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89
나는 회귀했다 89
알란과 알렉세이는 자리를 고수했다.
이휘를 비롯한 네 명만 리프트에 시체를 실었다.
리프트 자체가 좁았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럿이 탈 수 없었다. 더구나 이쪽 인원이 시체만큼 많으면 시체로 방탄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시체들 틈에 숨은 요원 하나가 투덜거렸다.
“다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다른 요원이 낄낄 웃었다.
“그래도 미국에 있을 때보다는 덜 따분하잖아?”
너무나 태연한 보이는 반응이지만 그들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자체가 초조하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묵묵히 내려가서 아무렇지 않게 적들을 해치웠을 테니까.
이휘가 리프트 철장을 딛고 올라가 기관총을 거치한 뒤 시체 사이에 숨은 요원들을 내려다봤다.
“갑시다.”
고개를 끄덕인 요원 하나가 리프트에 하나뿐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덜컹!
한 번 크게 흔들린 리프트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승차감은 좋지 않다. 이휘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까 크게 흔들릴 때 거치한 총을 고정시키느라 가슴이 찧이고 말았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때 도르래가 멈추며 리프트가 지면에 안착했다.
쿠우웅.
자리를 지키던 보초들이 보인다. 그들이 리프트 안에 수북히 쌓인 시체를 발견하고 눈을 치뜨는 것보다, 아군이 적들의 위치와 수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시체 사이로 슬그머니 내민 총구에서 총알이 격발됐다.
타다다!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사방으로 쏘아진 총알 세례에 열두 명의 적들이 쓰러졌다. 끝에는 무어라 외치며 대응 사격을 하려는 놈도 한 둘 있었지만 볼품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혹시라도 저 문 너머에 병력이 더 있고, 그들이 밖의 소요를 들었다면 우르르 튀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놈도 나오지 않자, 아래서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보를 누르려던 놈부터 제거했습니다.”
역시.
굳이 순서를 알려주지 않아도 상황대처가 프로답다. PMC 용병들보다 이들을 데려온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든든해진 이휘가 말했다.
“두 사람은 남고, 나머지 두 사람은 위치 잡아요. 저도 대기하겠습니다. 경보, 우리가 울립시다.”
요원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적들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거지만, 경보를 울려서 저들을 끌어내면 우리가 장악한 안마당에서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고 싸우는 것이 최선이다.
시체를 해치고 나와 문 근처로 위치를 옮긴 요원 둘 중 한 명이 일전 총격전을 벌이던 북한군이 누르려던 경보기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그러자 안쪽에서 경보 울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내부에서 소요가 이어지고.
머지않아 문이 열리며 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리프트 안에 있는 아군이다.
타다다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닥!
적들이 나오는 즉시 우수수 쓰러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수십 명은 확실히 넘는 인원이다. 꼬리를 물고 뒤에 얼마나 더 기어나올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휘는 대기했다. 기관총을 쓰는 순간 저들이 문을 걸어잠그고 농성을 펼치면 일이 골치 아프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군이 우후죽순으로 쓰러지는 걸 보면서도 저들의 기세는 잦아들지 않았다.
“리프트 안쪽이다!”
고함을 지르기 무섭게 수십 명이 쏘는 총알이 리프트를 향해 날았다.
팅! 티잉!
리프트 철장에서 불꽃이 튄다. 퍽, 퍼퍼퍽― 소리와 함께 아래 시체들이 움쩍거린다.
그리고 그때.
퍼억!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총알이 타격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반된 낮은 숨소리 때문이다. 숨어있던 요원이 총알을 맞은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휘는 다친 와중에도 비명을 지르며 총알을 난사하고 있는 요원의 환부를 눈으로 훑었다. 총알이 머리에 피격됐다. 아마 지금도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즉사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생존할 희망이 있다.
머리에 기관총을 6발이나 맞고 살아남은 사람도, 눈에 총알을 맞고도 실명으로 그친 사람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휘는 기관총을 발사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총격전이 계속되고.
문을 통해 들어오는 무리의 끝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휘가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난데없는 총격에 퍽퍽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적들이 쓰러진다. 소총과 기관총의 위력은 비할 바가 아니다. 저들의 머릿수가 아무리 많고 소총으로 무장했다 해도, 분당 수백 발씩 쏟아지는 총알에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피하라!”
한 놈이 외치며 자세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기관총으로 갈겨대는 영역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 퇴로를 막고 두 명의 요원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니미….”
퍼억!
놈이 이마에 구멍이 뚫려서 쓰러졌다. 그제야 퇴각하려던 다른 북한군들도 퇴로에서 몸을 숨긴 채 총을 쏴대는 아군을 발견했다.
“포위됐다!”
“용맹하게 맞서자!”
그들이 의기를 붓돋았지만.
이휘는 리프트 천장에 바짝 몸을 붙인 채로 크게 외쳤다.
“무기 내려놔! 투항하지 않으면 너희는 여기서 전멸한다!”
보통 이쯤 되면 투항한다. 살길이 있다면 일단 살아서 상관에게 상황을 보고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후일을 도모하려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런 게 없었다.
“항전한다!”
“항전한다!”
크게 복명복창한 적들이 리프트를 향해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다.
이휘는 기관총에서 손을 떼며 소총을 들어 45도 기울였다. 표적을 미세하게 조준하고, 격발.
타닥!
퍼억, 소리와 함께 방금 `항전한다`고 외쳤던 지휘관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
“이런…!”
