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9
나는 회귀했다 9
정태수는 이휘를 압구정동으로 데려갔다.
정태수가 오토바이를 세우자 휘가 물었다.
“여기야?”
“응.”
이휘는 간판을 올려다봤다.
“MMA(종합격투기)?”
“후후, 익숙지 않은 종목이지? 최강의 격투기라고.”
정태수의 어깨가 한껏 올라가자 이휘가 쓴 웃음을 삼켰다.
왜 모르겠는가?
1997년 한국에는 생소하지만 자신이 살던 시대에는 수많은 MMA단체들이 존재했다.
심지어 이휘는 군에서 종합격투기보다 훨씬 더 거친 특수살상무술을 배운 바 있었다.
“여기 계시다고?”
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난번 네 활약을 말씀드렸더니 여기서 보자고 하셨어.”
“그래?”
“솔직히 나도 궁금하거든.”
“…?”
“너와 아버지, 둘 중 누가 더 셀지.”
정태수가 전의를 잃은 것은 그 때문이다. 자신도 어려서부터 복싱, 무에타이 같은 타격기를 배우고 근래 MMA를 2년 정도 수련했지만 아버지의 발끝도 못 따라갔다.
그래서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 이휘의 진짜 실력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휘는 잔뜩 들뜬 정태수를 보았다. 이 녀석은 자신이 ‘진짜 실력’을 드러낼 때 어떤 모습인지 알고나 하는 말일까? 그 모습을 봤다면 절대 이런 말은 못할 거다.
과거 UDU에서도 기밀작전을 수행하는 특수팀에 있던 당시 훈련교관이 떠올랐다.
당시 이휘가 물었다.
-배우다 보면 가끔 착각이 듭니다.
-무슨 착각?
-잘하면 타이슨도 이길 수 있겠다는 착각이요. 하하.
-헛소리. 네 체급에 한 대만 잘못 맞아도 모가지가 돌아갈 거다.
-역시 그렇겠죠?
-이기진 못하겠지만….
교관은 말했다.
-죽일 수는 있겠지.
그게 바로 이휘다. 그는 특수팀 훈련장을 떠나기 전 훈련교관을 제압했다.
죽인 것도 아니고 제압한 거다.
아무리 지금 개똥같은 몸뚱이를 가졌다 해도 그 시절의 감각은 남아있었다.
상념에서 깨어난 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을게.”
“오케이! 오토바이 세워두고 들어갈게!”
신나서 말한 정태수가 자리를 떠났다.
이휘는 반대쪽으로 걸어서 체육관에 들어갔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선 이휘는 고개를 갸웃했다. 체육관이 텅 비어 있었다.
“왔냐?”
정대선이다.
그는 체육관 중앙에 위치한 케이지 안에 서있었다.
순간 휘의 눈이 반짝였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그래. 들어와라.”
“케이지에?”
“대화 전에 몸 좀 풀자.”
“애랑 싸워도 되는 겁니까?”
그렇게 물으면서도 이휘는 냉큼 교복을 벗어던졌다. 하의만 남겨둔 채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을 본 정대선이 미간을 찌푸렸다.
“실력이 대단하다던데….”
절대 단련된 몸이 아니다.
그런데 칼 든 백인 덩치 둘을 해치웠다고?
서양인만 해도 골격 자체가 다르다.
무기를 들면 괴물이 된다.
단련도 안 된 일반인이 그들을 상대로 잠시라도 버티면 대단한 거다.
한데 팔을 부러뜨렸다고 했다. 상대 팔을 부러뜨리고, 팔뚝에 칼을 맞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괜찮은 거냐?”
정대선이 붕대가 감겨있는 휘의 팔뚝을 고갯짓했다. 몸을 풀던 휘가 피식 웃었다.
“멀쩡해요.”
“한 손만 쓰마.”
스윽.
오른손을 뒤로 돌렸다.
정대선은 전직 PMC 용병이었다. 그 전에는 특전사를 전역했다. 일반인 상대로 이 정도면 그리 큰 핸디캡이 아니었다.
휘를 인정한다는 뜻.
그러나 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곧 쓰게 되실 거예요.”
여유로운 모습을 본 정대선의 표정이 굳었다. 묘한 위화감이 들고 있었다.
‘왜지?’
그는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글러브를 던져주었다.
글러브를 착용한 휘가 저벅저벅 걸어와서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서로 호흡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를 빈 틈 없이 메웠다.
자기도 모르게 압박감을 느끼던 정대선이 주먹을 내밀었다.
“시작하지.”
휘가 터치 글러브를 했다.
