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음…….”
바로 앞까지 다가온 유범산의 모습에 한성태는 옅게 침음을 흘렸다.
그의 손에 들린 음료 하나.
유범산과 음료를 번갈아 돌아보던 한성태는 고민하던 것도 잠시, 손에 들린 음료를 유범산에게 건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안 주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드세요.”
덜커덩.
음료를 하나 더 구매한 한성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성태와 유범산 말고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제게 할 말 있으신 것 같은데. 편하게 말하세요.”
“아.”
달칵, 치익.
한성태는 음료를 마시며 유범산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찾아온 걸까.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유범산은 결코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한성태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 감사의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감사 말인가요.”
“네, 오늘 정말 감사했다고요.”
유범산의 말에 한성태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한테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래도, 한성태 배우님이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 제가 제대로 연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유범산이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멈칫거렸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도와주신 덕분에 제가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때라면, 같이 연기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것 가지고 감사할 필요는 없는데.’
딱히, 그를 특별취급하고자 하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걸 못하는 것 같아 길을 보여준 게 전부였으니까.
“제게 그렇게 말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떨어져도 괜찮……. 아니, 괜찮지는 않지만. 그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서.”
“알고 있습니다. 장난이에요. 이렇게까지 당황할 줄은 몰랐네.”
횡설수설하는 유범산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전생의 유범산은 무척이나 멋있었는데, 지금의 유범산은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놀리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할까.
“열심히 해봐요. 범산 씨라면…… 잘할 수 있으니까요.”
배역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유범산보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가능성이 매우 크기는 하지만.
‘사람 일은 잘 모르는 거니까.’
희망 고문만큼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건 없었다.
직접 겪어본 일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다음에 봐요. 범산 씨라면, 또 볼 것 같거든요.”
그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건 유범산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었다.
* * *
유범산과 헤어지고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온 한성태는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연재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촬영은 대본 리딩 끝나는 대로 하지 않을까 싶고요.”
‘통화 중이시네.’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갈…….”
통화가 꽤 오래질 것 같은 예감에 한성태는 근처 의자에 앉아 대본을 꺼내 들었다.
‘아까 꽤 괜찮았지.’
유범산과 연기하며 느꼈던 감각을 떠올리며 대본을 읽어내렸다.
툭툭.
“……?”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너는 지치지도 않냐? 안 쉬어도 돼?”
“아, 별로 힘들지 않아서.”
김민석이 한성태의 옆에 앉고 있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이 정도 가지고 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오늘 회식 장소라고 하는데, 갈 거지?”
“응.”
“좋네. 감독님이 너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거든. 제자는 난데, 정작 너를 더 챙긴다니까?”
김민석이 한성태를 빤히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부럽다는 듯한 그의 눈빛에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냥, 내가 주연 배우니까 챙겨주시는 거지. 제자인 널 더 많이 신경 쓸걸?”
“그런가? 난 잘 모르겠다. 아. 통화 끝나셨네.”
김민석의 말대로 연재훈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죠? 미안해요. 자꾸 연락이 와서. 바로 가시죠.”
“네, 가요.”
연재훈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상당히 고급스러운 식당이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예전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진짜 좋았다며 추억에 잠깁니다.]연재훈이 안내한 곳은 매우 고급스러운 일식 식당이었다.
식당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쉽게 찾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연재훈으로 예약했습니다.”
“아,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종업원을 따라 이동한 곳은 널찍한 룸이었다.
‘이 정도면 열 명도 거뜬할 것 같은데.’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 자리에 이런 곳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한성태의 상식과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 정도면 작품이 대박 터뜨려야 확실할 때 겨우 올 것 같은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시키시면 됩니다.”
“음.”
연재훈의 말에 한성태는 메뉴판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비싸다.
“저는 감독님께서 추천해 주시는 걸로 먹겠습니다.”
“그래요? 음, 성태 씨 못 먹는 거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스페셜 메뉴로 가죠.”
주문을 넣고 종업원이 룸을 나갔다.
‘내가 이런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천의 얼굴’이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을 건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미소를 짓습니다.]여전히 익숙해져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한성태가 헛웃음을 흘리며 물을 한 모금 마실 때였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어요.”
“감독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성태의 말에 연재훈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성태 씨,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네, 물어보세요.”
