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35
135. 다들 그렇지 않은가?2016.02.17.
콱!
광휘는 구마도를 바닥에 찍고는 축 처진 오른손의 혈 자리를 빠르게 짚었다.
중독되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려 함이었다.
“이런 일이…….”
지켜보던 야월객 중 혼사가 입을 열었다.
그는 홀로 흐느끼듯 말했지만 분명 야월객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아래로 향하는 검신이 특이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검을 던져 은사를 꿰뚫을지는 몰랐다.
설령,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신으로 검기를 흘린다는 건 더욱 상상도 하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애당초 검기를, 도신을 이용해 막아낸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은 또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석궁에 갖다 대며 완벽한 기회를 잡았던 수라귀의 공격을 단숨에 파괴해버렸다.
몸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는 기함할 행동을 보인 것이다.
비상식적으로 패도적인 수법과 짐승 같은 초감각적인 반응.
그 움직임 앞에 중원 최고의 자객이라는 야월객들의 숨소리마저 죽어 버렸다.
“크크큭.”
콱!
광휘는 손바닥에 박힌 석궁을 뽑아냈다.
그리고 수라귀를 죽이면서 얼굴에 튄 핏물을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핏기가 손바닥에 머물러 있자 재밌다는 듯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즐거워. 지나칠 정도로…….”
광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야월객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그러고는 느릿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지이이잉!
그 모습을 보던 야랑은 급히 검기를 생성했다.
묘영 역시 검에 내력을 담았다.
빠득.
혼사는 이를 갈며, 들고 있던 검을 버렸다.
그러고는 허리에 감춰 놓은 연검(軟劍)을 꺼내 들었다.
연검은 허리를 감쌀 정도로 탄성이 좋아 채찍처럼 이리저리 휘어지는 검이다.
만들기 어려운 병기이니만큼 중원 내에서도 사용하는 자가 드문 병기 중 하나로 불린다.
촤라라락.
비부는 품속에서 푸른 구슬을 꺼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꼈다.
독환(毒丸)이라 불리는 구슬로 연기를 단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몸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비독이다.
상대가 이것에 중독되어도 좋고, 중독을 피하느라 제대로 된 호흡을 못 하게 되어도 움직임에 크게 제약을 가져올 수 있을 터였다.
스윽.
광휘는 일전을 준비하는 야월객들을 한 명씩 일별했다.
그 뒤, 한 사내에게 시선이 머물렀는데 이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네놈이 좋겠군.”
오싹.
광휘와 눈이 마주친 혼사의 몸엔 소름이 끼쳤다.
검은 동공이 붉게 변하는 기이한 광경.
순간적으로 상대가 인간이 아닌 아수라처럼 보였다.
‘설마…… 마공(魔功)?’
스윽.
야월객끼리 시선을 한 번 맞췄다.
그리고 그중 야랑이 지시를 먼저 내렸다.
“죽여!”
쇄애애애액!
그는 외침과 함께 검기를 날렸다. 묘영도 그에 따라 검기를 발출했다.
처억.
광휘가 급히 구마도를 집어 들고 앞을 막았다.
쩌정! 쩌어엉!
이번에도 그들의 검기가 구마도에 막혀 맥없이 사라졌다.
퍼퍼펑!
그 순간 광휘의 바닥 쪽에 폭음과 함께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광휘가 검기를 흘려내는 기예를 보이자, 아예 피하지 못하도록 지근거리에 독탄을 터뜨린 것이다.
스스스슥.
그때 혼사는 마치 약속한 듯 광휘를 향해 접근했다.
비부가 독탄을 터트려 독 가루와 허연 연기를 피워 올린 것은 사실, 그의 무대를 만들기 위한 공격이었다.
혼사는 이런 진흙탕 싸움이 장기였으니까.
‘앞!’
휘리리릭.
호흡을 멈춘 무호흡 상태에서의 진격. 코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휘두르는 낭창낭창한 연검은 알아차리기도 전에 상대의 목을 감아 버린다.
스윽.
광휘는 정면을 향해 구마도를 세웠다.
그리고 손목을 비틀어, 독사처럼 날아드는 연검의 궤도를 바꾸어 막아냈다.
깡. 깡. 깡!
“……!”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분명 뿌리쳤다고 생각했던 연검이, 검 끝만이 아니라 휘릭휘릭 휘어지는 검신을 통해 파도처럼 연속적으로 베어 오는 것이다.
파르륵! 파르르륵!
흐느적거리는 물결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휘어지며, 섬뜩하게 빛을 발하는 연검.
하지만 광휘는 여전히 덤덤하게 막아냈다.
구마도의 도신이 넓어 막기에 수월한 탓인지, 단지 약간의 비트는 동작만으로 공세의 대부분을 봉쇄해버렸다.
