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zo RAW novel - Chapter 113
113
아주 지독한 싸움들이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최대의 싸움을 떠올렸다.
슈우우악! 슈악! 슈우우욱!
강제로 깨져서 칼날처럼 뾰족해진 얼음덩이들이 연신 육신을 스쳐갔다.
푸왁!
고개를 물 위로 디밀며 큰 숨을 들이쉬었다.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숨을 쉬었다는 안도감이 퍼뜩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곧 이어서 두 가지, 극심한 추위와 ‘얼음덩이가 쏟아질 텐데’하는 불안감이 치밀어서 사방을 휘둘러보게 된다.
“아!”
“으음…….”
이 순간, 모두들 저미한 신음, 옅은 탄성을 쏟아냈다.
빙곡은 사라지고 없다. 아니, 지금도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두 눈으로 보지 못할 뿐…… 그렇다. 빙곡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볼 수 없다.
소야는 그들을 얼음 동굴로 인도했다.
그들이 솟구친 곳, 그곳은 방금 만들어진 얼음 동굴이다. 빙곡이 무너지면서 만든, 얼음덩이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얽히고설켜서 만들어 놓은 작은 공간이다.
밑은 바다, 위는 얼음 하늘.
작은 배를 뒤집어 놓은 형국이다.
비록 그 공간이 매우 협소하지만 떨어지는 얼음덩이를 막기에는 충분하다.
소야는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냈을까?
바다 밑에서도 계속 수면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얼음덩이들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세밀히 관찰했을 뿐만 아니라 일정 부분은 서로 겹쳐서 새로운 빙하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을 예측했다.
얼음과 폭발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슛! 촤라라라락!
소야가 일행을 둘둘 말아감고 있던 교룡편을 풀었다. 그리고 풀리는 힘을 이용해서 이번에는 얼음천장을 세게 후려쳤다.
퍼억!
교룡편이 얼음을 뚫고 들어갔다.
“꽉 잡아!”
소야는 무엇을 잡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즉각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꼭 붙잡았다.
“끄응!”
소야가 교룡편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그는 혼자만 올라가는 게 아니다. 무려 다섯 명을 허리에 매달고 위로, 위로 올라간다.
여섯 명의 무게를 얼음천장이 견뎌낼까? 교룡편이 얼음을 뚫고 천장에 박혔는데, 그 힘만으로 여섯 명의 무게를 견뎌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소야는 어떨까? 그의 무공이 상당히 강해졌다는 점은 인정하겠는데, 내공은 어떨까? 허리에 매달린 다섯 명을 끌어올릴 정도로 용력이 생길까?
쓰윽!
소야가 교룡편을 타고 위로 올라섰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쑥 들리는 것을 느꼈다. 바다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올라선 것이다.
소야가 말했다.
“좌측 언덕!”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서 좌측을 쳐다봤다.
이런 곳에 언덕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부서진 얼음덩이가 바다 속에 빠지지 않고 둥둥 떠 있을 뿐인데.
그들은 소야가 말한 지점을 찾아냈다. 헌데!
“저, 저기를 언덕이라고 한 거예요?”
다인이 아연실색해서 물었다.
칠팔 장쯤 떨어진 곳에 경사가 무척 급박해서 절벽에 가까운 얼음 덩어리가 보였다.
저곳이 언덕이란 말인가!
물속이 아니라 땅위라고 해도 올라서기 힘든 곳이다. 더군다나 그곳은 얼음덩이 뒤에 숨겨져 있어서 교룡편을 타고 올라서지 않으면 찾아내지도 못할 곳이다.
저곳에는 올라서지 못한다. 아니, 올라서고 싶어도 올라설 방법이 없다. 손에 잡을 것도 없고, 발을 딛자마자 주르륵 미끄러져서 바닷속으로 풍덩 빠질 게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스륵! 스르륵! 스륵! 스르륵!
소야가 이미 좌우로 몸을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수영을 하지 않고 교룡편을 이용해서 훌쩍 건너뛸 모양이다.
예상은 맞았다.
하나, 둘, 셋!
