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30
130 인당 최소 1억
“엄마.”
“응?”
“우리 오빠가 돈을 왕창 벌었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사하는 것도, 고급스러운 차도 전부 다 이해했단 말이지.”
“그런데?”
“근데 지금 이 상황은 이해가 안 돼.”
오늘은 백화점 휴무일이다.
그런데 수십 명의 직원이 출근한 것도 모자라, 레드카펫 양쪽으로 쫙 도열해서 90°로 인사까지 해오는 상황.
‘심지어 내가 그 중앙으로 걸어가야 한다니!?’
김구름은 속으로 경악성을 토했다.
만약 드라마에서 이 장면이 나오면 현실성이 너무 없는 거 아니냐면서, 시청자들에게 욕을 잔뜩 먹었을 거다.
그런데 막상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현실로 닥쳐오자, 천하의 김구름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이 인간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한눈에 봐도 꽤 높은 직위를 가진 직원과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김하늘. 가만 보고 있자니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대우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게,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닌 듯했다.
‘그냥 좀 유명한 작가 아니었어!?’
물론 잡지 메인 모델이 되거나, 유명 유튜브 채널 혹은 TV에 나오는 등. 김하늘이 반쯤 연예인이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휴무일인 백화점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다니!
“근데 엄마는 왜 그렇게 차분해?”
“응?”
“아니, 그렇잖아. 우리가 뭐 교도소에서 출소한 조폭 두목도 아니고. 이런 부담스러운 환영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아?”
“어···. 응. 그렇지. 이상하지. 응.”
느닷없이 돌아온 총구에 정마리아가 움찔거렸다. 그녀의 낯선 반응에 김구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뭐야? 설마 엄마 아빠한테도 뭔가 비밀이 있는 건 아니지? 가령 마을의 왕따였던 얘가 알고 보니 전대 호카게의 아들이었다던 유명 애니메이션처럼.”
“으응? 그게 대체 무슨 말이니?”
“아냐, 미안. 내가 실없는 소리를 했네. 솔직히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자기가 말을 꺼내고도 어이가 없었던 김구름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너무 굉장한 사건들을 연달아 겪다 보니, 뇌가 자꾸 찌릿찌릿하면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건 단순히 돈이 좀 많다고 가능한 일이 아닐 텐데 말이야. 혹시 바다 언니가 입김을 불어 넣은 건가?”
“우리 새아가?”
“응. 나도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바다 언니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거든. 소문으로는 재벌 가문의 숨겨진 막내라고도 하던데?”
“어머, 그랬구나.”
“···혹시 알고 있었어?”
“아니, 지금 처음 듣는데?”
정마리아의 반응에 김구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봐도 처음 듣는 사람 같은 반응이기는 한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달까.
허나 김구름은 곧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 때문에 자신의 신경이 너무 곤두선 것 같다고 자각하면서.
그렇게 떠드는 사이, 김하늘 일행은 어느덧 레드카펫을 지나 백화점 안쪽으로 들어섰다.
“우와···.”
오늘만 벌써 몇 번째 내뱉는 감탄사인지. 입구에서부터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다졌던 김구름이지만, 이건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백화점 자체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화려했다. 손님이 자신들뿐이라는 것만 빼면.
그것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깨달았다.
“자, 이제 다들 흩어집시다.”
그때 문득 김하늘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더니, 그가 뒤에 설명을 덧붙였다.
“각자의 취향이 모두 다르잖아요. 매장은 전부 열어 달라고 했으니 마음껏 구경들 하시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가격 상관없이 구매하세요. 그러다 18시에 합류해서 같이 저녁 식사나 하죠.”
“······.”
“물론 계산은 제가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직원분들이 뒤에서 계속 따라다니면서 도와주실 거예요. 그러다 궁금한 게 생기시면 그냥 편하게 여쭤보시면 됩니다.”
“···갑자기 그러라고 해도 말이지.”
김하늘의 말에 가족들은 당황스럽다는 듯 서로를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돈도 써본 사람이 더 잘 쓴다고. 반평생 동안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들인지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당연히 김하늘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사전에 강바다와 이에 대해 논의했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으니.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니?”
“최소 1억씩은 채워오세요.”
“자, 잠깐! 1억이라니!? 그것도 최대가 아니고 ‘최소’라고? 오빠,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거야? 우리가 그럴 돈이 어디 있다고···.”
“동생아, 여기 직원분들 보이지?”
1억이라는 말에 발작하며 그를 말리려는 김구름이었으나, 김하늘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으며 뒤쪽으로 시선을 줬다.
그를 따라 김구름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아까 봤던 수십 명의 직원이 서 있었다.
“아까 네가 말했던 대로 오늘은 백화점 휴무일이야. 근데 내 무리한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신 거고.”
“그러게 누가 이런 미친 짓을···.”
“참고로 우리가 구매하는 만큼 저분들한테 일정 지분 인센티브가 돌아간다. 그래서 인당 최소 1억이라는 거야. 이해되지?”
“심지어 인당이라고!?”
“그 정도는 구매해야 저분들도 출근한 보람을 느끼지. 안 그러면 트리니티 회원 자격을 박탈당할지도 모르니까 모쪼록 잘 부탁한다?”
툭툭-
김하늘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김구름의 어깨를 두드렸다. 평소였으면 경기를 일으킬 그녀였으나, 지금은 너무 놀라서 그럴 기력도 없었다.
“···트리니티 회원은 또 뭐래?”
김구름이 무어라 중얼거렸으나, 김하늘은 자기가 할 말은 전부 끝났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직원들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 가족들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럼 다들 있다가 보자.”
