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zo RAW novel - Chapter 130
130
상인들의 판단도 무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헌데 다인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 판단이 대달타를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어쨌든 총주는 그녀다. 그리고 그녀가 파율라가 지배하던 방식으로 명을 하달하고 있다.
알탄간그가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다인은 이미 사라져 버린 일행을 묵묵히 지켜봤다.
‘내가 다시 찾을 때까지……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면 안 돼! 절대로!’
***
염왕은 무림에 자신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세상이 존재하고 무공을 익힌 무인이 세상을 잠시 활보했을 뿐이다. 헌데 그에게 염왕이라는 별호가 주어졌다.
염왕은 입이 무겁다. 무림에 어떠한 명령도 내린 적이 없다.
그는 나를 위해서 이런 것을 하라거나 저런 것을 하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는 경배도 원치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포권지례를 취하면 그도 포권지례를 취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염왕이라는 절대고수와 그 외에 다른 사람들, 염왕보다 약한 사람들이 만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은 사람들이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림에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헌데 그는 염왕이다.
염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림은 극심한 압박을 받는다.
-염왕을 건드리지 마라. 멸문당하기 싫거든.
염왕은 자신을 건드린 자만 쳤다.
그렇다고 그를 옷깃도 건드리지 못할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 그는 자잘한 시빗거리는 웃음으로 흘려버릴 줄 안다. 자신 앞에서 욕지거리를 해도 껄껄 웃는다.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 자’라고 말할 때는 정말로 자신에게 검을 겨눈 자를 말한다. 검을 겨누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살검을 휘둘렀을 때, 그때 비로소 그도 일어선다. 그리고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하게 친다.
무림이든 아니든 그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그는 종이호랑이처럼 조용히 잠잔다.
허나 그가 이렇게 조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림의 거성, 제일인자라고 불린다.
그의 말 한 마디는 법이다.
이것이 싫다고 하면 즉시 치워야 한다. 저것이 좋다고 하면 적극 장려한다.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로 여긴다.
그가 정작 한 일이라고는 살검을 든 자에게 자신의 무서움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조차도 그를 꺼려하고 경계한다.
‘죽음’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귀사영!
염왕이 한 명을 죽이면 그들도 한 명을 죽였다.
염왕이 한 문파를 멸절시키면 그들도 그에 버금가는 문파를 멸절시켰다.
그들은 염왕과 경쟁했다.
염왕의 위명이 높아질수록 귀사영의 살명도 높아졌다.
그러나 귀사영은 염왕이 될 수 없었다. 염왕과 귀사영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다.
염왕은 일인(一人)이다. 귀사영은 다수다.
염왕은 자신을 내놓고 다닌다. 귀사영은 어떤 사람들인지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염왕은 검을 드는데 타당한 이유가 있다. 자신에게 먼저 칼을 휘두른 사람만 징치한다. 귀사영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 염왕이 누군가를 죽였다면 그에 버금가는 사람을 죽일 뿐이다.
염왕의 살검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귀사영은 그렇지 못했다.
염왕은 검을 들 때마다 위상이 높아졌지만 귀사영은 악마의 수구로 전락했다.
귀사영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무림이 자신들도 염왕과 같은 위치에서 생각해 주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토록 많은 살상을 저지를 리 없다.
귀사영은 무림에 공포만 안겨주었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이 무림에 확실히 각인시킨 사실이 있다.
세상에 죽이지 못할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들, 다른 문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귀사영에게만은 그 말이 통한다.
염왕은 무공 면에서 자신과 비등한 자도 죽였다.
정교조종(正敎祖宗)!
대략 삼십여 년 전, 무림에 정교라는 교단(敎團)이 출현했다.
기존 종교는 모두 잘못된 교리에 의해 탄생한 사교(邪敎)요 자신들만 올바른 종교, 정교라고 주장했다.
그들 교리의 중심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있다.
정교를 탄생시킨 사람, 정교조종은 능히 천입합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 정교를 비방하는 사람은 무조건 베었으니까.
많은 무인이 정교조종에게 당했다.
정교가 광풍이 되어서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만 남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정교는 세상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무림에는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많은 무인이 죽었고, 많은 문파가 멸절당했다. 말 그대로 무림폐허가 도래했다.
정교조종의 무공은 가히 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강했다.
그는 두려운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급기야는 정교 앞에서 얼씬거리기만 해도 검을 쳐냈다.
그가 염왕을 쳤다.
그리고 염왕은 정교조종을 땅에 묻었다.
그 일이 일어나자 무림은 긴장했다. 귀사영이 정교조정에 버금가는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교조정에 버금가는 자…… 누가 있을까? 염왕을 직접 겨누는 것은 아닐까?
귀사영은 무림 삼파 장문인을 선택했다.
현 무림에서 대파(大派)라고 하면 구파일방(九派一幫)을 일컫는다.
이백 년, 삼백 년…… 길게는 천 년 동안 역사를 이어온 거파가 열 개나 있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파를 꼽아보면 단연 삼파로 축약된다.
소림사(少林寺), 무당파(武當派), 개방(丐幫)!
소림사 방장, 무당파 장문인, 개방 용두방주.
귀사영이 살인 명부에 올린 이름이다. 그리고 그들 세 명은 정말로 살해당했다.
무림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었고, 아직도 혈한이 이어져오고 있는 사건인데…….
귀사영은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선포했다.
누구든지 죽일 수 있다!
“희한하지? 무공이 아주 특이해.”
“동감. 극쾌(極快)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많아. 극강(極强)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 초식이 난해하다거나 수비가 무척 까다로운 공격도 아니고.”
