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44
144 그래, 이래야 내 핏줄답지!
“회장님, KS 자동차의 구조조정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명단은 완성되었고, 이제 실행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떻지?”
“철강도 순탄하게 진행 중입니다만, 이사진들 간의 주도권 싸움이 워낙 치열해서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3일 안으로 끝내.”
“예!? 최소 일주일은···.”
“이봐, 정사장.”
꿀꺽-!
온기라고는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아버지. 아니, 회장님의 부름에 정지훈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수십 년을 곁에서 보좌하며 그의 행적을 쭉 지켜봤다. 동시에 어떻게든 그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으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형제자매 중에서도 정규섭의 시선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내 자리도 절대 안전한 게 아니야.’
정규섭에게는 혈육의 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은 기회를 허락해 줄 뿐.
언제 퇴직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임에도, 여전히 부회장 자리에 자신의 심복을 앉혀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자신도 다른 혈육들보다 아주 조금 나은 정도일 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이 자리를 차지하겠지.
“해보겠습니다!”
“쯔쯧. 해보는 게 아니라, 해내야 하는 게야. 철강에 앉혀놓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김이사랑 박이사한테 휘둘리나?”
“···죄송합니다.”
정지훈은 허리를 90°로 꺾으며 넙죽 사과를 건넸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으나, 내뱉어봤자 무능하다는 소리만 들을 게 뻔했으니.
‘···그 둘은 개국공신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조금 전 언급된 김이사랑 박이사 모두 KS 그룹의 초창기부터 정규섭과 함께했던 개국공신이자 수족과도 같은 존재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회사에서 일한 만큼 인맥도 넓고 탄탄하다.
자신이 정규섭의 장남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
‘회장님은 오로지 능력만 보신다.’
정규섭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능력뿐. 두 사람 모두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이라 상대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정사장님, 이건 좀 아니죠.
– 이건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 그렇게 일하시면 회장님께 또 혼나실 겁니다.
KS의 중심이라 불리는 철강에 들어왔을 때는 드디어 정규섭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했건만, 이것도 시험의 일종이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이것저것 개혁해보려 해도, 저들끼리 편을 갈라 반대하고 나서니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었다.
사실상 바지사장이나 다름없는 신세랄까. 그래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으나, 말 그대로 그뿐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력은 누구나 해. 그러니 잘 하는 게 중요한 거지. 내 피를 물려받았으면서 훈련된 개조차 제대로 못 다루면 어떡하나?”
“······.”
“에휴, 손주 놈이었다면 진즉 해결했을 텐데. 하다못해 혜진이가 그 자리에 앉았어도 너보다는 잘하고 있을 게다.”
까드득-!
정지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둘째인 정혜진과 비교당했는데, 요새는 그 아들내미한테까지 당하고 있다.
저 늙은이가 드디어 노망이라도 난 건지 허구한 날 ‘우리 손주’라고 부르면서, 자식들에게도 보인 적 없던 애정을 보낸다.
‘···이번 건도 그랬지.’
KS 자동차를 정리하는 건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으나, 좀처럼 진척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정규섭이 느닷없이 일을 진행시키는 바람에 많은 중진들이 당황했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아주 가관이었다.
– 축의금이다.
– 예? 그게 무슨···.
– 우리 손주 놈이 아주 재밌는 짓을 하더구나. 나에게 기막힌 선물을 보내줬으니, 이쪽도 마땅한 보답을 준비해야지.
껄껄-
자신이 밀어준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도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을 뿐이던 정규섭이 그렇게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는 것은 살면서 처음 봤다.
따로 알아보니 오래전 집을 나간 정혜진의 아들이 대한 그룹의 막내와 결혼을 한다던가. 이래저래 꽤나 유명한 놈이었다.
그룹 차원에서도 어쩌지 못한 일을 어떻게 이뤄냈는지는 알 턱이 없으나, 참으로 질긴 운명이라 생각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제가 어떻게든···.”
