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zo RAW novel - Chapter 192
192
그는 동굴 안쪽에 닿기 무섭게 경악성부터 내질렀다.
철삭에 묶여 있는 노인!
동굴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발광하는 작은 야광주(夜光珠)가 있어서 사물을 식별할 수는 있다. 소야를 유인해 온 것도 바로 이 야광주의 빛이다.
번뜩!
철삭에 묶인 노인이 눈을 떴다. 그리고 소야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눈빛이 화살이라면 소야의 몸은 벌집이 되고도 남았을 정도로 보고 또 봤다.
“크크크! 크크크크!”
철삭에 묶인 노인이 미친 듯이 웃었다. 한참 동안. 그러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물었다.
“지장대공(地藏大公)이란 말을 아냐?”
퍼뜩! 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강괴가 지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오괴가 대공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물은 것을 연결하면 바로 지장과 대공, 지장대공이다. 지금 철삭에 묶인 노인이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이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 제가 그 말을 알아야 합니까?
– 알 필요 없지.
그래서 말했다.
“지겹네. 또 알 필요 없는 말…….”
“이놈아!”
철커덩! 철렁!
노인이 거칠게 움직였다. 그 바람에 손발을 묶은 쇠사슬이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노인의 두 눈에서 흉흉한 빛이 발산되었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장대공이라는 말을 알 필요가 없다고 할 때, 노인이 떠올린 분노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잠시 후, 노인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놈아, 지장대공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굉장히 차분해진 음성이다.
“아, 알았소. 알면 될 것 아니오. 지장대공이 뭐요?”
“궁금하냐? 크크! 카카카! 카카카카! 크크크! 카카카카!”
노인이 즐거운 듯 혼자 낄낄 대며 웃었다.
지장대공의 말뜻도 풀이해주지 않고, 지장대공이 뭘 말하는지도 말해주지 않고…… 정신없이 웃기만 했다.
“카카카카! 키키킥…….”
철컹! 철컹!
노인이 움직일 때마다 철삭이 철컹거렸다.
“크크크! 카카칵! 지장대공. 지장대공. 키킥!”
노인은 실성한 것이 맞다.
노인은 소야가 눈앞에 있는데도 보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지장대공이 뭐죠?”
“지장대공. 지장대공.”
노인의 눈은 엉뚱한 곳을 보고 있다. 또한 지장대공이라는 말만 수없이 되풀이한다.
소야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노인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처음 그가 노인과 대면했을 때, 노인은 이토록 실성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놈아!’하고 쩌렁 고함을 내지를 때까지만 해도 노인의 정신은 멀쩡했다.
흥분이 이성을 마비시킨 것 같다.
소야는 노인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면서 노인의 현재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노인은 철삭에 묶여 있는 게 아니다. 어른 손가락 굵기의 철삭에 꿰뚫려 있다.
철삭이 다리를 꿰뚫었다.
철삭이 양쪽 견갑골을 뚫고 나와 이리저리 휘돌려져 있다. 마치 둥그런 철삭이 마술을 부려서 일시에 바위와 노인을 관통한 것처럼 보인다.
노인은 철삭을 끊어내지 않고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다.
철삭의 다른 쪽 끝이 말뚝에 박혀 있거나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면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노인의 경우에는 매듭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위에서 자라난 철삭이 노인을 꿰뚫고 다시 바위 속으로 함몰해 들어갔다.
노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전후좌우로 채 한 걸음이 안 된다.
아주 적은 공간에서 말 그대로 몸만 꿈틀거린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권각을 쓸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다리에 철삭이 꿰뚫려 있어서 무릎을 허리 높이까지도 들어 올리지 못한다.
두 손도 마찬가지다. 양손이 큰 대(大) 자로 활짝 펼쳐져 있어서 손을 쓰기는 불가능하다. 누구를 가격하기는커녕 가슴 앞까지 모으지도 못한다.
노인은 위협을 줄 만한 대상이 아니다.
허나 의성은 분명히 말했다. 살아 돌아오라고.
‘밥은 어떻게 먹는 거지? 대소변은 어떻게 가리고?’
