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12
112 상태창
다음 날 아침.
바닥에 앉아 고양이를 지그시 노려보는 김하늘과 딴청을 부리며 시선을 피하는 봄이. 그 희안한 광경을 보며 최민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 씨는 왜 저러고 있어요?”
“그게 설명 드리자면 조금 복잡한데···.”
“너 혹시 환생이나 전생자, 뭐 그런 거냐?”
– 끽?
누가 웹소설 작가 아니랄까 봐. 요상한 질문을 던지는 김하늘과 마치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 비웃는 봄이의 대환장 콜라보레이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여인은 조용히 시선을 떼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메인요리는 아침 일찍 일어난 김하늘이 미리 해뒀고, 이제 얼추 세팅만 하면 되는 상태.
“큰 오빠는 좀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제 일로 충격을 좀 받은 것 같기는 한데. 원래 그 사람 장점이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나는 거니까.”
“후후. 그거야 그렇죠.”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게···.”
“김하늘! 아침 먹고 2차전이다!”
최민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산이 목소리를 높이며 거실로 나왔다. 그는 오자마자 당장 김하늘부터 찾았다.
허나 김하늘은 봄이와의 눈싸움에만 집중하며, 강산에게는 일말의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 형님이랑 철권 안 합니다.”
“치사하게 자기만 이기고 도망치겠다고!?”
“형님 개 못하시잖아요.”
“······!?”
직설적인 김하늘의 화법에 모두가 놀랐다. 다만 놀란 이유는 모두가 달랐는데.
강바다는 항상 서비스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던 그의 직설적인 말을 처음 들은 탓이었고. 최민서는 김하늘의 대응법에 놀란 것이었다.
‘저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했어!?’
평소에는 한 그룹의 부회장으로서 손색이 없는 남편이지만, 일상에서는 가끔 저렇게 어린애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특히 이상한 승부욕이 불타오르면 앞뒤 안 가리고 코뿔소처럼 몇날 며칠을 들이박는데. 이럴 때마다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녀가 찾아낸 대응법은 직설적인 팩트만으로 두들겨 패는 것.
헌데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된 김하늘이 완벽한 대처를 보이는 것이다.
‘···정말 범상치 않은 사람이네.’
어쩌면 어젯밤에 잠깐이나마 느껴봤던 살벌한 분위기와 연관이 있는지도.
최민서가 이런저런 추측을 하던 그때. 렉이라도 걸린 듯 제자리에 굳어버렸던 강산이 몇 차례 부들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인정한다.”
“큰 오빠가 고개를 숙이며 인정했어!?”
강산의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알고 있던 강바다는 내심 두 사람이 멱살잡이라도 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도리어 강산이 솔직하게 인정해버리자 당황스러움을 넘어 황당함까지 느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최민서는 어느샌가 휴대폰을 꺼내 그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언니?”
“이건 정말 귀한 장면이에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빅 이벤트! 찍어두면 한동안 편하게 부회장님을 컨트롤 할 수 있어요!”
“···그, 그렇군요.”
여기 온 이래 가장 흥분한 듯한 최민서에 모습에 강바다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강산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녀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던 모양. 더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은 부분이었기에 강바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나도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꼈다. 멕시코에 있을 때는 나를 한 판도 이기는 놈이 없었거든.”
“형님은 우물 안 개구리셨군요.”
“바로 그거다!”
강바다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맥락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투만 조금 다듬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네 실력이 부족하다’라는 의미다.
당연히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강산은 오히려 맞장구를 치고 있으니.
“제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네?”
“자기객관화가 뛰어나고,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보면 도전정신을 불태워요. 그 사람을 뛰어넘기 위해서.”
사뭇 진지한 최민서의 말에 강바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산이 대한 그룹의 부회장을 차지한 이유가 단순히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니.
상대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게 있으면 뭐든지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부탁하마. 부디 한 수 가르쳐다오. 너에게 배운다면 언젠가 ‘그 녀석’에게도 닿을 수 있을지 몰라.”
“그 녀석이라뇨?”
“공식 대회 우승 횟수만 100회에 달하는 살아있는 전설 ‘니킥’. 언젠가 온라인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처참하게 깨졌거든.”
“······.”
처음으로 김하늘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강산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듯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강산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이내 그의 진심을 확인한 김하늘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무리입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그 형은 저도 못 이겨요. 그러니까 저한테 아무리 열심히 배워봤자, 한두 판 따내는 거면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승리는 불가능해요.”
확실하다는 듯 자신의 패배를 단언하는 김하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강바다가 입을 떡 벌리며 끼어들었다.
“하늘 씨도 못 이긴다고요?”
“다들 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과장된 것 같은데. 엄연히 저도 사람입니다. 각 분야의 최고 실력자를 이기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죠.”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뜻?”
“상황에 따라서는요.”
으음-
최민서가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바꿔 말하자면 상황이 갖춰지면 그 분야의 최상위 실력자라도 이길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니킥을 직접 만나본 거냐!?”
다만 강산만큼은 감상이 조금 다른 듯했다. 그는 전에 흥분하며 시뻘게진 눈으로 김하늘의 어깨를 붙잡았다.
“만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그 형도 저희 공대원이니까. 아무튼 예전에 저도 한 번 이겨보겠다고 죽어라 연습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최종 승률이 3할밖에 안 나왔어요.”
“니킥이 너희 공대원이라고-!!?”
휙휙-!
잔뜩 흥분한 강산이 어깨를 흔드는 통에 풍선 인형처럼 정신없이 흐느적거리는 김하늘. 와중에도 그는 성실히 대답했다.
“제가 말 안 했던가요?”
“언급도 안 했어!”
“그렇군요.”