움직임이 충분히 커졌다 싶은 순간, 소야는 힘껏 날아오르더니 얼음천장에 박힌 교룡편을 쑥 뽑아냈다.
휘리릭!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다인은 얼음만 쳐다봤다.
이미 소야의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길들은 모두 흩어졌다.
찰나의 여유밖에 없는 터, 또한 얼음 언덕에 올라서는 것은 둘째 치고 당장 얼음덩이에 내리꽂히지나 않을지 우려되는 터…… 모두들 자기 삶은 자신이 도모해야 한다.
다인은 할 것이 없었다.
그녀도 무공을 수련한 몸이라서 반사신경 쪽으로는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빈다.
몸은 얼음덩이로 내던져졌는데, 몸이 딸려가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얼음을 붙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휘리릭!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녀가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사건이 벌어져서 교룡편이 허리를 둘둘 말아 감은 후였다.
휘이이익!
그 순간부터 그녀의 신형은 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교룡편의 움직임에 휩쓸렸다.
파악!
앞쪽에서 둔탁한 울림이 터졌다.
수박이 바위에 부딪쳐 으깨지는 소리와 흡사하다. 누군가가 던져지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얼음덩이에 부딪친 것일까? 얼음을 잡으려고 했는데, 몸만 부딪친 건가?
그녀의 눈앞에도 얼음덩이가 불쑥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교룡편이 허리를 휘어 감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편안함이 일어났다.
소야를 믿는 마음이 어느덧 불쑥 커졌다.
툭!
그녀는 얼음덩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잡은 게 없다. 하지만 얼음절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곳에 달라붙어 있다.
소야가 보인다.
그는 단검으로 얼음덩이를 찍어서 잡을 곳을 마련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각각 병기를 이용해서 잡을 곳을 마련했다. 궁노는 깃발 두 개를 얼음덩이에 찔러넣고 아예 그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다.
소야가 중얼거렸다.
“불을 피워야겠는데…….”
얼음을 직각으로 잘라내는 작업을 했다.
여러 사람이 손이 곱는 추위를 이겨내고 얼음절벽에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헌데 불은 어떻게 피운단 말인가!
풍덩!
소야가 다시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으으……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가 괴물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사검이 이를 덜덜 떨면서 말했다.
그는 중후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이미 얼어붙기 시작한 육신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검이 떤다. 궁노가 눈을 부릅뜬 채 쏟아지는 졸음을 참는다. 혈매사창이 전신을 타혈(打穴)한다.
그들이 그럴 정도인데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겠는가.
천안은개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가 고개를 푹 떨굴 때마다 사검이 뒷목을 주물러 주고 있지만, 그런 행동에도 곧 한계가 올 것 같다.
헌데 다인은 그토록 심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따뜻했다. 머리에 묻은 바닷물이 고드름이 되어서 얼어붙었다. 손발도 푸르뎅뎅하게 변색되어 간다. 아마도 동상에 걸린 것 같다. 헌데도 몸만은 따뜻했다. 차랑 가죽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푸왁!
소야가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솟구쳤다.
그는 등에 커다란 짐 보따리를 매고 있었는데…….
“이게 뭔가?”
사검이 짐 보따리를 받았다.
바다 속에서 인간세상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짐 보따리를 캐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 어떻게! 허! 이런 걸 어떻게…….”
침착함이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사검조차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짐 보따리 안에는 불을 피울 도구들이 가득했다.
부싯돌부터 불을 붙일 수 있는 종이, 나무…… 비록 바닷물에 젖어 있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게 대수인가. 이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불을 피워내야 하지 않겠나.
소야는 도대체 바다 속 어디에서 이런 걸 주워왔단 말인가!
일단 불을 피웠다.
짐 보따리 깊숙한 곳에서 아직 물에 젖지 않은 종이를 찾아냈고, 그 덕분에 비교적 쉽게 불을 피웠다.
“어떻게 젖지 않은 종이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바다 속을 헤쳐 왔는데 물에 젖지 않은 종이가 있을 턱이 있나.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젖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를 했을 것이다. 소야가 가죽 주머니 안에 마른 종이를 넣고, 그 주위를 다른 종이로 둘둘 감쌌다.
노력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이다.
