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천의 얼굴’이 어딘가 막힌 느낌이라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속이 답답해진다며 가슴을 두드립니다.]연기의 신들이 유범산의 연기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성태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유범산의 연기는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제대로 터뜨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의 앞에 있는 유범산은 감정을 터뜨려야 할 때 제대로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계기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절대, 유범산이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뭔가 아쉽다며 입맛을 다십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답답해합니다.]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비평하는 연기의 신들이 그의 연기를 욕하지 않고 있었다.
연기의 신들이 보기에도 유범산은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니기에, 더 답답한 것이고.
‘계기만 있다면,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어떤 계기가 필요한 걸까.
전생의 유범산은 어떻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깨뜨릴 수 있었던 걸까.
잠시, 고민하던 한성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런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고민을 했다고.’
펜을 내려놓은 한성태가 유범산과 눈을 마주쳤다.
유범산의 눈도 한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옅게 심호흡을 한 한성태.
그의 숨소리와 함께 한순간에 눈빛도 변했다.
한성태가 아닌 최덕수로서.
유범산이 아닌 남서우를 바라보았다.
움찔.
한성태와 눈이 마주친 유범산이 순간적으로 몸을 떨었다.
공포스러운 무언가를 본 듯한 얼굴.
황급히 고개를 돌리려는 그의 모습에 한성태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여기 오지 말라고.”
끈적한 살의가 묻어나오는 목소리.
“……!”
“……?”
갑작스럽게 연기를 시작한 한성태의 모습에 바로 옆에 있던 연재훈과 김민석이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오디션을 보는 내내 줄곧 가만히 있던 한성태였다.
그랬던 그가 유범산의 지정 연기를 보고자 했고, 이제는 같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성태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의문이 들겠지.
한성태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온전히 유범산에게 꽂혀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인생이란 게 뜻하는 대로 되지 않네. 생각을 해 봐. 내가 너 같은 덩치를 어떻게 이기겠어.”
“……개 같은 새끼.”
한성태의 대사에 줄곧 굳어 있던 유범산의 입이 열렸다.
그의 대사를 듣는 순간, 한성태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천의 얼굴’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며 눈을 가늘게 뜹니다.]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아주 사소한 변화.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답답한 느낌이 조금 사라졌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하지만, 연기의 신들은 그 변화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 속에서 한성태는 유범산과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그 덩치는 진짜 사기 아니야? 이렇게 안 했으면 무조건 내가 졌겠네.”
“비겁한 새끼.”
“그런데 너는 욕밖에 못 하나 봐.”
최덕수의 말에 남서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최덕수는 말을 이었다.
“너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래, 네 팔다리 힘줄을 끊어서 저년 앞으로 데려가야겠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네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최덕수의 비릿한 미소에 남서우가 주먹을 꽉 쥔다.
이마와 옆구리, 허벅지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그에게는 조금의 승산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쉽게 죽어줄 것 같아?”
남서우는 최덕수를 보며 분노와 증오를 불태웠다.
부릅뜬 눈은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불끈 쥔 주먹은 그의 각오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연기가 훨씬 매끄러워졌다고 말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당신과의 연기를 통해 유범산의 연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한성태도 유범산의 연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말이 트인 아이처럼, 유범산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유범산이지.’
물론, 유범산의 연기는 아직 부족한 건 많았다.
그런데도 한성태는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번 성장하기 시작한 유범산의 연기는 한성태의 연기에 맞춰 변화하는 중이었으니까.
“내가 너를 죽일 거다.”
읊조리듯이 말하는 유범산의 모습에 바로 옆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쳤네…….”
“허…….”
한성태와 유범산의 연기를 보면서 감탄하는 소리들.
유범산의 뒤에 있는 다른 지원자들 역시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는 멍하니 있는 게 보였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대사를 내뱉는 한성태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 * *
3년 차 무명 배우, 유범산.
그는 재능이 뛰어나지도, 연기를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배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은 단역이 전부.
―범산이 너는 연기에 임팩트가 없다.
유범산의 연기는 평범했다.
―그 왜, 축구 보면 골대까지는 잘 가는데 결정타가 없는 애들 있지? 네가 딱 그래.
