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93
나는 회귀했다 93
“한국이…?”
나타샤가 묻는 그때였다.
알란이 연락 온 전화기를 건넸다.
-이게 무슨 짓이냐!
다리 건너 책임자가 크게 외쳤다. 이휘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장난 치냐? 지금 이게 게임 같아?”
-뭐?
“너희 쪽 책임자 대 우리 쪽 책임자가 만나서 담판을 짓는 자리 아닌가? 내가 요구한 것과 다른데. 이봐, 주도권은 나한테 있어.”
-싹 다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사그리 다 죽겠지. 너희, 그리고 우리도.”
-설마 위대한 수령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와계실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근처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지.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에서.”
-미친… 여긴 핵이 있는 위험지역이다.
“그리고 자국 군대가 있는 땅이지. 북한이 지금껏 자주권을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군사시설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고.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수령 보고 나오라고 해. 너희 예측대로 우리도 여기서 자폭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협상인원은 사전에 협의한 대로 셋이다.”
서로 우두머리끼리 만나는 것은 고대 시대부터 이어져온 협상의 관례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권한을 가진 책임권자가 직접 이야기해야 가장 협상의 진행이 빠르기도 하고, 서로 머리를 들이밀고 협상을 해야 양쪽 다 섣불리 총질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상대가 말했다.
-…기다려봐라.
무전이 끊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무전이 왔다.
이번엔 다른 목소리였다.
-네가 직접 나와라, 이 썅간나 새끼야!
툭.
무전이 끊어졌다.
이휘는 알렉세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
-대기 중이다.
이휘는 나타샤, 알렉세이만을 대동한 채 다리 중간에 위치한 소초로 향했다. 말이 소초지, 하나의 건물이다. 장비가 열악한 데 비해 보안을 중요시하는 북한은 이렇게 다리마다 관제실을 둬서 바다를 이용해 달아나는 탈북자들을 관측하고 검거해왔다.
바로 그곳에서, 북측 수령인 김정판과 친위대장, 경호부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정판은 비대한 몸집에 대놓고 방탄복을 입고 거만하게 세 사람을 오시했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오?”
무전에 대고 소리친 목소리는 아니다.
이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업 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이렇게 남의 나라까지 와서는 깽판을 쳐놓으셔도 되겠소?”
“들어서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당신네와 거래를 텄어.”
“거래?”
“알마즈. 못 들어봤나?”
“그럼 당신도 그 러시아 회사랑 밀접한 관계인가?”
“그래, 밀접하지. 근데 당신들이 숨기지 말아야 할 걸 숨겼어. 핵탄두가 있다는 것.”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요?”
“왜긴? 핵을 가져선 안 될 나라에 핵이 있다. 심지어 그 나라는 러시아의 한 무기회사와 지속적인 거래를 벌여왔다. 이런 시발, 그 화살이 누구한테 돌아갈 것 같아? 엉?”
“말조심하라!”
경호부장이 윽박질렀으나 눈앞의 돼지새끼, 김정판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는 뺨을 긁적이다 이휘 옆에 있는 나타샤를 힐끔거렸다. 침 떨어지겠다, 이 새끼야.
속으로 생각한 이휘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핵은 우리가 회수한다.”
돼지의 표정이 콱 구겨졌다.
“지금 기걸 말이라고 하네?”
“당신 유학 했었다며?”
“한데?”
“그럼 잘 알겠네. 러시아 정부와 손잡고 일하는 회사가 설마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핵을 탈환하진 않았을 거라는 것도.”
“기래?”
“한국과 러시아, 미국 정부가 다 함께 나서도 중국 정부에서 너희 편을 들까?”
“러시아에서 나선다고?”
“러시아 무기 중 일부가 우리 회사에서 나온다. 아까부터 쳐다보던데 이 분이 누군지 궁금하신가?”
이휘가 나타샤를 응시하며 덧붙였다.
“러시아 대통령의 영애시다.”
“안녕하세요.”
나타샤가 생긋 웃자 돼지의 얼굴이 쥐약 처먹은 것 마냥 붉어진다.
