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92
나는 회귀했다 92
-왼편으로 쭉 달려서 은덕군에 다다르면 반대편과 이어지는 다리가 하나 있다.
“….”
“오후 네 시까지 그곳으로 와라.”
“알겠다.”
전화를 끊은 이휘가 시계를 봤다. 3시 40분. 뭔가 준비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수작이다.
“은덕군으로 간다. 여기서 10분 거리야.”
다른 사람들이 입을 딱 벌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
아마 이휘가 그곳 지형을 꿰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상대도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북파공작 임무를 여러 번 수행해왔던 이휘로서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특히 `아오지 탄광의 비밀`도 아는 마당에 은덕 인근에서 작전 한 번 수행한 적이 없겠는가?
무엇보다 함경북도는 북한 진입을 위해서라도 여러 차례 와본 경험이 있었다.
인근 지형 정도는 훤히 내다보고 있어야 작전상황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다.
이휘가 말했다.
“이동하면서 얘기하지.”
“저보고 가라면서요?”
나타샤가 묻자 이휘가 피식 웃었다.
“혼자 보낸다고는 안 했습니다.”
나타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같이 간다고요? 미쳤어요?”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알렉세이 또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저격수가 있으면?”
“그건 우리 팀원들이 해결해야지.”
“어떻게?”
“A팀은?”
“근처에서 대기 중이다.”
“아마 여기서 나가는 즉시 추적이 붙을 테니 A팀에게 지시를 내려. 근처에 저격할만한 곳은 싹 다 확인하라고.”
“저격할만한 곳?”
“그래. 강에서 저격할 확률이 90퍼센트야. 그 외에는 저격지점이 없다.”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건가?”
“확실해.”
저격수는 위치가 발각되는 순간 끝이다. 이쪽에서 위치를 알고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저격수가 있는 위치에 `나 여기 있소!` 소리치듯 병력을 숨겨 둘 리 없으니까.
애초에 저격수 위치가 발각당하면 이쪽에서 약속장소로 가지 않을 것이다.
“알겠다.”
알렉세이가 먼저 자리를 비웠다.
나타샤는 묘한 표정을 이휘를 바라보다 물었다.
“팀원들을 믿어요?”
“백 퍼센트.”
“당신이 있으면 나를 확실히 지킬 수 있다는 것도?”
“날 믿으니까 선뜻 나서겠다고 한 것 아닙니까? 아니면 설마 저 미치광이들이 절대 죽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뇨.”
“목숨을 걸어줬으니, 나도 목숨 걸고 지켜주죠. 갑시다. 시간 없어요.”
이휘는 요원들과 차를 타고 알마즈 공장을 빠져나갔다. 미행이 붙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추적하고 있을 터였다.
저들이 확인한 병력은 B팀 병력 뿐.
A팀의 개입은 예상치 못하고 있으리라.
CIA의 개입은 더더욱.
운전석에 있던 알란이 진동이 오고 있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휘가 그걸 받아서 전화를 받았다.
“이휘입니다.”
-러시아 정부, 한국 정부와 얘기 끝났소.
“뭐라고 합니까?”
-이휘 씨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고. 돌아가면 문책하겠다고… 말뿐인 것 같지만.
“확신해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지.
“그래서, 지원은 가능한 겁니까?”
-직접적인 지원은 없소. 위성 정보만 넘기지.
“충분합니다.”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당신들이 해주리라 기대했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더 빠르고 확실하게.”
-못 말리겠군.
CIA 동부아시아 팀장은 나타샤와 같은 말을 뱉어놓고는 말을 이었다.
-한국에 들어가 있을 테니 커피 한 잔 합시다.
“아니, 요원 보냈으면 됐지 팀장님은 또 왜요?”
-요원 한 둘한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상부의 판단이오.
“너무 높게 평가해주시는 것 같은데.”
-…아직도 사안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게 내 판단이고.
“그렇습니까?”
-됐고, 살아 돌아오시오. 여러모로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으니.