“그렇군요라니!? 이 자식아, 네 공대는 대체 정체 뭐야? 박주부만으로도 놀라운데 니킥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형님, 침 튀깁니다.”
강산의 격렬한 반응에도 김하늘은 침착하게 응대했다. 그 모습이 마치 진상을 상대하는 프로 알바생의 모습 같아서 강바다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쯤하고 밥부터 먹어요.”
퍽-!
다행히 늦지 않게 나선 최민서가 사태를 진압했고, 강산은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앉았다.
식사하는 동안에도 강산은 시종일관 김하늘을 노려봤고, 김하늘은 익숙하다는 듯 흘려넘기며 얌전히 밥을 먹었다.
“야, 너 다 먹었지? 그치!?”
“아직 디저트가 남았···.”
“나중에 내가 과자로 된 집이라도 만들어 주마! 그러니 얼른 대답해 줘! 너희 공대는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거냐고!?”
하아-
김하늘의 진심 어린 한숨.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싸늘한 반응에 모두의 몸이 굳었다.
심지어는 강산마저 움찔할 정도였던지라, 식탁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끼야옹!
그때 정적을 깨트린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봄이였다. 녀석은 김하늘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올랐고, 그는 가만히 녀석을 내려보았다.
그러기도 잠시.
김하늘은 다시금 한숨과 함께 봄이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환기되며 다들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형님.”
“···으응?”
“나중에 천천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어, 응. 그래. 너 편할 때 하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쿡쿡-
천하의 강산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일련의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최민서가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강바다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에 깜짝 놀란 강바다가 옆을 쳐다보자, 최민서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가씨. 남편 한번 실하게 잘 고르셨네요.”
화아악-!
강바다가 얼굴이 목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직후 조심스럽게 끄덕거리는 고개. 그를 본 최민서가 다시금 웃음을 삼켰다.
* * *
“귀찮네.”
– 끼옹.
급한 업무가 생겼다는 말을 핑계로 방으로 들어온 나는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옆으로는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온 봄이가 자리했고, 나는 습관처럼 녀석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너 인마, 역시 사람 말 알아듣는 거 맞잖아.”
– 끼옹?
“끝까지 모르는 척하기는.”
– 끼우우웅.
봄이가 봐달라는 듯이 뺨에다 머리를 비벼댔다. 녀석의 뻔뻔한 애교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궁둥이를 토닥여줬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녀석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건 크게 나쁜 일도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나로서는 고마워해야겠지.
“아직 완치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어쨌거나 네 덕분에 트라우마도 치료했으니까.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줄 테니 알아서 처신 잘해라.”
– 끼옹!
힘차게 대답한 녀석이 침대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뭘 하는가 싶어서 가만히 지켜봤더니, 대뜸 서랍 손잡이를 물고 잡아당기는 녀석.
봄이는 자신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서랍을 꺼낸 후, 그 안으로 폴짝 점프해서 츄르 하나를 물고 나왔다.
“···이젠 숨길 생각도 없냐?”
저거 혹시 진짜 환생자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눈앞에서 고양이가 저 짓거리를 하는 걸 보면 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허나 녀석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앞발과 이빨을 이용해 능숙하게 츄르 봉지를 뜯으며 내용물을 만끽했을 뿐.
가히 ‘묘기’라고 부를 만한 행보에 넋이 나간 나는 나지막이 한 마디를 외쳤다.
“···상태창.”
혹시나 해서 외쳐봤건만, 안타깝게도 내 눈앞에는 그 무엇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엄청난 쪽팔림과 자괴감에 고개를 숙이다가, 문득 봄이와 눈이 마주쳤다.
– 끼끽!
“······.”
명백한 비웃음이었으나.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녀석은 고양이니까. 여기서 드잡이질을 해봤자 내가 우스워질 뿐이다. 그렇게 자위를 하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 끼옹?
어디를 가냐는 듯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대체 얼마나 똑똑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대답은 해줬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도망쳐오긴 했는데, 계속 바다 씨를 혼자 두기도 좀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내가 옆에 있어 줘야지.”
– 끼옹끼옹.
“쓰레기 처리 잘해라.”
휙휙-
봉지 안에 남은 츄르를 짜내며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휘젓는 봄이. 나는 다시금 헛웃음을 삼키며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강산과 최민서 사이에 끼어서 온갖 질문에 시달리고 있는 강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둘이 정말 안 했어요?”
“···안 했어요.”
“막내야, 그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하늘 씨는 그냥 하늘 씨죠.”
나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떨어지는 그녀는 잠깐 사이에 완전히 방전되어버린 상태. 지금은 그냥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기계나 다름없었다.
음-
나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대로 내려가면 저 수많은 질문의 타겟이 나로 바뀌겠지. 그럼 무척이나 귀찮아질 것 같다.
‘그래, 바다 씨도 이제 어른이야.’
이 정도 일은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 선생님의 격언도 있지 않던가.
나는 최대한 조용히 몸을 돌렸다. 허나 그 짧은 순간 미세한 인기척을 느꼈는지 강바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
“······.”
잠시 허공에서 엇갈리는 시선. 동태 눈깔처럼 완전히 빛을 잃었던 그녀의 눈동자에 점차 생기가 돌아왔다.
위험하다.
강산 부부의 시선이 내게 닿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내가 재빨리 발을 움직여 달아나려는 순간.
생존 본능 덕분인지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킨 강바다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왜 다시 올라가는 거예요!?”
“위에 급한 일이 생겨서···.”
“거짓말하지 마세요!”
강바다가 뒤에서 있는 힘껏 나를 끌어안은 채로 매달렸고. 차마 그 손을 떼어낼 수가 없던 나는 제 발로 지옥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