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zo RAW novel - Chapter 195
195
몸을 알면 마음이 집중된다.
기사나 기벽은 그 후의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무인들이 말하는 운기, 내공 등등 모든 신공이나 심공들이 몸을 한 다음에 펼쳐져야 한다.
무인들은 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무인들은 몸을 안다. 알기 때문에 운기를 하는 것이다. 몸을 모르고, 경맥을 의념하지 못하고 어떻게 운기를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소야가 본 것처럼 상세히 보지는 못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의념(意念)…… 생각으로 본다.
소야는 보지 않는다. 몸에서 움직임이 일어나면 즉시 안다. 경맥에 진기가 흐르면 즉시 안다.
단지 안다. 알 뿐이다.
스스스슷! 사사사사삿!
노인의 진기가 밀려든다.
기벽이 경맥을 감싼다. 노인의 역린에 상처입지 않도록 부드러운 유액을 흘린다.
고통이 가셨다.
운(運)에는 힘[力]이 동반된다. 동(動)의 성질을 받지 않고는 운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단단함이 생긴다.
강하고 활기찬 힘은 운을 밀어주고, 운은 힘을 더욱 탄력있게 끌어낸다.
운과 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운이 일어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을 일으키면 움직임은 저절로 생긴다. 가만히 있는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라도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듯 존재하는 힘, 이것이 기벽이다.
기벽이라고 해서 특이할 것이 없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방어본능, 생존본능이 아주 강하게 일어나서 성채처럼 단단하게 둘러쳐진 것일 뿐이다.
기벽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는 단단한 성채다.
기벽 밖에 있는 것들…… 살과 뼈와 혈액은 기벽을 위한 시종으로 전락한다.
모두들 기벽을 위해서 충성해야 한다.
기벽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때는 모두들 평화롭게 화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벽이 폭군이 되어서 무지막지하게 힘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살과 뼈와 피는 기벽을 위해서 존재한다.
서로가 공존해야 하거늘,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들이 희생하는 양상이 된다.
소야의 무공이 강해지는 반면, 몰골은 점점 깡말라간다.
육신을 지탱하는데 소용되어야 할 것들이 경맥에 성채를 쌓는 데 총동원된다.
그러면 대막은? 대막도 기벽을 구사했지만 육신이 멀쩡했다. 근육이 다부진 강한 남자였다. 누가 보더라도 육신과 기벽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대막의 기벽은 폭군 행세를 하지 않는다.
기(氣)란 존재는 생명력이다. 무림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풍(風)으로 말하기도 한다.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력(原力)을 이동시켜주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풍이든 기든…… 이러한 바람이 티끌만치라도 존재한다면 죽은 게 아니다.
죽음이란 이 바람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일어난다.
허나 기벽과 육신의 조화는 마땅한 것이다. 아주 당연한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기벽을 일부러 폭군으로 만들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시도 자체가 되지 않는다.
물의 다른 말은 수(水)다. 사실, 같은 말이다.
물과 수가 다른가? 수가 폭군 역할을 해서 물을 이끌 수 있는가?
말도 되지 않는다.
육신과 기벽의 관계가 그렇다. 다른 말이면서 같은 말이다. 어느 한쪽이 폭군 역할을 할 수 없다. 둘은 이리 불러지기도 하고 저리 불러지기도 하지만 같이 생각해야 한다.
소야는 어떻게 된 것일까?
여기에 강괴의 무공이 섞여 있다.
강괴는 분명히 기벽에 어떤 작용을 가미시켰다. 그래서 소야의 기벽만 폭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괴의 어떤 점이 진기로 하여금 특이한 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경맥에 단단한 성채가 쌓여 있고, 이 성채가 경맥을 보호하기 위해서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에 강한 반탄력을 일으킨다.
소야는 기벽을 보았다.
기(氣)는 의념(意念)으로만 관찰된다. 다시 말해서 의념이 사라지면 진기도 보이지 않는다.
무인들은 진기에 너무 익숙하다.
