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우웅.
―어머니: 아들, 오늘 오디션 파이팅! 아들이라면 뭐든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유범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언제나 응원을 해주는 하나뿐인 소중한 가족.
―네, 좋은 소식 들고 갈게요. 엄마도 약 잘 챙겨 드시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어머니: 그래. 아들,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후우…….”
어머니와 연락을 주고받은 유범산은 앞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넷플렉스 ‘하루’의 오디션장.
그곳이 바로 앞에 있었다.
‘잘할 수 있겠지?’
오디션 장을 보기 무섭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을 뚫고 자신이 합격할 수 있을지, 아주 작은 배역이라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잘해야지.”
벌써부터 약해져서는 안 된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멈춰 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잠시 멈춰 있던 유범산의 발걸음이 다시 움직이고, 해가 그의 등을 환하게 비췄다.
웅성웅성.
건물 안에는 무척이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번호표 받아가실게요!”
그들 모두 ‘하루’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모여든 지원자들이었다.
못해도 백 명 가까이 되어 보이는 숫자에 유범산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버렸다.
“54번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54번이라는 번호표.
자기 차례가 오기나 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높은 숫자.
그는 주먹을 꽉 쥐고는 대본을 펼쳐 들었다.
쿵!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악! 난 망했어!”
“거기서 왜 대사를 절었지? 이 병신 새끼!”
“하, 한 번 더 오디션 못 보나? 엄청 열심히 연습했는데……!”
앞서 오디션을 봤던 지원자들의 목소리.
그들은 머리를 꽉 쥐거나 한숨을 내쉬며 좌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유범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후우……. 잘할 수 있어. 난 잘할 수 있어.”
어머니가 해줬던 말을 되뇌며 대본을 살펴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대본이 끝장까지 다왔을 무렵.
“51번부터 55번까지 들어가실게요.”
그의 차례가 되었다.
심호흡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유범산이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오디션장에 들어갔다.
지원자들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좌석 앞으로 작은 무대가 있었다.
그 앞으로 탁자가 있었고 심사위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한성태다.’
유범산은 그 세 명 중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넷플렉스의 연재훈 감독과 혜성처럼 등장한 기대 신인, 한성태.
끝에 있는 한 사람은 아무리 살펴봐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범산은 연재훈의 옆에 앉은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다고 들었는데, 대단하다.’
바로 옆에 연재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자꾸만 한성태에게 향했다.
“51번부터 앞으로 나오세요.”
그때 들려온 연재훈의 목소리.
지원자 하나가 무대로 나아가고 연재훈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51번 지원자.”
곧 연기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지원자가 연기하고 있을 때였다.
“……?”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든 그는 볼 수 있었다.
한성태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유범산과 눈이 마주친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툭, 투욱.
한성태의 손에 들린 펜이 느릿하게 책상을 두드렸다.
오디션이 시작하고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수십 명의 지원자들을 봐서 그런지 상당히 지쳤다.
연기할 때와는 다른 느낌의 피곤함.
차라리, 지원자들 중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지치지 않았을 것이다.
[‘천의 얼굴’은 자신이 이런 형편 없는 연기를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탄식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하나같이 열정이 부족하다며 더 이상 볼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요즘 놈들은 끈기가 없어서 문제라며 혀를 찹니다.]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한성태의 마음에 드는 지원자는 없었다.
하나같이 평범하거나 그보다 못한 수준의 연기.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오디션을 보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겁까지 나네.’
연기의 신들까지 고개를 돌린 그들의 연기를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질 것만 같았다.
“51번부터 55번 참가자 들어갑니다.”
그렇게 다음 지원자들이 안으로 들어오고.
이번에는 어떤 실망스러운 연기를 보여줄지 걱정이 되는 가운데.
한성태는 지원자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전생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있었다.
송강훈부터 시작해서 여럿의 배우가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유범산이었다.
젊은 나이에 대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연기 천재.
그런 사람이 지금 지원자로 한성태의 앞에 있었다.
‘내가 유범산을 잘못 볼 리가 없지.’
자신감이 넘치던 전생과 다르게 잔뜩 움츠린 모습이지만, 유범산이 확실하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에 잊을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유범산과 같은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미있겠네.’
실망만 하고 있던 오디션이 조금은 즐거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흠…….”
