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88
나는 회귀했다 88
이휘의 계획은 단순했다.
러시아를 경유해 요원들과 합류한다. 그 뒤에, 알마즈 감사팀이란 명목 하에 북한으로 넘어간다.
블라디보스토크.
이휘는 알렉세이를 만났다.
“장비는?”
“북한으로 넘어가는 자재들 사이에 숨겼다.”
알렉세이가 덧붙였다.
“어차피 무기 회사야. 의심을 피하긴 좋겠지.”
“좋아. 감사팀 신원은?”
“전부 위조해서 넘겼어.”
“저쪽에서 그냥 받아들였어?”
알렉세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마 감시가 붙을 거다.”
“감시라.”
이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일이 어렵게 됐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고?”
“지난번에 왔던 놈들 수준이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지. 실력적으로든 인원수로든. 네 계획을 공유해봐.”
고개를 끄덕인 이휘는 손가락을 부딪쳐 딱! 소리를 내며 알란을 불러왔다.
알란이 지도를 가지고 다가서자 이휘가 입을 뗐다.
“두 개 조로 나눌 거야.”
“어떻게?”
지도를 건네받은 이휘가 가운데 지도를 펼쳤다. 북한 군사시설이 들어가 있다.
알렉세이가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자세한 정보는 어떻게 구한 거야?”
“CIA.”
이휘는 미국에 오기 전, 한국까지 따라 들어온 CIA요원과 접촉했다.
귀찮은 감시역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 눈을 피해 CIA와 공조하기 편했다.
물론 여기서 문제점은 있다.
그리고 알렉세이가 그 점을 집고 넘어갔다.
“CIA 몰래, 극비리에 진행하는 일 아니었어?”
“맞아.”
“근데 지도는 어떻게 구했지?”
“정보를 줬어. 북한이 도발을 계획 중이라고. CIA에서도 대북 감시를 하고 있으니 혹한 거지. 그 대가로 이 정보를 받아온 거야.”
“도발에 관한 정보도 숨긴 것 아닌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고 대응사격 해서 북측 경비정을 격침시킬 수 있도록.”
“그건 숨겼지.”
이휘가 씨익 웃었다.
“사건 순서만 만진 거야.”
“사건 순서?”
알렉세이는 물론 알란 역시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휘가 말을 이었다.
“먼저 첫 번째, 월드컵 기간에 북측에선 도발을 할 거야. 이건 확실한 정보지. 내 개인회선으로 알아낸 정보야.”
알렉세이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알란만 `아!`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시끄러운 상황에서 북한 경비정이 선제공격을 해오면 격침 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린 북한에 타격을 가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겠군요.”
“맞아요.”
이휘가 눈을 번뜩였다.
“그때 북한이 취할 움직임을 미리 CIA에 흘리는 겁니다. 자세할 필요는 없어요.”
“아아!”
이번엔 알렉세이였다.
“이 새끼 여우같은 자식! 그러면 북한의 움직임을 미리 예견하고 있던 미국에서 놈들을 억제하겠군. 그걸 빌미로 북한에 압박을 가할 테고?”
“맞아. 사실이라면, 미국이 바랄만한 정보기도 하지.”
이휘는 이번에는 전생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일으킬 일에 대한 반향을 CIA에 미리 예고할 작정인 것이다.
“우리가 작전에 성공해서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CIA에 또 다른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겠군요. 그 후 우리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흘려도 한 번은 CIA에서 꽤나 신뢰할 테고요.”
“그건 히든이니 정말 필요할 때 써야겠지만… 맞습니다.”
알란과 배꼽을 맞춘 이휘가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하며 덧붙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이야기니까, 이제부터 잘 들어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긴장한 표정. 호랑이 간덩이를 삶아먹은 이 둘이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오랜만이다. 이휘는 신기하게 일변한 뒤 할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여기.”
지도에 두 곳을 집는다. 서로 가까운 지역이다.
“땅굴로 연결돼 있습니다. 한쪽은 탄도미사일 개발, 다른 한쪽에서는 핵탄두 개발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공격할 지점인가?”
“맞아. 두 팀으로 나눠서 한 팀이 먼저 탄도미사일 쪽을 친다. 시설을 폭파시키는 거야. 혼란이 가중되면 그 사이에 우리가 소형화된 핵탄두를 빼돌린다.”
“경비도 철통같겠지만, 만약 운 좋게 뚫고 들어간다 해도 쉽게 빼돌릴 수 있는 크기는 아닐 텐데… 그렇게 시끄럽게 일을 벌이면 추적이 붙을 거다. 순식간에 포위돼서 흔적도 없이 살해되겠지. 게다가 북에서 발표한 걸로 봤을 때, 탄두가 하나라는 보장도 없어. 그게 진짜라는 보장도 없다.”
진위여부?
CIA자료와 미래의 지식이 일치한다면, 틀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알 수 없지만, 이휘는 일단 그 부분에 대해 수렴했다.
“우리의 진짜 목적은 있으나마나한 핵탄두가 아니야.”
“그럼?”
“핵탄두는 상대의 무차별적인 반격을 억제할 용도일 뿐이지. 진짜는 탄도미사일 시설을 폭파한 A조.”
이휘가 다른 한쪽을 쿡 찔렀다.
“A조가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직접 현장을 방문한 적 지도부를 암살한다.”
이휘가 다른 한쪽을 쿡 찔렀다.
“왜 A조야?”
“지금 알렉세이, 당신만 해도 A조는 신경도 안 썼지?”
“그야 B조가 탈취한 핵탄두가 훨씬 더 중요하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겠지.”
“어느 쪽을 신경 쓰던 기본적인 수비 병력 자체가 우리의 수십 배, 많으면 수백, 수천 배는 될 거다.”