역시 미녀의 미소는 만국공통어다. 어쩌면 자신에게 충성하는 여자들만 상대하던 돼지 새끼 입장에서 나타샤 같은 서양의 신여성은 신선할 만도 하다.
그리고 이런 놈들의 공통점.
갖고 싶은 걸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못 가지면? 돌아버리고.
이 같은 감정변화를 모른 척 이휘가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가 가진 핵탄두. 그것뿐이야.”
“그런 놈이 어째서 장문택이와 작당한 거지?”
“작당하다니? 장문택이 날 해치려다 잡힌 것 몰라?”
“장문택이가 너희가 아오지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운 걸 모를 줄 알고?”
“그건 당신들끼리 문제지. 왜 나를 거기다 갖다 붙여?”
이휘는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후면 장문택에게 지시를 받은 군대가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을 덮친다.
그리고 지금쯤, 북한 진영에 능숙하게 어조와 목소리를 흉내 내서 `이상 무`를 전달한 아군 저격수들이 저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보물이 여기 있는데, 빛깔도 못고도 돌려보낼 수는 없지.”
김정판이 흉악하게 눈을 치뜨며 경호부장에게 외쳤다.
“싹 다 죽이라!”
경호부장이 무전기를 들어올렸다.
“발포.”
그 순간 이휘가 뒷짐을 졌다. `발포`란 명령을 듣고도 태연한 그를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김정판과 경호부장이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타앙!
거의 합쳐서 한 발처럼 들리는 총성. 김정판과 함께 온 친위대장이 머리통이 터져 나가며 고꾸라지고, 이휘가 나타샤를 알렉세이에게 떠밀었다. 동시에 발목에 숨겨둔 쿠크리를 뽑으며 테이블을 넘어갔다. 권총을 들어 올리는 경호부장의 손목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린 그가 경호부장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퍼억!
“컥!”
경호부장이 비칠비칠 물러나며 군용 나이프를 뽑았다. 총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이휘는 칼로 상대해 줄 생각이 없었다. 거리가 벌어지자 당장에 권총을 뽑아 쏴버리려 했다. 의외로 힘이 드센 김정판이 그를 껴안지만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휘는 그의 머리채를 잡고 경동맥을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빠악!
“끄윽!”
눈을 홱 까뒤집은 김정판이 쓰러지고, 그 사이 시간을 번 경호부장이 달려들었다. 알렉세이가 뒤에서 저격하지 못하도록 이휘를 엄폐물 삼아 달려든 그는 곧장 나이프를 휘둘렀는데,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서걱!
이휘의 손바닥 살점이 한 뼘쯤 떨어져 나가며 허연 뼈가 드러났다. 그 바람에 권총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역시, 최고 중의 최고를 경호부장 자리에 앉힌 게 확실하다.
“간나 새끼!”
아까 무전으로 욕한 것도 이놈이다.
이휘는 씨익 웃으며 쿠크리를 휙휙 돌렸다. 놈이 이휘한테 바짝 다가서 있어서 이휘 뒤에 서있는 알렉세이도 총질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타샤를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허나 나타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뭐해요? 도와주세요!”
총을 겨눈 채로 알렉세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틈이 나거든 그럴 겁니다.”
“지금 이럴 때에요? 저 사람, 북한 최고의 실력자니까 자기네 대장을 지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뭐요?”
“뭐라고요?”
“나도 근접전은 러시아 최고라고 자부하는데, 이휘 저 인간과 지금 붙으면 이길 자신 없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시오. 그냥.”
그사이 이휘는 여러 차례 공방을 주고 받았다. 다리를 후려 차도 한 발 더 다가서며 번개처럼 손을 뻗고, 자세를 숙여 손을 피하면 놈도 허리를 팍 낮춰 알렉세이의 총구를 피하면서 바닥을 쓸어왔다.
이휘는 그 발차기에 어깨를 내주는 대신 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뻐억!
어깨가 탈구되는 격통이 몰아쳤지만 그의 쿠크리는 이미 살점이 떨어진 반대편 손에서 휘둘리고 있었다.
그러나 경호부장은 나이프를 거꾸로 고쳐쥐며 괴력이 실린 칼날을 받아냈다.
카앙!