적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다. 이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기관총을 잡고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르륵!
퍼버버버벅!
서너 명이 순식가넹 쓰러지자 마침내 한 두 명이 총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 됐다.
다른 자들도 모두 총을 내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휘는 방아쇠에서 손을 떼고 리프트 아래로 내려갔다. 눈을 감싼 채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요원이 보였다. 동료 요원이 그를 옆에서 지혈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다.
“빨리 빠져나가야 합니다. 출혈 때문에라도 오래 못 버텨요.”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자 돌보고 포박하고 있어요. 혹시 누가 안 오나 잘 살피고.”
“알겠습니다.”
이휘는 부상자에게 나지막이 덧붙였다.
“…무사할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책임자로서, 대원을 잃는 뼈 아픈 기분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이휘는 걸음을 서둘렀다. 문 쪽에서 퇴로를 차단하던 두 요원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경계했던 것과는 달리, 안쪽에는 연구시설만 보일 뿐 아무도 없었다.
중앙에 위치한 핵탄두.
이게 모든 사단의 원인이다.
“확보했습니다…!”
요원이 성취감에 휩싸여 말했지만 이휘는 찬물을 끼얹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이제부터가 진짭니다. 탄두 챙깁시다.”
“예.”
그들은 보관소에 위치한 레일을 통해 핵탄두를 내보냈다. 애초에 500킬로그램이 넘는 탄두를 들고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탄두를 먼저 내보낸 그들은 밖으로 나섰다. 리프트를 타고 처음 있었던 곳으로 돌아간 뒤, 레일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밖에선 알렉세이와 알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명을 저지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무장병력이 아니었어요. 정보원들이었습니다.”
아마 알란이 판단했을 것이다.
알렉세이 혼자 있었다면 넷을 모두 처치했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데려갑니다.”
“알겠습니다.”
알란과 알렉세이는 눈에 총을 맞은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요원을 짧게 일별한 뒤 걸음을 옮겼다.
레일이 끝나는 지점은 장문택 아들을 `보관`해둔 곳과 일치했다.
이휘 일행이 차량을 세워둔 곳이기도 하다.
이휘가 말했다.
“차량은 한 대로 이동합니다. 우리가 타고 온 차량을 버리고 탄두를 트럭으로 옮겨 실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기로….”
“아뇨.”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알란이 찍은 트럭은 원래 탄두를 나를 때 싣는 트럭이다.
하지만 저 트럭은 너무 튼튼해서 문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워낙에 외부 공격에 철저하게 대비 되어 있는 트럭이라 적들이 운전석을 겨냥해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차량 자체의 기동력이나 방어력이 아니다.
오히려 방어력은 취약할수록 좋고, 기동력도 크게 필요가 없었다.
“탑차에 싣죠.”
심지어 위장도 안 된 평범한 탑차다. 식량이나 생필품을 나르는 차량인 것 같다.
그에 알란이 물었다.
“방탄차량이 아닌 이상 저격수들이 붙으면 곤란합니다. 달리는 차량을 맞추는 건 쉽지 않겠지만… 운전자를 맞추면 차를 세울 수 있다는 걸 저들도 알 겁니다.”
“저를 모른다면 그러겠죠.”
“예?”
“못 그럽니다. 핵탄두랑 함께 자폭할까봐.”
“….”
알란은 혀를 내둘렀다.
누구나 저런 `예측`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측이란 것은 빗나갈 수 있어서 예측인 거다.
빗나갈 수도 있는 예측에 목숨을 건다?
이건 보통 대담한 게 아니다.
한숨을 내쉰 알란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저들이 보스가 얼마나 과감한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할 텐데요.”
“알 겁니다. 가죠.”
그들은 탄두를 싣고 출발했다.
알란과 이휘가 앞자리에 타고, 나머지 인원은 탑차 뒤에 핵탄두와 함께 탔다.
알란이 말했다.
“알렉세이가 겁먹은 것 같습니다.”
이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요. 얼굴이 빨갛던데.”
“눈 앞의 총알은 겁 안 나도 핵탄두는 겁나나 봅니다.”
“좀 더 밟을 수 없을까요? 영 안 나가는데.”
“그게… 적재량이 넘어서요.”
이휘는 쓰게 웃었다.
“꼬리가 붙어서. 체크포인트까진 얼마나 남았습니까?”
“아직 5키로 정도 남았습니다.”
이휘는 다시 한번 사이드미러를 봤다. 수십 대의 차량이 뒤쫓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둘러싸일지도 모른다. 먼 거리에서는 섣불리 화력을 동원할 수 없겠지만, 둘러싸여서 차를 세우는 순간 게임은 패배로 끝난다.
이휘는 권총을 챙기며 말했다.
“체크포인트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마세요. 설령 핵탄두가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 와도.”
“알겠습니다.”
알란이 힘껏 악셀을 밟았다.
이휘는 사이드미러로 뒤따르는 차량의 거리와 타이어 각도를 확인한 뒤 몸도 안 돌린 채 권총 총구만 내밀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사이드미러로 보고 쏜 것이다.
“뭐하시는….”
알란은 묻다 말고 입을 닫았다. 이휘가 쏜 총에 맞은 뒤 차량의 앞 대가리가 바닥으로 푹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그 여파에 그 뒤에 따르던 차량이 충돌했다.
콰앙!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알란이 물었다.
“…그 사격술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