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zo RAW novel - Chapter 250
250
일격이 끝난 후에는 무(無).
상제의 후인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칼부림을 하고 난 후에는 허공에 떠오른 수포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진다.
오직 한 수, 일격에만 집중한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집중의 극성을 보여준다.
그 상태, 그 숨결, 그 검…… 어떤 무인도 그 이상의 집중을 논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쓰러졌다.
대막은 검을 뽑기 전부터 죽음을 예감했다.
상제의 후인이 쓰러진 마당에 그가 검을 뽑아 상대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가 검을 뽑아 겨누는 것, 죽겠다는 소리다.
사라락!
삶과 죽음을 가르는 소리는 매우 짧았다.
소야의 채찍은 한 치의 망설임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남경 고성을 찾아올 때부터 작심하고 있었던 행동이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교룡편이 허공을 갈랐고, 한 사람이 죽었다.
유삼을 입은 자가 걸어왔다.
그는 소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진 대막에게 다가와서 아직 감지도 못하고 부릅뜬 눈을 쓸어주었다.
대막이 비로소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쯧! 염왕만 무너트리면 다 끝난다더니.”
유삼을 입은 자, 금군을 지휘하던 자가 혀를 끌끌 찼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어 성 밖 싸움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긴 곧 정리될 거야.”
“…….”
“내일이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고요하겠지. 오늘 일은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
“어디로 갈 건가?”
소야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등을 돌렸다.
사라라락!
대막을 죽음으로 밀어 넣은 교룡편이 살아 있는 뱀처럼 미끄러지더니 팔뚝에 휘감겼다.
소야가 걸어간다.
“사람 참 무심하기는…… 어디로 갈 건가?”
서생이 다시 물었다.
“유부(幽府)로. 날 만나고 싶으면 유부로 오시오. 염왕을 만날 때는 긴장해야겠지만 날 만나러 올 때는 긴장하지 않아도 좋소. 편한 마음으로, 차 한 잔 마신다는 심정으로 오시오. 유부에서 난 지장이며, 대공이오.”
서생은 소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한 가지 느낌만은 확실하게 들었다. 이생에서는 두 번 다시 소야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을.
“훗!”
서생은 피식 웃었다.
언젠가는…… 몇 백 년이 흐를지 모르겠지만 어느 때인가는 무림이라는 세계도 황상의 무릎 아래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그럴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다.
지금은 염왕이 수성(守成)에 성공했지만, 언젠가 무림이라는 무력(武力)은 황제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화진수…… 대단한 무공이었어.”
서생은 다시 웃었다.
상제나 염왕, 대막을 훨씬 능가하는 새로운 차원의 무공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저런 무공을 수련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천만 명 중에 하나다. 아니, 천억 명 중에 하나다. 염왕은 보는 눈이 있어서 소야를 발굴해 냈지만, 소야는 어떨까? 후인을 발굴할 수 있을까?
소야는 유부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 말은…… 자신의 후인을 간택하지 않고 영원히 은거하겠다는 뜻이다.
화진수는 소야의 대에서 맥이 끊긴다.
서생이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내가 못하면 내 자식이 하면 되고…….”
파앗!
서생이 신형을 띄워올렸다.
한 순간, 그의 신형이 우아한 학처럼 날아오른다. 허공으로 솟구치는데 힘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부드럽고, 우아하며, 경쾌하다.
염왕의 단주비천!
백성산에서 모습을 보였던 단주비천!
그가 사라져갔다.
‘역시…….’
소야는 암울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얼마 전까지 대막이 쳐다보던 하늘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쳐다본다. 대막과 같은 심정으로.
세상 살기가 참…… 어렵다.
‘아버지.’
하늘에 우직한 엽사의 얼굴이 그려진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누군지 알았다. 백성산의 뭇 사람들을 벌레 죽이듯 죽인 자를 찾아냈다.
그는 금군을 이끈다.
그는 자신이 황제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아마도 황제일 것이다. 대막이 살아 있다면 그가 나타나는 순간, 두 손 모으며 머리를 조아렸을 게다.