‘약점이다!’
혼사는 공격 중에도 한 가지를 떠올렸다.
조금 전 수라귀의 석궁에 맞고 중독된 오른팔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과연 광휘의 방어는 철벽같았지만, 그가 구마도를 쥐고 있는 손은 왼손. 오른손은 간간히 경련하며 힘을 잃고 추욱 늘어져 있었다.
‘저 팔을 노려야 해!’
그로 인해 집요함은 더욱 심해졌다.
패애액. 패액!
점점 현란해지고 예리해지는 상대의 연검에 광휘가 뒤로 쓱 움직였다.
허나, 몇 걸음 물러서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광휘의 의도를 알고 야랑과 묘영이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좌우 앞에서 휘몰아치는 매서운 검.
주위에는 한 번의 호흡만으로도 감염되는 독탄이 광휘의 시야를 더욱 좁히고 있었다.
비틀.
‘빈틈!’
무호흡 상태로 한참을 싸우던 광휘의 방비가 허술해졌다.
그 순간 혼사의 눈은 빛났다. 그리고 야랑과 묘영 역시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딱!
휘어지던 혼사의 연검이 구마도를 잡고 있는 광휘의 왼손을 때렸다.
일순간 광휘의 구마도가 아래로 처지고 그들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하앗!”
“핫!”
아량과 묘영은 같은 속도로 도약해 검을 휘둘렀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며 혼사는 연검을 이용해 물고기처럼 휘어지며 상대의 가슴을 요격했다.
씨익.
광휘는 입꼬리를 올리며 즉각 반응했다.
구마도를 손에서 놓은 그는 가장 먼저 다가온 야랑의 칼날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날아오는 칼에 대항해 본인의 칼을 버리고 손을 뻗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펼친 것이다.
‘헛!’
야랑은 상대의 무모한 행동을 비웃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신이 뻗던 칼의 궤도가 갑자기 바뀌는 사태가 오자 일순간 경악으로 바뀌었다.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무공이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흐느적거리는 저 손짓은 개방의 금나수법 취타수의 요결을 닮아 있었다.
푹! 푹!
상잔(相殘-서로 싸우는 것)이었다.
야랑의 검은 맞은편에 찔러 오는 묘영의 검과 부딪쳤고 서로의 어깨와 가슴으로 검을 찔러 넣고 만 것이다.
‘끝이다!’
반면, 혼사는 이번만큼은 성공을 확신했다.
광휘의 왼손이 아래로 처진 와중에 이미 연검이 휘어지며 뻗어나갔다.
그가 아무리 동작이 빠르다 하더라도 지금만은 예외였다.
덜컥!
“헛!”
그때 혼사의 눈이 경악한 듯 부릅떠졌다.
뭔가에 걸린 듯 연검이 멈춰버린 것이다.
“걸렸군.”
광휘는 축 늘어져 있던 오른손으로 연검을 잡고 있었다.
뚝. 뚝. 주르륵.
예리한 연검을 붙잡은 손은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광휘는 혼사를 보며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일부러…….”
혼사가 기함한 표정으로 광휘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한 손을 봉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상대는 애초에 부상당한 척 틈을 보여 자신들의 공격을 한쪽으로만 유도한 것이다.
“속았……!”
으득!
기묘한 소음과 함께 부릅뜬 혼사의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다.
언뜻 그 와중에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
“내겐 늘 하던 방식이었다.”
*
주요 인사들이 모인 대의전에는 밤이 깊어지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아아악! 으아아악!”
그러다 대청으로 짐작되는 방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요!”
“자객들이 온 것 같소.”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심각하게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점점 동요하던 중 노인 한 명이 나서며 불만을 토로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그의 이름은 문조(文造). 성은 서(徐)씨로 장 가주 부인의 사촌 형제 중 첫째였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지금은 격동되어서는 아니 되오.”
맞은편에서 그를 바라보던 일 장로가 대답했다.
서문조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일 장로, 계속 이대로 있으란 말입니까? 지금 저 비명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아아악! 으아아악!
-꺄아아악! 어머니!
간간히 가늘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 강호의 고수들에게 보호받는, 안전한 대의전에서 대기하는 장씨세가 모두가 그 소리에 내장이 끊겨 나가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칼 들 힘도 없는 무력한 양민들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손가락만 빨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정녕 올바른 일이란 말입니까.”
“공자께서 명하신 일이네. 지금 그것을 거역하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장로! 이는 우리의 일입니다!”
일 장로가 다시 다독였지만 서문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제 일 장로가 아닌 장웅에게 이동했다.