침묵 속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정마리아였다. 그녀는 세상 밝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
이에 당황한 김구름이 얼른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정마리아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여유롭게 몸을 피했다.
“너도 서두르렴. 1억이라는 돈이 생각보다 꽤 많단다? 18시까지 목표치를 채우려면 쉽지 않을거야. 당신도 얼른 움직여요.”
“흠. 그럼 일단 나는 전자매장부터 가봐야겠구나. 새로 이사할 집에 들일 가구를 미리 골라두는 것도 괜찮겠어.”
“아빠까지!?”
비교적 덤덤한 두 사람의 반응에 김구름은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물론 전에 강바다와 함께 쇼핑했을 때도,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무슨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아무렇지 않게 선물 받기는 했다만.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정말 지극히 평범했다. 뒤를 따라다니는 수행원도 없었을뿐더러 다른 손님들도 수두룩했단 말이지.
‘근데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르잖아!’
지금은 아예 백화점 전체를 독점해버린 상황. 어디서 빌게이츠라도 데려오지 않는 이상 괴리감을 느껴야 정상인데.
가족들이 하나 같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니까, 오히려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엄마는 1층부터 가봐야겠다.”
“나는 5층이네. 다들 있다가 보자고.”
“······.”
잠시 김구름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부모님들은 각자의 취향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덕분에 일부 직원들과 함께 덩그러니 입구에 남겨진 김구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구름 아가씨.”
“···네? 저, 저요?”
낯선 호칭에 김구름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자, 박실장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시면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혹 뭐가 좋은지 모르시겠다면 저희가 괜찮은 매장을 추천해드릴 수도 있고요.”
“······.”
“안내해드릴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차마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김구름은 결국 얌전히 순응하기로 했다.
* * *
“하늘 씨! 여기예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인근의 룸카페로 들어섰다. 그러자 강바다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왔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일이 밀려서 저도 지금 막 도착했어요.”
테이블 위에 있는 노트북이나 커피잔을 보니 딱 봐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린 것 같은데.
허나 굳이 그녀의 거짓말을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은 그저 그녀의 넓은 배려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걸로 족하다.
“뭐 하고 계셨어요?”
“연구소 후임이 헷갈리는 게 있다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생각보다 질문이 많아서 대답해주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인수인계는 전부 끝내고 나오셨잖아요?”
“두 달 정도 같이 일하면서 가르치긴 했죠. 근데 이쪽 일을 아예 처음 해보는 애라 그런지, 일이 조금 벅찬 것 같더라고요.”
“···으음. 그렇군요.”
강바다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떤 상황인지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적 능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적당히도 아니고 천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수준으로.
그만큼 일 처리가 빠르고 정확했기에, 지금껏 혼자서도 거뜬히 몇 인분의 일을 감당했을 테지.
헌데 그게 몇 년씩이나 지속되면서 연구소 내에서는 그 업무량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 거다.
‘···뭐라 지적하기도 애매한 문제지.’
이건 강바다의 배려심이 부족하다기보다, 그저 ‘이걸 대체 왜 못하는 거지?’라는 천재들만의 특유한 발상 때문에 벌어진 일.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연구소 선임들이 신입의 업무 과중을 눈치채고, 적절한 역할분담을 해주는 거겠지만.
‘···아마 그건 좀 시간이 걸리겠지.’
나는 잠시 마음속으로나마, 강바다의 후임분을 위해 소소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 선임이 에이스면 뒷사람이 개고생하는 거다. 종종 군대에서 ‘선배님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며 연락 오는 내 후임들처럼.
“근데 가족분들은요?”
“모두 백화점에 계세요. 아마 지금쯤 1억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돈이었구나 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계시겠죠.”
“구름 씨를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걔는 이렇게 대놓고 판을 깔아주면 오히려 당황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보다는 저희 어머니가 제일 무섭죠.”
“어머님이요?”
강바다의 물음에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머니가 아무런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명품을 구매할 분은 아니시지만.
‘주어진 기회를 마다할 분도 아니란 말이지.’
그동안은 경제적 여유가 따라주지 않았을 뿐. 가끔 친구분들과의 통화를 들어보면 어머니의 원래 씀씀이는 상당히 크신 편이었다.
언젠가 가족들이랑 한번 술을 잔뜩 마셨던 날. 그때 아버지께서 푸념하시듯 옛날 일을 늘어놓으셨을 때도.
– 너희 엄마는 원래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다. 괜히 나 때문에 고생만 시켰지. 가지고 있던 옷이랑 장신구도 전부 내다 팔···. 악!
– 취했으면 그만 들어가서 자요.
중간에 화끈하게 등짝을 얻어맞고 쫓겨나시긴 했지만, 그때 들었던 말이 내 심장에 비수처럼 박혀서 잊히질 않았다.
그 말이 지금 와서 갑자기 왜 생각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이전에는 꽤 많은 명품을 가지고 계셨을 거다.
“뭐, 있다가 영수증 보면 알겠죠.”
“몇 시에 오신다고 하셨죠?”
“넉넉하게 18시까지 쇼핑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저희는 20분 정도 먼저 가서 여유롭게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하늘 씨, 저 잘할 수 있겠죠?”
강바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우리 가족을 처음 만나는 건 아니었으나,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으니.
이에 나는 환한 미소와 함께 강바다의 손을 힘껏 잡아주었다.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잘 될 거예요.”
“하늘 씨만 믿고 있을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씨익-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사실 나도 속으로는 꽤 많이 떨렸다.
사실 앞서 내가 준비한 선물들은, 곧 우리 눈앞으로 다가올 순간을 위한 빌드업이기도 했다.
오늘은 우리의 결혼 소식을 부모님께 정식으로 알려드리는 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