툭.
주먹이 가볍게 부딪치는 순간.
빠악!
“…?”
정대선의 고개가 뒤로 휙 젖혀졌다. 정대선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정대선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잽을 허용했다.
빨랐다.
마치 이휘가 끌어낼 수 있는 육체의 최대치를 끌어낸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렇다 해도 펀치가 가벼운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단숨에 끝낸다.’
놀란 건 놀란 거고, 처음엔 그렇게 마음먹었다. 순식간에 파고들어 그라운드로 눕히자고. 서브미션(끝내기 기술)에 걸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스륵!
이휘가 엄지와 검지만으로 도가니를 누르며 몸을 비틀어 빠져나갔다.
마치 한 마리 뱀 같았다.
서브미션이 분명한 기술을 풀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휘가 누른 지점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찌릿하며 일시적으로 힘이 툭 풀렸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쉬익!
펀치를 날리는 순간 이휘가 반대 손으로 탁 쳐내며 들어왔다.
슈욱!
무릎을 날리자 팔꿈치로 비껴내며 잽과 스트레이트를 거의 동시에 날렸다.
퍼벅!
정대선이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흘렸다. 데미지가 크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휘는 단순하지만 교묘한 공격을 하면서 거의 방어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타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휘가 정대선의 수를 훤히 읽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보고 막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감각에 의존해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믿기 힘들었다.
‘천재…?’
정대선은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봐주려 했던 것이 경기를 끄는 결과를 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네 말이 맞다.”
거리를 벌린 정대선이 눈을 번들거렸다.
“널 얕본 것 같구나. 단숨에 끝내주마.”
오른손을 등 뒤에서 꺼냈다.
한 손을 쓰냐, 쓰지 않느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애초에 타격이나 그라운드 기술의 범위 자체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달뜬 미소가 입가에 머물고 있었다.
오른팔을 안 쓴다면서 왜 쓰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며 즐기고 있었으니까.
“갑니다.”
슈욱!
이휘가 파고들었다.
그에 반응한 정대선이 그라운드기술을 걸려 했다. 양 팔이 자유로워진 탓일까? 오른팔을 의식하지 않으니 기술 자체가 훨씬 더 빨리 들어왔다. 거의 3, 4배의 속도.
그러나 이휘는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자세를 낮추고, 다리를 잡아 꺾으려 했다.
그 순간 그라운드기술을 걸려던 정대선의 자세가 변했다. 순식간에 타격으로 바꾼 그는 이휘의 목을 휘감으며 니킥을 꽂았다.
퍼억!
순간적으로 흥분해버린 정대선이 무자비하게 이휘의 안면에 니킥을 꽂은 것과, 이휘가 이마로 받으며 발로 다리를 거는 동시에 쓰러지는 정대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정대선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아니, 피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면을 향하던 이휘의 주먹은 정대선의 명치를 찍어버렸다.
콰직!
“욱!”
정대선이 답답한 신음을 뱉었다.
이휘 역시 그의 옆으로 고꾸라져선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마에서 뜨끈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거지.’
이휘는 아직도 세차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역시 전장에서 굴러먹던 용병은 달랐다. 지금은 은퇴했다지만 한땐 제법 근사한 근접전 실력을 가진 군인이었을 것이다.
“쿨럭, 쿨럭!”
정대선이 한참이나 기침을 하더니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켰다.
휘는 벌써 일어나 대충 이마의 피를 닦으며 어깨를 풀고 있었다.
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대선의 눈에는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무슨 무술을 익힌 거냐?”
신체적 조건을 훌쩍 뛰어넘는 기술.
급소를 비롯한 혈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공격.
방어보다 공격에 철저히 치중된 무술은 그가 알기로는 하나밖에 없었다.
특수부대, 그 중에서도 정예들만 익힌다는 특수살상무술이다.
실제로 정대선이 PMC에서 용병생활을 하던 시절 외인부대나 SAS, 델타포스, SEAL의 정예인 DEVGRU 대원들과 어울리던 시절 잠깐씩 견식한 바로 다르지만 흡사했다. 실력이야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수준급.
그래서 더 말이 안 된다.
고등학생이 특수살상무술을?
“혹시 누구한테….”
“옛날에.”
숨을 다듬는 척하며 뭐라 둘러댈지 고민하던 이휘가 말했다.
“옛날에 우연히 배웠어요. 그걸 닳도록 연습했고요.”
더 이상은 말하기 싫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 정도면 믿음은 줬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고.