유범산의 연기는 특출난 곳이 없었다.
‘답답해.’
답답한 연기.
그의 연기는 벽에 둘러싸인 사람처럼 제대로 표출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의 오디션.
다시 한번 얻은 기회.
하지만, 그는 그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두워,’
분명 조명 아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누군가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한성태의 연기가 하는 순간.
빛이 보였다.
“그러니까, 아까 돌아가라고 할 때 돌아가지.”
한성태의 연기는 그의 연기와 많은 게 달랐다.
확실하게 대사를 전달하고 있었고 표정과 사소한 액션에 보여주고자 하는 게 확실히 담겨 있었다.
‘매끄러운 연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끊기는 듯한 그의 연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은 연기.
‘내가 너무 큰 걸 바란 거였나?’
유범산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하지도 못하는 걸 잡으려고 아닌 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포기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한성태와 눈이 마주쳤다.
강렬한 눈빛.
대본 속 최덕수의 눈을 하고 있는 그의 눈빛이 유범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안 할 거야?
자신을 따라 연기를 하라고 말하는 한성태의 눈빛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범산의 입이 열리고 있었다.
“닥쳐. 쓰레기 새끼야.”
한성태를 따라 대사를 뱉는 순간, 유범산은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깃들고.
앞을 가로막던 벽에 금이 간 듯한 느낌.
콰직, 하는 알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난 듯한 착각과 함께.
‘이게 지금 내가 하는 거라고?’
아주 사소한 변화였지만, 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연기를 보면서 유범산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3년 동안 정체되어 있던 연기였는데.
그 연기가 조금이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막혔던 둑이 부서지듯이 감정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쏟아낼 수 있게 되었다.
“너 같은 살인범 새끼는 반드시 감방에 처넣어야 돼!”
그의 연기에 한성태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한성태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고, 조금은 만족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유범산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연기를 이끌어준 거구나.’
한성태가 그에게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유범산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운이 좋았다.
한성태라는 배우를 만날 수 있어서, 유범산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비록, 그의 연기를 따라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희망은 생겨났다.
‘같이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오디션 자리가 아닌 실제 촬영장에서 한성태와 연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의 연기를 맛보고, 한성태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싶어졌다.
“후우…….”
연기가 끝이 나고 연재훈은 숨을 짙게 내쉬었다.
한성태와 연기하면서 어느샌가 몰입하게 되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은 채 연기를 하게 되었다.
숨을 거칠었지만, 속은 시원했다.
막혔던 게 풀려버리니, 세상이 빛나 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느릿하게 들려온 한성태의 목소리.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최덕수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도 같은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 그 모습에 유범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방금 있었던 잠깐의 그 순간으로 인해 유범산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생겨버렸다.
이번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상관없다.
한성태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유범산에게 롤 모델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 * *
“방금이 마지막 지원자였죠?”
“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특히 성태 씨, 너무 고생 많았어요.”
연재훈의 말에 한성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이야말로 고생이 많으셨죠.”
그의 말에 연재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디어 끝났네.’
백 명이 넘는 지원자를 상대해서일까.
짐을 정리하는 한성태의 얼굴에는 피로함이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고생 많았다며 당신의 어깨를 토닥입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오늘은 특별히 운동을 쉬어도 인정해주겠다며 콧김을 내쉽니다.]신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가서 대본을 보다가 쉴 생각이다.
“아, 성태 씨. 저녁에 시간 가능하신가요?”
“약속이 없기는 한데. 무슨 일로 그러세요?”
“오디션도 무사히 끝냈는데. 다 같이 저녁이나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한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녁은 먹긴 해야 하니까.’
들어가서 챙겨 먹는 것보다는, 먹고 들어가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럼 다들 각자 조금 쉬다가 식당에서 만나는 게 좋겠네요. 주소 제가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민석 씨는 저랑 같이 어디 좀 갔다 오죠.”
“네.”
김민석과 연재훈이 자리를 떠나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성태도 걸음을 옮겨 오디션장을 나왔다.
건물 바깥에 있는 음료자판기.
그곳에 음료수 하나를 꺼내 마시던 한성태는 옆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
한 사람이 말을 걸려다 멈칫거리는 게 보였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유범산이 그의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