한성태는 고개를 내려 유범산의 이력서를 살펴보았다.
여러 개의 작품 활동을 한 흔적들이 담겨 있었다.
‘단역들…….’
전생의 자신처럼, 유범산의 이력은 단역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네가 뭐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앞에서 53번 지원자가 연기하고 있었지만, 그의 연기는 한성태의 눈에 들지 않았다.
한성태의 시선은 유범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범산을 보며 한성태가 입꼬리를 올렸다.
전생의 유범산을 알고 있기에, 현생의 유범산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53번 지원자의 연기가 끝이 났고, 여지없이 연기의 신들의 혹평이 찾아왔다.
“네, 잘 봤습니다. 지정 연기는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네? 저, 잘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유 연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결과는 나중에 메일로 갈 거고 수고하셨습니다.”
“아…….”
연재훈의 말에 53번이 눈을 질끈 감는 게 보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연재훈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가는 53번의 뒤로 유범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54번 지원자, 유범산입니다!”
유범산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그 모습에 연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자유 연기와 지정 연기 중 어떤 것부터 하시겠습니까?”
“자, 자유 연기부터 하겠습니다!”
오디션 당일 날 받는 지정 연기와 다르게 자유 연기는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통, 배우들은 자신이 가장 자신이 있는 연기를 먼저 보여주기를 원한다.
유범산도 다를 건 없었다.
“자유 연기……. 어떤 연기죠?”
“사채업자가 빚을 받아내는 장면입니다!”
“네, 그럼 한번 보죠.”
연재훈의 신호에 유범산이 크게 심호흡하는 게 보였다.
숨을 마시고 내쉬고.
유범산을 둘러싼 분위기가 조금 바뀌는 게 보였다.
‘얼마나 잘하려나.’
연기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에 한성태가 몸을 조금 앞으로 당겼다.
“후우……. 사장님, 이번이 몇 번째지?”
유범산이 입을 열었다.
빚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내가 말했죠. 계속 그렇게 원금 밀리면서 도망치면 가만히 안 있겠다고.”
“아,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돈을 갚으라고!”
흉악하게 소리치는 유범산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본 모든 지원자 중 가장 낫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유범산의 연기는 이렇지 않은데?’
한성태가 아는 유범산은 감정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배우였다.
한 번에 감정을 끌어모았다가 팍 터뜨리는 게 매우 인상적인 연기자.
그런데, 지금 유범산의 연기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한성태가 느끼는 걸 연기의 신들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들의 메시지를 보며 한성태는 툭툭, 이력서를 두드렸다.
‘유범산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한성태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좋아. 그래, 우리 이 사장님, 시원한 사람이네. 그래, 두 장이야. 정확히 두 장?”
“네, 수고했습니다. 지정 연기는 더 안 봐도 되겠네요.”
“아…….”
유범산의 연기가 끝나고 연재훈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유범산의 얼굴에 그림자가 깃들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더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럼 다음 지원자를…….”
“한 번 더 보죠.”
그때까지 줄곧 조용히 있던 한성태가 입을 열었다.
유범산이라는 배우를 알고 있기에, 그의 한계가 이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배우?”
“지정 연기 보고 싶어서요. 가능할까요?”
“음, 안 될 거 없죠. 네, 봅시다.”
한성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연재훈이 옅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유범산.
그를 바라보는 한성태의 표정은 냉정하기만 했다.
만약, 여기서도 유범산의 연기가 별로라면 한성태도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해.’
분명 더 잘할 수 있는 유범산의 연기가 어중간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후우…….”
유범산이 지정 연기로 맡은 배역은 ‘하루’의 ‘남서우’ 역이었다.
윤희연의 친구이자 살인마와 맞서는 역할.
“그러니까, 여기 관리하시는 분이라고요?”
유범산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잔잔하게 시작된 연기.
살인마인 최덕수를 향해 말을 거는 그 모습에 한성태의 몸이 움찔 떨렸다.
“하…….”
유범산을 바라보던 한성태가 옅게 실소를 흘렸다.
‘이거였구나.’
다시 한번 연기를 보고 나서야 유범산의 연기를 보고 찝찝함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관리하신다는 분이 열쇠도 없어요?”
유범산의 연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성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