“강괴의 무공이 원래 그렇던가?”
“아니.”
“그렇지? 난 잠시 강괴의 무공이 무적이 아닌가 착각했지 뭐야.”
그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평온했다.
“강괴의 무공에 대해서 더 알아야겠어. 원주님, 준비해 줄 수 있겠어요?”
그들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시람원주는 소름이 쫙 끼쳤다.
그가 생각하기에 소야는 이들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들 다섯 명이 펼칠 수 있는 모든 절기를 쏟아부었는데도 소야를 죽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시신 두 구까지 끌고 왔다.
귀사영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이것을 귀사영의 무능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귀사영은 할 수 있지만, 이들은 하지 못한다. 다섯 명이 못한 것을 세 명이 어찌하겠나.
헌데 이들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죽일까?
죽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은 오직 그 부분만 생각한다.
그가 말했다.
“강괴의 무공만 필요하십니까?”
“그래요. 구해줄 수 있어요?”
“구해드릴 수 있습니다. 비교적 세세하게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강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강괴뿐만이 아니다. 무림오괴 전부를 주시하고 있다. 주시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인데.
“훗!”
그들이 피식 웃었다.
시람원주가 자신있게 말했는데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대답이 잘못 됐다!’
그는 즉각 깨달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 대답이 아니다. 뭔가 다른 대답을 원했던 것이다.
‘소야는 강괴의 무공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흑사암제의 만기제보도 달통한 상태고, 신궁문의 궁술, 낭야의 부동명심공, 오독단혼수까지 두루…….’
그는 생각을 중도에서 멈췄다.
삼인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심드렁한 표정이다.
강괴가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알아봐 줄 수 있냐고 해냐고 알아봐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원하는 대답을 듣고도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다.
‘아!’
그는 어떤 사실을 불현 듯 깨달았다. 그러자 자기 자신이 무색해진다. 창피해서 입이 꾹 다물어진다.
이들이 소야를 모를 리 있나. 자신이 아는 것만큼 상세하게 파악해 놓은 상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싸움을 함에 있어서 적을 안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하물며 귀사영인데 오죽 상세하게 파악했겠나.
그는 대답을 다시 해야 한다. 지금 시람원이 파악한 자료 정도는 이들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그보다 더한 것, 더 깊은 부분이다.
그런 자료는 시람원도 없다.
‘어디서 구한다?’
대답이 궁색해졌다. 허나 대답해야 한다. 이것 때문에 그를 귀사영에게 붙인 것이다. 시람원의 원주를 귀축비응으로 불러낸 진정한 뜻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귀사영의 잔심부름이나 하라고 곁에 붙여놓은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라!
‘강괴의 무공을 얻으려면 북해로 가야 한다. 허나 지금 당장 북해로 갈 수는 없는 일…… 가장 가까운 곳…… 소야의 무공은 소야에게서 얻는다.’
이것이 이들이 원하는 대답이다.
‘귀축비응…….’
그는 황금색 매를 떠올렸다.
귀축비응의 부름을 받고 산 사람은 없다. 그래서 죽음의 사자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가 다시 말했다.
“시간이 한 달 정도 걸릴 겁니다.”
“한 달이면 될까요?”
“최선을 다해서 많은 부분을 보겠습니다. 하하! 제 무공으로 한 달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원주, 걱정 마세요. 사람이 죽기 살기로 덤비면 까짓 것 두 달인들 버티지 못하겠어요?”
“알겠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소야를 공격한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 공격하는 게 아니다. 그의 무공을 보기 위해서…… 허니 무작정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가 다양한 무공을 펼쳐내도록 공격방법을 강구해서 치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세밀한 관찰도 필수다.
그가 사용하는 모든 무공을 상세하게 기록……아!
그는 이 부분까지 생각하고는 피식 혼자만의 웃음을 터트렸다.
기록? 그런 것은 필요 없다. 세밀히 관찰할 필요도 없다. 이들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허면 왜 이 시점에서 시람원주가 필요했던 것일까?
귀축비응은 무공이 강한 사람 대신에 그를 불렀다. 머리 좋은 사람을 끄집어냈다.
강자가 공격하면 소야도 강하게 반응한다.
소야의 무공을 보기 위해서라면 그쪽이 훨씬 유용하다.
그의 무공은 그만큼 강하지 않다. 소야를 공격하면 일부분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고루 볼 수는 없다. 십초 안에 승부가 날 텐데, 그 안에 무엇을 볼 수 있겠나.
그러니 그렇게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를 써서 소야의 무공을 다양한 방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번 공격하고, 두 번 공격하고, 세 번 공격하고…… 가급적 많이 공격하라는 말이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강괴의 무공을 볼 수 없다.
‘강괴는 십팔반 병기를 모두 사용한다…….’
최소한 열여덟 가지의 병기를 사용할 수 있게끔…… 열여덟 번은 공격해야 한다. 그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어야 하며, 설렁설렁 대응하는 방식이 아닌 진정한 무공을 끄집어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는 그런 뜻을 짐작하고 한 달 기한을 말했다.
귀사영은 한 달로는 부족하단다. 두 달, 세 달…… 소야의 무공을 뿌리째 보고 싶단다.
그러고 나면 저들에게도 대책이 세워질 게다.
지금 현재로써는 바늘이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데, 나중에는 황소가 지나갈 정도로 큰 틈이 보일 것이다.
그는 검을 패용했다.
탁!
길게 늘어진 검자루가 무릎 오금을 건드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묵직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