“거기에 팀장님도 포함됩니까?”
-당신이 얘기해준 정보들, 전부 한 치의 오차도 없더군. 이번에 북한이 도발할 거라는 것도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것 같고. 이제껏 계속 소란을 만든 건 아닐 테고… 소란을 만들 수 있는 자라는 것만은 알겠소.
“그래서요?”
-그런 사람이 또 나오는 것보단, 지금 우리 감시망에 있는 자가 저지르는 편이 낫지.
이휘는 피식 웃었다.
정말 그럴까?
“CIA의 방식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도를 지나치면 좌시하지 않을 거요.
러시아에 핵탄두를 넘기는 것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짓이다.
이휘는 이 순간에도 여러 나라를 쥐고서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진은 문자로 보내지.
전화를 끊고 얼마 안 가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을 내려다본 이휘가 쓰게 웃었다.
“일 개 대대는 되겠군.”
“그렇게 많이 동원했습니까?”
알란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이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허구한 날 하는 짓들입니다. 김 씨 일가 생일날이면 휴전선 코앞 전선에 탱크를 전진배치하고 포를 쏴대죠.”
“이번에는 그냥 협박이 아닐 텐데요.”
“우리가 탄두를 가진 이상 쉽사리 못 건드릴 겁니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준비했잖아요?”
알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피바람이 불수도 있습니다.”
“모르죠. 그렇게 되면 일이 좀 쉬워질 지도….”
이휘는 창밖을 응시했다.
어느새 10분 거리에 위치한 운덕군이 보였다. 마을 안에 배치한 병력들이 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마을 끄트머리에선 검문까지 당했다.
소초장이 입을 열었다.
“무기는 죄다 주고 가시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지 마. 네 머리를 쏴버리기 전에.”
잔뜩 곤두선 알렉세이가 권총을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북한군 병사들이 부랴부랴 총을 겨눴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상황이 더 심화되기 전에 이휘가 말했다.
“비키지. 이건 우리 편 말이 맞아.”
“상부의 지시가….”
“우리가.”
이휘가 말을 잘랐다.
“무기를 안 줘도 수거하라던가? 총격전을 감수하고?”
“….”
“우리 무기를 빼앗지 못하면 처벌하겠다고 했겠지.”
“무슨…!
“너희 목숨을 이용해 우리를 살살 긁어놓으려는 수작이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네 병력 몇 명으로 우리한테 무기를 빼앗으라고 했겠어?”
“우리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그때였다.
뒤쪽 차량에 숨어있던 요원들이 소초병들 뒤에서 나타나며 총을 겨눈 채 다가왔다.
“무릎 꿇어.”
소초병들이 눈치를 봤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선 요원들의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했다. 털썩, 털썩… 부하들이 쓰러지자 소초장의 동공이 떨렸다.
이휘가 나지막이 말했다.
“길 열어라.”
알렉세이가 안전고리를 풀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자, 소초장은 어쩌지 못하고 이휘 일행을 통과시켰다. 검문소를 지나며 알렉세이가 투덜거렸다.
“왜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하는 거지?”
“검문한 게 아니야.”
“뭐?”
“검문을 빙자해서 우리 트럭에 폭약과 도청장치를 단 거지.”
“너 그걸 어떻게… 아니, 그럼 이 얘기도 전부 도청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차량 아래 달아둔 걸.”
“그럼?”
“우리가 차에서 내린 뒤 다른 꿍꿍이를 부릴까봐 달아둔 거겠지. 폭약은 우리가 퇴각할 때 저지하기 위해서 부착한 걸 테고.”
“근데 지금, 폭약이 달린 차를 그냥 타고 간다고?”
“저쪽에서 겁 줬으니 우리도 보답을 해야지.”
“뭐?”
“차에서 다 내리면 적진으로 보내.”
“미치겠군.”
알렉세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짓을 당하고 이휘가 가만히 있으리라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미친놈이 확실하다.
그래도 썩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알렉세이가 말했다.
“다 왔다.”
