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zo RAW novel - Chapter 104
104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는 건 예상한다. 그래서 이런 준비도 하는 게 아니겠나. 헌데 오늘이라니? 그렇게 빨리 싸움이 일어나나? 아직 설총이…… 없다! 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설총이 사라진 곳을 쳐다봤을 때, 그곳에는 텅 빈 눈보라만 감돌았다.
혈매사창이 말했다.
“호호호! 싸움이 언제 일어나냐고? 지금. 지금이야. 호호호!”
그녀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 북해의 찬바람을 가르는 검풍이 흘러나왔다.
쒜에에에엑!
얼음이 풀썩인다. 빙판이 뒤집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은어 비늘처럼 반짝이는 칼날들이 튀어나왔다.
팟! 꽝!
일시에 합벽(合壁)이 일어났다.
양쪽의 부딪침, 합벽이다.
도끼가 머리 위로 쳐들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는 소의 머리를 후려쳤다.
소야 일행은 꼼짝하지 못했다. 서 있는 자리에서 내리쳐지는 도끼를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피하거나 물러설 수도 없다. 그럴 공간이 없다. 오직 있는 자리에서 부딪쳐야 한다.
꽝!
손바닥과 손바닥이 극렬하게 부딪쳤다.
“후우!”
“하아!”
한 순간의 부딪침이 흐른 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들 네 명은 각기 맡은 위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센 칼날들이 후다닥 들이닥쳤다가 떨어졌는데,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굳건하게 버티고 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뚝! ……뚝! ……뚝!
혈매사창의 창끝에서 핏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사검의 검에도 피가 묻어 있다. 궁노의 들것에는 짓뭉개진 살점이 묻어 있다.
방금 전, 격전이 있었다.
너무 빨리 스치고 지나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 싶지만, 그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렸다.
일부 몇 사람이 죽었다.
죽지 않고 다쳤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찔렀고, 베어냈다. 손을 쓴 사람들이 실수를 허용치 않는 고수들이다. 그러니 즉사했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허나 눈앞에 시신은 없다.
저들은 그 짧은 순간에 사상자를 거둬갔다.
“놀랍군. 그게 강괴의 무공인가?”
혈매사창이 감탄을 쏟아냈다.
“음……! 상당하군.”
등을 돌리고 있는 사검도 찬사를 흘렸다.
사검은 등을 돌리고 있어서 소야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공 척도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격을 받은 자신과 견주어보면 당장 고하가 가려진다.
음혼귀가 일으킨 폭풍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일시에 칼 십여 자루가 들이쳤다. 한 번 격돌이 일어나고,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칼들이 밀려왔다.
머리를 쪼개오는 칼, 허리를 베어오는 칼, 다리를 쓸어오는 칼, 상중하(上中下)로 갈라 쳐오는 도세가 완벽하다.
칼에 깃든 진력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십여 개의 칼을 일시에 받아내면 손목이 시큰거린다. 그것도 무사히 받아냈을 경우에 한하는 것이지만…… 받아낸 후에도 연속되는 공격에 쉴 틈이 없다.
그렇게 다섯 차례의 공격을 받아냈다.
상대를 얼마나 격상시켰느냐는 중요치 않다. 이런 공격을 받아냈느냐가 중요하다.
소야는 받아냈다.
궁노, 사검, 혈매사창과 더불어서 한 치도 손색없는 공격과 방어를 보여주었다.
소야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호흡도 거칠지 않다.
한 번의 격돌이 끝난 후, 모두들 가는 호흡을 내뱉었다.
숨 돌릴 정신도 없었는데, 소야만큼은 공격이 있기 전처럼 고요함을 유지했다.
내력도 강하고 숨도 길다.
내력의 강함은 그들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이고, 숨은 그들보다 훨씬 길다.
소야는 삼 년이란 짧은 세월 동안에 남들이 이십 년, 삼십 년 동안 고련해야 할 것들을 배워왔다.
그들도 이제는 선언할 수 있다.
소야는 자신들과 더불어서 사상진의 일각을 담당할 자격이 있다.
원래 사상진을 펼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무공이 비등해야 한다. 특별하게 강한 사림이 있는 것은 상관없지만 눈에 띄게 약한 사람이 있다면 곤란하다.