“아니, 됐다.”
달칵-!
정지훈의 말을 끊은 정규섭은 곧바로 옆에 있던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곧바로 연결되는 전화.
“어, 그래. 나일세. 박이사랑 같이 있나? 아아, 미안하지만 좀 불러와 주게나. 내가 자네들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띡-
상대의 대답을 들은 정규섭은 수화기를 다시 내려놓고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정지훈을 쳐다봤다.
– 회장님, 박이사를 데려왔습니다.
“그래, 바쁜 사람들을 불러서 미안하군. 근데 이쪽도 조금 급해서 말이야. 최근 구조조정 문제로 문제가 많다면서?”
–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저희가···.
“그만. 변명은 됐네. 자네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둘이 모인 김에 곧바로 상의해서 오늘 저녁까지 명단을 추리게.”
대화를 듣고 있던 정지훈의 눈이 커졌다. 바로 조금 전 자신에게 3일이라는 시간을 준다고 말했던 정규섭이다.
그것도 굉장히 빠듯하다고 느꼈는데, 고작 반나절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하라니.
이사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이전보다 훨씬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못하겠나?”
– ······.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게, 우리가 그동안 몇 년을 함께했는데 그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겠어?”
꿀꺽-!
정지훈이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찰나에 불과한 침묵이었으나 그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정규섭의 말투는 차분하고 평온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날이 서 있었다.
수십 년간 함께했던 이사들이 그를 모를 리가 만무했고, 그들 역시 재빠르게 대답을 내놨다.
– 하루! 딱 하루만 주십시오!
“하루라···. 내가 예상한 생각보다 조금 오래 걸리는군. 그만큼 내일 아침 회의에서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해도 되는 거겠지?”
– 예! 물론입니다!
– 만족하실만한 자료를 준비하겠습니다.
허-
정지훈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 앞에서는 고개 한번 숙이는 것조차 쉬이 하지 않던 인간들이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다니.
평소에는 야근은커녕 출퇴근 시간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인간들이지만, 오늘 밤만큼은 이사실에 불이 꺼질 일이 없을 듯했다.
“그래, 자네들만 믿고 있겠네.”
– 감사합니다!
뚝-
전화가 끊기고 정규섭은 말없이 정지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무어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이에 정지훈은 조금 전 이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저도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사들과 함께 최대한 좋은 결과를 만들어서 회장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그래, 그만 나가보···.”
똑똑똑-!
정지훈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던 그때 누군가 회장실 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이에 회장이 들어오라고 말하자, 비서장이 굉장히 다급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그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뭐라!? 그게 사실이야!?”
그러자 정규섭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저렇게 당황하시는 모습은 정지훈도 처음 봤던지라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도대체 어떤 일이길래 저럴까 궁금해졌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정지훈의 질문에 비서장은 슬쩍 정회장의 눈치만을 살필 뿐 대답하지 않았고, 정규섭 역시 감정을 억누르듯 부들거릴 뿐이었다.
이에 정지훈이 다시금 비서장에게 눈치를 주자,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KS 자동차 노조에서 구조조정에 결사반대한다며 들고 일어났습니다.”
“음? 그거야 예상했던 범위 아닙니까?”
이미 커뮤니티를 통해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던 이야기였다. 대응 메뉴얼까지 세워놨을 정도로 뻔한 레퍼토리였는데.
이에 비서장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으나, 정규섭이 말을 이었다.
“상정 범위를 한참 넘어섰다.”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 말에 비서장이 재빨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정지훈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각종 신문 기사가 모여있는 뉴스 창이 떠 있었는데, 헤드라인을 확인한 정지훈의 입이 떡 벌어졌다.
[KS 자동차 긴급 구조조정!] [유명 그룹 재정난에 시달리다!?] [잇따른 경영 비리 자체 숙청으로 덮으려 해···.]그들이 원하던 것은 KS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동시에 대한 자동차와 합병한다는 소문을 함께 흘려, 두 기업의 단합을 보여주려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허나 이 기사들은 묘하게 방향성이 다르다. 구조조정을 빌미로 다른 KS 그룹 산하 계열사의 안 좋은 실적 자료만 잔뜩 가져왔다.