다리 건너편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러 명의 북한군 병사들이 통신기기가 실린 차량을 끌고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뭐하는 짓이지?”
“화상으로 협상할 생각인가 본데.”
이휘가 알렉세이의 의문을 해소해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렉세이가 앞을 향해 손짓했다. 동시에 차량들이 슬슬 출발했다.
점점 속도가 붙는 차량들.
통신기기가 실린 차량을 폭약이 장착된 이휘 측 차량이 들이받았다.
콰앙!
“뭐야!”
“이런 미친…!”
다행히 첫 충돌에서 폭발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연이어 충돌이 이어졌다.
콰앙!
쾅!
지지지지직… 뒤로 밀려나는 차량들. 당황한 상대측 차량 운전병이 급히 후진을 했다. 그와 함께 막혀있던 이휘측 차량들이 고삐 풀린 말처럼 연이어 북측 진영을 향해 내달렸다. 그 순간.
콰앙!
쾅!
우레 같은 폭발음과 함께 포탄에 적중당한 차량들이 줄줄이 폭발했다.
다리 너머에서 불길이 넘실거리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지욱하게 물들었다.
“하하하하하하!”
알렉세이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기절할 뻔했겠군!”
“A팀한테 연락해봐.”
이휘의 말에 알렉세이가 눈을 크게 떴다.
“시간을 번 거였어?”
“겸사겸사.”
한숨을 내쉰 알렉세이가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보고하라.”
-물가, 보트 위에 숨어있던 저격수 열네 명, 전원 처치했다.
“숲속은?”
-이상 무.
“체크는 끝났나?”
-사로잡은 적병을 통해서 확인했다.
“신뢰도는?”
-99퍼센트.
알렉세이가 이휘를 쳐다봤다.
“전부 해치운 것 같은데?”
“저격 포인트 우리가 잡고 주변감시 철저히 하라고 해.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고개를 끄덕인 알렉세이가 그대로 전한다.
이내 상황을 지켜보던 나타샤가 물었다.
“직접 만날 생각이죠?”
“네.”
“지도부 중 한 명이 나왔다고 쳐요. 아니, 수령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직접 왔다고 치자고요. 여기서 그를 죽이면 우린 전부 죽은 목숨일 텐데 어쩔 생각이에요?”
“나타샤는 살겠죠.”
“농담하지 말고요.”
“그때가 되면 아마 작전을 멈추라는 지시가 떨어질 겁니다. 우리 계획대로 안 되도 수령이 죽이면 지도부에 작전지시를 내려줄 사람이 없을 테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무 끔찍한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비밀로 했는데, 장문택을 이용해서 지시를 끌어냈어요.”
“무슨 지시를…?”
“아까 얘기한 그 수령인지 뭔가 하는 사람 주변에 득실대는 친위대가 전부 다 이쪽으로 몰려올 테니, 그사이에 지도부를 점령하라고.”
“뭐에요? 그럼 배신한 사람과 계속 손을 잡겠다고요?”
“그럴 리가요. 그냥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장문택을 고문해서 지시하게 만든 건데.”
“그럼 어쩌려고요? 탄두는 우리한테 넘긴다 치고, 여기 온 목적을 포기하겠다는 거예요?”
“왜요?”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나타샤의 보석 같은 눈이 반짝인다. 이 여자는 이휘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타샤가 좀 더 평화적이고 지혜로운 점?
이휘가 좀 더 사납고 과감하다.
“맞아요. 그럴 리가 없죠. 그나저나 이렇게 보면 한국이 참 바보 같죠?”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그렇잖아요. 나라는 찢겨져 나가고, 다른 나라들 도움인지 간섭인지 꼼짝도 못하고.”
“그런데도 발전한 걸 보면 대단한데요. 아니, 근데 이게 뭐가 중요한 건데요?”
“그런 한국이라도, 10년 20년을 준비합니다. 유사시 계획도 세우고요.”
“…그래서요?”
이휘가 빙그레 웃었다.
“그 계획을 써먹을 기회를 만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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