처음 소야가 사상진을 언급할 때, 이런 점이 다소 불안하긴 했다.
소야가 자신들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할까?
혹시 소야가 맡은 부분 때문에 진이 돌파되는 우려는 없을까?
그래도 선뜻 응했다. 왜냐…… 이것은 소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보조 역할만 할 뿐, 소야가 위험해지면 그를 구하는 역할만 할 뿐, 근본적인 싸움은 소야가 한다.
소야가 하자는 대로 따라간다.
그가 지옥불 속으로 들어간다면 같이 들어간다.
소야의 행동에 일절 간섭을 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뒤따르면서, 결정적인 위험만 막아준다.
이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의심만 한 건 아니다. 소야가 강해졌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그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멀쩡했던 사람이 고루인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깡말랐다. 지금의 소야가 과연 예전의 소야인지 의심스럽다.
이건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소야의 마름은 못 먹어서 마른 게 아니다. 강괴의 독문절학을 물려받은 흔적이다.
강괴의 마름에는 특징이 있다.
우선 머리카락이 칠흑처럼 검어진다. 또한 머리카락이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반질거린다. 몸에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와 같은 현상은 손가락에도 나타난다.
손톱에 윤기가 흐른다. 손톱만 보면 아주 잘 먹고 편하게 지낸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두 번째 큰 특징으로는 주름을 들 수 있다.
몸은 말라비틀어지는데, 몸에 주름이 일절 없다. 얼굴 주름만 말하는 게 아니다. 뱃살, 등, 다리…… 전신 피부가 비단을 쫙 당긴 것처럼 팽팽하다.
그래서 강괴의 마름은 처음 볼 때는 깜짝 놀라지만 두 번, 세 번 보면 아주 익숙해진다. 보기 역겨운 모습이 아니라 매우 편하게 바라봐진다.
소야가 딱 그렇다.
그는 틀림없이 사람에 들어서 강괴를 만났고, 그에게서 무학을 전수받았다.
그럼 어느 정도나 배웠을까? 얼마나 강할까? 강괴에게 배웠다고 해서 모두 다 강한 것은 아니지 않나.
이를 증명하는 인증 방법이 있다.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그 자체가 무공 인증이다.
강괴는 준비되지 않은 자들을 매우 싫어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 너무 많이 무림을 활보하기에 꼴보기 싫어서 사림에 틀어박혔다는 말까지 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가 준비되지 않은 자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은 맞다.
강괴는 소야를 무림에 내보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이제 소야는 자신의 무공을 드러냈다. 그들 앞에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드러내 보였다.
궁노, 사검, 혈매사창…… 소야를 누룰 수 있다고 자부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밀린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필승을 거둔다고도 자신할 수 없다.
사검은 소야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피부로 절감한다.
그 와중에 천안은개가 나직한 탄식을 토해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안은개의 놀라움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들도 놀라고 있는데, 천안은개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또다시 땅이 들썩거렸다.
일차 격돌이 일어나고 세 사람이 한 마디씩 했을 뿐인데, 땅이 꿈틀거린다.
“얘들, 은신술이 독특하네.”
혈매사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기습공격을 가하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전초행동을 하지 않는다. 공격전의 징후를 어떻게 감추느냐에 따라서 기습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음혼귀의 공격에는 징후가 뚜렷하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땅거죽이 들썩이는 모습을 보면 곧바로 경계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혼귀는 기습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공격을 한다. 그러면서도 신형은 눈 속에 감추고 있다.
“설화봉수(雪花封水).”
문득, 낯선 소리가 울려나왔다.
처음 소리, 처음 듣는 음성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꾹꾹 눌러서 내뱉는 듯하다.
혈매사창과 소야가 동시에 뒤돌아봤다.
물론 고개를 돌렸다가 즉시 되돌렸지만…… 아주 짧은 순간일망정 뒤에 있는 궁노를 쳐다봤다.
혈매사창이 물었다.
“설화봉수? 처음 듣는 말인데, 무슨 뜻이에요?”
“잔부(殘府).”
“아!”
“잔부…… 음!”
궁노의 대답은 지극히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말, ‘잔부’라는 말에 혈매사창과 사검이 동시에 신음을 쏟아냈다.