불꽃이 튀며 쿠크리 날이 나이프 날을 긁고 지나갔다. 문제는 경호부장이 끝까지 버틴 뒤 쿠크리를 회수하기도 전에 나이프를 휘둘렀다는 점이다.
슈욱!
이휘의 뺨에 베이며 실선이 그려졌다. 그럼에도 이휘는 개의치 않고 단검을 찌른 팔을 겨드랑으로 감으려고 했다. 그 순간 경호부장이 발로 이휘의 발을 밟은 뒤, 배를 걷어찼다.
퍼억!
이휘가 두 걸음 물러나는 사이 단숨에 따라붙은 경호대장이 군용 나이프를 휘둘렀다.
쉬익, 쉭!
빨라도 너무 빨랐다. 평생 칼질만 하면서 살아온 놈처럼. 이렇게 빠르니 이휘의 대응이 늦어지는 것이다. 눈이나 머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칼이 들어오니 완벽히 피하거나 막기가 쉽지 않았다.
감각에 의지해 한 발 빠르게 움직일 뿐.
하지만 이런 예측성 움직임은 도박이나 다를 것이 없다.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이휘가 쿠크리를 틈틈이 휘둘러 반격했다.
카앙!
가볍게 쳐낸 경호부장이 다시 한 번 나이프를 휘두른다.
피잇!
살갗을 스치며 목에서 피가 나고.
이휘는 쿠크리가 너무 무겁고 길어서 번거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근접전에서 가장 잘 쓸 줄 아는, 그리고 애용하는 병기를 들고 이런 느낌이 든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싸움이 지속될수록 더 위기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웃음기가 자리 잡았다.
점점 더 세포가 깨어나고 있다.
핏!
피잇!
살갗이 군데군데 베여 혈선이 생긴다. 피가 흐를 때마다 혈액순환이 되듯이 머릿속은 맑아지고 있었다.
“후우, 후우.”
거친 호흡.
이쯤 되자 계속 거리를 좁히며 몰아치던 경호부장도 전략을 바꾸었다. 이휘의 실력을 봤으니, 좀 더 겁 없이 파고든 것이다.
타앗!
한 발 더 들어온 그가 이휘의 가슴팍을 갈갈이 찢어버리려는 찰나.
이휘는 불현 듯 쿠크리를 내던지며 손을 뻗었다. 그가 던진 쿠크리를 쳐내느라, 경호부장은 한 템포 늦게 나이프를 뻗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이프를 쥔 경호부장의 손목을 가로챈 이휘가 휘익 돌아서며 젖 먹던 힘으로 끌어당겼다.
“칫!”
끌려 들어오는 경호부장. 그는 눈을 치뜬 것도 잠시, 알렉세이에게 등을 내줄 각오로 이휘가 꺾은 팔의 궤도를 따라 돌며 다리를 걸었다.
타악!
다리를 걸린 이휘가 붕 떠서 자빠지려는 순간 경호부장이 나이프를 거꾸로 쥐며 목 줄기를 따려 했다. 그러나 때마침 이휘는 붕 뜬 상태에서 그의 손목을 날렵하게 거머쥐며 두 다리로 그의 팔을 꼬아서 휘리릭 돌아버렸다.
우드득!
다리 사이에 저당 잡힌 팔이 부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발등 사이에 끼워졌던 모가지까지 돌아간 경호부장이 맥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우당탕!
바닥을 한 바퀴 구른 이휘가 벌떡 일어나 반사적으로 빼앗은 단검을 집어던졌다.
퍼억!
안 그래도 목이 돌아간 경호부장의 머리통이 반대로 툭 꺾였다. 이휘가 그의 옆얼굴에 칼을 던져 꽂아넣은 것이다.
“으, 잔인하군.”
알렉세이가 엄살을 떨었다.
이휘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그러더니 `후우` 길게 한숨을 쉬며 호흡을 정리한 후, 나지막이 덧붙였다.
“…평양에서 소식이 날아올 때까지 김정판은 살려둔다.”
“그 후에는?”
“장문택과 대질시켜 봐야지.”
“또 복잡하게 판을 흔들려고 하는군.”
“맞아. 우리가 흔들 대로 흔들어 놓으면, 그사이 평양에 태극기가 꽂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