약간이라도 틈이 나면 진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러면 힘이 넘치면서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니 더더욱 진기에 집착한다.
이것은 좋은 순환이라고 할 수 있고, 호순환(好巡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가닥을, 순환고리를 끊으면 진기가 보이지 않는다.
소야가 진기를 보지 못했던 이유, 진기가 사라진 것처럼 착각한 원인이다.
노인은 극심한 고통으로 이 가닥을 끊었다.
소야 자신은 진기를 본다고 봤지만 의념은 진기에 집중하지 않았다. 의념은 고통만 봤다. 진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만 일으켰을 뿐이지, 실제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약간의 속임수인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제는 고통도 보고 진기도 본다.
당장 시급한 일이 있다. 단단하게 쌓아올려진 성채를 허물어 버리는 일이다.
성채를 일컬어 기벽이라고 말하는데…… 기벽을 허물면 기사를 상대할 수 없지 않을까? 성채를 더욱 굳건하게 쌓아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다. 인체는 조화다. 무공도 조화다.
사지 중 어느 한 부분, 예를 들어서 오른손이 무척 강하다고 하면 그것은 장기가 될 수 있다. 허나 단점도 된다. 싸움을 해도 오른손에 의지하는 싸움이 될 것이기에.
어느 한 부분이 강한 사람은 전체적으로 조화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기벽을 쓰지 못해도 좋다!
소야는 의념을 모아 성채를 허물기 시작했다.
꽈르르릉!
성벽이 떨어진다. 돌무더기가 굴러 떨어진다. 강괴가 이룩해 준 모든 것이 무너진다.
성채를 허물고 살과 뼈와 피를 본다.
골육(骨肉)은 현존(現存)한다. 겉으로 드러난 양(陽)이다. 진기는 내재(內在)한다. 속에 깃든 음(陰)이다. 아니, 음양의 구분조차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하다. 드러나면서 숨어 있고, 숨어 있으면서 환히 드러난다.
진기가 뭉쳐 있지 않고 골육 속으로 스며들게 내버려둔다.
“키키킥!”
노인이 완맥을 놓았다.
“…….”
소야는 눈을 뜨고 노인을 보았다.
지금은 밥 먹을 때가 아니다. 급류가 휘몰아치려면 아직도 반나절은 남았다.
노인이 피곤한지 바위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개천에서 용 났구나.”
“무슨 말입니까?”
“의뭉한 놈. 모른 척하기는.”
“감사합니다.”
“크크크!”
노인은 대꾸도 하기 싫다는 듯 머리를 뒤로 젖히고 쉬었다.
사실, 소야도 감사하다는 말은 했지만 무엇이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노인 덕분에 기벽의 실체를 보기는 했는데, 그로 인해서 기벽을 없애는 결과가 일어났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기벽이 없으니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허나 그런 점은 염려하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츠으으으읏!
진기가 일어난다. 그가 일으킨 진기가 노인의 역린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성채를 허문다. 경맥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단단한 보호막을 모두 걷어낸다.
찌릿!
손가락 끝에서 짜릿한 전율이 일어났다.
진기의 흐름이 아주 강렬하게 느껴진다. 좋다,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냥 진기가 느껴진다.
살이 있구나.
피가 흐르는구나.
뼈가 있구나.
육신의 모든 것이 실제 눈으로 보듯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아니, 눈에 보인다.
스르륵! 찌리릿! 찌릿! 스륵!
진기와 육신이 동시에 감지된다.
피가 심장에서 솟구쳐 나와 전신을 휘돈 다음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
그 시간은 보통 큰 숨을 두 번 정도 몰아쉴 정도다.
진기도 그에 맞춰서 휘돌린다.
일반적으로 무인들은 진기의 순환 속도를 자신의 숨에 맞춘다.
깊이 들이쉬고, 멈추고, 내뿜는다. 일부 무공에서는 지식(止息)을 금하기도 하지만.
깊고 느리게 들이쉬면 진기가 휘도는 시간도 느려진다. 짧고 격한 숨에서는 진기 순환속도도 빨라진다. 그러면서 점차 느린 숨으로 전환시킨다. 가슴에서 일어나고 가라앉는 숨을 단전의 숨으로 바꿔 나간다.
