 본다. 만약 적이 숨은 곳을 단번에 맞추지 못한다면 눈 돌리는 사이에 피격당할 확률이 높다.
이렇듯, 원래 이런 종류의 작전은 매 순간이 목숨 건 도박이다.
게다가 이들은 잘 모른다.
이휘가 자신하는 사격 솜씨가 어떤 건지.
어떤 총에도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 지형 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아마 저 아래 수십 명의 무장병력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해도, 반격에 기회는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