주요 내용은 KS 그룹이 심각한 부채로 인해 재정난에 휘둘리고 있으며, 급히 계열사들을 정리하려고 한다는 것.
“대체 누가 이런 헛소문을···!”
어이가 없었다.
원래 기업은 최대한 많은 자본을 확보해서 굴리는 단체다. 얼마나 많은 대출을 할 수 있느냐가 그만한 능력이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즉, 기업의 부채가 많다고 해서 결코 나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건데. 논조를 교묘하게 비틀어서 KS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써놨다.
‘···물론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전문 투자가들처럼 이와 관련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금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할 것이다. 허나 대중들은 어떨까.
그들은 생각보다 경제 관련 지식이 전문적이지 않다. 그저 남들이 사니까 사고, 팔면 같이 파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빚 =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보니, 이 기사를 읽는 KS 그룹의 개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겠지.
‘이러다 내 돈 전부 날리는 거 아니야?’
시야가 좁아진 사람들은 급하게 KS그룹에 대해 검색해 볼 테고. 조금 전 기사의 여파로 확증편향이 생겨 비슷비슷한 자료만 찾아보게 될 거다.
결국 의심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패닉셀(공황 매도)’로 이어진다. 그렇게 실제로 주가가 떨어지면 그것이 다시금 사람들의 불안감을 고조시켜 급격한 하락장이 형성되는 것.
이를 모를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하락세는 얼마나 되지?”
“KS 자동차 관련 주식은 벌써 마이너스 10%까지 떨어졌습니다. 다른 계열사도 전부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중입니다!”
마이너스 10%.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다.
허나 이건 단순한 시작일 뿐. 이제 곧 점심시간이다. 직장인들은 너도나도 휴대폰을 꺼내 들고 주식 창을 확인하겠지.
이후에 벌어질 일은 불 보듯 뻔했다. 쏟아진 기사와 시퍼렇게 변한 주식 창을 보면서 패닉셀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언론에 연락은 했나?”
“예. 그런데 이게 대부분 외신 쪽에서 터져 나온 기사인지라 영 반응이 미적지근합니다. 일단 저희 측 언론에는 최대한 빠르게 반박자료를 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외신이라고?”
“그렇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영국 심지어 프랑스 같은 유럽 등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기사가 터졌습니다.”
“그놈들은 우리 회사 이름도 모를 텐데?”
“저희도 그게 의문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최근 국내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데다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사가 터지는 바람에···.”
비서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줄였다. 허나 정지훈은 그쪽으로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정규섭이 돌연 크게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큭, 크하하하!”
“···회장님?”
“크크큭,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어.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전부 그놈 작품이렷다? 내가 사람을 잘못 판단했구나.”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구긴. 김하늘이지.”
“김하늘라면···. 설마!?”
뜻밖의 이름이 등장하자 비서장은 물론이고, 정지훈 역시 두 귀를 의심했다. 허나 정규섭은 신경도 쓰지 않고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설마 그렇게 욕심이 많은 녀석일 줄이야. 내 선물이 영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로구만. 아암, 그래! 이래야 내 핏줄답지!”
“······.”
크하하하-!
분노는 물론이고,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광기 어린 웃음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정규섭의 표정이 돌연 차갑게 식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회장님, 어디 가십니까!?”
“우리 사랑스러운 손주 얼굴이나 보러 가련다. 이놈이 또 어떤 기가 막힌 짓을 준비하고 있는지 몸이 근질거려서 못 참겠구만.”
“그럼 저도 따라가···.”
“제정신이냐? 너는 이사들 소집해서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지. 기자회견도 준비하거라. 모아둔 돈으로 주가 방어하면서 시간이라도 좀 끌어봐.”
정규섭은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지훈은 그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