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90
나는 회귀했다 90
바로 뒤 차량 두 대가 서로 충돌하자 상대는 조심스러워졌다. 여전히 추격하고 있었지만, 거리가 벌어졌다.
“아무래도 우리가 여길 빠져나가는 순간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체크포인트에서.”
상대는 이쪽의 대비가 얼마나 철저한지 모른다.
설마 장문택이 손을 썼으리란 것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10분 후 도착입니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버텨요.”
“예?”
“곧 코너가 나옵니다.”
“코너가 왜… 아!”
알란은 코너에 진입하며 소름이 끼쳤다. 완전히 둥글게 말린 코너.
그리고 가드레일 바깥쪽은 온통 수풀이 우거져 있다.
“세우세요.”
“…알겠습니다.”
알란이 차량을 가드레일 바로 옆으로 붙이며 세운다. 이휘가 창문을 열고 정조준을 했다. 이번에는 사이드미러가 아니라, 두 눈으로.
상대 트럭들이 코너를 도는 게 보이는 순간.
탕!
탕!
탕!
세 발.
세 발의 총성과 함께 격발된 세 발의 총알이 각각 뒤따라 막 코너에 진입한 트럭의 타이어를 관통했다.
퍽, 퍽, 퍽― 타이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앞뒤 바퀴가 하나씩 터진 선두의 트럭이 제대로 코너를 돌지 못하고 회전한다.
콰앙!
가드레일을 받고 나서야 멈춘 앞 차량을 앞바퀴 중 하나가 날아간 트럭이 덮쳤다.
쾅!
연쇄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그 바람에 코너가 거의 다 막혔다. 뒤따르는 트럭은 지나갈 수 없고, 지프 차량만 통과할 수 있는 넓이다.
이휘가 크게 외쳤다.
“후진!”
알렉세이가 기어를 넣고 후진을 밟았다. 그러자 그들이 탄 탑차가 사고가 난 트럭과 가드레일 사이, 좁은 공간을 막아선다.
이휘가 뒤에다 대고 다시 한번 외쳤다.
“문 열고 사격한다!”
핵탄두를 붙잡고 눈치를 보던 이들은 무슨 말인지 곧장 알아듣고 문을 열어젖혔다. 상대에게 사격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핵탄두를 끼고 있다.
상대는 마음껏 사격할 수 없다.
반면 이쪽에는 기관총이 있었다.
“통과할 수 있는 지프만!”
동시에 알렉세이가 기관총을 붙잡고 분주하게 차를 세운 지프들을 향해 총알을 난사했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피해!”
“총격이다!”
“저격수는?”
아무리 저격수를 찾아봐야, 소용 없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며 길을 막은 트럭 엔진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저 연기가, 그리고 코너 밖 수풀이 저격수의 시야를 막아줄 터였다.
알란은 새삼 이 모든 환경을 단숨에 파악하고 도주하는 중에 반격을 가한 이휘의 기지에 감탄했다. 왠지 이휘와 함께 있으면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그가 우리 소대장이었다면… 바뀌었을까.’
잠깐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은 기억을 떠올리던 알란은 지프가 넝마가 된 후 말했다.
“계속 가겠습니다.”
“출발!”
이휘가 외치고 알란이 악셀을 밟았다. 1차 추격을 저지한 그들은 순식간에 체크포인트까지 달렸다. 그 뒤를 헬리콥터 한 대가 따르며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
그런 그때.
체크포인트가 가까워지자, 검문 소초로부터 로켓 한 발이 날아왔다.
알란이 이를 악무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탑차를 비껴간 로켓이 뒤따르던 헬리콥터에 적중했다.
콰앙!
빙글빙글 회전하다 순식간에 바닥을 구르는 헬리콥터. 안에 있는 자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은 안 봐도 자명했다.
그 모습을 백미러로 보던 알란이 혀를 내둘렀다.
“…정말 장문택이 제대로 해볼 생각인 것 같군요.”