나무에 불이 붙은 후에는 안심하고 불기를 쬐게 되었다.
그들은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였고, 비로소 운기조식도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한 바탕 삶을 구하기 위한 행동들이 부산하게 일어났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따뜻한 불기를 쏟아낸다.
폭발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동굴이 북해의 한풍까지 막아주는 바람에 집 안에 있는 것처럼 따뜻하다.
“이런 걸 어디서 구해왔어요?”
다인이 신기한 듯 부서진 나무며, 젖은 종이, 불기에 마르기 시작한 헝겊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죽은 사람들이 많잖아.”
“그렇죠. 많죠.”
다인이 무심히 말했다.
“…….”
소야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 침묵한다.
“아!”
다인은 아주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소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챘다.
부싯돌과 화섭자는 죽은 음한귀들이 지녔던 것이다.
종이와 가죽, 헝겊들도 그들 것이다. 나무 조각들도 음한귀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들이 이용하는 썰매가 십자빙전의 폭발에 산산 조각난 것 같다.
십자빙전의 폭발은 그들을 찢어놓았을 뿐, 가루로 만들어 놓지는 못했다.
“몸이 따뜻하니 졸음이 오는군. 한동안 눈을 붙이지 못했잖아. 난 좀 자야겠어.”
사검이 얼음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붙였다.
위험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들은 얼음 동굴 안에 갇혀 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얼음을 뚫고 올라가던가, 아니면 바다로 뛰어들어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위는 어떤 상황일까?
빙곡이 완전히 무너졌다.
아직도 무너짐은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커다란 얼음덩이들이 풍덩풍덩 바다로 빠진다. 자잘한 얼음덩어리들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합치면 소음이 그칠 새가 없다.
아마 발로 딛고 설 얼음바닥조차 없는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잘 헤쳐왔는데…….
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불을 쬈다.
***
북해에서 하나의 하늘이 열렸다.
당시 나는 그가 하늘임을 알지 못했다. 무공조차 모르는 풋내기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인지…… 그가 뛰어나다는 점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하늘임을 제일 먼저 눈치 챈 사람은 염왕이다.
염왕은 그의 곁에 궁노와 사검을 붙였다. 가히 작은 하늘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풋내기 옆에 붙인 것이다.
하늘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두 번째로 하늘을 알아본 사람은 북해 빙궁주다.
북해 빙궁주는 하늘과 손속을 겨뤄봤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하늘이 아니었다면 빙궁주의 손에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게다.
어차피 그 당시는 그가 하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빙궁주의 삼초식 상대도 되지 못했다. 빙궁주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빙궁주는 과하게 손을 쓰지 않았다. 하늘의 기량만 탐색하고는 물러섰다.
하늘의 씨앗임을 알아본 것이다.
빙궁주가 하늘이기에 하늘을 쉽게 알아본 게 아닌가 싶은데.
그가 아직 발아하지 못한 씨앗일 때, 하늘이 될 씨임을 알아본 사람이 두 명이나 존재하는 셈이다.
아니다. 더 있다.
음한귀와의 싸움을 끝냈을 때, 적어도 세 사람은 그가 하늘이 될 것임을 예감한 것 같다.
궁노와 사검, 혈매사창이 그를 존중하기 시작한 것도 그 후부터다.
그때부터 그들은 나이가 한참 어린 젊은이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 자체가 작은 하늘인데, 아직 젖비린내가 가시지도 않은 젊은이에게 온대를 했다.
빙향의 오소저 다인, 파휴라는 연정에 눈이 멀기 시작했고…….
제일 못난 사람은 나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다.
특이한 재주를 가진 놈?
내가 그를 평가한 게 고작 이 정도다.
이런 까막눈을 가진 놈이 무슨 천안(天眼)인가. 쯧!
그때…… 그러니까 음한귀와의 싸움부터가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한 시점인 것 같다.
– 천안은개 대공록(大公錄) 중에서 –
***
안가랍하(安加拉河).
북해와 몽골을 구분 짓는 강이다.
견가이호(見加爾湖)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치솟다가 다시 서쪽으로 휘어지는데, 이 동서로 흐르는 물줄기가 안가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