노인의 주변에는 음식찌꺼기가 보이지 않는다. 대소변을 흘린 흔적도 없다.
노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누군가 보살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죄인을 묶어놓고 보살펴주기까지 한다?
노인은 누구인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리 묶여 있는가.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촌 의원들에게 묶여 있는가.
철컹! 철컹! 철컹!
노인이 안절부절 못하고 몸을 비틀어댔다.
“지장대공. 지장대공. 지장대공…….”
지장대공이라는 말이 마치 주문처럼, 혹은 염불처럼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지장보살은 한 마디로 지옥구제, 극락왕생의 중심에 서 있는 대비보살이다.”
알고 있는 말이다.
“대공은 왕이다.”
이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은…… 엄밀히 말하면 제후(諸侯) 정도 된다고 봐야겠지. 왕이긴 하지만 등급이 좀 낮은. 일반적으로 왕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황제보다는 낮다.”
소야는 듣기만 했다.
노인이 또 언제 발작할지 모른다. 그가 말하고 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게끔 시간을 아껴준다.
“지장대공은 석장(錫杖)으로 땅을 쳐서 지옥문을 열고 여의주로 악귀를 물리쳐서 중생을 구제하는 작은 왕이다. 아주 작은 왕. 크크크! 재미있지?”
뭐가 재미있다는 말일까? 그리고 자신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
무림오괴는 지장대공과 연관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장대공을 말해왔다. 지장을 말하기도 하고, 대공을 말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지장대공에 걸려 있었다.
“사실 지장과 대공은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지장에게 왕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왕은 권력을 의미하고, 지장은 권력 같은 것은 티끌처럼 여기니까.”
“그렇군요.”
“그럼에도 대공이라 부른다. 권력을 준다. 황제처럼 큰 권력이 아니라 제후 정도 되는 적당한 권력을 준다.”
“어디에, 무슨 일을 하는데 적당합니까?”
“딱! 악귀를 쫓는 정도만.”
노인의 눈가에 신광이 감돌았다. 광기(狂氣)일 수도 있다. 좌우지간 눈빛이 번뜩였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황제는 누구나 안다. 이 세상 사람치고 황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염왕도 누구나 안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도 황제나 염왕은 안다.”
철컹! 철컹!
철삭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노인이 흥분을 일으켰다. 이제 겨우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
이제 잠시 대화를 중단해야 한다.
노인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처럼 몇 마디 말을 던지고는 이런 식으로 흥분해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이 냉정을 회복할 때까지 광기를 부린다.
철컹! 철컹! 철컹!
“지장대공. 지장대공. 지장대…… 공.”
노인의 입에서 염불이 흘러나왔다.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제후가 있었다. 그들은 너무 많아서 어디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지. 대공은 그런 사람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알지는 못하는.”
노인은 즉시 말을 덧붙였다.
“지장제후라고 하지 않고 대공이라고 한 이유는…… 지장대공은 여러 명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장대공은 황제처럼 오직 한 명뿐이어야 한다. 키키킥!”
“왜 한 명이어야 합니까?”
“몰라서 묻냐? 키킥! 힘이란 가지고 있으면 쓰고 싶은 것이다. 지장처럼 깊고 깊은 서원을 세운 사람이 여러 명이면 곤란하지. 오히려 세상이 어려워질 수 있어. 크크크!”
소야는 노인이 하는 말을 절반쯤은 알아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납득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말했다.
“이리와라. 맥 좀 보자.”
소야는 두 말 않고 다가섰다. 그리고 노인의 왼손 앞에 팔을 내밀었다. 왼손은 다섯 손가락 모두 멀쩡한데, 왼손은 손가락 세 개가 잘려나가서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노인이 바로 무림오괴의 마지막 칠지다.
“크크크! 이쪽으로. 이쪽으로.”
노인이 고갯짓을 오른쪽으로 했다.
소야는 노인의 말을 쫓아서 오른쪽으로 섰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어서 손가락 위에 팔복을 붙여주어야만 했다. 순간,
꽉!
노인의 두 손가락이 집개처럼 팔목을 확 꼬집었다.