운공조식에 능숙해지면 숨이 길어진다.
이것은 매우 타당한 방법이나…… 그는 숨에 맞추지 않고 피의 순환속도에 맞춘다.
휘루룽!
피가 급하게 전신을 휘돈다.
그 속도는 가슴으로 쉬는 숨보다 훨씬 빠르다. 전력을 다해서 달리기를 할 때만큼이나 급하다.
그 속도에 맞춘다.
대신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의 개념도 버린다. 경맥도(經脈圖) 자체를 무시한다. 기억 속에서 일정한 순서로 경맥을 따라가는 모든 무공을 지워버린다.
피가 돈다. 진기가 돈다. 같이 움직인다.
그러면 숨이 급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진기의 순환속도를 호흡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숨과는 전혀 상관없다. 진기를 빨리 휘돌리면서도 숨은 느려진다. 평온하다.
그는 육신과 조화를 이루는 운기법을 찾아냈다.
아주 편안하고, 즐겁고, 단순한 방법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허나 호흡과 분리된 운기조식법…….
조식(調息)이 무슨 말인가? 숨을 고른다는 말이 아닌가. 숨을 차분하게 정리한다는 말이 아닌가. 운공조식이란 말에 아예 ‘숨’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지 않은가.
이제 ‘조식’이라는 글자를 떼어내어야 한다.
소야는 자신이 어떤 운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무림사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운기라는 것도.
“철삭을 끊을 수는 없습니까?”
“클클!”
노인은 웃기만 했다.
조금 있으면 다시 급류가 휘몰아친다. 눈 먼 생선이 입 안으로 빨려오는 시간이다.
소야는 노인과 같이 나가고 싶었다.
노인이 그에게 떠나도 좋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완맥을 잡지 않는다.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생선을 먹고 그 후에는 미쳐서 발광하거나 잠을 잔다. 소야에 대해서는 일체 신경 쓰지 않는다.
‘가야 할 시간이군.’
기벽은 말끔히 제거되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래도 단단한 벽을 완전히 지워냈다. 성채는 없다. 안이나 밖이나 가림막 없는 들판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무위(武威)를 시험해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쾌하다.
“인간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져 있다. 흙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무인의 바람의 요소만 쓸 뿐이다.”
소야는 담담하게 들었다.
이 부분, 자신이 직접 체험했다. 고통을 일으키는 것, 진기, 육신의 움직임…… 모두가 바람의 요소 아닌 것이 없다. 움직임은 곧 바람이다.
“한 번 더 깊이 들어가면…… 킥킥! 이 꼴이 된다.”
철컹!
노인이 철삭을 움직였다.
“바람을 넘어서면 불이 보인다. 불을 손에 담으면 천하를 태울 수 있다. 킥킥! 화진수(火眞手)! 상제도 염왕도 화진수 앞에서는 한 줌 핏물이 될 뿐이야. 아냐, 아냐, 아냐. 핏물도 안 남지. 불로 태워죽이는데 핏물이 어딜 남아!”
불! 화(火)!
소야는 노인의 말을 이해할 듯하면서도 하지 못했다.
노인은 몸에 있는 불의 기운, 불의 요소를 무공과 접목시키라고 말한다.
그건 지금도 하고 있지 않은가?
양강무공(陽剛武功)에 속하는 모든 무공들이 불의 기운을 사용한다.
화력(火力)을 진기에 실어 뿜어내면 그것이 바로 양강무공이고, 불의 요소를 사용한 것이 된다.
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분명한 것은 무림에서 사용되면 열화진기(熱火眞氣)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의 말을 이해하려면 보다 근원적인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말 안 나가시겠습니까?”
“키키키키! 키키키킷! 키키킷!”
노인의 눈에 광망이 깃들었다.
노인은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발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발작을 일으키는 데 일정한 시간 간격이 있다.
발작이 지속되는 시간도 일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