“호위무사들이 우리 세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공은 인정합니다. 또한, 그들의 말을 따르는 이 공자의 의중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세가의 일입니다! 그럼 우리도 싸워야지요. 이 문조는 당당한 사내입니다! 죽을까 두려워 대가리를 구멍에 숨긴 꿩처럼 전전긍긍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은편, 노인이 말을 받았다.
장유성(張有聖)이란 자로 가주와는 종숙질간으로 전대 가주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인 그였다.
오십 수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젊은 장정처럼 강한 기광이 서려 있었다.
“자객들이, 적들이 두렵다고 하여 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불러들인 양민들은 우리의 책임. 당장 나서서 그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들이 의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 공자를 향해 답을 요구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흐으음.”
장웅은 대답을 유보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나한승과 명호도 별다른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 당주, 당주께서는 곡전풍과 황진수 혹은 능자진이란 호위무사들보다 무예가 뛰어나신가요?”
그러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목소리가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장웅 옆, 장련에게로 모였다.
“당주께서 무예를 얼마나 연마하신지 모르겠으나 자객들과 싸움에서는 분명 십 초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초식을 받아치기도 전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아가씨, 어찌 그런!”
“만약 인질이라도 되면!”
순간 장련은 그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땐 더욱 비참해질 겁니다! 우리 때문에 본가를 돕던 호위무사들의 손발이 묶이고, 적들은 그들을 처리하고 난 후 우리 목숨도 빼앗을 겁니다. 그러고 나면 여기에 휘말린 저 양민들은 아무 해도 없이, 무사할까요?”
그 말에 서문조는 얼굴이 벌게졌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이미 이곳 장씨세가에 있는 모두는 양민이든 무인이든 일에 휘말려 들고 말았다.
“묵객께서도 부상이 극심하여 자리를 비운 상태예요. 지금 장씨세가를 지킬 분은 바로 그분뿐입니다. 그리고…….”
장련은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 나긋이 말하고는 장웅의 뒤쪽을 바라봤다.
“지금 우리를 지키고 있는 이분들 역시 그분이 데리고 오신 분들입니다.”
“크흐음.”
“큼큼.”
장련이 뒤쪽 무사들을 가리키자 사람들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지금 이곳을 지키기 위해 있는 호위무사는 명호와 세 명의 나한승이었다.
여기서 더 언급한다면 그들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해와 달을 베려고 하지만 어찌 해와 달을 손상을 입히겠습니까.”
그때 허리춤에 계도를 찬 방윤대사가 나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이동했다.
“허공에 말뚝을 박지 않는 법입니다. 장련 소저의 말대로 자객 중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실력으로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승려 특유의 모호한 선문답에 사람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말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사의 말씀은 알겠소. 허나, 지척에서 사람들이 어육이 되어 가는 모습을 외면하고 어찌 우리가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건 시주께서 잘못 아시고 계십니다.”
“무슨 말이오?”
이번엔 나한승의 사형인 방천대사가 나서 서문조의 말에 한 손으로 반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바깥의 비명 소리들은 대청에서 들려왔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크고 가까웠습니다. 마치 이곳 대의전 바로 옆에서 일이 터지기라도 한 듯.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
“저 비명 소리가 거짓…… 이란 말씀입니까? 어째서?”
서문조의 눈이 커다래지고, 장웅이 다급하게 물었다. 동요하는 사람들을 보며 방천대사가 묘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지금의 여러분처럼, 안에서 내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지요. 안전한 곳을 스스로 박차고 뛰쳐나오게 하려는 도발입니다.”
“후우…… 대사께서 그걸 알아보셔서 다행이군요. 그럼 저들의 의도는 무위로 돌려졌군요.”
장련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노승의 예리한 관찰에 찬사를 보냈다.
“그건 또 그렇지가 않소이다.”
“……예?”
“이곳도 저곳처럼 안전하지 못하니까요. 조금 전, 자객으로 보이는 사내가 왔다 갔소이다.”
순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누가 다녀갔단 말인가.
“내분과 도발이라. 일차로 안에서 혼란을 일으키며 이차로 성 바깥에서 미력한 양민들을 도륙하여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
문득 명호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짐작 가는 것이 있다는 얼굴로 묘하게 눈살을 찌푸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주욱 몰렸다.
“공성전에서 일 책, 이 책이 모두 실패하면, 남은 삼 책은 뭐겠습니까?”
방천대사가 명호를 향해 묻자 그는 곧장 대답했다.
“정면이군요.”
“모두 살계(殺戒)를 열어라!”
타다닥!
명호가 품속에 급히 손을 집어넣었고 방천대사의 중후한 사자후가 퍼져나갔다.
무공을 모르는 자들도 뭔가 변화가 감지될 정도로 소림승들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콰쾅!
대청의 좌우 벽들이 일시에 부서지며 이름 모를 사내들이 짓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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