“아까는 왜 그랬던 겁니까? 성태 씨가 나설 줄은 몰랐는데.”
“아.”
유범산의 일을 말하는 거라는 걸 한성태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성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느낌이 왔거든요.”
“느낌이요?”
“네, 왠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대로 보내기 아쉬웠습니다.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니요. 불편하기는요. 덕분에 좋은 배우를 찾았는걸요.”
연재훈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태 씨가 나서주지 않았으면, 유범산이라는 배우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아.”
“솔직히 내일 오디션 본다고 해도 유범산 지원자만큼 좋은 연기자를 찾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좋았습니다.”
“그런가요.”
“유범산 지원자는 그대로 가고, 이제 다른 배역들만 찾으면 되겠네요.”
연재훈의 말에 한성태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까 조금 놀라기는 했는데, 성태 씨가 진성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고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한성태의 미소에 연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션 끝나면 바로 촬영 들어갈 겁니다. 대본 리딩이 마지막 준비겠네요.”
‘하루’는 제작 결정과 함께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오디션을 하고 있는 지금은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당장 촬영에 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
우웅.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연재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을 살펴본 연재훈의 표정이 묘해졌다.
“지금 김철민 본부장님이 오시겠다는데, 합류해도 괜찮을까요?”
“……네?”
“불편하면 바로 거절해도 됩니다.”
연재훈의 말에 한성태는 살짝 멍해졌다.
여기서 김철민이 왜 나온단 말인가.
“안 될 건 없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이 근처를 지나고 있어서 생각난 김에, 잠깐 들리려고 하는 거라고 하네요. 격려 몇 마디 하고 돌아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돌아보았다.
김민석도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황당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룸의 문이 열리고 김철민이 안으로 들어왔다.
* * *
[‘천의 얼굴’이 이 정도면 상견례가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헛소리하지 말라며 ‘천의 얼굴’의 연구리를 툭 칩니다.]한성태의 한쪽 다리가 살짝 떨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한성태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전에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불편하지 않았는데.’
김철민과 마주하고 있는 게 조금 불편했다.
한성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때, 말렸어야 했나.’
핼러윈.
그때 김리나는 한성태도 놀랄 정도로 파격적인 분장을 하고 왔었다.
김철민이 그 모습을 봤는지 안 봤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못 봤기를 바랄 뿐.
“핼러윈 제대로 한 건 해주셨더군요.”
쿨럭.
김철민의 말에 물을 마시던 한성태는 그만 사레가 들려 버렸다.
콜록거리며 겨우 진정한 한성태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쥐며 김철민을 바라보았다.
‘사과를 해야 하나?’
역시 사과를 하는 게 맞겠지.
“저, 그, 죄…….”
“고맙습니다.”
“……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한성태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김철민은 방금.
“고맙습니다. 성태 씨가 신경 써준 덕분에 저희 리나가 많이 밝아졌어요.”
잘못들은 게 아니구나.
“아니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그저 선배로서 할 일을 한 게 전부인걸요.”
“‘선배’로서 잘해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성태 씨는 그 부분에서 너무 잘해주셨고요.”
방금 ‘선배’를 강조한 거 같은데.
한성태는 그저 웃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천의 얼굴’이 아무리 봐도 상견…….]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천의 얼굴’의 입을 막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잘했다며,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에게 따봉을 날립니다.]이분들은 또 왜 이러는 걸까.
한숨만 나왔다.
“오디션은 어땠나요? 아까 들어보니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다행히도 김철민은 핼러윈 이야기를 더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에 한성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성태 씨 대단했죠. 유범산 지원자와 연기하는데……. 감탄만 나오더라니까요.”
“그 정도인가요?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네요.”
“좀 멋있기는 했죠. 지정 연기 봅시다! 하고 말하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한성태는 그들의 대화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김철민은 금방 간다고 한 것 치고는 상당히 오래 앉아 있었다.
대화도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을 무렵.
“성태 씨.”
“네, 본부장님.”
김철민이 한성태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었다.
“오디션 끝나면 바로 촬영 시작할 텐데. 자신 있나요?”
김철민의 물음에 한성태는 멈칫거렸다.
‘자신 있냐고?’
한성태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짓습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냐며 당신을 바라봅니다.]자신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