“윽!”
소야는 부지불식간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기벽을 수련했다. 그래서 어떤 충격이 몸을 후려치면 자동적으로 반탄력이 일어난다. 가해지는 충격과 버금가는 충격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간다.
지금과 같은 경우, 즉시 반탄력이 일어난다.
그는 약간 은은한 충격을 받는 선에서 그쳤을 터이다. 하지만 노인은 날카롭게 곤두선 바늘을 있는 힘껏 누른 듯한 충격을 받고 즉시 손을 물렸어야 한다.
헌데, 이변이 일어났다.
기벽이 무너졌다. 반탄력이 일어나지 않았다. 노인의 두 손가락이 집개가 되어서 꽉 물어온다.
“키키킥!”
노인이 키득키득 웃었다.
“강괴 그놈의 무공이 이런 것일 줄 알았어. 킥킥! 근거도 없고, 힘도 없고…….”
“기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공은 무슨…… 한낱 잡공(雜功)을 가지고. 킥킥킥!”
“진맥을 마치셨으면 팔 좀 놓아주시겠습니까?”
소야는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손목은 요지부동, 두 손가락에 꽉 잡혀 있다.
노인에게 맥문이 제압되자 힘을 쓸 수가 없다.
사지가 무력해지고, 단전에 힘이 응축되지 않는다. 몸에 있던 활력이 모두 빠져나간 듯하다.
노인은 단지 두 손가락으로만 잡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이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킥킥킥! 킥킥!”
노인은 손목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인의 눈에 광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제길! 또 시작했어!’
철컹! 철컹!
철삭이 거칠게 흔들렸다.
노인은 또 다시 광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심각하다. 맥문이 잡혀 있지 않은가. 노인이 자칫 손가락에 힘이라도 주는 날에는…… 운이 좋으면 팔 하나 잃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 노인에게는 기벽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지장대공. 지장대공. 지장대공…….”
염불이 끊임없이 읊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철삭이 거칠게 요동쳤다.
“크크크…….”
노인의 괴성이 잦아들었을 때, 그는 파김치가 되어서 축 늘어진 상태였다.
노인이 맥문을 움켜잡고 마구 날뛰었다.
두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풀었다…… 손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그럴 때마다 저항할 줄 모르는 육신은 도끼로 팔목을 내리치는 것 이상의 극심한 통증을 받았다.
소야는 괜히 팔목을 내줬다고 아주 크게 후회했다.
진실로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미친개에게 팔목을 들이밀면 어찌 되겠나?
“이 팔 좀 놓으라니까.”
넋두리처럼 힘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키키킥!”
노인은 맥문을 놓아주었다.
소야는 노인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즉시 뒤로 물러섰다.
설마 이렇게 쉽게 놓아줄 줄이야.
놓아달라는 말은 했지만 실제로 노인이 맥문을 놓아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단단히 맥문을 움켜잡고 있을 줄 알았다. 미쳤지 않은가.
소야는 즉시 진기를 휘둘려서 몸 상태를 살폈다.
휘루루룽!
진기가 거침없이 휘돈다.
그의 몸은 달라진 것이 없다. 맥문을 잡히기 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약간 피곤하다는 것밖에는 없다.
‘으음!’
소야는 침음했다.
노인에게 잡혀 있는 동안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그 느낌은, 그 고통은 실제였다. 노인이 한 바탕 광기를 일으키는 동안, 그는 분근착골(分筋錯骨)의 고문을 받았다. 전신의 살점이 모두 뜯겨 나가고, 뼈마디가 낱낱이 부서지는 듯 했다.
헌데 그 느낌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다.
몸도 정상이고, 느낌도 정상이다. 기혈도 순탄하게 휘돈다.
조금 전에 있었던 광기의 회오리가 깊은 꿈속에서 일어난 듯 감쪽같이 사라졌다.
“키키킥! 맥 좀 보자.”
노인이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미친……방금 전에 그 고통을 당했는데 또 맥문을 내줄 미친놈이 천하에 어디 있겠나. 정신이라도 멀쩡하면 모를까, 언제 다시 발작할지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