“뭔가를 깊게 숨기려면 여러 사람이 위치를 알아선 안 돼. 아무리 철통 같이 입을 막아도 꼭 말이 새어나가기 마련이거든. 북한에도 현 김 씨 일가가 차지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은 있어. 그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김 씨 일가가 이 같은 시설을 독점하고 있는 걸 알기 때문이지. 비록 위치는 모르겠지만.”
“…여기 두 곳을 지키는 자들은 최정예, 소수겠군. 그래도 우리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 병력이 상주하고 있겠지만.”
“맞아.”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병력이 너무 많아. 현지에서 우릴 돕는 누군가가 없다면….”
거기까지 말하던 알렉세이가 눈을 부릅떴다.
“설마?”
“네가 알마즈 대표로 위장해서 만났던 대좌 기억하지?”
“…!”
“그 자가 당중앙위원회 소속, 장 부장으로 불리는 장문택의 아들이다.”
“김 씨 일가를 3대째 모시고 있다는?”
“영향력으로만 보면 북한의 2인자지. 하지만 최근에는 신임을 잃고 있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자리까지 권력 냄새 맡으며 올라간 놈이, 위기감을 못 느낄 리 없지.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다 결국 기회를 못 잡으면 자기가 끝날 거라는 것도 알 거야.”
알렉세이는 충격 받은 표정이다.
“설마 그 대좌를 지목해서 부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였나? 미리 이런 날을 예견하고?”
“무슨 소리야? 알마즈를 인수할 때부터 첫 번째 목표는 북한이었어.”
“그래서… 북측 놈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린 거군. 그 대좌가 정보를 팔아넘겼다고. 덕분에 지금 그놈은 조사를 받고 있다던데.”
알렉세이는 소름이 좍 돋았다.
알란 역시 마찬가지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두 사람을 훑은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는 궁지에 몰렸어. 김 씨 정권 아래선 이미 자신이 끝났다는 걸 알고 있지. 우리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거야. 반면 김 씨 정권 입장에서도 그 자가 눈에 가시고. 그러니까 내각에서 영향력을 지우려고 외부로 보직을 돌리는 중이야. 그 덕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장문택을 알마즈로 불러낼 수 있을 테고.”
“그러다 그 자가 먼저 발각되면? 우리도 같이 발각당할 텐데… 아니면, 우리를 배신할 수도 있다. 못 믿을 자야.”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갈 때쯤이면 그 아들 조사가 끝날 거야. 어디로 보내질까?”
“아오지…?”
“맞아. 아오지 탄광의 위치가 이 지도에서 어디라고 생각해?”
이휘가 덧붙였다.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읍. 여기가, 무기 개발 위치와 맞물린다. 오히려 무기 개발이 아닌 척 수용인원들을 부려서 부족한 일꾼을 보충하고 있지. 그래서 한 번 일하면 대다수가 돌아가지 못하는 거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기 아들이 가게 될지도 모르는 곳에 자기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김 씨 일가의 비밀무기가 있는데… 꿈에도 모르고 있군…!”
“우리는 그 아들을 구출하는 명목으로 납치한다. 일이 잘못될 경우 아들의 귀화를 약속한다면 그 자는 어떤 경우에도 입을 열지 않을 거야.”
“…!”
“…!”
두 사람이 모두 입을 딱 벌렸다.
비로소 이휘의 계획이 방점을 찍을 순간이 왔다.
“우리는 그 자에게 북한에서는 최고존엄이라고 부르는 절대권력을 넘겨준다. 대신, 북한의 개방이라는 조항이 들어있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될 거야. 어길시, 아들을 잃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겠지. 아마 전쟁까지 감수해야 할 거야. 전 세계를 상대로 핵 없이 치르는 전쟁을.”
“…이 정도면 해 볼만 합니다. 어쩌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군요.”
알란의 말에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휘가 최정예 대원들만 데려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것일 뿐,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계획이 수립돼 있었다. 이휘가 말했다.
“장문택은 자기 살아생전, 그러니까 북한이 한국에 귀속되기 직전까진 권력을 누릴 수 있을 거다. 김 씨 일가만은 못하지만 적어도 매일 밤잠을 설칠 일은 없어지겠지. 정권의 끝물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야. 최소한 마지막은 깔끔하게 갈 수 있도록.”
알렉세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무섭구만. 그 정도까지 상황을 만들 수 있으면 그자를 처치할 수도 있을 텐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던 악인마저 이용해 먹으려 하다니.”
“악을 벌하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지. 하늘이 해야 할 일이잖아? 나조차 목적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 있는데.”
이휘는 위선을 떨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쨌든, 이제 할 일은 정해졌지?”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택과 접선해보지.”
이어서 알란이 말했다.
“저는 팀을 나누겠습니다.”
“핵무기를 탈환해서 시선을 돌리는 B조에 우리 셋을 넣어요.”
“진짜는 미사일을 폭파하는 A조 아닙니까? 결국 A조가 지도부를 암살할 텐데요.”
“아뇨. 오히려 A조가 안전합니다. 핵무기를 B조가 빼돌리는 순간 저들의 시선이 모조리 그리로 향할 테니까. 장문택의 지원만 있다면 백성범 팀장과 요원들이 지도부를 암살하고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더 위험한 쪽으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전황을 대국적으로 보면서 지휘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중간 중간 장문택 측과도 접선을 해야 하고요. 우린 장문택 아들의 신변확보를 한 뒤, 핵을 탈취해서 러시아로 넘깁니다.”
이휘의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각자 할 일은 정해졌다. 좀 더 계획을 촘촘하게 완벽하게 다듬으면서, 때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북 경비정 한 척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