“잔부가 뭐예요?”
단비가 고개를 돌려 천안은개를 쳐다보며 물었다. 허나 천안은개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꽈꽈꽈꽈꽈꽈……! 꽝!
폭풍이 일어난다. 하늘 높이 솟구친다. 그리고 벼락치듯 내리친다. 번뜩이는 칼날 수십 개가 사방에서 회오리친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직 칼날만 쏟아진다.
칼날로 이루어진 폭포 아래에 서있는 것 같다.
팟! 쒜에엑!
혈매사창이 즉각 창을 뒤로 내질렀다.
소야가 교령편을 넓게 펼친다. 폭포의 허리를 중간에서부터 싹뚝 잘라낸다.
그 편법을 믿고, 그녀는 손을 뺐다. 대신 사검에게 덮치는 폭포 한 중간을 찔렀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피가 솟구쳤다.
신창가의 삼단창은 일반 창보다 절반은 길다. 그녀와 사검이 한 방향으로 동시에 찔렀을 때, 사검과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창이 먼저 닿는다.
덕분에 사검은 한 수 늦출 수 있다.
콰아아아! 꽝!
궁도의 들것이 폭포를 후려친다.
폭포가 튀어나간다. 물방울이 비산한다. 분분히…… 그러다가 다시 모인다.
사검은 나중에 집중되는 물방울, 칼날들을 쳐냈다.
까앙! 까앙! 꽈아아앙!
그 사이를 놓칠 궁노인가. 그는 들것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피가 튄다. 뼈가 부서진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설원이 피로 붉게 물든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소야는 교룡편을 편하게 휘둘렀다.
폭포가 일어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채찍에 내력을 집중시키지도 않는다.
타격점만 잘 찾으면 나머지는 교룡편이 알아서 해준다.
빙벽에 기다란 사흔(蛇痕)을 죽죽 그어놓던 교룡편이 아니던가. 힘없이 휘두른 타격에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지 않은가. 그런 타격이 타져나간다.
휘잉! 쫘아악!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른다. 가는 손이 왼쪽으로 완전히 돌아갔을 때, 교룡편 편추(鞭蒭)는 오른쪽 끝에서 방향을 튼다.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왼쪽으로 끌려온다.
교룡편이 전면을 완전히 봉쇄했다.
스스슷!
칼날들 중 일부가 빙판에 바짝 밀착되어서 밀려온다.
교룡편이 쓸고 나간 뒤쪽으로, 높이는 한결 낮게, 교룡편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곳을 골라서 쳐온다.
소야는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허공으로 살짝 떴다. 말 그대로 살짝만 떴다. 진기를 두 발로 모으면서…… 그리고 이내 힘껏 빙판을 내리찍었다.
쿵!
진각(振脚)!
진각을 쓰는 문파는 많다. 거의 모든 문파가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림사에 가면 청석 바닥이 움푹 패여 있다. 무승들이 진각을 수련한 흔적이다.
그토록 많이 사용하는 진각이지만 소야는 달리 배웠다.
-진음행천리(振音行千里) 타료일하후배(打了一下後背)
진음은 천리에 이르도록, 타격은 등을 한 대 후려친 것처럼.
땅속으로 흐르는 진동음은 천리에 닿아야 한다. 진동을 느낀 사람은 등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아픔을 느껴야 한다.
그의 진각은 단순히 땅을 굳세게 밟는 동작이 아니다. 그 자체가 독특한 절학이다.
파파파팟! 파파파팟!
빙판이 깨진다. 빙판 표면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갈라지더니 하늘을 향해 퉁겨진다.
“컥!”
“켁!”
여기저기서 다급한 비명이 터졌다.
다인은 입을 쩍 벌렸다.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안은개의 입도 벌어졌다. 그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소야의 무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히 살폈다.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또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결과,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
말문이 막힌다.
소야의 진각은 싸움을 단숨에 종식시켰다.
음혼귀들이 시신을 남기고 사라졌다. 먼저 공격 때는 사상자를 데리고 사라졌는데, 이번에는 그럴 틈도 찾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친 탓도 있다.
얼음조각들이 암기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비록 타격력이 크지 않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찢어지고, 꿰뚫리는 상처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