“자기가 먼저 치지 않으면 상대가 휘두른 칼에 목이 달아날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아들이 아오지로 잡혀간 순간 확신했을 겁니다.”
“우리는 지나치겠습니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마즈로.”
이휘, 알란, 알렉세이를 비롯한 요원들은 알마즈로 갔다. 눈을 다친 요원은 의사를 불러 치료할 수 있었다.
이휘가 말했다.
“전투준비하세요.”
고개를 끄덕인 알란과 요원들은 무기생산공장인 이곳에서 각종 무기를 골랐다.
적들이 몰려오면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잠시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는 요원을 내려다보던 이휘가 의사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난 환자를 봤으니 이만 가겠소.”
“수술은 안 합니까?”
“여기서는… 당장에 수술은 불가하오.”
“그럼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모르지. 사람마다 다르니. 하지만 그리 길게 버티진 못할 거요. 길어야 3일?”
제약이 생겼다.
자칫하다간 아군 요원 한 명의 목숨을 잃는다.
듣자 하니 가족도 있는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의사를 돌려보낸 이휘를 향해 알란이 물었다.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장문택한테 부탁해봐야겠죠.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부탁하지 않는 한은 어떤 의사도 우릴 도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돈을 억만금을 준다 해도.”
알란이 눈을 반짝였다.
“연락해보겠습니다.”
***
반나절 뒤 장문택이 직접 알마즈로 찾아왔다. 경호원들을 한껏 대동한 채로.
“반갑소. 이휘 동무. 서로 말이 다르니 영어로 얘기하는 게 어떻겠소?”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자기 아들이 아오지에 잡혀갔는데, 대범한 양반이다. 지금 이 표정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좋습니다.”
“좋아요. 그래, 나를 왜 보자고 하셨소?”
“저희 쪽에 부상자가 한 명 있습니다.”
“병원으로 가지 않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수술이 필요한데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타국 와서 아프면 서러운 법이지.”
껄껄 웃은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여러분이 내 나라를 유린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 더 서럽고 아프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다.
너무 자연스레 말해서 순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뻔했다.
이휘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데요?”
“이상할 것 없소.”
장문택이 대뜸 덧붙였다.
“탄두와 내 아들을 내놓으시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수령께서 그러더군. 탄두와 내 아들을 모두 찾아주겠다고. 면죄부도 주겠다. 단, 침입자들을 잡아서 넘겨준다면”
“하.”
이휘는 헛웃음을 뱉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배신이기에. 장문택은 지금 김 씨 일가의 감언이설을 듣고 라인을 갈아타려는 중이다.
“이렇게 갑자기 딴소리하시면 곤란한데요.”
“상황이 바뀌었소.”
“당신들은 허구한 날 상황이 바뀌지.”
이휘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럼 나도 상황을 바꿔봐도 되겠습니까?”
“무슨….”
“알렉세이.”
알렉세이가 고개를 돌렸다.
“이 자들을 모두 제압한 뒤 포로로 잡는다.”
“하하하하!”
장문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시오? 살육전이 일어날 텐데.”
그의 경호원들이 슬그머니 기관단총을 든다.
알란과 다른 요원들도 마찬가지.
“엿 같지만 장 부장 말대로다.”
알렉세이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이휘 역시 이제는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당신이 우리를 도운 것. 헬기를 격추시킨 것. 우리를 도우려는 게 아니라, 우리를 이용해 김 씨 일가를 강하게 압박하려는 수작이었군.”
“너무 늦은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전혀.”
이휘가 단호하게 말하자 장문택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설령 이 살육전에서 당신들이 승리한다 해도 살아서 북을 빠져나갈 수는 없소.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내가 돕는 것뿐이지. 부하 중 몇 명을 내놓고 돌아가시오. 그건 도우리다.”