그는 단지 금군을 지휘하는 자가 아니다. 이 세상을, 중원의 또 다른 권력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알았지만, 복수를 행하지 못한다.
황제를 죽일 수는 있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황제가 아니라고 부인하기까지 했지 않은가. 그런 이유를 들어서 지금 당장 죽여도 무방할 듯싶다.
허나 황제를 죽였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무림과 황실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게다. 그리고 결국, 무림은 사라진다.
아니, 무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림은 잡초와 같다. 잡초는 아무리 짓밟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무력(武力)이 존재하는 한, 무림은 영원히 존재한다.
다만…… 의미 없이 흘려야 할 피가 싫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혈해(血海)를 감수해야 한다. 시산(屍山)을 각오해야 한다.
‘아버지…… 이 정도로…… 됐지? 그만…… 눈 감아. 편히.’
푸른 하늘에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떠벅! 떠벅!
그는 미련 없이 고성을 떠나갔다.
***
개봉부(開封府).
개방은 평소처럼 시끌벅적하다.
몇몇 사람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구지신개가 사라졌고, 천안은개가 사라졌다. 밀동을 들락거리던 걸개들도 코빼기를 비치지 않는다.
모두 그러려니 한다.
원래 정보를 다루는 자들은 비밀을 좋아하니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보다 하는 정도만 생각한다.
개방이 조용하고, 무림이 조용하다.
하오문, 녹림…… 시람원과 연결되었던 모든 끈이 움직임을 멈췄다.
각 문파도 굳이 움직임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밖에서 충동질하던 자가 사라졌다. 동문 중에서 잠시 다른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지만, 이제는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니 굳이 과거를 들출 필요가 있는가.
모두들 침묵한다.
무림을 지배하던 염왕은 죽였다.
염왕을 죽인 상제의 후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무림에 나온 목적이 염왕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듯, 그 일을 끝으로 잠적해 버렸다.
상제와 염왕!
그들은 무림의 절대자들이다.
중원 무인들의 뇌리 속에는 영원한 절대로 각인되어 있다.
대막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이제는 침묵한다.
어떤 때는 침묵이 약일 때도 있으니까.
소야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그를 알고 있는 사람도 북해의 소문주를 죽인 흉한으로 기억할 뿐이다.
그가 북해에서 벌인 싸움은 두텁게 깔린 얼음 속에 묻혀버렸다.
한때, 북해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소야는 중원에서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였다. 흑랑이 이끄는 늑대들, 썰매개들도 거의 대부분 죽었다. 그 수가 무려 이천 마리에 이른다.
허나 그 싸움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음정파사군의 주검도, 철갑무무군의 주검도, 늑대들의 주검도 깨끗이 지워졌다.
중원무림은 소야를 거의 모른다.
***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
쇄벽철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그렇게 이상해?”
혈매사창이 과도로 사과를 깎으며 물었다.
“대막 말이야. 왜 소야를 살려줬을까?”
“풋! 아직도 그 생각이야?”
“이상하니까.”
쇄벽철창이 뒷짐을 지고 일어나 창가로 갔다.
얏! 야아앗! 창창창!
창밖에서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신창가는 다시 개문(開門)했다.
당금 무림에서는 신궁문과 더불어 신이무(神二武)라고 불릴 정도로 성세를 구가한다.
쇄벽철창은 신창가에서 종두(終頭)를 맡았다.
신창가의 창술을 수련한 사람은 최종적으로 그에게서 인가를 받아야 한다. 쇄벽철창의 창을 통과해야만 신창가의 삼단창을 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쇄벽철창은 은둔자가 아니라 무림이 알아주는 고수로 변모했다.
허나 그런 그에게도 오랜 숙제가 안겨져 있다.
그 날…… 대막이 왜 소야를 죽이지 않았을까?
대막은 소야를 죽일 수 있었다. 고성을 통째로 무너트리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고성 전체에 화약을 설치했다면, 소야를 죽이기는 매우 쉬웠다.