정대선이 고개를 저었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졌다는 충격 때문이다. 만약 스포츠가 아니라 실제 전투였다면 죽는 쪽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후우, 돌아버리겠구만.”
잠시 진정한 그가 본론을 꺼냈다.
“내가 널 보자고 한 건 태양의 눈물 때문이다.”
따로 알아본 모양이다.
이휘는 케이지에 기대선 채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정대선이 말했다.
“물건을 운송해온 놈들이 물건을 찾고 있어. 다른 밀수품들은 쏙 빼놓고 태양의 눈물에만 관심이 있더구나. 우리한테 200억에 달하는 위약금을 선뜻 내놓으면서도 그것만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휘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근무하던 UDU에서도 극비로 정예대원들을 파견하게 만든 물건이다.
그만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기에 가져온 거고.
태연한 표정을 본 정대선이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 있었어?”
“뭔지도 모르고 가져왔으려고요. 제가 가져갔다고 하셨어요?”
“나도 염치는 있는 사람이다. 네 덕분에 화를 면했어. 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네가 구해준 거다. 알지도 못하는 그깟 물건 때문에 널 팔았으려고. 그것도 같은 동포에 아들 친구를.”
정대선의 썰렁한 농담에 이휘가 피식 웃었다.
“감사합니다. 여기가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나 참, 간담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네가 태양의 눈물을 가져간 걸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던데.”
사실 이휘도 목숨 걸긴 싫었다. 아무리 전생에 24시간 강렬한 긴장과 자극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와서 이곳 평화가 시시하다지만 꿈에 그리던 생활이다. 그래서 좀 시시해도, 지금처럼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눈을 떠도 이번 생은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태양의 눈물은 전생에서 자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준 아내와 관련 있는 물건이다. 아내를 찾든 못 찾든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전생에서 조국에 바쳤던 목숨, 기꺼이 이번 생에는 아내를 위해 내걸 수 있다.
임무가 떨어지면 기약 없이 불안에 떨어야 했던 아내. 남편이 집을 비운 오랜 시간을 혼자서 싸워야했고, 남편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함께 감내했으며, 남편 없이 출산했음에도 불평 한 마디 없던 아내에게 보답할 때다. 그녀가 알든 모르든 선물을 주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이휘의 표정을 염탐하던 정대선이 다시 물었다.
“말해줄 생각 없는 거냐?”
“후회 안 하세요?”
정대선이 피식 웃었다.
“이미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 번 더 추가된다 해서 달라질 건 없어. 그리고 넌 모르겠지만 나도 제법 힘 좀 쓴다.”
“아까 보니 시원찮으시던데….”
“연식 다 된 폐차 직전의 아재 이겼다고 유세는.”
“전 고딩인데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대선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 힘 말고 이 힘! 네가 아무리 재벌 3세라도 움직일 수 있는 재력은 한계가 있을 거 아니냐. 여기도 내 동료였던 놈이 운영하는 체육관이야. 보안은 말할 것도 없고 통째로 빌려서 지금은 사람도, 카메라도 없으니 편하게 말해도 된다.”
“태양의 눈물은 프랑스의 국보입니다.”
“국보라고…?”
정대선이 크게 놀랐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란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탁이라고 해봐야 처분을 도와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국보라니!
한 나라의 국보가 얽힌 상황이라면 이야기의 사이즈가 달라진다.
정대선은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호기심이 샘솟았다. 불쑥 전쟁터를 전전하던 시절의 호기가 치밀었다. 눈앞에 소년이 열일곱 살에 불과한 녀석이라서 더더욱. 대체 이 녀석은 무슨 생각인 걸까.
그가 국보란 말을 듣고도 대화를 중단하지 않자 이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곧 쓰일 일이 있을 겁니다. 나라를 구하진 못해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는 있을 거예요.”
“판매 목적이 아니다….”
“저 이거 많아요.”
이휘가 정대선을 따라하듯 엄지와 검지를 이어 붙여 동그랗게 말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정대선은 표정을 풀지 않고 말했다.
“…더 많아져야 할 거야. 지금부터 널 지켜주는 건 뛰어난 무술이 아니라 돈이 될 거다.”
“갈퀴로 쓸어담을 겁니다.”
이휘가 할 말 다했다는 듯 입을 닫았다.
정대선의 아들, 정태수가 벙 찐 채로 서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릴 거리는 아니었다.
정태수는 그야말로 경악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신경도 안 쓴 정대선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내 생각은 변함없다. 안 그래도 좀이 쑤시던 참이었어. 그래서, 도와주면 보수는 있겠지?”
이휘가 피식 웃었다.
“돈 많으시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