그러나 이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장문택이 이 문제를 제 나름대로 평화롭게 해결하려는 것은 알겠지만, 잘못 짚었다. 이휘는 장문택이 협박은 해도 진짜 살육전을 감수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 알량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직접 기어들어 온 것 아닌가?”
“정말 목숨이 아까웠다면 내가 직접 오는 게 아니라 부하를 보냈겠지.”
“아니. 그랬다면 나 역시 당신을 직접 만나지 않았을 테고, 당신 아들의 신변이 위험해졌겠지. 당신은 내가 당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이 있기 때문에 들어온 거야. 아닌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평화롭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란 걸 알 텐데.”
“설령 우리 중 몇 명을 지도부에 넘긴다 해도 당신은 죽어. 김 씨 일가가 당신을 살려둘 것 같나?”
장문택이 콧방귀를 뀌었다.
“잘 모르는군. 핵탄두가 내게 있는데 김 씨 일가에서 나를 해칠 수 있을 것 같나?”
생각보다 훨씬 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다.
이휘는 스스로의 실책을 탓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죽는다. 패를 다 까 보이고 상대가 적당히 봐주길 바라며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당신 패착은 날 일반적인 자본주의자로 본 거야.”
“무슨….”
“내가 이쯤에서 적당히 타협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가진 걸 잃는 게 두려워서라도. 평범한 자본가라면 대개 폭력 앞에서 굴복할 테니까.”
“당신은 아니다?”
“두 번째 실수는 내가 어떤 자들을 데리고 왔는지 모른다는 거다. 한국 국정원 요원들 정도만 데리고 온다고 생각했겠지. 우리가 김 씨 일가가 믿는 핵탄두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 작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었어.”
아마 핵탄두를 탈취하기 전에 이미 장문택이 손을 써두었을 것이다.
만약 핵탄두 탈취에 실패했다면 이미 아오지에서 장문택이 보낸 자들에게 끝장이 났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운으로 탄두 탈취에 성공했을까?”
그렇게 물음을 던진 이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박에 테이블을 엎었다.
탕탕탕탕!
타다다다다다!
실내가 번쩍이고.
총성이 크게 울려퍼졌다.
삐이이이이, 이명이 들려온다.
이휘는 권총을 뽑아 들고 서로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상대 경호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수신호를 보내자, 자리에 있던 요원들이 몸을 드러내며 총을 쐈다.
타다다다다다!
팅, 팅, 튕겨져 나가는 총알이 모조리 장문택과 경호원들이 숨은 지형지물을 아슬아슬하게 때렸다. 머리만 내밀어도 이마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이들의 예상 밖 사격 솜씨 때문에 적들은 고개도 못 내밀었다.
그리고 그때, 이질적인 총성이 들려왔다.
타앙!
장문택의 경호원 한 명이 픽 쓰러졌다.
알란이 저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휘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알란을 저격포인트에 둬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둔 상태였다.
타앙!
다시 한번 경호원이 쓰러진다.
화들짝 놀란 장문택이 크게 외쳤다.
“빠져나간다!”
그러나.
지형지물을 이용해 내달린 이휘가 2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리며 장문택의 코앞에 나타났다. 그는 번개처럼 장문택을 제압하며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든 채 오도 가도 못하는 경호원들을 견제했다.
장문택의 목젖에 걸린 칼날과 경호원들을 겨눈 총구.
“….”
침묵이 흘렀다.
장문택은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추축했다.
단 한 순간이었다.
이휘가 앞에 뛰어내리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총을 겨누었는데, 이휘는 팔목을 휙 잡아당긴 뒤 팔꿈치를 눌러서 돌아서게 만들었다. 어어, 하는 사이 눈을 떠보니 날카로운 칼날이 목젖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곤 얼굴 옆으로 이휘의 권총이 스윽 나타났다. 그 바람에 다른 경호원들은 손을 들며 항복선언을 하고 있었다.
장문택이 발악하듯 외쳤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아니.”
이휘가 귓가에 속삭였다.
“죽을 땐 다 같이 죽을 거란 것은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