소야도 살아나오겠다는 생각으로 교룡편을 든 건 아니다.
대막이 고성에 깔린 기관장치만 가동시켰어도 지독하게 어려운 싸움을 했을 게다.
대막은 화약도 기관도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이 빤히 보이는 비무를 선택했고, 그 결과 죽었다.
혈매사창이 과도를 놓으며 말했다.
“사과나 먹어.”
‘염왕…… 미안해.’
혈매사창은 신창가의 긴 회랑을 걸었다.
그녀는 쇄벽철창의 의문에 답을 해줄 수 있다.
그 답을 해주기 위해서는 염왕이 남긴 서신을 먼저 말해야 한다.
염왕과 염왕의 연인인 소모와 대막과의 애증부터 말해야 한다. 소야가 엽사의 아들이 아니라 염왕의 아들이라는 점을, 소모의 자식이라는 점을 말해야 한다.
소모가 괜히 백성산에 들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을 보기 위해 간 것이다.
자신이 염왕을 쫓아다녔듯이, 대막 또한 마음속에 소모의 영상을 품고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황제가 소모와 소야를 죽이고자 할 때, 자신이 차마 행할 수 없어서 황제에게 장난삼아 움직여 보시라고 권했다는 사실도 말해야 한다.
그 덕분에 소야가 살 수 있었지만.
대막이 왜 소야를 살려두었냐고?
대막은 소야에게서 소모의 모습을 봤다.
소야에게서는 소모가 보인다. 용모, 말투, 행동거지에서 소모의 모습을 봤다.
쇄벽철창, 소야를 만나면서 소모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대막은 차마 소야까지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소모를 죽이는 듯해서…… 그녀가 남긴 유일한 혈육이기에.
이런 사실을 굳이 소야가 알 필요는 없다.
염왕의 서신에서 소야가 마지막 모습을 읽었다. 소야는 죽거나 무림에서 사라질 것이다. 영원히.
그렇기에 서신을 약간 수정했다.
소야는 친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소야가 염왕이나 소모의 복수를 생각할까 봐 우려했다. 황제마저 죽여 버릴 것 같아서 염려했다. 소야의 머릿속에 소모의 죽음까지 곁들여지면 틀림없이 황제를 죽일 것 같아서.
소야가 그렇게 떠나간 것…… 잘한 것이다.
‘벌써 십 년이나 흘렀네. 가끔 얼굴이나 보여줄 것이지. 오늘따라 보고 싶다.’
저벅! 저벅!
혈매사창은 회랑을 걸었다.
이 세상은 소야도 미사도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몇 사람, 아주 극소의 몇 사람만이 그들은 보고 싶어한다.
후기
지장대공을 마칩니다.
언제부터인가 후기를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작심하고 후기를 씁니다.
지장대공.
처음, 플롯을 짤 때는 22권으로 예정했습니다. 도중에 17권으로 줄였고, 다시 한 권을 빼서 16권 완성으로 플롯을 고쳤습니다. 하지만 10권에서 중단합니다.
이렇게 예정된 플롯대로 쓰지 못한 글이 꽤 있습니다.
환희밀공, 취적취무, 십검애사, 도검무안…….
지금까지는 출판사에서 빠른 매듭을 요구해 오거나, 아니면 어떤 갈등 때문에 플롯대로 쓰지 못하고 매듭을 지었습니다.
지장대공은 창작의욕이 식어버렸기 때문에 중단합니다.
현재 지장대공 1~7권이 ‘신간 모음’이라는 묶음 파일로 무단 배포되고 있습니다.
총 10권 중에 7권이 무단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도 않은 글인데 마구잡이로 배포합니다.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유 단속을 강력하게 하고 있지만, 쓰고자 하는 열정은 이미 식어버렸네요.
부랴부랴 마무리 하느라고 복선 몇 가지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재미있게 써야 할 혈전을 이십 쪽에서 해결하느라고 애먹었습니다.
급하게 마무리 했지만 전체적인 골격은 플롯대로 맞췄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유장하게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